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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34화
PAYLUA ORIGINAL · 제34화

34화. 기적은 공급 계약서에서 나오지 않는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41자

오프라인 책장
비상 공급 사고는 오전 네 시 열두 분에 발생했다. 리아넬 치료소의 북쪽 병동에 연결된 신성 조절관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공급 장치 자체는 고장 나지 않았다. 다만 계약 관리판에 붉은 도장이 찍혔다. [승계 보류에 따른 재산권 위험 할증] [긴급 공급 담보율 상향] [미납분 자동 충당] 치료사는 도장이 찍힌 순간을 정확히 기억했다. 어린 환자가 막 잠들려던 때였고, 밤새 붙잡고 있던 손이 조금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침대 곁의 작은 신성등이 깜박이자 그는 다시 환자의 호흡을 확인해야 했다. “공급량이 줄어듭니다!” 재하에게 소식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열세 분 뒤였다. 그는 잠옷 위에 겉옷을 걸친 채 뛰어나왔다. 아직 가로등도 없는 길에서 넘어질 뻔했고, 에반이 재하의 팔을 잡아 주었다. “신님이시여, 위엄 있게 뛰십시오.” “위엄은 나중에. 신발부터!” 릴리는 신전에서 약초와 물품을 챙겼다. 치료가 늦어질 때 필요한 일반적인 처치 도구까지 목록과 대조했다. 기적이 불안정한 순간에 전적으로 기적에 기대는 것은 위험했다. 노아는 누나가 나가기 전에 물병을 건넸다. “누나도 물 마셔.” 릴리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갔다. 어떤 날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자기 몸을 가장 늦게 챙긴다는 걸, 노아는 오래 앓는 동안 배웠다. 치료소에 도착한 재하는 기계부터 건드리지 않았다. 담당 치료사가 환자에게 필요한 공급량과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설명하도록 했다. 조절관의 붉은 도장은 천계 쪽 계약 집행에서 내려왔고, 현장에서 임의로 떼면 전체 공급이 차단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일단 병동별 우선순위를 조정합시다.” 치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증 환자의 공급은 그대로 두고, 낮 동안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회복실 설비를 잠시 내릴 수 있습니다. 다만 처치실에 필요한 장치는 건드리면 안 됩니다.” 세리아는 현장에서 행정 보전 신청을 작성했다. 우르센은 다른 지역의 예비 수차 출력을 돌릴 수 있는지 확인했고, 마테오는 경계 초소에 남아 있는 신성 축전석을 실어 왔다. 축전석은 충분하지 않았다. 한 병동을 몇 시간 지탱할 분량뿐이었다. “그걸 왜 가져왔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마테오는 순간 표정을 굳혔다. “더 가져올 수 없어서요.” “아니, 감사해서 물었어요. 군에서도 힘들다면서요.” “전쟁신 카르도가 직접 지시했습니다. 의사를 만나고 싶어 한다더군요.” “의사를요?” “당신 말고 치료소 담당 의사 말입니다.” 재하는 당황했다. 카르도가 자신과 이야기하려고 부른다고 했을 때는 거대한 옥좌를 떠올렸다. 그런데 그는 군용 구두를 신고 직접 병원 마당에 나타났다. 붉은 망토 아래에는 갑옷 대신 평범한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마당의 병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환자 보호자들은 어떤 신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이동 통로를 열라고 외쳤다. 카르도는 자기 명령으로 길을 비우게 했다. 그는 자신에게 절하는 병사들에게 말하지 않고 치료사에게 물었다. “무슨 환자에게 얼마가 필요한가?” 치료사는 거침없이 답했다. “오늘 오후까지 최소 여덟 단위가 더 필요합니다. 신성의 품질이 일정해야 하고, 도중에 끊기면 안 됩니다.” “보급대에 열둘이 남았다. 그중 일부를 보낼 수 있다.” “일부가 얼마입니까?” “여덟.” “남은 넷으로 경계를 지킬 수 있습니까?” 카르도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전쟁신은 전장에 쓸 힘을 잃는 대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신앙 포인트가 숫자로 보일 뿐, 실제로는 병사가 밤새 감시하고 가족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직 계산 중이다.”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 끝나기 전에는 부탁 못 드리겠네요. 대신 이쪽은 우리도 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자존심을 부릴 상황인가?” “자존심이 아니라 중복 계산을 피하려는 겁니다. 뺏어 와서 치료하면 다른 데서 사고가 날 수도 있잖아요.” 카르도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처음으로 재하에게 ‘괜찮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 입술을 다물었다. 세리아가 계약판을 보여 주었다. 위험 할증은 의료적 위험이 증가해서 붙은 것이 아니었다. 차기 서명권자가 누구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보청이 자체적으로 채권 회수 가능성을 높인 조치였다. 수치가 올라간 만큼 치료소에 공급할 빛이 줄어들었다. “이 조항을 언제 추가했습니까?” 카르도가 물었다. “오늘 새벽입니다.” “그럼 환자가 갑자기 더 위험해진 게 아니라 담보청이 갑자기 더 불안해졌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카르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전쟁신이 화를 참는 모습을 처음 본 마테오가 조용히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붉은 망토에 군기의 작은 불씨들이 일었다. 그러나 카르도는 불을 터뜨리지 않았다. 대신 치료소장에게 자신의 개인 신전 명의로 임시 보증을 제공할 수 있는지 물었다. “제가 받은 권한으로 가능한 한도는 여기까지입니다.” 치료소장은 계약을 꼼꼼히 읽었다. “이 보증은 환자와 보호자의 신앙을 요구합니까?” “아니다.” “나중에 우리 환자 명부를 열람하는 조건이 붙습니까?” “그것도 아니다.” 재하는 그를 바라봤다. 카르도가 조금 불편해하는 듯했다. “뭘 보나?” “그냥요. 여태 만나 본 신들 중에 제일 유료 상품 같으셨는데, 약관이 의외로 단순해서요.” “칭찬인가, 모욕인가?” “저도 아직 결정 못 했습니다.” 긴급 보증은 일부 승인됐다. 그러나 담보청은 환자 명부에 접근할 수 없는 보증에는 높은 신용률을 부여할 수 없다며 추가 승인을 미뤘다. 카르도는 화를 냈지만 재하는 그에게 보증을 강행하라고 하지 않았다. 계약을 지키려다 또 다른 권한 남용을 만들면 오늘을 넘기더라도 내일 같은 문제가 반복될 터였다. 우르센이 대안을 가져왔다. 유리포 수로 보수에 쓰던 임시 수문 장치를 옮겨, 치료소의 비신성 동력 공급을 보강하는 방안이었다. 다만 설치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장치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도 한계가 있었다. 치료사들은 가능한 설비를 하나씩 따졌다. 신성이 없어도 작동하는 펌프와, 반드시 신성이 필요한 치료 장치가 구분되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수문 운반 작업을 시작하고 한 시간쯤 뒤였다. 수차의 톱니를 풀던 청년이 너트 하나를 떨어뜨렸다. 너트는 물길 아래의 진흙에 파묻혔고, 작업자들은 한참 동안 그것을 찾지 못했다. 대체 부품을 쓰면 간단했지만 규격이 달라서 회전축을 망가뜨릴 수 있었다. 우르센은 작업을 중지시켰다. 주변 사람들이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는 급한 일을 두고 작은 쇳조각 하나 때문에 시간을 버리는 게 맞느냐고 물었다. 우르센은 대답 대신 회전축의 낡은 균열을 보여 주었다. “서두르다 여기가 부러지면 오늘의 작업이 전부 헛수고가 됩니다. 다친 사람도 생길 거고요.” 재하는 병동의 시계를 바라봤다. 매 순간이 아까웠지만, 무리하게 진행했다가 더 큰 사고가 나면 그 책임을 남에게 미룰 수도 없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정해진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작업이 없는지 물었다. 그러자 릴리가 이미 분리해 둔 물품 목록을 가져왔다. 연결관을 청소하고, 임시 지지대를 설치하고, 물 공급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설비부터 옮길 수 있었다. “그러면 너트가 돌아올 때까지 할 일이 없지는 않겠네요.” 마테오가 손을 들었다. “제 군에는 같은 규격의 부품이 있습니다. 다만 군 비축고를 사용해도 되는지 보급관에게 확인해야 합니다.” 에반이 투덜댔다. “여기서는 모두가 허락받는 데 시간을 보내는군.” 안나가 되받았다. “당신이 마음대로 가져다 썼다가 나중에 우리보고 갚으라고 하는 것보다 낫죠.” 결국 군 비축 부품의 대여가 승인됐다. 빌린 날짜와 반납 예정일, 분실 시 처리 방법이 간단하게 기록됐다. 재하는 서류가 완성될 때까지 부품을 들고 기다렸다. 그 사이 누군가 눈에 익은 장난을 치는 듯 말했다. “신님이시라면 복제하는 기적도 못 쓰십니까?” “할 수 있다면 정말 편할 텐데요. 근데 현재 제 권능은 남의 허락 없이 계약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거라서요.” “아주 실무에 안 맞는 신이네요.” “저도 가끔 그렇게 생각합니다.” 웃음 뒤에 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우르센이 수차의 균형을 확인했고, 방직촌 사람들은 천으로 만든 지지띠를 조절했다. 설치를 끝낸 뒤에도 바로 장치를 돌리지 않았다. 먼저 작은 물줄기로 시험했고, 회전축의 진동을 살폈다. 치료소에서 보낸 기술자가 정상 범위를 확인한 뒤에야 본격 운전을 시작했다. 재하는 그 과정을 보며 제6지역의 정산 장치가 왜 위험했는지 새삼 이해했다. 거대한 장치들은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계속 가동됐지만, 누구도 한 번 멈춰 시험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오류는 덮였고, 나중에는 멈추는 것 자체가 위협이 됐다. 작업 도중 리아넬 치료사가 잠깐 병동 밖으로 나왔다. 그는 수로 개선에 신경을 쓸 여유도 없이 환자들을 돌보는 중이었지만, 기술자들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했다. 그 말에 마테오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군이란 칭찬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자기가 운반한 부품 하나로 실제 병실이 밝아졌다고 말하자 어쩐지 대답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한 일은 작습니다.” 마테오가 말했다. “작아도 필요한 일입니다.” 치료사가 답했다. 재하는 둘의 말을 마음속에 오래 남겼다. 자신은 신이 된 뒤 커다란 기적을 일으키려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작은 일을 정확히 하려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더 믿음직했다. 물론 모든 환자의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공급 계획이 내일까지 버틸지 다시 계산해야 했고, 다음 비가 오면 수로의 보강 부분을 재점검해야 했다. 그래서 더더욱 오늘의 성공을 과장해서는 안 됐다. 에반은 작업자 명단을 보며 말했다. “이런 거 신앙 포인트 적립이 안 되는데도 다 모였네.” 안나가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러면 안 모이겠어요?” “아니, 예전의 나라면 그런 생각을 했겠다는 뜻이야.” “예전의 당신은 아주 불편한 분이었군요.” “지금도 꽤 불편하지.” 사람들은 오후 내내 수문을 옮겼다. 장화가 진흙에 빠지고, 볼트가 맞지 않아 다시 풀었다. 누군가는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신인 재하도 밧줄을 당기다가 어깨가 뻐근해졌다. 신체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아픈지 시험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설치가 끝났을 때 치료소의 비신성 설비 일부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필수 신성 공급은 남은 축전석과 긴급 보증으로 임시로 유지됐다. 결정적인 일은 기적 한 번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무너질 듯한 몇 시간을 수많은 작은 작업이 이어 붙였다. 저녁, 치료소장은 재하에게 작은 쪽지를 건넸다. 환자 이름은 없고 상태만 적혀 있었다. ‘오늘 공급 중단으로 인한 추가 악화: 확인되지 않음. 단, 내일 공급 확보 필요.’ 재하는 마지막 문장을 길게 바라봤다. 오늘 잘됐다고 내일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카르도는 떠나기 전 그에게 말했다. “네가 내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나?” “모르겠습니다.” “신이면서 모른다는 말을 참 쉽게 하는군.” “모르는 채로 아는 척하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카르도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다. 멀어지던 붉은 망토가 잠시 멈췄다. “서명권자 자리를 받지 마라. 하지만 자동 집행체에도 넘기지 마라. 내 군에도 그 장치가 묶고 있는 이름들이 있다.” 재하는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그 말씀, 증언으로 받아도 됩니까?” 카르도가 돌아보았다. “뭐?” “방금 그걸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전쟁신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정말 넌 신이 아니라 서기관으로 태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전령에게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기록하라고 지시했다. 밤이 되자 담보청의 명령서가 하나 더 도착했다. [긴급 의료 공급 위험 할증 재검토 청구 기각] [기각 사유: 심사 권한 공백] [차기 서명권자 승계까지 남은 시간: 31시간] 재하는 종이를 움켜쥐었다. “없어서 심사를 못 한다는 자리.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 때문에 사람을 위험하게 하는 자리.” 에반이 창밖을 보았다. “그게 바로 그 직책이 살아남는 이유야.” 재하는 쪽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이 자리를 없애고 싶다는 감정을 넘어, 없앤 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책임 있게 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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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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