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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2화
PAYLUA ORIGINAL · 제2화

2화. 신격 회수 심판에는 접수번호가 필요합니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8,611자

오프라인 책장
“신격 회수 심판이라.” 윤재하는 신전 앞에 세워진 붉은 깃발을 올려다보았다. 깃발에는 거대한 검과 피 흘리는 태양이 새겨져 있었다. 아래쪽에는 작은 글씨로 ‘전쟁신 카르도 직영 관리 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직영?” “이 주변에서는 대부분의 신전이 카르도 산하야.” 악마 에반이 느긋하게 답했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작은 수첩을 꺼내 깃발의 색상과 문구를 적고 있었다. “붉은색. 위협적인 상징. 권위 강조. 아주 고전적인 마케팅이지.” “감상문 쓰는 중입니까? 우리 지금 폐업당하게 생겼는데.” “폐업이라니. 신격 회수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존재 삭제에 가까워.” “그런 건 말하기 전에 순서를 생각해 줬으면 좋겠네요.” 재하는 자신의 손을 펼쳤다. 조금 전 제단 아래에서 깨어난 권능의 문구가 아직 눈앞에 남아 있었다. [고유 권능: 무상의 약속] [다른 신이 거둔 강제 헌납을 무효화할 수 있습니다.] [활성 신앙 포인트: 0] 근사한 이름과 달리 사용법은 없었다. 어떤 헌납이 강제인지, 무효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전임 신격이 남긴 인수인계 자료는 여전히 단 한 줄도 없었다. “신이라면서 설명서도 안 줍니까?” “설명서 없는 기적이라면 나는 몇 개 알아.” “뭡니까?” “유행하는 기적. 아무도 못 믿겠다고 할 때 ‘특별한 분들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잘 팔리지.” 재하는 에반을 쳐다봤다. “그것도 사기잖아요.” “그러니까 너한테 팔라는 말은 안 했지.” 신전 앞의 릴리가 불안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릴리의 팔에는 아직 어제의 밤샘 간호가 남아 있었다. 옷소매 끝이 젖어 있었고, 손등에는 장작을 모으다 긁힌 상처가 선명했다. “정말 재판을 받아야 하나요?” “받아야겠죠.” 재하는 짐짓 태연하게 웃었다. “안 가면 어떻게 됩니까?” 에반이 수첩을 덮었다. “정식 심판을 거부하면 관리 구역 전체의 신앙 통행권이 정지돼. 그러면 이 신전을 믿는 사람도, 신전에 물건을 파는 사람도 제재를 받아. 네가 숨으면 릴리부터 곤란해질걸.” 재하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럼 갑시다.” 그는 발을 내디뎠다. 릴리가 뒤따르려 하자 고개를 저었다. “동생 곁에 있어요.” “싫어요.” 단호한 대답이었다. “이 일은 제 동생 때문에 시작됐어요. 제가 가서 말할게요.” 재하는 조금 난처해졌다. 신으로서 첫 명령을 내렸는데 신도에게 바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 거절에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이 소녀는 누군가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좋아요. 대신 위험하면 바로 물러나요.” 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은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신과 신도가 협상하고 있네. 신계 역사상 보기 드문 조직 문화야.” *** 마을 중앙의 카르도 신전은 산 위에 자리했다. 넓은 돌계단 양쪽으로 전쟁 영웅들의 석상이 서 있었고, 문 앞에는 은빛 갑옷을 입은 신전병 여섯이 지키고 있었다. 매끈하게 다듬은 돌바닥은 재하의 폐허 신전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일 만큼 훌륭했다. 계단 아래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줄의 끝은 광장 저편 식료품 가게까지 이어졌다. “전부 신격 회수 구경하러 온 겁니까?” “아뇨.” 릴리가 말했다. “이쪽은 치료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들이에요. 저쪽은 전쟁 무사 귀환 기도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고요.” 줄을 나누는 표지판 아래에는 가격표가 걸려 있었다. [경미한 치료 축복: 은화 3닢] [고열 진정 축복: 은화 10닢] [전쟁 무사 귀환 기도: 은화 5닢] [긴급 축복 접수: 추가 은화 2닢] 재하는 한동안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가격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신전에도 관리비가 들 것이고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열에 들뜬 아이를 데려온 사람에게 긴급 접수 비용을 더 요구한다는 문장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계단 옆에서 한 노파가 신전병에게 소리를 낮춰 애원하고 있었다. “우리 손자가 징집됐어요. 저는 은화가 두 닢밖에 없는데….” “기도는 다섯 닢이 필요합니다.” “나머지는 추수하고 꼭 갚을게요.” “규정입니다.” 노파가 품에서 작은 반지를 꺼냈다. 빛이 바랜 구리 반지였다. “남편이 남긴 건데, 이거라도….” 신전병은 반지를 집어 들더니 코웃음을 쳤다. “이걸로는 모자랍니다.” “그럼 돌려주세요.” “이미 봉헌 의사를 표시했으므로 반납할 수 없습니다.” 재하가 멈춰 섰다. “잠깐만요.” 그는 신전병에게 다가갔다. “그분이 반납해 달라고 했잖아요.” 신전병이 투구 아래로 그를 훑었다. “관계없는 자는 물러나라.” “그런데 관계가 있어 보이거든요.” 재하의 눈앞에서 반짝이는 실 한 가닥이 나타났다. 노파의 손가락에서 반지까지 이어진 희미한 푸른 실이었다. 신전병이 반지를 주머니에 넣을 때마다 실이 억지로 팽팽해졌다. [강제 헌납 가능성이 감지되었습니다.] [확인 조건: 헌납자의 자유 의사] 재하는 눈을 깜빡였다. 시스템이 처음으로 권능에 대한 힌트를 준 것이다. “할머니.” “예?” “저 반지, 정말 저 사람한테 주고 싶으세요?” 노파가 고개를 저었다. “손자가 무사하기만 하면 주려고 했죠. 그런데 기도를 안 해 준다잖아요. 이젠 돌려받고 싶어요.” 그 순간 글자가 바뀌었다. [자유 의사 부재 확인.] [강제 헌납 무효화 대상: 1건] [대상 선택: 가능] 재하는 고민했다.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힘을 사람 앞에서 쓰는 건 무모했다. 하지만 힘을 쓰지 않으면 반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이건 돌려받아야죠.” 그가 나직이 말하자 손끝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끊어지는 감각이 들었다. 딸랑. 신전병의 주머니 안에서 동전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곧 반지가 주머니 밖으로 튀어나와 노파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뭐, 뭐야!” 신전병이 허둥거리며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 속에서 은화 세 닢도 함께 굴러 나왔다. 그중 한 닢은 손자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남자의 것이었고, 다른 두 닢은 똑같이 기도 접수를 거부당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은화는 각자의 주인 앞으로 굴러가 멈췄다. [자유 의사 철회가 확인된 연계 강제 헌납 3건이 함께 무효화되었습니다.] “잠깐. 왜 세 건이나?” 재하가 중얼거렸다. 에반이 처음으로 수첩을 떨어뜨렸다. “그 권능, 대상 하나만 건드린 거 아니었어?” “전 반지 하나만 생각했는데요.” “연계된 계약까지 본다는 말이야? 말도 안 돼.”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신전병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창을 세웠다. “전쟁신의 봉헌물을 훔쳤다! 붙잡아라!” “훔친 건 아니고, 원래 주인한테 돌려준 것 같은데요.” “감히 신의 법을!” 창끝이 재하의 가슴을 향했다. 릴리가 앞으로 나섰다. “이분은 제 동생을 살린 신님이에요!” 신전병이 잠시 멈칫했다. “그 무허가 신?” “무허가라는 표현은 아직 판결이 안 났으니 좀 그렇지 않습니까?” 재하가 대꾸했다. “판결? 네게 판결을 받을 자격이 있을 것 같으냐?” “그러니까 지금 받으러 왔잖아요.” 신전병이 할 말을 잃은 사이, 건물 안쪽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여보내라.” *** 심판장은 신전의 가장 안쪽에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원형 홀의 천장에는 별자리처럼 은빛 문자가 움직였다. 홀 중앙에는 쇠사슬로 둘러싼 원이 그려져 있었고, 세 명의 사제가 높은 단 위에 앉아 있었다. 가운데 사제는 콧수염을 잘 다듬은 중년 남자였다. 가슴에 붉은 검 문장을 달고 있었다. “나는 카르도 교단의 지역 심판관 베르만이다. 무허가 신격 윤재하. 네가 카르도 관리 구역에서 신앙 포인트 등록 없이 치료 기적을 행사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일단 치료한 건 맞습니다.” “허가를 받았나?” “그런 허가가 필요한 줄도 몰랐는데요.” “무지가 죄를 면하게 하지는 못한다.” 베르만은 문서를 내밀었다.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관리 구역 협약 제17조] [타 신격은 관리신의 승인 없이 공개 기적을 실행할 수 없다.] 재하는 문구를 읽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관리 구역 협약이라는 건, 누가 누구랑 맺은 겁니까?” “신계 질서에 따라 정당하게 성립됐다.” “제 질문은 누구랑 맺었냐는 건데요.” 심판관의 눈썹이 올라갔다. “계약의 상대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 “제가 서명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에반이 옆구리를 찔렀다. “그만해. 오래된 신들은 자기들이 정한 규정을 질문받는 걸 싫어해.” “그럼 더 물어봐야겠네요.” 재하는 문서 아래쪽을 가리켰다. 다른 조항보다 흐릿한 문장 하나가 있었다. [관리 구역 내 모든 헌납은 해당 관리신을 통해 정산한다.] “기적도 카르도를 통해 승인받고, 헌납도 카르도를 통해 정산한다. 그런데 기적을 쓰는 신은 따로 있고, 돈은 관리신이 가져가는 구조네요?” 베르만이 의자를 밀었다. “그것은 세상을 유지하는 질서다!” “질서는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방금 입구에서 반지를 뺏겼다는 할머니가 계셨거든요.” “봉헌물을 바친 사람이 뒤늦게 마음을 바꾼 것이다. 신 앞에서 한 약속은 철회할 수 없다.” “기도를 해주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돌려달라고 했는데도요?” “믿음은 희생으로 증명된다.” 릴리가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에게도 익숙한 말이었다. 동생을 치료해 달라며 찾아갔던 사제는 은화를 내지 못하는 그녀에게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재하는 릴리를 한 번 돌아본 뒤 말했다. “믿음이 희생으로 증명된다면, 희생을 받는 쪽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홀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심판관은 비웃었다. “신을 인간과 같은 거래 상대라 생각하는가?” “거래 상대가 아니라면 돈부터 안 받으시면 되잖아요.” 에반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끝났다. 첫 출근 날 회사 대표이사한테 회계 장부 공개하라는 꼴이야.” “저 회사 다닐 때도 그런 생각은 했는데요.” “그래서 회사 생활이 힘들었겠지!” 베르만은 단상 위의 금속 종을 쳤다. 쾅! 천장의 문자가 붉어졌다. [심판 개시.] [피심판 신격: 윤재하] [관리신: 전쟁신 카르도] [청구 사항: 신격 회수 및 잔여 신앙 자산 귀속] 재하는 마지막 문장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만요. 잔여 신앙 자산 귀속이요?” “신격 회수 시 모든 신도와 제단, 신앙 포인트는 관리신이 승계한다.” “그러면 제 신도도 저쪽으로 넘어간다는 겁니까?” “신도는 신계 등록 자산이다.” 그 순간 릴리가 입을 열었다. “전 물건이 아니에요.” 작은 목소리였지만 홀에 분명히 울렸다. 베르만은 그녀를 내려다봤다. “인간은 발언권이 없다.” “저는 제가 누구를 믿을지 직접 결정했어요.” “침묵하라!” 재하가 릴리 앞에 섰다. “이 사람의 믿음을 제 것도 아니고 당신 것도 아닌 물건으로 취급하면, 저는 그 계약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시스템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고유 권능 '무상의 약속'이 신앙 소유권 계약에 반응합니다.] [현재 신격의 진술을 확인 중입니다.] 재하는 숨을 고르게 쉬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문장이 있었다. 특별한 주문도 아니고, 신의 언어도 아니었다. 자신이 이제부터 지키고 싶은 단순한 약속이었다. “릴리 씨가 내일 저를 믿지 않겠다고 해도, 저는 그 선택을 막지 않을 겁니다.” 릴리가 그를 바라봤다. “신님….”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겠지만, 그 대가로 누군가의 인생을 소유하지는 않겠습니다.” 제단 아래서 올라왔던 새싹의 모습이 순간 눈앞을 스쳤다. 쿵. 바닥의 쇠사슬 고리 하나가 저절로 풀렸다. [신앙 소유권 강제 이전 조항: 대상 신도에 대해 무효.] [무효 근거: 신도의 독립된 자유 의사] 심판관 세 사람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재하가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제가 지킬 말을 했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장에 있던 붉은 문자가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관리신이 작성한 문서 끝에 숨겨져 있던 서명란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눈앞의 수십 개 이름 중 재하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였다. [윤재하: 서명 없음] “역시 안 했네.” 에반이 입을 벌렸다. “넌 지금 천계 표준 계약서를 직접 검증한 거야.” “안 되는 일입니까?” “신격이 낮은 자는 계약 내용을 볼 권한도 없다고!” 천장의 글씨들이 거칠게 흔들렸다. 심판관은 재빨리 종을 여러 번 쳤다. 그러나 종소리는 나지 않았다. [심판 보류] [쟁점: 관리신 협약의 적용 적법성] [자동 상급 심판 회부] 그제야 베르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일을 키웠다.” 재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가 뭘 그렇게까지 했습니까? 반지 하나 돌려준 것부터인데.” “그 반지가 문제가 아니다!” 베르만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한 명의 신도가 자신의 믿음을 소유한다는 판례가 생기면, 관리신들은 무엇을 근거로 신앙을 거둘 수 있겠느냐!” 에반이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이해하지? 네 권능이 금지된 이유를.” 재하는 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막아선 것은 사제 하나가 아니었다. 사람이 기도한 만큼 누군가의 창고에 쌓이는 신앙, 그 신앙을 담보로 사람의 선택까지 빼앗는 거대한 체계였다. 그때 제단 위에 또 하나의 통지가 떠올랐다. [상급 심판 지정] [7일 후, 관리신 카르도의 직접 대리 심판] [그전까지 신격 유지 최소 기준 100포인트를 달성하지 못하면 즉시 회수] 잔여 시간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자신을 지켜보는 눈만 늘어났다. 재하는 헛웃음을 지었다. “퇴사하고 나서야 찾은 새 직장인데, 수습 기간이 살벌하네요.” *** 밖으로 나왔을 때 해가 기울어 있었다. 광장은 아까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노파는 돌려받은 반지를 가슴에 품고 앉아 있었고, 돈을 되돌려받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릴리는 그들에게 재하가 한 일을 설명하려 했다. 재하가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그런 말씀은 안 하셔도 됩니다.” “왜요? 신님이 모두를 도우셨는데.” “제가 뭘 했는지 저도 정확히 모르니까요. 과장해서 전하면 곤란합니다.” 에반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스스로 홍보를 거부하는 고객은 처음이야.” 그때 노파가 천천히 일어났다. “신님.” “저 그렇게 거창한 사람 아닙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죠?” 재하는 잠시 생각했다. 신격이라는 호칭은 아직 어색했다. 사람으로 살았던 시절에도 누군가에게 ‘대표님’이라고 불리면 뒤를 돌아보던 사람이었다. “재하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노파가 씩 웃었다. “그럼 재하 신님. 감사 인사는 받아 주세요.” 그녀는 반지를 다시 손가락에 끼었다. “난 당신이 큰 기적을 보여 줘서 고마운 게 아니에요. 내 말을 들어 줘서 고마워요.” 가슴 한쪽이 간지러웠다. 그 말은 뜨거운 찬양도, 충성 서약도 아니었다. 그런데 눈앞에 작은 창이 나타났다. [자발적 신앙 관계 생성: 1명] [등록 신도: 2명] [신앙 포인트: 1] “어?” 에반도 창을 보았다. “방금 신도 한 명이 늘었는데 왜 놀라?” “할머니는 제게 기도를 하신 적도 없잖아요.” “네가 관리신들에게 배운 게 없어서 그래. 본래 신앙이란 기도가 아니라 신뢰에서 시작해. 기도는 그것을 표시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지.” 재하는 에반을 바라봤다. “그런 말을 할 줄도 아는군요.” “난 마케팅 전문가니까.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 정도는 알아야지.” “사람을 소비자라고 부르는 건 좀….” “알았어, 알았어. 이제 익숙하다고.” 잠시 후, 대장장이가 다가왔다. 팔에 낡은 붕대를 두른 남자였다. “아침에는 당신에게 기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냥 신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말하는 동안 기다려주는 신은 처음 봤어요. 우리 대장간에서 못 쓰는 쇠판이라도 필요하면 가져가시오. 폐허 신전 지붕은 고쳐야 할 것 같더군.” “정말요?” “대신 나중에 부서진 망치나 고쳐 줘요.” “저 쇠 다루는 법은 모르는데요.” “배우면 되지.” [자발적 신앙 관계 생성: 1명] [등록 신도: 3명] [신앙 포인트: 2] 재하는 눈앞의 숫자를 바라봤다. 겨우 두 점이었다. 일주일 안에 백 점을 모아야 하는데, 이런 속도라면 멀기만 했다. 하지만 숫자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거창한 기적 없이도 그를 믿는 사람이 생기고 있었다. “좋아.” 그가 작게 말했다. “일단 지붕부터 고칩시다.” 에반은 아주 천천히 웃었다. 그리고 수첩 첫 장에 적어 두었던 광고 문구를 찢었다. “무료 기적 체험. 첫 기도 포인트 적립. 이런 것보다 훨씬 강한 구호가 생겼네.” “뭐요?” 에반이 새 수첩에 큼지막한 글씨를 적었다. [당신의 믿음은 당신 것입니다.] 재하는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그건 광고가 아니라 약속이어야 합니다.” “좋아. 그 차이를 고객에게 보여 주면 되는 거지.” 멀리 카르도 신전의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경고처럼 들렸다. 그 종소리가 닿지 않는 더 높은 곳, 붉은 구름 사이의 옥좌에서도 누군가 눈을 떴다. 전쟁신 카르도였다. “강제 헌납을 무효화하는 신격이라.” 거대한 손가락이 옥좌의 팔걸이를 두드렸다. 신전에서 발생한 작은 계약 파기 기록이 붉은 불씨가 되어 흘러왔다. “그 권능이 아직 남아 있었다니.” 그의 눈에 흥미와 불쾌함이 동시에 스쳤다. “윤재하.” 낯선 신의 이름을 한 번 발음한 카르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백 포인트를 모으기 전에 네가 믿는 약속부터 부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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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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