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신격 두 명이 필요하다는 조항 때문에 윤재하는 자신이 신전보다 작은 사무실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첫 번째 협조자는 카르도였다. 문제는 두 번째였다. 알려진 주요 신들은 담보청과 공급 계약으로 얽혀 있었다. 누군가는 개인 신앙을 담보로 큰 신전을 지었고, 누군가는 치료 기적의 선지급을 받고 대가로 미래의 신앙을 약속했다.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계약 때문에 독립적인 의견을 낼 수 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었다.
“전 신계에 독립 신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까?” 재하가 물었다.
에반은 장부를 뒤적였다. “있긴 있을 거야. 문제는 그런 신들일수록 홍보를 안 해서 찾기 어렵다는 거지.”
“홍보하지 않는 신을 찾는 방법은 없나요?”
“누구에게 빌어도 답이 오지 않는 곳부터 찾아가야 할걸.”
릴리가 말했다. “그러면 신을 찾는 게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을 찾는 거잖아요.”
세리아는 감찰 기록 하나를 펼쳤다. 유리포 북쪽 산의 작은 목재 다리. 아무 신전의 관할에도 들어가지 않는 곳인데, 폭우 뒤에도 몇 번이나 끊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주민들은 다리를 지키는 신이 있다는 소문을 냈지만, 매번 누군가 수선한 흔적도 발견됐다는 기록이 있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요?” 재하가 물었다.
“둘 다일 수 있습니다.” 세리아가 대답했다.
산으로 가는 길은 가팔랐다. 재하는 신이 된 뒤 오래 걸을수록 발목이 뻐근하다는 사실을 계속 발견하고 있었다. 에반은 중간에 마차를 타자고 했으나, 다리까지는 마차가 다닐 길이 없었다. 릴리가 앞장섰고, 누리는 재하의 가방에 들어가 기록 보관함을 닫았다. 다리 앞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수선 도구와 빗자루가 정돈되어 있었지만 신상이나 헌금함은 보이지 않았다.
오두막에서 나온 여자는 재하에게 물을 한 잔 건넸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까?”
“여기 신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러면 신전으로 가셔야죠.”
“신전이 없다고 들었는데요.”
여자는 대답 대신 그를 다리 위로 데려갔다. 오래된 나무판은 곳곳에 새 판으로 바뀌어 있었고, 난간에는 여러 세대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비를 막기 위해 바른 수지가 마르면서 쌓인 층도 있었다.
“이 다리를 지킨 분은 누굽니까?” 재하가 물었다.
“나와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지나가던 사람들.”
“신은요?”
“내가 신입니다.”
재하는 멈칫했다. 상대는 웃고 있지 않았다. 여자의 이름은 미라. 오래전 길과 약속을 지키는 작은 신격을 물려받았지만, 자기 이름을 신앙 명부에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 데 굳이 자기를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신도가 없으면 신격이 소멸한다면서요?” 재하가 물었다.
“대부분의 신은 그럴 겁니다. 하지만 신격을 유지하는 방법이 신도 모집밖에 없는 건 아니죠.”
“어떻게요?”
“내가 맺은 계약을 지키면 됩니다. 이 다리를 안전하게 관리하겠다는 약속. 누군가가 그 일을 이어받으면 나도 언젠가 떠날 수 있고요.”
재하는 오래된 다리의 이음새를 내려다봤다. 제6지역에서 보았던 공동보존 약속과 닮아 있었다. 기적을 지불받지 않고도 유지되는 약속. 상대를 소유하지 않아도 성립하는 관계. 미라는 자신을 믿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럼 당신도 무명의 신의 계약을 아십니까?”
여자는 잠시 손을 멈췄다. “그 이름을 아직도 꺼내는 사람이 있었군요.”
그녀가 오두막에서 꺼낸 것은 낡은 나무 조각이었다. 제6지역의 기록에서 본 원탁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미라는 삼백 년 전 다리를 건너 피난 가던 사람들에게 나무판을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그들 중 일부는 서쪽 산길로 향했고, 마지막 사람은 ‘다로’라는 기록관리자의 안내를 받았다.
“그 뒤로 어떻게 됐습니까?”
“모릅니다. 그들을 따라가면 다리를 비워야 했으니까요.”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선택한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지키는 것도 용기였다. 거대한 음모의 모든 진실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라의 증언을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됐다.
미라는 공동심의 요청서를 읽었다.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한 문장에 손가락을 올렸다.
‘대표자가 대신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은 당사자에게 돌려준다.’
“좋은 문장입니다.”
“서명해 주시겠습니까?”
“아직은요.”
재하가 당황하자 미라는 웃었다. “신들이란 늘 이상합니다. 선택의 자유를 지키자면서 나한테는 곧바로 서명해 달라고 하니까요.”
“아, 그건 죄송합니다.”
“문서를 읽을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서명하면 제가 무엇을 책임지는지도 알고 싶어요.”
미라의 다리에는 매년 작은 규칙이 하나씩 붙었다. 처음에는 밤에 횃불을 꺼뜨리지 않는다는 약속뿐이었다. 그다음에는 비가 오면 절반씩 건너라는 규칙이 생겼고, 이듬해에는 짐수레의 무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폭풍으로 난간이 부서져 한 달간 다리를 닫기도 했다.
“다리를 닫으면 사람들이 원망하지 않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그럼요. 멀리 돌아가야 하니까요.”
“그런데도 닫아요?”
“열어 놓으면 떨어질 수 있으니까.”
미라는 폭우가 닥쳤던 날의 기록을 꺼냈다. 마을 사람 하나가 급한 약을 가져오다 다리 앞에서 울었던 일이 적혀 있었다. 약을 가져가야 하는데 다리를 건널 수 없었던 것이다. 미라는 그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을 불러 아래쪽 얕은 여울에 임시 돌길을 만들었다. 충분한 시간이 들었고 모두 젖었지만, 무너질 다리에 사람을 밀어 넣지는 않았다.
“그날 처음 알았어요.” 미라가 말했다. “다리를 지킨다는 말이 꼭 다리를 열어 둔다는 뜻은 아니더군요. 건너야 할 사람이 무사히 건너도록 다른 길을 찾는 것도 같은 일입니다.”
재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자신의 문제도 비슷했다. 신성 공급 체제가 잘못됐다며 즉시 닫아 버리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길까지 끊길 수 있었다. 반대로 위험한 다리라는 사실을 숨기고 계속 건너게 할 수도 없었다. 정확한 상태를 공개하고, 우회로를 만들고, 보수 책임을 나누는 일이 필요했다.
다리 아래로 아이들이 지나갔다. 한 아이가 미라를 보고 ‘할머니’라고 불렀다. 그녀는 신격을 가진 존재였지만 마을 아이들에게는 다리를 고치는 아주 오래 사는 어른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기도를 바치지 않았다. 대신 비가 오기 전에 풀어 놓으면 안 되는 밧줄이 어디에 있는지 배웠다.
릴리가 물었다. “신님이시라는 걸 모르면 섭섭하지 않으세요?”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아요. 내가 다리에서 하는 일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에반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명해지면 다른 마을에서도 다리를 관리해 달라고 찾아올 텐데.”
“그럼 거절할 거예요.”
“왜요?”
“나는 여기를 맡았으니까요. 다른 마을도 스스로 다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재하는 미라의 말에서 자신이 놓치고 있던 조건을 발견했다. 좋은 의도로 넓힌 책임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면 또 다른 권력의 집중이 될 수 있었다. 책임을 나누는 일에는 남이 하지 않겠다고 말할 권리를 지키는 일도 포함됐다.
오후에는 작은 오해가 있었다. 이웃 마을 대표가 찾아와 미라가 재하의 요청서에 서명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반대했다. 그는 미라가 천계의 높은 자리에 들어가면 다리를 버리고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 때문에 우리 다리가 무너지면 누가 책임집니까?”
미라는 문서를 꺼냈다. “그래서 그럴 의무가 생기면 맡지 않겠다는 조건을 적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들한테 말도 없이 떠날 생각은 없어요.”
대표는 여전히 불안해했다. 재하는 그에게 서류의 목적을 설명하고, 아직 미라가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대표는 자신이 반대한다는 의견도 따로 기록해 달라고 했다. 세리아가 이를 별도 첨부했다. 미라는 그 기록을 보고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사람들이 내 결정을 늘 좋아할 필요는 없죠. 그 대신 내가 왜 그랬는지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해요.”
재하는 다리의 난간에 기대어 생각했다. 제6지역의 무명의 신도 아마 이런 작은 질문들을 받아 봤을 것이다. 그런데 천계의 장부에는 오랫동안 그의 이름과 신앙 수익만 남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지워졌다. 사람의 뜻을 기록한다는 것은 이름을 적어 놓는 것 이상이었다.
길을 내려가기 전 미라는 도구 상자를 재하에게 잠시 들게 했다. 무거웠다. 그 안에는 톱, 못, 밧줄, 수지 통이 들어 있었다. 에반은 신에게 짐을 시킨다고 투덜댔지만 재하는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손으로 들 수 있는 책임이 어떤 무게인지 기억해 두고 싶었다.
그날 밤 재하 일행은 산 아래의 작은 숙소에 머물렀다. 미라는 다음 날 아침 자기 조건을 가져왔다. 공동심의에 신격 대표로 참여하되 다리의 안전을 위협할 의무가 생기면 언제든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제6지역의 기록도 마찬가지로, 보존의 의무가 새로운 사람의 강제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릴리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 저희도 그 원칙을 넣을 수 있겠어요.”
세리아는 조항을 검토한 뒤 동의했다. “새 권한을 받는 행위가 다른 곳의 필수 의무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자는 내용입니다. 원계약과 일치합니다.”
에반은 미라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이런 신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옛날에 광고를 하지 말 걸 그랬네.”
미라가 대답했다. “광고는 해도 됩니다. 다만 광고를 보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다리를 당신 것으로 주는 건 아니죠.”
그날 정오, 미라는 재하의 서류에 독립 신격으로 서명했다. 신도가 없는 신 두 명과 전쟁신 한 명이 같은 서류에 이름을 올렸다.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러나 서로 믿는 방식이 달라도, 사람의 이름을 마음대로 팔지 말자는 문장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미라가 떠난 산에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리 아래 물살이 세지는 것을 보고, 재하 일행이 돌아갈 길을 바꿔 주었다. 빠른 지름길 대신 안전한 마을길을 알려 주었고, 길목마다 위험한 곳을 설명했다.
“원래 계획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네요.” 릴리가 말했다.
“그렇겠죠.” 미라가 답했다. “시간을 아끼려다 다리를 잃는 것보다는 나아요.”
재하는 돌아가는 동안 자신이 왜 이곳까지 왔는지 생각했다. 가장 강한 신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자기 책임의 범위를 말할 줄 알고, 모르는 일에는 모른다고 답하고, 거절해야 할 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이토록 작은 신격에게 천계 전체의 문제를 묻는 것이 무례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라에게 꼭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 대신, 지금까지 확인한 자료를 충분히 읽은 뒤 선택해 달라고 했다.
미라는 재하에게 오래된 못 하나를 건넸다. 다리에서 빼낸 녹슨 못이었다. “이건 가져가세요. 굳이 기념품으로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썩은 부분을 발견하면 못을 더 박기 전에 나무를 갈아야 한다는 걸 떠올려 주세요.”
재하는 그 못을 수첩 속에 넣었다. 뒷날 누군가가 그에게 왜 그런 녹슨 못을 지니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는 신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오래된 제도가 썩은 부분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생각이었다.
신전으로 돌아온 뒤 천계의 알림이 떴다.
[공동심의 발의 요건 충족]
[독립 신격 서명: 2]
[이해관계자 의견서: 접수]
[처리: 관할 서명권자에게 회부]
“다 됐네요!” 릴리가 말했다.
세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닙니다. 관할 서명권자가 회부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때 새 공문이 나타났다.
[공동심의 개최 불허]
[사유: 신청 취지 불명확]
[보완 기한: 0시간]
재하가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보완하라면서 보완 시간이 영 시간이요?”
미라가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다리를 수선할 때도 그런 자재는 안 씁니다.”
웃음이 끝나기도 전에, 누리가 다른 문서를 펼쳤다. 사흘 전 세리아가 기록한 공개 심리 원문이었다. ‘신격 사이의 독립 합의가 존재하면 기존 서명권자의 불허에도 상급 공개 절차를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 남아 있었다.
재하는 펜을 들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불허 사유부터 기록하고 위로 갑시다.”
“어디까지 올라갈 작정입니까?” 미라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재하가 웃었다. “하지만 길을 알려 주는 분이 생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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