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도가 받은 긴급 통신문에는 전쟁을 선포하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침묵항 무허가 기록 반출 확인]
[전쟁신 카르도에게 요청]
[민간 구역 봉쇄 및 원본 설계도 확보]
[성공 시 군 보급 신성 채무 전액 상계]
카르도는 세 번째 줄에서 멈췄다. 군 보급 신성 채무는 실재하는 문제였다. 병사들의 겨울 외투, 국경 초소의 난방, 전몰자 가족들에게 지급할 공적 지원까지 얽혀 있었다. 그가 지금 움직이면 많은 사람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조건으로 제시된 첫 번째와 두 번째 줄이 마음에 걸렸다.
“민간 구역의 출입을 제한할 이유가 있나?”
라그온이 대답했다. “원본의 이동을 막기 위해서라는 설명뿐입니다. 침묵항은 군사 지역이 아닙니다.”
“전투는?”
“보고된 무장 병력은 없습니다. 회수체가 항구 상공에 모였다는 정보만 있습니다.”
“그것들은 어느 쪽 소속이지?”
“중앙 담보청입니다.”
카르도는 서류를 접었다. “담보청이 자기 장치를 보내고는 내 군에 봉쇄를 요구한다. 자신들이 만든 사태를 군법으로 덮으려는군.”
그는 전령을 불렀다. 명령 자체는 거부하되, 우편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조 요청에 대응하기 위한 호위대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호위대가 하는 일과 하지 않는 일도 적었다. 피난민 통행 보장, 다친 사람 구조, 공중 회수체의 무허가 침입 차단. 주민들의 신앙 등록 조사, 병 압수, 원본 계약서 독점 보관은 하지 않는다.
라그온은 그 문장을 읽다 고개를 들었다.
“각하, 우리 군이 담보청과 적대 관계로 기록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지키는 임무가 채무 회수에 적대적이라면, 그 명령이 무엇을 지키는지부터 물어야겠지.”
라그온은 말없이 경례했다. 그는 예전에도 카르도의 명령을 지켰지만, 오늘은 그 명령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침묵항에서는 윤재하가 난간을 붙들고 있었다. 수많은 회수체가 위쪽 하늘에서 원을 그렸다. 새들은 항구 주민을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창고의 명칭, 소유권, 경로 허가를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이름이 지워진 창고는 지도에서 사라졌고, 길을 잃은 사람이 난간 끝에서 멈춰 섰다.
“우리 뒤의 발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미라가 소리쳤다.
“어디서부터요?”
“제일 오래된 다리부터요. 오래됐다는 이유로 폐기 대상으로 판정됐나 봐요.”
재하는 이소와 벨다가 안전한 쪽으로 이동했는지 확인했다. 릴리는 치료소에 있는 노인을 도왔고, 세리아는 보관소에서 가져온 원본 설계도를 방수 천에 싸서 둘로 나누었다. 에반은 그 짐을 들겠다고 했지만, 세리아는 거절했다.
“증거를 보관하는 사람과 책임이 있는 사람은 분리하겠습니다.”
“그래. 맞아.” 에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그는 스스로 어디에 서야 할지 몰랐다. 이제 해야 할 일이 하나 분명해졌다. 자신이 만들었던 회수체의 탐색 방식을 설명하는 것. 새들은 가장 오래된 원본 잉크의 냄새를 따라왔다. 종이에 바른 특정 물질이 표적이 되었다. 그는 보관소의 다른 물품으로 가짜 냄새를 만드는 방법도 알았지만, 그것은 곧 다른 주민의 병을 미끼로 쓰는 일이었다.
“안 하겠습니다.” 에반이 먼저 말했다.
재하가 돌아봤다. “뭘요?”
“제일 쉬운 방법. 다른 사람 물건을 던져서 우릴 살리는 방법.”
“그럼 더 어려운 방법을 찾죠.”
미라는 보관소 옥상으로 올라가 낡은 바람개비를 돌렸다. 회수체는 음성 보관소에서 나오는 신앙 흔적과 원본 설계도의 잉크를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람개비가 물리적인 바람길을 바꾸면 추적 경로를 잠시 어지럽힐 수 있었다. 그녀는 그 틈을 이용해 낡은 우편다리의 지지대를 고치기로 했다.
“다리를 고치면 몇 명이나 건너갈 수 있습니까?” 릴리가 물었다.
“한 번에 열두 명. 오가는 사람의 무게가 다르니 안전 확인이 필요해요.”
“그럼 우선 혼자 걷기 어려운 사람부터요.”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사람을 한 번에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팠다. 하지만 순서를 공개해 두면 서로를 밀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릴리는 자신이 봤던 환자들의 이동 상태를 설명했고, 항구 주민들은 누가 마지막으로 남아 자재를 전달할지 직접 정했다.
하늘에서 회수체들이 내려왔다. 날개가 서로 부딪히자 종이 조각들이 무수히 흩어졌다. 회수체가 통행자들의 머리 위에 글씨를 찍으려 했다.
[원본 관련자: 임시 보전 해제 요청]
재하의 손에 금빛 균열이 다시 나타났다. 심판장에서 입었던 권능의 부담이었다. 그는 무상의 약속을 무작정 휘두르면 자신의 신격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이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를 돌려받으려고 온 겁니다. 그 이유만으로 빚이 생기지 않습니다.”
권능이 짧게 번쩍였다. 회수체 몇 마리가 제자리에서 멈췄지만 전부 사라지지는 않았다. 재하는 숨을 몰아쉬었다.
“이러다 너부터 쓰러지겠다!” 에반이 외쳤다.
그때 붉은 빛이 우편로를 가로질렀다. 카르도의 군기가 구름 너머에서 나타났다. 전쟁신의 군인들은 칼 대신 길게 뻗는 구출용 밧줄을 들고 있었다. 라그온이 외쳤다.
“민간 피난 경로 확보! 우편로 외곽 방어선 설치!”
회수체들이 붉은 깃발을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카르도는 그들을 향해 무기를 겨눴으나 먼저 쏘지 않았다. 그는 고지문을 읽게 했다. 민간 피난 경로를 건드리지 않는 한 공격하지 않는다. 회수체가 더 다가오자 방어용 빛 장벽만 펼쳤다. 검은 새가 막혀 튕겨 나갔다.
재하는 카르도의 곁으로 달려갔다. “와 주셨군요.”
“국경이 아니라고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
“항구 봉쇄 명령을 받으셨다던데요.”
“받았지. 그래서 정식으로 거부했다.”
“아주 큰 용기네요.”
카르도는 코웃음을 쳤다. “어제까지만 해도 거부당할까 봐 두려운 자가 아니었지. 오늘은 명령 하나를 거절하는 데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게 새삼스럽다.”
두 신은 잠시 서로를 보았다. 처음에는 자기 신전을 지키려는 두 경쟁자였다. 이제는 각자 다른 길에서 같은 원칙을 배우고 있었다. 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보호할 것. 자신이 틀렸을 때 고칠 수 있는 기록을 남길 것.
피난이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 상인이 자기 화물부터 옮겨 달라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그는 약속된 운송료를 이미 냈다고 영수증을 흔들었다. 라그온은 잠시 고민했다. 화물 속에는 비싼 금속과 유리병이 있었지만, 다리 건너편에는 몸이 불편한 노인과 어린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약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니오!” 상인이 외쳤다.
라그온이 답했다. “계약을 지켜야 합니다. 다만 피난 우선순위는 인명 보호 기준을 따릅니다. 운송료 반환이나 지연 배상은 별도 절차로 처리하겠습니다.”
상인은 화를 냈다. 재하도 그의 처지가 억울하다는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미 낸 운송료가 다른 사람의 목숨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다. 대신 세리아가 지연 사유를 기록하고 손해를 확인할 서류를 마련했다. 상인은 그제야 창고 옆으로 물러섰다.
다리 중간에서는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가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난간을 붙잡고 아래의 구름을 내려다봤다. 릴리는 아이에게 빨리 걸으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아이가 바라보는 위치에 몸을 낮추고, 한 번에 한 걸음씩 자신을 따라오도록 했다. 미라가 난간에 연결한 안전 고리가 아이의 허리에 채워졌다.
“꼭 줄을 놓지 마.” 아이가 말했다.
“내가 놓지 않을게. 네가 멈추고 싶으면 잠깐 멈춰도 돼.” 릴리가 대답했다.
그 소리에 재하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말로 하면 아주 쉬운 약속이었지만, 릴리는 실제로 아이의 속도에 맞춰 걸었다. 다리 건너편에서는 라그온의 병사들이 다른 사람들을 안전한 거리에서 기다리게 했다. 회수체들이 다시 가까워지는 동안 한 걸음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카르도는 재하에게 낮게 말했다. “병사는 전투에서 명령이 빠를수록 산다. 하지만 여기서는 명령이 빠르다고 사람이 빨리 걷는 게 아니군.”
“사람 마음을 계약으로 고칠 순 없으니까요.”
“그 말은 내 군의 훈련 교범에 적을 수 있겠군.”
“대신 작은 글씨로요. 훈련 시간이 늘어나면 병사분들이 저를 싫어할 테니까.”
카르도가 웃었다. 잠시 뒤 그는 라그온에게 구조 대상의 속도에 맞춰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이상한 명령처럼 들렸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병사들은 그 의미를 알았다. 누군가 넘어지지 않도록 기다리는 것도 방어였다.
이후의 사고는 그들이 준비한 줄과 구호 고리가 없었다면 훨씬 위험했을 것이다. 병사들은 아이를 끌어올린 다음에도 움직일 수 있는지 먼저 확인했고, 안전한 구역으로 옮긴 뒤 그 가족에게 직접 인계했다. 카르도는 군사 보고서의 성과란에 '구조 완료'를 추가하라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 피난자가 다리를 건너려 할 때 일이 터졌다. 가장 오래된 발판 하나가 뜯겨 나가면서 아이가 미끄러졌다. 미라가 잡아 둔 밧줄이 흔들렸고, 릴리가 난간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손가락 두 개로 끈을 잡은 채 허공에 매달렸다.
카르도가 칼을 던지려 했다. 재하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칼은 회수체를 떨어뜨릴 수 있었지만, 발판과 밧줄까지 끊을 수도 있었다. 미라는 먼저 구조용 고리를 내렸다. 라그온이 병사 둘과 함께 밧줄을 고정했다. 아이가 고리를 잡는 순간 릴리가 엎드려 팔을 뻗었다.
“괜찮아. 천천히. 아직 잡고 있어.”
아이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병사가 조금씩 밧줄을 당겼다. 아이의 발이 나무판에 닿자 주변에서 작은 숨소리들이 터졌다. 재하는 신성으로 아이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손을 뻗은 사람들이 있었다.
구조가 끝난 뒤 카르도의 군기는 회수체의 공격으로 가장자리가 찢어졌다. 승전 깃발 같지 않았다. 라그온은 찢어진 천을 접어 보고서에 붙였다.
“우리 피해는?” 카르도가 물었다.
“경상 세 명, 다리 손상 하나, 피난자 전원 확인했습니다. 물품 피해는 집계 중입니다.”
“저쪽은?”
“회수체는 전부 물러났으나 파괴된 개체는 없습니다.”
카르도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적을 몇이나 부쉈는지가 아니라 누구를 얼마나 지켰는지 적힌 보고서였다.
침묵항 주민들은 구조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회수체가 물러난 하늘에는 검은 종이 조각들이 남아 있었고, 항구의 종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누군가 놀라 밖으로 뛰어나왔다. 벨다는 사람들에게 손짓으로 조용히 괜찮다고 알렸지만, 불안 자체가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리아넬 치료소에서 온 지원팀은 다친 주민들을 확인했다. 릴리는 임시 진료 구역 앞에 물과 담요를 준비했고, 노아의 병을 돌보던 경험을 떠올리며 누가 혼자 남아 있는지 살폈다. 재하는 따뜻한 물을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 신성한 전투가 끝난 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찻주전자를 들고 다니는 것이라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신님, 굳이 직접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 병사가 말했다.
“저도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죠.”
병사는 잠시 그를 보더니 반대쪽 손잡이를 잡았다. 두 사람은 주전자를 같이 옮겼다.
라그온은 구조 작전의 잘못된 부분도 보고서에 남겼다. 구조용 고리가 충분하지 않았고 피난 순서를 알리는 표지가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다. 카르도는 그 내용을 삭제하지 않았다. 다음에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정보였다.
“승리 보고서가 아닌 것 같군요.” 라그온이 말했다.
“다음번에 더 적게 다치는 보고서라면 그게 낫다.” 카르도가 답했다.
재하는 그들이 전쟁신의 군대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어쩌면 군대의 역할은 평화로운 날에 사람을 지킬 준비를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떤 군사 체계도 스스로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의 감시를 받는 것 또한 계속되어야 했다.
그날 밤 새 명령이 도착했다.
[전쟁신 카르도 신앙 신용등급 추가 하향]
[호위 병력 지원분: 담보청 보증 대상 제외]
카르도는 그것을 읽고 웃었다. “역시 예상대로군.”
“후회하십니까?” 재하가 물었다.
“아니다. 하지만 내 병사들이 겨울을 춥게 보내게 해서는 안 되겠지. 내 선택의 비용을 그들에게 몰래 넘길 생각은 없다.”
재하는 더 이상 칭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카르도가 필요한 물자를 공개적으로 요청할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숨겨진 신앙 담보가 아니라 실제 물품과 비용을 계산하는 방법을.
그때 미라가 다리 끝에 남은 글씨를 가리켰다.
[종탑 이동 허가: 미확인]
[안내 발신지: 천계 외부]
“앞으로 길이 하나 더 남았어요.”
“어디로 갑니까?”
미라는 먼 하늘을 올려다봤다. 모든 우편로가 끝나는 곳에 아주 작은 종탑이 홀로 서 있었다. 날개도 달리지 않은 금빛 새 한 마리가 그 위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인데, 누군가 최근에 발판을 고쳤네요.”
제4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