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도의 군대에서 신앙을 가장 적게 받는 사람은 뜻밖에도 카르도 자신이었다.
정확히는, 그는 병사들의 생존을 위한 기도가 자신에게 모이지 않도록 오래전부터 분리해 놓고 있었다. 군의 보급 신성은 공동 비축고로 보내고, 자신이 개인적으로 받는 전쟁의 찬양만 신격에 귀속시켰다. 병사들은 그 규칙을 알고 있었다. 다만 천계의 중앙 장부는 둘을 한 묶음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윤재하는 그 사실을 카르도의 진영에서 처음 들었다.
“그러면 그동안 왜 제 신전 앞에 강제 헌납 깃발을 세우셨습니까?”
“내 군에선 하지 않는 일이다.” 카르도가 낮게 말했다. “그러나 내 이름을 쓰는 사제들이 모든 걸 내가 승인받은 것처럼 집행해 왔다.”
“몰랐다는 말씀입니까?”
“알았다. 전부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을 때 모르는 척한 것도 사실이다.”
재하는 입술을 다물었다. 카르도는 변명 대신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 사실이 곧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군 진영은 유리포 남쪽의 낮은 구릉에 자리했다. 붉은 깃발 사이로 임시 천막이 늘어서 있었고, 병사들은 갑옷을 벗고 장비를 말리고 있었다. 재하는 전쟁신의 신전이라면 언제나 함성과 검의 노래가 들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처를 씻는 물소리와 보급 식량을 계산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마테오는 장부를 가지고 왔다. “우리가 민간 치료소에 넘긴 축전석 때문에 북쪽 초소의 경계 여유가 줄었습니다. 어제 밤 늑대 무리가 접근했고, 순찰대가 직접 쫓아냈습니다. 인명 피해는 없습니다.”
“그것도 기록에 남겨 주세요.” 재하가 부탁했다. “우리가 도움받았다는 얘기를 할 때, 그 비용도 같이 말해야 합니다.”
카르도는 그를 보며 물었다. “그럴 줄 알면서 왜 그 자리를 거절하려 하나?”
“제가 승인만 하면 이런 문제가 줄어들 테니까요. 그게 제일 위험해 보여서요.”
“힘을 가졌을 때 제대로 쓰면 되지 않나?”
“그 다음 사람이 제대로 쓸지는 어떻게 압니까?”
카르도는 대답 대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먹에는 오래된 상처가 남아 있었다. 이 세계에서 신은 불멸에 가까운 존재였지만, 과거의 전쟁에서 입은 흔적은 지우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백 사람을 보호하려고 군을 만들었다.” 그가 말했다. “침략을 막으려면 더 많은 병사가 필요했고, 병사를 먹이려면 더 많은 땅이 필요했다. 어느 순간 내가 지키려던 사람보다 군을 지키는 일이 커졌다.”
재하는 작은 모닥불을 내려다봤다. 진영의 요리사가 끓이는 수프 냄새가 올라왔다. “그럼 지금은 왜 멈추지 못하십니까?”
“군을 한 번에 없애면 경계 밖의 사람들이 죽는다.”
“우리도 똑같네요.”
“무엇이?”
“서명권자 자리를 한 번에 없애면 치료소가 위험해지고, 유지하면 누군가의 이름이 계속 팔립니다.”
한참 침묵하던 카르도가 군 보급 장부를 펼쳤다. 그는 적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어느 초소가 먼저 고립되는지 직접 설명했다. 재하는 전쟁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는 척하지 않았다. 대신 보급대의 기록과 마을 사람의 증언이 일치하는지 물었다. 마테오가 그에게 지도를 내밀었다. 붉은 잉크로 표시된 경계선 너머에는 실종자 가족들의 마을이 있었다.
“우리가 지키는 구역입니다.” 마테오가 말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카르도를 믿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신앙은 대가가 아닌 거네요.”
카르도가 피식 웃었다. “전쟁터에서 적이 오는데 어떤 신을 믿는지 조사할 시간은 없으니까.”
재하도 웃었다. 처음 카르도를 만났을 때 그는 강제 헌납을 명령하는 사제들의 깃발 뒤에서만 전쟁신을 보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카르도는 여전히 거만하고 무서운 신이었지만, 물러날 수 없는 경계를 자신의 이유로 지키는 존재이기도 했다.
대리가 도착하기 전 재하는 군 진영의 추모석을 보았다. 작은 돌에는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매년 군이 제사를 올리는 곳이었지만, 병사 가족 중 상당수는 카르도를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카르도는 누구의 이름도 지우지 않았다고 했다.
마테오는 추모석 앞에서 군모를 벗었다. “저 이름 중에는 제 형도 있습니다.”
재하는 그를 바라봤다. “전쟁신을 믿으셨습니까?”
“아뇨. 형은 오히려 신을 못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을 지키려고 군에 남았죠.”
“그럼 저 돌에 이름을 새길 때 불편한 얘기는 없었나요?”
“처음에는 있었습니다. 일부 사제는 신앙이 없는 병사의 이름은 신전의 공적 장부에 올릴 수 없다고 했죠. 카르도 님이 직접 반대하셨습니다.”
“그때는 잘하셨네요.”
마테오는 미묘하게 웃었다. “카르도 님은 잘하실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잘못하실 때도 아주 크게 하신다는 거죠.”
재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신이라는 구분보다, 권한이 큰 사람이 잘못했을 때 피해도 커진다는 설명이 정확했다. 그래서 그는 추모석의 이름을 천계 장부로 옮겨 적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사라진 사람을 기억하는 장소이지, 그 이름으로 새로운 신앙 수익을 계산하는 서류가 아니었다.
카르도는 그 뒤에 조용히 나타났다. 검은 제복 차림의 그는 잠시 돌 앞에 섰다. 자기가 지휘한 전쟁에서 잃은 사람의 수를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한때 더 강한 군을 만들면 희생이 줄 거라고 믿었지만, 강한 군을 유지하는 데 또 다른 희생이 들어갔다.
“저 이름을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재하가 물었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살 수 있었을 사람도 있겠지.”
“그래서 더 힘을 모으셨습니까?”
“그래. 그러다 보니 힘을 모으는 이유를 잊을 뻔했다.”
재하는 카르도의 말을 곧장 위로하지 않았다. 전쟁의 모든 경위를 모르면서 잘했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자격은 없었다. 대신 추모석 앞에 한동안 같이 서 있었다. 카르도가 먼저 자리를 떠난 뒤에도 마테오는 마지막 이름을 손가락으로 한 번 쓸어 보았다.
점심에는 병사들의 식탁에 함께 앉았다. 전쟁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처음인지, 몇몇 병사들은 숟가락을 들지도 못했다. 카르도가 그들에게 먹으라고 하자 비로소 대화가 시작됐다. 군에 입대한 이유가 전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고향의 침입을 막고 싶어서 온 이도 있었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들어온 이도 있었다. 신앙 때문에 복무하는 이와 종교를 싫어하는 이가 같은 식탁에 앉았다.
재하는 사제들이 그들을 ‘카르도 신앙권 인구’라고 통째로 부르는 일을 떠올렸다. 그 표현은 행정상 편리했지만, 지금 마주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두려움과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카르도의 강제 헌납 깃발이 왜 부당한지, 그 실체가 눈앞에 있었다.
“신님, 신앙 포인트가 부족하면 어쩌십니까?” 젊은 병사가 재하에게 물었다.
“부족하면 아주 힘들죠.”
“그럼 저희가 조금씩 내면 되지 않습니까?”
“내고 싶으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선택하셔야죠. 저한테만 맡기고 끝내지 마세요.”
병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신이라는 존재에게는 그저 믿고 따르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낯선 신은 자꾸 장부를 보자고 했다. 재하는 그 표정을 보고 웃었다. 자신도 신이 되기 전에는 이런 신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 병사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재하는 식탁에 남은 빵을 버리지 않고 다음 교대조를 위해 덮어 두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 진영에서는 식량 하나도 누군가의 노동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테오는 조리병에게 오늘 외부 손님이 먹은 몫을 정확히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다. 재하는 자신이 먹은 수프에도 비용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다. 다만 그 비용이 곧바로 병사들의 신앙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담보청의 대리가 진영에 도착했다. 그는 카르도의 개인 비축고를 열람하려 했지만, 카르도는 군법에 따라 목적을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대리는 신들의 합의로 만들어진 긴급 채권 회수 규정을 내밀었다.
“제1후보 윤재하가 특별 보상안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보호 중인 계약의 보증액을 담보청이 다시 평가해야 합니다. 전쟁신께서 개인 보증을 서셨으므로, 비축고 재산 목록을 제공하셔야 합니다.”
“내 군의 공급은 내 개인 재산이 아니다.” 카르도가 답했다.
“천계 장부에는 전부 전쟁신의 신앙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기록했으니 가져가도 된다는 말인가?”
“법적 소유권은 장부를 기준으로 합니다.”
카르도가 일어섰다. 병사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그러나 그는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군법의 첫 장을 테이블에 올렸다.
“이 장부는 내 군이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지 보여 준다. 그것을 담보로 쓰려면 병사와 보호 대상에게 물어라.”
대리는 얼른 반박했다. “신께서 이미 대표하시지 않습니까?”
“나는 군을 지휘한다. 사람의 기도를 소유하지 않는다.”
재하는 감탄할 뻔하다가 참았다. 어떤 멋진 말이 나오더라도 실제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물었다.
“그럼 카르도 님, 그 원칙을 앞으로도 공식적으로 유지하는 서류에 서명하시겠습니까?”
카르도가 그를 노려보았다. “너는 왜 꼭 감동적인 순간에 계약서를 꺼내나?”
“지금 적지 않으면 사제들이 또 다른 말을 할 테니까요.”
마테오가 웃음을 참다가 기침했다. 카르도는 결국 펜을 잡았다. 다만 서명하기 전 군 보급대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바로 결정해 버리는 것도 같은 문제라는 사실을 배운 듯했다.
병사 대표와 민간 연락관이 문서를 검토했다. 문서에는 군 보호를 받는 사람이 신앙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으며, 군의 신성 비축고를 개인적인 신앙 채권으로 옮길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그날 밤 서명이 끝나자 카르도의 붉은 깃발 하나가 군기에서 내려왔다. 강제 헌납 표시는 떼어 내기로 했다.
“이제 화해한 겁니까?” 에반이 통신으로 물었다.
“아직 아닙니다.” 재하가 답했다. “사제들한테 이미 빼앗긴 걸 어떻게 돌려줄지도 남았잖아요.”
카르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내 이름으로 가져간 것이라면 내 책임이기도 하다.”
진영을 떠나기 전 재하는 카르도에게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공동심의에 증언해 주십시오. 신이 군의 책임자가 될 수 있어도 병사들의 믿음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고요.”
“증언은 하겠다. 하지만 네 계획이 실패하면 내 군은 물러서지 않는다.”
“그렇게 해 주세요. 필요한 경계를 지키는 것까지 그만두시면 안 되죠.”
진영의 마지막 회의에서는 병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는 신의 이름이 적힌 군기를 당장 치우면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재하는 강제 헌납 표시와 군이 함께 지켜 온 상징을 구분하자고 했다. 카르도도 동의했다. 자신을 믿는 병사는 계속 그의 문양을 달 수 있지만, 믿지 않는 병사에게 그 문양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 말을 들은 병사는 한참 생각하다 자기 갑옷의 표지를 만졌다. 그는 카르도를 믿었고 앞으로도 믿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옆에 선 동료가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덜 용감한 것은 아니었다.
마테오는 새로운 군 규정을 읽어 내려갔다. 사제들이 부과하던 자동 헌납은 일시 정지하고, 이미 징수된 내역은 독립 감찰을 통해 확인한다. 군 보급이 끊기지 않도록 기존의 적법한 봉헌과 별도 비축은 유지하되, 수취 목적을 바꾸는 경우에는 당사자에게 알린다. 재하는 그 조항에 환급 일정을 검토한다는 단서도 추가해 달라고 했다.
카르도는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 제약을 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다시 군기를 올릴 때는 이전보다 책임이 분명해졌다. 신을 찬양하지 않는 사람이 그 깃발 아래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병사들도 알고 있었다.
저녁 무렵 재하가 신전으로 돌아오자 에반이 벽에 붙은 공문을 가리켰다.
[승계 관련 권력 분산 시도 조사 개시]
[협조한 신격: 전쟁신 카르도]
[협조한 신격의 신앙 신용등급: 임시 하향]
재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어디를 가든 신용등급이 떨어지네요.”
에반이 말했다. “그게 이 제도의 방어 방식이야. 너를 막는 것보다 너를 돕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지.”
“그럼 사람들이 더 많이 불편해지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겠네요.”
재하는 문서를 뒤집었다. 그 안쪽에는 세리아가 찾아낸 새 조항이 있었다.
[공동심의 발의에는 직책 후보 외에 두 명의 독립 신격이 필요합니다.]
그는 카르도가 방금 남긴 서명을 떠올렸다. 한 명은 찾았다. 나머지 한 명은 누구일까.
제3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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