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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42화
PAYLUA ORIGINAL · 제42화

42화. 지붕을 압류하는 새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49자

오프라인 책장
검은 새는 지붕을 쪼지 않았다. 새는 지붕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천계 유실 문서 회수체 18호] [불명 우편물 탐지] [건물 일부를 임시 압류합니다.] 윤재하는 창밖에 떠오른 글씨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새가 등기부등본을 들고 왔네.” 에반은 새의 부리를 자세히 살폈다. “평범한 새가 아니야. 담보청에서 쓰던 서류 회수체지. 손톱으로 긁으면 계약서 가장자리가 벗겨져.” “우리 지붕에서 내리라고 하면 되나요?” “상대가 지붕을 서류로 인식하고 있으니까, 말로는 어려울걸.” 그 순간 검은 새가 날개를 폈다. 깃털 한 장이 떨어져 지붕 기와에 붙었다. 기와에 작은 숫자가 새겨졌다. 1. 다음 기와에는 2. 그다음에는 3. 소유권을 표시하는 번호가 차례로 퍼졌다. 릴리가 부엌에서 뛰어나왔다. “신님! 노아가 아직 안에 있어요.” “압니다. 다른 사람도 안에 있죠. 아무도 다치게 두지 않을 겁니다.” 재하는 마지막 말을 한 뒤 스스로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도’라는 단어를 얼마나 쉽게 쓰는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없는 약속은 피하자고 다짐했으면서도 급하면 입에서 먼저 나왔다. “정정할게요. 다치지 않게 최선을 다할게요. 릴리 씨는 노아랑 사람들부터 마당 바깥으로 보내 주세요.” 누리는 바로 그 차이를 기록했다. 신전의 새 안내문에는 피난 경로가 그려졌다. 응급 환자는 북쪽 문을 이용하고, 일반 주민은 동쪽 수로로 빠져나간다. 도란은 고장 난 지붕 사다리를 치웠고, 안나는 천막의 밧줄을 당겨 사람들이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 미라가 나타난 것은 첫 번째 기와가 들썩일 때였다. 다리를 수선하러 새벽에 떠나려던 신은 한 손에 공구 상자를 들고 있었다. “지붕이 물건이 되는 건 처음 보네요.” “저도요.” 재하가 답했다. “수리 가능합니까?” “지붕을 뜯어 가기 전에 그걸 붙잡고 있는 결속부터 풀어야겠죠.” 미라는 망치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날개에 붙은 번호를 살폈다. 잉크는 실제 기와가 아니라 제단에서 나온 편지와 지붕 사이에 생긴 얇은 빛줄기에 매달려 있었다. 회수체의 목표는 건물이 아니라 우편물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우편물을 아직 받지 않았다고 했죠?” “보관만 했습니다.” “그럼 그걸 공개적으로 표시해 보세요. 하지만 새의 귀에 대고 소리칠 필요는 없겠어요.” 재하는 보관 상자를 마당 한가운데 옮겼다. 문서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권능을 쓸 수 있는지 살폈다. [무상의 약속]은 강제 헌납을 무효로 할 수 있지만, 근거를 알 수 없는 압류에 무조건 발동하지는 않았다. 누가 소유권을 주장하는지, 원래 소유자가 누구인지, 당사자가 거부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 우편물은 수신 확인 이전입니다. 제 것도, 담보청 것도 아닙니다. 상자째 빼앗아 갈 근거를 제출하세요.” 새가 날카롭게 울었다. 부리에서 종이띠가 나왔다. [근거: 최초 서명권자 관련 물건은 중앙 장부에 보관한다.] 세리아가 반박했다. “보관하라는 조항이지 압류하라는 조항이 아닙니다. 발송자를 특정하지 못했다면 즉시 소유권을 확정할 수 없고요.” 종이띠에 붉은 점이 번졌다. 회수체는 같은 명령을 세 번 반복했다. 그 사이 미라는 기와에 박힌 잉크 못을 하나씩 빼냈다. 새의 깃털은 마치 화난 사람의 서류처럼 퍼덕거렸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릴리가 물었다. 에반이 낮게 말했다. “저 길을 이용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담보청에는 곤란한 거야. 천계 장부 바깥에도 약속이 남을 수 있으니까.” 재하는 새를 바라봤다. 사람을 먹거나 건물을 부수는 괴물이 아니었다. 명령을 잘못 받으면 살아 있는 사람의 집까지 문서로 바꾸는 장치였다. 공격하면 쉽게 떨어뜨릴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다음 새가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세리아 씨, 명령의 발행자를 찾을 수 있습니까?” “회수체 원래 등록지는 담보청입니다. 이번 발동은 자동이고, 최근 승인 서명은 없습니다.” “그럼 잠깐 정지하라고 신청하면 되겠네요.” 에반이 재하를 쳐다봤다. “기계 새한테 가처분이라니.” “안 되면 지붕을 고치면서 다시 생각하죠.” 누리가 임시 보전 판정을 호출했다. 제단 상자는 중립 보관물로, 회수체는 소유권 확인 시까지 현재 위치 보전으로 분류됐다. 새가 몇 번이나 날갯짓했지만 기와의 번호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그때 미라가 지붕에서 외쳤다. “잠깐! 이놈은 혼자 온 게 아니에요.” 새의 등에 아주 작은 글씨가 있었다. [우편로 안내 기능: 활성] [강제 회수 기능: 격리 대기] 세리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안내와 회수가 한 몸에 묶여 있네요. 안내 기능까지 멈추면 우리가 길을 찾지 못합니다.” 재하는 상자에 담긴 단추를 내려다봤다. 그들이 찾아야 할 길이 적의 장치에도 남아 있었다. 서류를 격리할 것인가, 길을 안내하도록 둘 것인가. 모든 기능을 죽이면 간단하지만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도 함께 사라진다. “안내 기능만 분리해서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까?” “기술적으로 가능해요.” 미라가 말했다. “나사와 못은 분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신앙으로 엮인 명령을 제가 혼자 고칠 수는 없어요.” 카르도가 신전 마당으로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전쟁신의 붉은 갑옷에는 새벽 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는 천막 아래 모인 주민들의 얼굴을 먼저 살폈다. “라그온이 공중 회수체의 이동을 보고했다. 내가 지킬 수 있는 구역은 군 보급로와 마을 외곽이다.” “지붕도 지켜 주실 수 있나요?” 재하가 물었다. “군사 명령으로 민간 물건을 마음대로 압류하는 일은 할 수 없다. 다만 무허가 침입을 막는 데는 협력할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카르도는 잠시 의아한 얼굴을 했다. 전쟁신에게 포격을 맡기지 않는 신이라니. 그래도 그는 호위 병사를 배치하고 마을 바깥에서 다른 회수체의 접근을 막겠다고 했다. 주민들이 대피하는 통로는 군사 목적에 쓰지 않는다고 문서로 남겼다. 해가 떠오를 무렵 새의 숫자가 다시 빛났다. 다른 표기가 나타났다. [안내를 위한 임시 지정 확인] [수취 경로: 옛 하늘 우편로] [정거장: 침묵항] [일시적 이동 허용: 단추 소지자 1명 및 사전 동의 동행자] 에반이 눈을 반짝였다. “침묵항! 내가 알던 길이 아직 남아 있네.” “가 본 적 있습니까?” “옛날엔 거기서 계약 인쇄용 잉크를 들여왔어.” “중요한 정보를 이제 말하시네요.” “그때는 다시 갈 일 없을 줄 알았지.” 그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릴리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악마의 농담 뒤에 숨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았다. 회수체의 안내 기능을 분리했다고 해서 피해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북쪽 지붕에 붙었던 기와 세 장이 떨어졌고, 벨다의 친구인 세탁부 한 사람이 먼지를 마시고 기침했다. 미라는 지붕 위에서 실제 손상 부분을 조사했고 도란은 물을 가져왔다. 재하는 사람들에게 다친 곳이 없는지 물으며 신성 포인트를 확인했다. 남은 포인트로 할 수 있는 치료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전부 치료해 주실 거죠?” 누군가 물었다. 그는 바로 '네'라고 하지 않았다. 세탁부가 쉬고 있는 곳으로 가 상태를 확인했다. 눈에 심한 자극이 있었지만 호흡은 안정적이었다. 릴리가 물로 먼지를 씻는 방법을 안내했고, 악화되면 치료소로 옮기기로 했다. 재하는 자기가 아는 일을 넘어서 진찰하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가능한 것은 지금 도와드리겠습니다. 치료가 필요하면 리아넬 치료소에 연결할게요. 제 권능이 모든 병을 고치는 건 아닙니다.” 여자는 기침 사이로 웃었다. “신님도 계약서처럼 조건이 많군요.” “그건 좋은 계약서가 아니라 위험한 약속을 피하려는 겁니다.” “괜찮아요. 그래도 오늘 지붕이 날아가지는 않았잖아요.” 재하는 그 말에 위로받았다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피해가 작다고 해서 자신들의 판단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원하지 않은 위험에 노출된 사실은 따로 기록해야 했다. 세리아는 사고 보고를 접수하면서 예상치 못한 사실을 발견했다. 회수체가 붙인 첫 번호는 신전 지붕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접촉 순서가 거꾸로였다. 회수체는 우선 우편함의 열림을 탐지했고, 그 다음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유 물건에 임시 압류 표시를 했다. 사람의 집인지 버려진 창고인지 구분하는 과정이 없었다. “그럼 우리 신전이 우연히 가까웠던 거네요.” 릴리가 말했다. “네. 같은 방식으로 다른 집도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세리아가 대답했다. 미라는 기와를 고치면서 흰 분필로 지붕의 경계를 표시했다. 앞으로 이 경계를 넘는 회수체가 있으면 즉시 알려 달라는 표시였다. 도란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감시 교대를 만들었고, 재하는 감시 인원에게 강제 신앙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서면으로 남겼다. “감시 인원에게는 식사를 제공하나요?” 에반이 물었다. “네.” “그럼 내 홍보 문구를 써 봐. '신성한 야간 근무, 간식 제공.'” “야간 근무를 왜 신성하다고 포장합니까?” “그냥 근무라고 쓰면 누가 오겠어?” “식사와 쉬는 시간을 제대로 적으면 됩니다.” 도란이 실제로 그렇게 썼다. 예상과 달리 자원자가 꽤 모였다. 누군가는 신전을 믿었고, 누군가는 자신이 사는 골목이 안전해지길 원했다. 에반은 한참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이 동네는 마케팅의 상식을 자꾸 파괴하는군.” 동쪽 수로에서 일하던 안나는 회수체의 번호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 놓았다. 다음에 같은 피해가 생기면 새에게 따질 근거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재하는 그녀가 신의 권능을 빌리지 않고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현장이 누군가의 제도를 바꿀 근거가 되려면, 기억보다 남는 기록이 있어야 했다. 떠날 사람을 정하는 회의가 다시 열렸다. 재하, 에반, 세리아, 누리는 기록과 안내를 맡는다. 릴리는 의료 물품 전달이 필요하다며 가겠다고 했지만, 노아의 회복 상태를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미라는 고장 난 우편로를 수리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동행을 제안했다. 카르도는 군 경계 밖까지 호위할 수 없지만, 위험을 판단할 수 있도록 라그온에게 지도를 건네겠다고 했다. 재하는 모두에게 물었다. “가고 싶은 겁니까, 안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는 겁니까?” 미라가 대답했다. “그 길의 다리가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면 먼저 고치고 싶어요. 그게 내 일이니까.” 릴리는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신님 곁에 있어야 해서가 아니에요. 그곳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빼앗겼는지 직접 듣고 싶어요. 다만 노아를 혼자 두지 않을 방법이 먼저 필요해요.”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우선 오늘은 신전을 지키고, 내일 다시 결정하죠.” 재하는 사고 기록과 경계 근무표를 나란히 붙여 놓았다. 피난한 주민들이 돌아와 자기 집이 안전한지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한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신전이 무사한지만 살피고 싶었지만, 실제 피해는 담장과 창고에도 있었다. 도란이 안전 점검표를 들고 골목을 돌았다. 릴리는 주민들의 질문을 모아 세리아에게 전달했다. 어떤 질문에는 답할 수 없어서 다음 확인 시각을 적었다. 에반은 그 모습을 보더니 못마땅한 듯 종이를 흔들었다. “광고가 아니라 고객 지원실이 됐네.” 재하가 답했다. “그쪽 전문도 아니었나요?” 악마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지원보다 가입에만 관심이 많았지.” 이번에는 자신도 안전 점검을 돕겠다고 했다. 재하는 그것을 작은 변화로 받아들였다. 해가 기울자 회수체는 지붕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검은 깃털 몇 개가 떨어졌지만 기와를 들어 올리지는 않았다. 새는 동쪽 하늘의 보이지 않는 길을 향해 돌았고, 날개 아래로 가느다란 흰 선을 남겼다. 마치 아무도 다니지 않는 오래된 길에 먼지가 털리는 것 같았다. 에반이 혼잣말했다. “왜 하필 침묵항이지?” 누리가 답했다. “서명할 때 목소리를 남겨야 했던 곳이니까요.” “목소리를 왜 남겨?” 재하가 물었다. “원본 계약자가 나중에 철회 의사를 밝힐 수 있다는 증거로요.” “그럼 합리적인 제도였네요.” 누리는 오래 망설였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이후 누군가가 목소리를 보관하면 철회도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전까지는요.” 마을 밖의 회수체가 더 높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뒤로 다른 회수체들이 먼 구름 속에서 서서히 눈을 떴다. 길을 알려 주는 새가 누군가를 데려오기까지, 그 장치들은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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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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