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가 세 명이 됐다.
윤재하는 신전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일곱 번 확인했다.
[등록 신도: 3명]
[신앙 포인트: 2]
[신격 유지 기준: 100포인트]
[남은 시간: 6일 19시간]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숫자가 하는 말을 자신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신도가 늘었는데 왜 한 사람당 포인트가 다릅니까?”
“믿음에 정가가 없으니까.”
에반은 무너진 기둥에 걸터앉아 구두를 털었다. 악마 주제에 유난히 구두 관리에 엄격했다. 자기 말로는 ‘고객 앞에 서는 전문가의 기본 자세’라고 했다.
“그러니까 설명을 해 달라고요.”
“가입과 신뢰는 달라. 릴리는 너를 믿었지만 받은 포인트를 바로 썼지. 노파는 네 약속을 믿었고, 대장장이는 네가 그 약속을 지킬 거라고 기대했어. 천계는 그 차이를 점수로 매겨.”
“그럼 제 가치를 평가하는 겁니까?”
“아니. 인간이 너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평가하지. 아주 큰 차이야. 넌 별로 대단한 신이 아니거든.”
“그 마지막 말은 빼도 됐습니다.”
재하는 무너진 지붕 위로 고개를 들었다. 대장장이 도란이 가져온 쇠판 세 장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신전의 동쪽 지붕만 덮기에도 부족한 양이었다. 그의 옆에서 릴리가 낡은 천에 분필로 글씨를 쓰고 있었다.
‘당신의 믿음은 당신 것입니다.’
릴리의 글씨는 군데군데 삐뚤었지만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마지막 글자를 쓰고 나서 물었다.
“신님, 간판을 정말 이렇게 달아도 돼요?”
“문제라도 있나요?”
“카르도 신전 앞에서는 신에게 바친 것은 절대로 돌려받지 못한다고 하거든요. 이 간판은 정반대예요.”
“그렇다면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네요.”
에반이 손뼉을 쳤다.
“내가 보기에도 좋아. 다만 밑에 한 줄을 더 붙이자. ‘환불을 원하시면 접수번호를 뽑으세요.’”
“이 폐허에 접수번호 기계가 어디 있어요?”
“만들면 되지.”
“너무 열정적인데요, 악마치고.”
“천계에서 쫓겨난 악마가 성공한 신전의 창업 멤버가 되면 얼마나 멋지겠어?”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그러나 재하는 에반이 마지막 단어에서 아주 잠깐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았다.
“쫓겨났다고요?”
“의미 없는 과거는 성공 후에 이야기하는 법이야.”
그때 문밖에서 무언가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낯선 남자가 신전 앞에 서 있었다. 얼굴에는 비바람을 오래 맞은 사람 특유의 거친 주름이 있었고, 한쪽 소매가 비어 있었다. 그는 왼손에 접힌 종이뭉치를 쥐고 있었다.
“여기가 그 신전이오?”
“어느 신전을 말씀하십니까?”
“돈을 돌려준다는 신전.”
재하는 간판을 보았다. 아직 달지도 않았다.
“돈을 그냥 돌려주는 곳은 아닙니다.”
“그럼 소문이 틀렸군.”
“억지로 빼앗긴 걸 되돌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곳입니다.”
남자는 오래 서 있다가 돌계단에 걸터앉았다. 종이를 펼치는 손가락이 떨렸다. 종이 윗부분에는 전쟁신 카르도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전몰자 유족 보호 계약]
[신성 보상 지급: 조건부]
[선지급 헌납금: 은화 40닢]
“전쟁 때 아들이 죽었소. 보상을 받으러 갔더니, 군의 승리를 위해 먼저 헌납을 하라는 거요. 농장을 팔았지. 그다음엔 전투 기록에 아들이 없다고 했소.”
재하는 말을 잃었다.
“반지 하나도 돌려줬다면서. 내 돈도 돌려줄 수 있겠소?”
종이에 손을 대자 푸른 실들이 드러났다. 얽히고설킨 실은 계약서 아래로 내려가 땅속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강제 헌납 여부: 미확정]
[계약 당사자의 의사 확인 필요]
“헌납할 때 원하지 않으셨어요?”
남자가 헛웃음을 쳤다.
“원했겠소? 안 내면 아들의 이름을 전몰자 명단에서 뺀다고 하더이다.”
[강제 헌납 가능성: 높음]
[검증 보류: 대가가 실제로 제공되었는지 불명]
재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에는 당사자의 의사만 확인하면 반지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다른 조건이 있었다.
“혹시 아드님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토마스. 스물한 살이었소.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에는 귀향하면 지붕을 고치겠다고 적혀 있었지.”
릴리가 손에 들고 있던 분필을 내려놓았다.
남자는 접힌 편지를 꺼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버지, 이번 겨울에는 꼭 돌아가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종이 가장자리는 손가락에 닳아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재하는 종이를 서둘러 돌려주었다. 믿음이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이 사람이 잃은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했다.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만 지금 바로 돈을 돌려줄 수 있다고는 약속하지 못합니다.”
“신도 못 한다는 말이오?”
“아버님의 얘기를 듣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아드님의 기록을 찾아보는 것도요. 거기까지는 약속하겠습니다.”
남자는 종이를 다시 접었다.
“이름은 브렌이라 하오.”
그가 떠난 뒤 에반이 팔짱을 꼈다.
“문제 생겼네.”
“왜요?”
“전몰자 보호 계약은 전쟁신의 군사 신앙 장부와 연결돼 있어. 마을 입구에서 돌려준 헌납금과는 규모가 달라.”
“그럼 왜 브렌 씨 돈이 안 돌아왔을까요?”
“진짜로 아들이 죽었다면, 어떤 사람이 명단을 빼서 보상 지급 의무를 없앤 거겠지.”
재하가 신음을 흘렸다.
“신계에도 장부 조작이 있어요?”
“천계에서 숫자는 아주 신성한 것이라서.”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 누구나 숫자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뜻이지.”
***
릴리가 문 앞에서 브렌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물었다.
“신님, 저분도 우리 신도가 되는 건가요?”
“모르죠.”
“그분은 신님을 믿고 찾아오셨잖아요.”
“돈을 돌려줄 수 있느냐고 물으러 오신 거예요. 누군가 제게 문제를 가져온다고 모두 저를 믿는 건 아닐 겁니다.”
릴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처음에는 신님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랬죠.”
“그런데 저를 따라와 주셨잖아요. 제가 신님을 믿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어요.”
재하는 마당의 삐걱거리는 문을 바라봤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었다. 신도 등록은 자기소개를 잘했다고 늘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 자신에게 의심을 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신전 뒤편 골목에서는 두 상인이 언쟁하고 있었다. 한 명이 낡은 사발을 내밀며 말했다.
“전쟁신 신관에게 바치려고 산 거요. 은화 한 닢이나 주고! 그런데 기도도 못 받았으니 환불해야지!”
다른 상인은 사발을 밀어냈다.
“그건 내가 판 물건이오. 신전에서 벌어진 일을 왜 나한테 따져?”
재하는 무심코 끼어들려다 멈췄다. 신관에게 억지로 빼앗긴 헌납과 이미 값을 치르고 구매한 사발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권능이 모든 불만을 환불해 주는 능력이라면 시장이 뒤집어질 것이다.
“두 분, 사발을 사신 건 맞습니까?”
“맞소.”
“그럼 그 물건은 실제로 받으셨고요?”
“받았지.”
“신전에서 기도받지 못한 일은 신전에 따져야 합니다. 상인 분은 사발 값을 받고 사발을 주셨으니 강제 헌납과 다르죠.”
사발을 든 남자는 입술을 삐죽였다.
“반지는 돌려주더니 내 돈은 안 돌려주겠다고?”
“그 반지는 받는 쪽이 약속도 지키지 않고 돌려달라는 말도 무시했습니다.”
재하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도 신이니까 원하는 건 다 들어준다고 하면 편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럼 아무 죄 없는 이 상인에게 손해를 떠넘기는 거잖아요.”
상인은 멋쩍게 고개를 숙였다. 사발을 든 남자는 계속 투덜댔지만 결국 사발을 들고 갔다.
에반이 신전 기둥에 기대 서 있었다.
“손님 하나 놓쳤네.”
“환불 불가한 구매까지 무료 처리하면 가게가 망하겠죠.”
“신전에도 가게 운영 같은 개념이 있구나.”
“당연하죠. 안 그러면 마르타 할머니가 가지고 온 감자도 다 써 버리고 굶을 텐데요.”
그때 붉은 신전에서 돌아온 작은 소년 하나가 그들 앞에 멈춰 섰다. 뺨에 먼지가 묻은 소년은 사발을 품에 안고 있었다.
“저기요, 신님.”
“응?”
“그럼 제가 저 사발을 다시 팔면 되는 거죠?”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렇겠지.”
소년은 말없이 사발을 내려다보았다. 그에게는 누군가에게 분노를 떠넘기는 것보다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말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었다.
재하는 그 표정을 마음에 담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아는 것. 신이 된 뒤 처음으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인지도 몰랐다.
그날 저녁, 브렌의 집을 찾아간 사람은 재하 혼자가 아니었다. 릴리와 에반도 따라왔다. 브렌은 마을 북쪽에서 떨어진 집에 살았다. 오래된 창고는 반쯤 기울어 있었고 울타리에는 빈 방울이 매달려 바람에 울었다.
벽난로 위에는 토마스의 나무검이 있었다. 열 살 때 깎았다고 했다. 브렌은 아들의 군복 단추 한 개를 손수건에 싸 두고 있었다.
“카르도의 사제들은 전쟁이 신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오. 난 전쟁이 무얼 영화롭게 하는지 모르겠소.”
재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상실에 섣불리 의미를 붙일 권리는 없었다.
대신 토마스의 편지를 날짜 순서로 펼쳤다. 종이는 다섯 장. 마지막 편지가 사라진 것은 두 달 전이었다. 이상한 점은 세 번째 편지였다.
‘새로 온 군량 관리관이 병사들의 몫을 줄였습니다. 이름을 올리면 신성 명부에 기록하겠다고 했습니다.’
재하의 시선이 멈췄다.
“명부가 두 개일 수도 있겠네요.”
“무슨 말이오?”
“전투 기록과, 헌납을 거둔 기록요. 전투 기록에 이름이 없는데 헌납 기록에는 있을 수 있습니다.”
에반은 손가락을 튕겼다.
“군량 관리관이 흔히 쓰는 방법이지. 군인이 실종되면 사망 확인을 미루고, 가족이 바친 헌납은 계속 챙기는 거야.”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네요.”
“수법을 안다고 내가 그랬다는 건 아니야.”
재하가 두 기록을 확인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대문이 세차게 열렸다.
붉은 망토를 두른 여자 사제가 들어왔다. 손에는 봉인된 수정판을 들고 있었다. 카르도 신전의 조사관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세리아. 관리신 청렴감찰실 소속입니다.”
재하는 눈을 깜빡였다.
“청렴감찰실도 있어요?”
“있으니까 제가 여기 있겠지요.”
세리아는 브렌을 바라보고는 시선을 떨궜다.
“브렌 씨. 귀하의 전몰자 기록과 헌납 계약에 관해 재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브렌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와서?”
“그분이 군량 장부를 꺼내 보자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세리아가 재하를 가리켰다.
“다만 윤재하 신격께 경고하겠습니다. 허가 없이 군사 기록을 열람하면 신격 회수 외의 책임까지 지게 됩니다.”
“그럼 허가를 주세요.”
“제가요?”
“청렴감찰실이잖아요.”
세리아의 눈꺼풀이 가늘어졌다. 에반은 재하의 팔을 잡아끌고 뒤로 물렸다.
“말조심해. 저 사람은 베르만보다 훨씬 위험해.”
“왜요?”
“베르만은 자기가 규칙이라고 믿어. 세리아는 규칙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켜.”
세리아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수정판을 내밀었다.
“열람은 가능합니다. 대신 진술을 기록으로 남기세요. 당신이 의심하는 내용과 책임질 범위를 명시해야 합니다.”
재하는 주저하지 않고 손바닥을 올렸다.
“확인도 안 한 것을 죄라고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틀렸으면 공개적으로 사과하겠습니다.”
수정판이 푸르게 빛났다.
[정식 조사 요청 접수]
[열람 범위: 전몰자 토마스의 신성 명부]
[요청 책임자: 윤재하]
재하는 작은 승리감에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뒤이어 떠오른 문구 때문에 웃음이 굳었다.
[주의: 기록 열람을 승인한 조사관 또한 공동 책임자가 됩니다.]
세리아의 얼굴도 굳었다.
“당신, 제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저도 이건 예상 못 했는데요.”
에반이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시스템이 벌써 너희 둘을 한 배에 태우네.”
브렌은 조사 요청서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 종이는 그의 아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가 행정 기록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전엔 신전 문 앞에서 부탁만 했소. 아무도 내 말을 종이에 적어 주지 않았지.”
재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 기록으로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누가 언제 조사했는지는 남기겠습니다.”
“그거면 됐소. 누군가는 우리 아들 이름을 다시 불러 줬으니까.”
세리아는 자신의 수정판에 동일한 접수번호를 새겼다. 붉은 빛이 반짝이는 동안 그녀는 잠시 브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제의 의무적인 동작이 아니라, 어떤 이름을 늦게라도 받아 적은 사람의 사과처럼 보였다.
문밖의 바람이 울타리 방울을 흔들었다. 방울소리 너머, 붉은 신전의 군량 창고에서 누군가 오래된 장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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