천 년 동안 혼자 근무한 사람을 만나면 무엇부터 물어야 할까.
윤재하는 여러 질문을 떠올렸다. 왜 도망치지 않았는지, 월급은 받았는지, 퇴직금은 얼마나 밀렸는지. 하지만 첫 판정실 입구에 선 여자에게는 그런 질문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여기 혼자 계셨습니까?”
여자는 눈썹을 들었다.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죠.”
그녀가 손을 뻗자 먼지 낀 유리창 뒤로 오래된 사무실이 드러났다. 책상 여섯 개, 마른 잉크병 열둘, 서로 닿지 않게 놓인 우편 봉투들. 네 사람이 들어서자 여자는 먼저 출입 기록을 남겼다. 재하, 세리아, 미라, 아라. 그는 출입패에 이름을 적지 않은 이유를 물었지만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실제 이름은 요청할 때만 적습니다. 허가된 역할만 알아도 오늘의 업무는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좋은 제도네요.”
“원래는 좋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오르다라고 소개했다. 사람인지 기록인지 묻자 ‘지금 여러분이 질문할 수 있는 근무자’라고 대답했다. 정확하지 않은 설명이었지만, 세리아는 그 이상의 사적 정보를 요구하지 않았다. 출입 허가 자체가 기록실의 질문과 답을 보존하도록 만들어졌으므로, 신원은 추후 별도로 확인해도 됐다.
첫 판정실에는 아주 오래된 분류 장치가 있었다. 종이 대신 얇은 돌판을 사용했고, 한 문장이 바뀔 때마다 벽의 도르래가 움직였다. 재하가 원본 기록 000001을 조회하자 장치가 짧게 덜컥거렸다.
[발화: 들리면 대답해 줘]
[원본 분류: 미정]
[1차 재분류: 구조 요청]
[2차 재분류: 신앙 요청]
[변경 서명: 제1판정관]
“구조 요청이었네요?” 아라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오르다가 대답했다. “원래 누군가를 찾는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재하는 돌판의 한쪽을 살폈다. 변색된 작은 홈이 있었다. 누군가 기록을 긁어 낸 자리였다. 세리아는 사진 같은 복제 주문을 쓰지 않고 원본의 홈 위치를 손으로 그렸다. 미라는 먼저 도르래가 무너지지 않도록 고정했다. 이 장소의 기록은 수천 년 된 비밀이었지만 당장 가장 위험한 것은 삭은 나무기둥이었다.
“저는 위험하니까 저 밑에 서지 마세요.” 미라가 말했다.
“신이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신도 머리에 돌이 떨어지면 아파하는 건 똑같습니다.”
재하는 한 발 물러섰다. 오르다는 그 모습을 유심히 봤다.
“예전 방문자들은 기록부터 열려고 했습니다. 기둥을 고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무실 안전은 언제나 기본이죠.”
그가 아는 회사에서도 안전 표어는 벽에 많이 걸려 있었다. 실제로 지켜지는지는 별개였지만.
세리아는 오르다에게 첫 분류의 변경 근거를 물었다. 여자는 오래된 판정 메모를 꺼냈다.
[구조 요청은 반드시 수신 가능한 대상이 있어야 한다.]
[수신 대상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초월적 수신자로 대체한다.]
[대체 수신자에게 응답 의무와 신앙 청구권이 발생한다.]
재하는 마지막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원래 소리친 아이는 단지 누군가에게 대답해 달라고 했는데,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그 소리를 바쳐야 한다는 뜻으로 뒤집혀 있었다.
“이게 법입니까?”
“원시 분류원 내부 규칙이었습니다.” 오르다가 대답했다. “이후에 더 넓은 법체계로 복제됐죠. 원본에는 잠정 규칙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잠정이 몇 년입니까?”
“대략 천 년쯤.”
에반이 있었다면 멋진 광고 문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고객 동의 없이 천 년 유지되는 프리미엄 서비스’. 재하는 그런 농담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멈추는 것을 느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천 년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아라는 판정실 반대쪽의 작은 문을 발견했다. 문 위에는 ‘반송·이의 제기’라고 새겨져 있었지만 손잡이가 빠져 있었다.
“취소할 방법이 없었다는 말이군요.”
“옛날에는 있었죠.” 오르다가 조용히 말했다. “분류 규칙이 바뀌면서 손잡이를 제거했습니다. 당시 관리자는 모두가 같은 신에게 속해야 질서가 유지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신은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오르다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저는 반송 담당이었습니다. 반대 의견을 기록으로 남겼지만 실효가 없었어요.”
재하는 그제야 여자의 장갑을 자세히 보았다. 여섯 손가락은 실제 손가락이 아니었다. 마지막 하나는 작은 금속 열쇠였다. 반송실의 손잡이처럼 생긴 열쇠. 오르다는 그것을 늘 손에 끼고 다니고 있었다.
“그럼 지금도 문을 여실 수 있습니까?”
“열 수는 있어요. 하지만 원본의 수신 권한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천 년 전에 잃어버린 승인 한 장 때문에 그 문을 혼자서는 열 수 없습니다.”
“누구의 승인입니까?”
“첫 발화의 주인.”
아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지금 살아 있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었다. 후손이 있다 해도 조상이 남긴 말을 마음대로 처리할 권리가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오르다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받았던 반송 신청서를 보여 주었다. 종이는 거의 부스러질 만큼 오래됐지만 문장은 아직 또렷했다.
'저는 그 말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신청인 이름은 지워져 있었다. 당시 판정관은 신청을 접수했지만 승인하지 않았다. 거절한 이유는 간단했다. '처리할 수 없는 요청.' 오르다는 그 문구를 본 순간에 대해 말했다. 회신 담당이었던 자신에게도 설명을 요구할 권한이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일곱 번 같은 질문을 올렸고 일곱 번 기각 통지를 받았다.
“여덟 번째는 안 하셨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그날 반송실 문이 사라졌습니다.”
오르다는 손가락 여섯 개 달린 장갑을 들었다. 원래의 열쇠가 손잡이에 있었지만 누군가 문을 없애 버려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장갑 안쪽에 열쇠를 넣어 보관했다. 누구도 쓰지 않는다면 언젠가 자신마저 이 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본 신청인은 어떻게 되었나요?” 아라가 물었다.
“모릅니다.”
오르다는 바로 답했다. 그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일이 오래된 죄책감을 없애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없는 기록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세리아는 신청인의 사생활을 확인하려 들지 않고, 반송 창구가 봉쇄된 사건만 조사 대상으로 적었다.
벽면 아래에는 직원들이 남긴 낙서도 있었다. '오늘 종이 열두 번 울렸다', '점심은 늦게 먹었다', '바깥엔 비가 왔다'. 당시의 판정관들이 남긴 거창한 선언보다 작고 따뜻한 말들이었다. 오르다는 그 낙서를 지우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직원이 거대한 음모의 일부였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고도 제도의 잘못을 알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재하는 자신이 인간 시절 회사에서 처리했던 서류들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누군가에게 부담을 넘기던 문서가 있었을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건 바꾸죠.” 그가 말했다.
오르다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낡은 의자를 하나 가져와 그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천 년 동안 비어 있던 손님용 의자였다. 재하는 먼지를 털고 앉았다. 문제의 근원을 찾으러 왔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는 시간이 먼저 생겼다.
그때 위층에서 갑자기 종이 울렸다. 검문소의 경보종이었다. 미라가 출입문을 돌아봤다.
[외부 원본 열람 요구 감지]
[열람 명의: 최초 기도의 채권자]
[출입 절차: 우회 시도]
오르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저들이 벌써 왔군요.”
“누굽니까?” 재하가 물었다.
“전에는 판정을 의뢰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은 판정 결과를 사고팝니다. 한 번 기도라고 분류된 말은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해요.”
세리아가 즉시 기록실 봉인 상태를 확인했다. 낡은 장부의 페이지 끝이 저절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판정실 바깥에서 누군가 원본을 강제로 읽으려 하고 있었다.
“문을 잠가야 합니다.” 미라가 말했다.
“원본을 파괴하면 안 됩니다.” 아라가 덧붙였다.
재하는 오르다에게 손잡이를 돌릴 수 있는지 다시 묻지 않았다. 승인받지 못한 통로를 강제로 열면 보호하려던 기록을 같은 방식으로 침범하게 된다. 대신 그는 출입 허가서의 ‘봉인 파손 금지’ 조항을 확인했다.
“우리가 여기 들어온 것도 조건부 허가였죠. 외부 열람자는 누구에게 허가받았습니까?”
세리아가 즉시 질의서를 작성했다. 외부 열람 신청자의 승인 문서, 원본의 보관 주체, 접근 권한을 공개적으로 검증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누리가 원격 통신을 연결했다. 그런데 검문소의 노인은 뜻밖의 대답을 보내 왔다.
“저들은 출입패가 없습니다. 출입 허가를 신청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명백한 무단 접근이군요.”
“아니요.” 노인이 말했다. “저들은 자기들이 판정실의 채권자라며 출입 자체가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건물 밖에서 회선을 당겨 원본을 꺼내려 하는군요.”
미라가 오래된 배선도를 펼쳤다. 회선을 끊으면 원본은 보존되지만 분류실이 작동을 멈춘다. 회선을 유지하면 외부가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무진 분지에서 겪었던 딜레마가 장소만 바꾸어 되풀이되는 것을 깨달았다.
“백업은?” 미라가 물었다.
“외부 복제는 원본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오르다가 말했다.
“그럼 같은 장치 안에서 출입만 막는 방법을 찾죠.”
미라는 출입패의 작은 금속을 이용해 기록 장치의 입력 레버를 잠갔다. 노인이 건네준 패가 단순한 번호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외부에서 회선을 당겨도 원본이 움직이지 않자 벽이 떨리기 시작했다. 낡은 기둥에서 석회가 떨어졌다. 재하와 아라가 서류함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저는 지금 신입 직원으로 치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겁니까?” 재하가 물었다.
“사무실 이삿짐 담당이죠.” 미라가 말했다.
“무급 노동은 정말 익숙해지지 않네요.”
하지만 그들이 웃을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외부 회선에서 검은 글씨가 나타났다.
[원본 열람 거절 시 지체보상금 부과]
[대상: 기록 보관자 및 현장 참석자]
[예상 부담: 미래의 신앙 수익]
재하는 자신에게 붙은 예상 부담액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세계의 기관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믿음을 계산하는 데는 놀라울 만큼 성실했다.
“제가 아직 받지도 않은 걸 어떻게 갚죠?”
“그래서 나중에 받을 권리를 빼앗는 겁니다.” 오르다가 말했다. “처음부터 그런 식이었어요.”
재하는 검은 글씨 아래에 자신의 이의서를 접수했다. ‘열람을 거절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미래 의사를 담보로 삼을 근거가 없음.’ 그것이 이번 일의 핵심이었다. 오르다는 한참 그 문장을 읽었다. 여섯 번째 손가락 모양 열쇠가 미세하게 빛났다.
[원시 반송 절차: 잠정 재검토]
[사유: 보관자의 명시적 이의 제기]
“저도 이의를 낼 수 있었군요.” 오르다가 속삭였다.
“당연히 내실 수 있죠.”
“천 년 전에는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르다는 마침내 장갑에서 열쇠를 뽑았다. 반송실의 손잡이 자리에 그것을 끼우자 오래된 문이 조금 열렸다. 완전히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승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보관자의 이의 신청이 반영되어 불법 열람 회선은 임시 차단됐다.
“시간을 벌었군요.” 세리아가 말했다.
“얼마나요?”
“심사 담당자가 도착할 때까지.”
“그럼 우리가 먼저 자료를 정리합시다.”
재하는 반송실 안쪽에 쌓인 봉투를 보았다. 그 안에는 첫 발화와 관련된 두 번째 기록이 있었다. 발신 날짜는 판독되지 않았고 수신인은 여전히 없었다. 그러나 첫 기록과 달리 문장 끝에 작은 표시가 붙어 있었다.
[응답 미완료]
[발화자에게 전달되지 않은 회신 1건]
“처음부터 아무도 듣지 않은 게 아니었네요.” 아라가 말했다.
오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대답했어요. 다만 그 대답을 아이에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벽에 수신 실패 사유가 떠올랐다.
[회신 지연 이유: 신격 승인을 기다리는 중]
재하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사람의 구조 요청에 대답할 수 있었던 누군가가, 신의 허가를 기다리느라 편지를 전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신이 인간에게 남긴 편지의 뜻도 달라진다. '왜 대답하지 않았는지 물어다오.' 그것은 신의 무관심을 변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누구에게 대답할 권리를 빼앗겼는지 묻는 말일지도 몰랐다.
오르다는 반송실 바닥에서 오래된 목록을 집어 들었다. 명단의 첫 번째 줄이 검게 지워져 있었다.
[회신 작성자: 신격 없음]
[후대 분류명: 최초의 신]
재하는 목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이 되기 전부터 대답했던 누군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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