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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44화
PAYLUA ORIGINAL · 제44화

44화. 목소리 하나를 돌려받는 방법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226자

오프라인 책장
침묵항의 최고 책임자가 윤재하에게 내민 것은 계약서가 아니라 자물쇠였다. “열어 보십시오.” 그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항구 사람들은 세관장 헤르몬을 경계하며 길을 비켜 주었다. 남자는 은색 장갑을 끼고 있었고, 장갑 손등에는 신앙 담보청의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사다리 위에 걸린 금빛 유리병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냉정했다. “00871번 병을 조사하고 싶다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물쇠를 먼저 열어 보십시오. 누구든 자기 소유라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증명할 수 있는 자가 권리를 갖는 법이지요.” 재하는 자물쇠를 받아 무게를 가늠했다. “자물쇠를 여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법도 있습니까?” “그 정도 능력이 없다면 감히 보관소에 손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럼 저는 못 열겠네요. 자물쇠 공사 전문가가 아니거든요.” 헤르몬이 순간 말을 잃었다. 미라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자물쇠는 제가 열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우리에게 열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죠.” 세관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당신들 때문에 항구의 보증료가 올라갔습니다. 주민들이 피해를 보면 책임지겠습니까?” 재하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실제로 보증료가 올랐는지, 누가 올렸는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소가 스스로 신청한 열람과 반환 청구에 대해 압류를 진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누리는 세관장의 협박을 기록했고, 세리아는 보관료 변동 자료를 요청했다. 한쪽에서는 이소가 피리를 불고 있었다. 소녀는 말을 잃었지만 숨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일정한 음으로 불어 내는 피리 소리가 유리병의 표면을 조금씩 떨리게 했다. 미라는 고개를 기울였다. 피리의 공명에 반응하는 병이 여럿 있었다. 이소가 가져온 복제품 문양이 같은 제작 기술에서 나온 것이었다. “잠깐만요.” 미라가 말했다. “유리병마다 소리를 나누는 작은 관이 붙어 있어요. 원래는 반환용이었을 겁니다.” 에반이 장치를 살폈다. 보관소 운영 초기에 사용된 원시적인 배관이었다. 신앙 담보청이 장부를 통합하면서 관을 폐쇄하고 모든 목소리를 한 저장기에 연결했다. 기록에는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개조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반환용 관을 막고 난 뒤부터는 병을 빼는 일이 훨씬 어려워졌다. “왜 원래 기능을 막았습니까?” 릴리가 헤르몬에게 물었다. “관리 비용 때문입니다.” “그럼 관리비를 받은 보관소가 직접 유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헤르몬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직접 말하면 자기 목소리가 채무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릴리는 종이를 돌렸다. 지금 이 자리의 기록은 동의한 사람의 글로만 남기겠다고 표시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펜을 잡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벨다가 앞으로 나왔다. ‘예전에는 병을 돌려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제 어머니입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헤르몬이 서둘러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벨다는 오래된 자물쇠 열쇠를 내밀었다. 어머니는 어릴 적 음성을 맡겼다가 성인이 되어 직접 철회 신청을 했다. 보관소가 지금의 중앙 저장기로 개조되기 직전이었다. “기록이 남아 있습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벨다는 손바닥에 작은 종이 조각을 올렸다. 반환 확인서, 담당자의 서명, 병 번호, 당시 사용한 기계의 조작 순서가 적혀 있었다. 미라는 종이의 모서리를 만져 보았다. 복사본을 아무리 많이 만들었다 해도 이것이 진짜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기계의 구형 부품과 기록의 자국을 대조했다. 이소의 병에도 같은 결속 형태가 남아 있었다. “이 방식이라면 한 사람의 병만 열 수 있겠어요.” 미라가 말했다. “단, 조작 중 나머지 저장기의 압력을 유지해야 하니 세 명은 붙어 있어야 합니다.” 세관장은 창고 문을 닫으라고 명령했다. 이소가 앞으로 나서서 문 앞에 섰다. 소녀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대신 자기 손에 든 영수증과 피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내가 신청한 일이라는 표시였다. 재하는 그 옆에 섰다. “우리는 세관장을 내쫓으러 온 게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가능한 반환 절차를 검증하려는 겁니다. 다른 주민들의 병에는 손대지 않겠습니다.” 헤르몬은 주변을 살폈다. 천계의 상급 심리까지 공론화된 사안을 무턱대고 막았다가는 자신도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마지못해 창고 문 앞에서 물러났다. 다만 검증 사실을 중앙에 보고하겠다고 했다. 검증을 시작하기 전에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이소가 아직 미성년자라는 사실이었다. 보관소 측은 보호자가 현장에 없으면 반환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오래전 항구를 떠난 뒤 소식이 없었다. 세관장 헤르몬은 그 사정을 알고 있다는 듯 서류 한 장을 흔들었다. “보호자 서명란이 비어 있군요. 법령에 따라 더 진행할 수 없습니다.” 재하는 문서를 빼앗지 않았다. 세리아에게 해당 법령의 정확한 조항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규정에는 두 갈래가 있었다. 새로운 채무를 만드는 계약은 보호자 승인이 필요하지만, 이미 자기에게 귀속된 재산의 반환을 청구하는 일은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다만 반환 과정에 의료적 위험이 있다면 독립된 평가를 받아야 했다. “저 아이가 돌려받으려는 건 새로운 대출이 아니잖습니까.” 재하가 말했다. 헤르몬은 말을 바꿨다. “그렇다 해도 안전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건 동의합니다. 평가를 받읍시다.” 세관장은 예상과 다른 대답에 당황했다. 그는 재하가 규정을 전부 거부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절차 중 필요한 부분을 확인하고 지키는 것도 피해자를 보호하는 길이었다. 릴리는 치료사에게 이소의 상태를 보여 주었다. 오랫동안 발성을 제한한 사람이 목소리를 되찾았을 때 한꺼번에 큰 소리를 내면 목을 다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소는 안내를 천천히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가 원하는 것은 지금 당장 온 동네가 들리도록 노래하는 일이 아니었다. 먼저 할머니에게 짧게 인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세리아는 반환 계획서에 이소가 선택한 내용을 적었다. 재검사 여부, 중단하고 싶은 때, 누가 옆에 있어도 되는지. 에반은 자신이 원래 설계한 기계인데도 조작 책임자로 참여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그는 구조를 설명할 뿐, 실제 조작은 미라와 보관소 기술자들이 하도록 뒤로 물러났다. 그때 갑자기 창고 밖에서 오래된 종소리가 울렸다. 주민들이 놀라 뛰어나갔다. 항구의 세 번째 종탑은 수백 년 동안 울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번 울린 것이다. 기둥 아래 붙어 있던 녹이 떨어지고 먼지가 일었다. 미라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종탑을 자세히 살피던 그녀는 웃지 않았다. “이건 누가 줄을 당긴 게 아니에요. 내부에서 오래된 스프링이 풀린 흔적이 있어요.” “혼자 작동했다고요?” 재하가 물었다. “누군가 오래전에 조건을 걸어 놓은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원인을 몰라요.” 그 말과 함께 중앙 저장기가 낮게 진동했다. 이소의 목소리를 빼내면 다른 병에서 무엇이 움직일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미라는 작업을 중단하고 압력계의 눈금을 다시 확인했다. 주민 몇 명이 지루하다며 빨리 끝내라고 재촉했지만, 이소는 멈추라는 표시를 했다. 재하는 즉시 작업을 중단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누구도 그 선택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중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첫 검증이 되었다. “다시 해도 괜찮겠니?” 릴리가 천천히 물었다. 이소는 기계를 가리켰다가, 미라가 부품을 고친 뒤에 하겠다는 뜻으로 손짓했다. 그 의미가 확실하지 않아 종이에 한 번 더 적게 했다. 소녀는 ‘안전하면 다시’라고 썼다. 미라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기다려 주는 동안 기계의 막힌 관을 하나씩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압력계의 바늘이 정상 범위로 들어오자 주민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멈출 장치도 연결했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재하는 그 말을 가장 중요한 성과로 받아들였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돌려주는 장치에는 성공 버튼만큼이나 중단 버튼도 필요했다. 그것이 처음의 원계약이 가르쳐 주려 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그 뒤의 일은 기적이라기보다 노동에 가까웠다. 미라가 오래된 나사를 풀면 세리아가 번호를 적었다. 누리는 기록을 복제하지 않고 표면만 읽었고, 릴리는 이소 곁에서 음이 바뀔 때마다 손을 잡아 주었다. 재하는 무상의 약속을 쓰지 않았다. 보관소의 기계를 알아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건드릴 권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00871번 관에서 맑은 소리가 났다. 병의 안쪽에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갇혀 있었다. “엄마, 나 물 마실래.” 이소는 숨을 들이켰다. 그 말은 이미 오랫동안 그녀가 잊고 있던 어릴 적 자신의 말이었다. 벨다가 소녀에게 확인표를 건넸다. ‘내 목소리입니다’라는 문구 아래 두 개의 칸이 있었다. 맞음과 보류. 이소는 떨리는 손으로 ‘맞음’을 선택했다. 반환 장치를 돌리자 병의 금빛 끈이 천천히 풀렸다. 무슨 엄청난 빛이 퍼지지는 않았다. 다만 소녀가 입을 열었을 때, 오래된 음절 하나가 그녀의 목구멍을 지나갔다. “할….” 이소는 힘겹게 기침했다. 릴리가 물을 내밀었다. 목소리를 되찾는 것과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발성 기관이 곧바로 편안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소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할머니.” 그 말 한마디에 창고 안의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재하는 환호하지 않았다. 이소가 이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기다렸다. 벨다는 눈물을 닦으며 종이 아래에 적었다. ‘반환 1건. 보관료 미납과 분리.’ 이소가 돌아가려 하자 한 노인이 창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가 굽은 여자는 소녀의 얼굴을 보자 입술을 떨었다. 벨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천천히 손짓했다. 이소의 할머니였다. 노인은 왜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전부 알지 못했다. 다만 손녀가 다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소식만 들었다. 이소는 재빨리 달려가지 않았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아직 낯설어 한 번에 말하지 못했다. “할머니. 나….” 노인은 손녀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봤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알아. 여기 있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어 오래 서 있었다. 재하는 그 장면을 기록하자고 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되찾았다는 결과는 남겨야 했지만, 가족이 만나는 모든 순간이 공적 자료가 될 필요는 없었다. 항구에서 그날 돌아온 목소리는 하나였다. 수천 명의 목소리가 여전히 병 속에 있었다. 그래도 벨다는 반환 절차 안내를 새로 써 붙였다. 아직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가능한 경우'라고 명시했다. 릴리는 그 안내문에 '대신 신청해 주실 사람을 찾는 방법'도 넣자고 제안했다. 글을 읽기 어려운 주민에게는 설명해 주되, 마지막 의사 표시는 당사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해가 질 무렵 이소는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소리 내어 말했다. 재하는 그 말을 듣고 기뻤지만, 자기 권능의 성공 횟수에 추가하지 않았다. 그 일의 주인은 처음부터 이소였다. 그러나 금빛 병 00000번은 여전히 울지 않았다. 오히려 이소의 반환 절차가 끝나자 병의 밑바닥에 오래된 지도가 나타났다. 지도에는 세 개의 종탑이 그려져 있었다. 신들의 탑, 사람들의 탑, 그리고 지도 바깥에 놓인 이름 없는 탑. 누리가 말했다. “처음 계약은 한 장으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세 곳에 보관한 조각이 모두 있어야 했어요.” “왜 나눠 놓았죠?” 재하가 물었다. “한 곳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요.” 에반이 지도를 받아든 순간 손끝이 떨렸다. 이름 없는 탑의 자리에는 손으로 지운 듯한 검은 얼룩이 있었다. 그는 그 얼룩을 알아봤다. “내가….” 그는 말을 삼켰다. 재하는 재촉하지 않았다. 에반이 지금 떠올리는 것이 후회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세관장이 보낸 전령이 찾아왔다. 중앙 저장기의 소유권이 불확실해졌다며 항구 전체에 보관료 긴급 인상을 통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른 문서에는 누군가가 금빛 병 00000번을 열면 ‘최초 서명권자의 진정성’이 검증 불가 상태가 된다고 적혀 있었다. 재하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진정성이 검증되지 않는데, 그분 이름으로 보낸 초대장은 어떻게 가능한 거죠?” 에반이 창고 구석의 어두운 인쇄 틀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누군가 초대장의 발신을 막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지.” “누구요?” 악마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내가 예전에 닫아 버린 반환 통로. 그 안에 아직 사람이 남아 있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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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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