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단 아래의 종이 세 번 울렸다.
윤재하는 케이크 접시를 들고 있던 자세 그대로 굳었다. 노아가 막 두 번째 조각을 달라고 협상을 시작하던 참이었다. 신이 된 뒤 들은 종소리에는 대체로 좋지 않은 소식이 따라붙었다. 신격 회수, 긴급 소환, 기한 만료. 이번 소리는 이전 것들과 달랐다.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왜 그러세요?” 릴리가 물었다.
“누가 초인종을 누른 것 같아서요.”
“우리 신전에 초인종이 있었어요?”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종소리가 멎자 제단 앞 바닥의 금빛 줄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벌어졌다. 누리가 틈을 살피더니 무릎을 꿇었다. 종이 인형의 작은 손이 떨렸다.
[최초 서명권자 열람 요청]
[수신처: 원계약 임시 보존자 윤재하]
[발신 경로: 천계 외부]
[방문 방법: 초대자의 응답 필요]
“천계 외부면 어디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장부가 정의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누리가 답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도 됩니다.”
“모릅니다.”
에반이 어깨를 움츠렸다. “저 종소리, 예전에 들어 봤어.”
“무명의 신이 울리던 종입니까?”
“아니. 그 신도 듣고는 문을 열지 말라고 했던 종.”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그를 돌아봤다. 늘 광고 문구를 먼저 떠올리던 악마가 무슨 말을 골라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에반은 애써 웃었다.
“그때도 상황은 복잡했지. 딱 지금처럼.”
“그럼 왜 웃으세요?”
“겁나면 원래 웃음부터 나와.”
재하는 제단을 다시 보았다. 방문 요청에는 수락과 거부가 있었다. 거부하면 문은 닫힌다. 다만 어떤 사람이, 무슨 목적으로 오려는지는 표시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창을 닫고 안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지난 사흘간 싸워 온 것도 이유를 모른 채 선택을 강요받는 구조였다.
그는 세리아를 불렀다. 감찰관은 케이크를 내려놓고 통지서를 읽었다.
“초대하지 않아도 열람 요청 자체는 보관할 수 있습니다. 보관과 입장은 별개입니다.”
“그럼 보관하죠. 방문자는 자기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재하는 응답란에 적었다.
‘요청서를 보관합니다. 방문하려면 이름, 목적, 열람 범위, 동행자 유무를 밝혀 주십시오. 응답하지 않으셔도 요청을 폐기하지 않습니다.’
잠시 뒤 빈 종이가 제단 위로 올라왔다. 겉에는 아무 글씨도 없었다. 세리아가 빛 아래에 비추자 뒷면에서 얇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종이의 빈칸에 사람이 서 있었다. 누구의 발자국도 남지 않는 하얀 벌판, 그리고 그 가운데 놓인 낡은 우편함.
그림자 아래 문장이 하나 생겼다.
‘누구의 이름도 대신 쓰지 않는 자에게. 첫 번째 서명의 뒷면을 보러 오겠습니까?’
“이름이 없네요.” 릴리가 말했다.
“그래서 답변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리아는 즉시 기록했다.
재하는 종이를 돌려 보았다. 우편함에는 작은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손잡이는 종이 표면을 뚫고 나온 것처럼 입체적이었다. 에반이 만지려 하자 누리가 그를 붙잡았다.
“저건 아직 수취 확인이 끝나지 않은 편지입니다.”
“내가 편지를 열어 본 건 직업병이야.”
“그래서 기록 오염으로 적발된 적이 다섯 번이십니다.”
“네 번이야.”
“다섯 번째는 미적발 상태입니다.”
재하가 손을 들어 두 사람을 말렸다. 창밖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케이크를 나눠 먹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저녁, 그런 저녁을 지키기 위해 오늘 거절한 직책이었다. 스스로 문을 열지 않겠다고 선택했는데 낡은 종소리 하나에 또 떠날 이유는 없었다.
“사흘만 시간을 주세요. 신전 운영을 정리하고, 치료소 공급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그는 답장을 접으려다가 멈췄다. 최초 서명권자가 살아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사흘 뒤에 답하겠다는 약속도 상대에게는 또 다른 강요일 수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을 고쳤다.
‘사흘 뒤까지 답변할 계획입니다. 그때도 제 사정으로 연기할 수 있으며, 당신도 철회할 수 있습니다.’
에반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귀신에게 일정 변경 규정까지 안내하는 신은 처음 본다.”
“약속은 지킬 수 있는 만큼만 해야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우편함 그림자가 열렸다. 안에서 뭔가가 떨어져 탁자에 닿았다. 진짜 물건이었다. 빛을 받으면 푸르게 변하는 녹슨 철제 단추. 가운데에는 둘로 갈라진 종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누리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종이는 원래 하얗지만, 이번에는 표정까지 그랬다.
“우편로 통행 표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용된 기록은 천계가 첫 장부를 편찬하기 전입니다.”
“그럼 오래된 골동품이군요.” 재하가 말했다.
“사용자가 없었기 때문에 폐기됐던 길의 표식입니다.”
세리아는 재하의 손을 제지했다. “통행 표식으로 이동하면 어디로 도착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도착 지점의 귀환 경로도요.”
“안내문부터 받아야겠군요.”
세리아는 철제 단추의 출처를 검증하는 임시 절차부터 만들었다. 신전에서 받은 물건을 곧장 신성 유물이라고 부르면 모르는 사람이 그것을 훔치거나 팔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누리는 처음 단추가 떨어졌을 때의 형태를 종이에 옮겨 기록했고, 미라는 표면을 만지지 않은 채 녹의 방향과 파손 자국을 살폈다. 같은 문양을 나중에 보더라도 이 물건과 혼동하지 않으려는 준비였다.
“신이 받은 물건이면 자동으로 신의 소유가 되는 것 아닙니까?” 도란이 물었다.
“이런 질문 정말 무섭네요.” 재하가 답했다. “사람이 받은 편지도 전부 직장 물건이라고 하는 회사가 있었거든요.”
“어디 회사요?”
“제가 다니던 곳이요.”
재하가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자 릴리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사고를 당하기 전 서류를 작성하던 평범한 직원이었다. 회사에는 결정권자가 따로 있었고, 직원들은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도 모른 채 결재 칸을 돌렸다. 어느 날 고객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때 모두가 자신이 도장 찍을 차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재하도 그중 하나였다.
“그때 저는 잘못된 문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고치자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일이 늘어날까 봐요.”
“그럼 나중에 어떻게 됐어요?” 릴리가 물었다.
“고쳤죠. 늦게요. 그 일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재하는 억울한 표정을 흉내 냈다. “신으로 다시 취직했는데 똑같은 서류를 만날 줄 알았다면, 죽기 전에 자격증 하나쯤 따 둘 걸 그랬습니다.”
에반이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어색함이 섞여 있었다. 재하가 상대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자신에게도 언젠가 그럴 날이 올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미라는 단추의 양쪽 구멍이 서로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는 둥근 원, 다른 하나는 세모였다. 잘못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 어느 방향에서 꽂느냐에 따라 통행 경로를 바꾸도록 설계된 열쇠 같았다.
“이걸 억지로 돌리면 열린 길을 닫을 수도 있어요. 특히 통행 중에 그러면 위험하죠.”
“그럼 실험도 할 수 없겠네요.”
“빈 상태에서만 시험할 수는 있습니다. 본체를 쓰지 않고 모형으로요.”
미라는 밀랍에 단추의 눌린 자국을 떠서 작은 나무판에 끼웠다. 재하가 밀랍 복제품을 손바닥에 놓자 아주 희미한 바람이 불었다. 진짜 통행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창문 방향이 아니라 제단 아래쪽에서 바람이 일어났다.
누리는 그제야 설명했다. 오래된 우편로는 허가가 난 사람의 무게가 아니라 '도착하겠다는 의사'를 읽어 작동했다. 중간에 마음을 바꾸면 하차하는 정거장이 생겨야 했는데, 후대의 우편로에서는 그 기능이 사라졌다. 발송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안내는 단지 우편 규정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올 길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군요.” 재하가 말했다.
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걸 먼저 생각해야죠.”
세리아는 탐사 계획서 첫 장에 귀환 조건을 적었다. 돌아오는 신이 아무도 없을 때는 자료를 파기하는 대신 안전하게 봉인한다. 신전의 환자 명단은 탐사자에게 가져가지 않는다. 혹시라도 누군가를 인질로 삼을 수 없게 하려는 조치였다.
그렇게 작고 세세한 준비를 하는 동안 마을에서는 케이크가 다 떨어졌다. 재하가 부엌을 힐끗 보자 노아가 마지막 조각을 손에 쥐고 있었다.
“신님, 이거 먹을래요?”
“반은 너 먹어.”
“신님이 안 먹으면 제 거죠?”
“아직 반씩 나누는 중이잖아.”
노아는 잠시 고민하다 아주 작은 조각을 떼어 주었다. 재하는 그 조각을 받아 먹었다. 신앙 계약의 기원을 찾아 나서는 일보다 아이와 케이크를 공평하게 나누는 일이 쉬워야 할 텐데, 어느 쪽도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재하는 주민들에게 케이크보다 덜 달콤한 이야기를 했다. 최초 서명권자의 요청이 들어왔고, 자신은 사흘 뒤 직접 조사할 계획이라고. 긴급 보전은 30일 동안만 유효하며, 아직 누가 그 이후의 공급을 책임질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그가 떠나 있는 동안 새 신도 모집은 하지 않으며, 의료와 수로 관련 건은 기존 담당자들이 처리할 수 있도록 서면으로 남기겠다고 했다.
방직촌의 안나가 물었다. “우리가 그분을 찾아오라고 부탁한 적은 없는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것이 여러분의 요청이라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왜 가죠?”
재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쩌면 사라진 전임 신격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오래된 계약의 뒷면이 존재한다면, 지금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보호 조항도 어느 날 같은 방식으로 지워질 수 있었다.
“우리가 검토할 수 없었던 조항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위험하다면 돌아올 거고요. 그 판단이 잘못되면 지적해 주세요.”
안나는 곧장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 재하가 없는 동안 진료소의 물자가 며칠치인지부터 물었다. 릴리가 장부를 들고 대답했다. 붕대와 생수는 충분했지만, 북쪽 병동의 신성등 예비 부품이 모자랐다. 도란이 수로 옆 창고의 부품을 대체할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회의는 늦게 끝났다. 끝났다는 뜻은 모두 찬성했다는 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할지와 누구에게 다시 물어야 할지를 적었다는 뜻이었다.
잠들기 전, 노아가 재하의 소매를 잡았다.
“신님. 그분은 무서운 분이에요?”
“아직 몰라.”
“그럼 왜 만나러 가요?”
“무서운지 아닌지 알아보려는 것도 있어. 하지만 네가 싫다면 신전에 다시 돌아와서 얘기할 거야.”
노아는 잠시 고민했다. “그분이 케이크를 좋아하는지도 물어봐 주세요.”
재하가 웃었다. “그건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다.”
세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일단 열람 목적에는 쓰지 마세요.”
새벽녘 우편함에서 마지막 회신이 왔다. 이번에는 문장이 두 개였다.
‘이름은 남지 않았습니다. 목적은 당신이 보지 못한 첫 계약의 뒷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
‘동행자는 없습니다. 다만 길을 따라오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재하는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초대자는 자신을 밝히지 못했다. 하지만 뒤따르는 자들이 있다는 경고를 숨기지도 않았다. 그 정직함이 신뢰의 증거가 될 수는 없었다. 다만 경계할 이유는 분명해졌다.
멀리 하늘 위에서 새까만 점 몇 개가 움직였다. 날개가 아니라 접힌 계약서를 펄럭이며 날아오는 새들이었다. 그들은 제단의 우편함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방향을 바꾸었다.
누리가 창틀에 올라섰다.
“재하 님. 이 길의 통행 기록을 쫓는 회수체들입니다.”
“우릴 추적하는 겁니까?”
“아직은 우편함을 추적합니다.”
재하는 부엌을 돌아봤다. 릴리는 노아의 이불을 여미고 있었고, 에반은 이미 먹다 만 케이크 접시를 치우고 있었다. 그 평범한 모습 위로 검은 그림자가 지나갔다.
“좋습니다.” 그가 말했다. “손님은 아직 초대하지 않았고, 그쪽도 신전 안으로 들어올 권한이 없습니다.”
에반이 창밖을 가리켰다. “문제는 저것들이 권한이 없다는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거야.”
“그럼 우리가 문을 지킬 방법부터 찾죠.”
재하는 제단의 단추를 작은 상자에 넣고 덮개를 잠갔다. 상자의 윗면에 적은 글씨는 간단했다.
[수신 전 물품. 소유권 확인 중. 함부로 열지 말 것.]
세리아는 상자 바깥에 봉인 시각과 보관 담당자의 이름도 적었다. 봉인을 푸는 일은 두 사람 이상이 함께 확인해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누구도 혼자 비밀스럽게 열 수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
첫 새가 지붕 위에 내려앉았을 때, 재하는 처음으로 자신이 지키려던 계약의 뒷면에 발을 들인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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