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된 첫날, 윤재하는 신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0명이라고?”
그가 물었다.
허공에 떠 있는 작은 천계 안내창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현재 등록 신도: 0명.]
[현재 기적 사용 가능 횟수: 0회.]
[신앙 포인트 잔액: 0.]
[보유 신전: 폐허 1개.]
재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안내창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한국에서 퇴근길 사고를 당한 기억까지는 분명했다. 그 뒤로는 하얀 빛과 함께 끝없는 계단을 올라왔고, 천계 담당자가 ‘신격 인수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인수인계는요?”
[전임 신격 소멸로 인해 인수인계가 생략되었습니다.]
“전임자가 왜 소멸했는데?”
[신앙 포인트 장기 미달.]
재하는 머리를 감쌌다.
“그걸 저한테 넘겼다고요?”
담당자는 이미 사라졌다. 구름 위에 홀로 남겨진 그는 인간 시절 다니던 회사의 풍경을 떠올렸다. 일을 잘하면 승진을 시켜 준다더니, 실제로는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부서를 떠넘기던 회사였다. 사후 세계에서도 달라진 게 없었다.
문득 발밑으로 작은 지도 하나가 떠올랐다. 지도 한가운데에 점 하나가 반짝였다. ‘폐허 신전’. 재하는 지도를 눌렀고, 다음 순간 돌바닥 위에 엎어졌다.
“윽!”
먼지가 입안에 들어왔다. 신전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폐허였다. 지붕은 반쯤 날아가 있었고, 제단에는 잡초가 자랐다. 벽에는 어딘가에서 온 상인이 남긴 낙서가 가득했다.
[이곳은 신도 없는 신의 신전. 도둑도 안 온다.]
재하는 낙서를 보며 중얼거렸다.
“마케팅을 얼마나 안 했으면….”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낡은 옷을 입은 소녀가 신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열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는 한쪽 다리를 절뚝였고, 손에는 시든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재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누구세요?”
재하는 잠시 망설였다.
“여기 신인데요.”
“신이요?”
소녀는 그를 위아래로 살폈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존재치고는 옷이 너무 평범했다. 낡은 흰 셔츠와 회색 바지. 광택도 광륜도 없었다.
“그럼 기적을 보여 주세요.”
“그게….”
재하는 허공의 안내창을 확인했다.
[신앙 포인트 부족.]
“현재는 사용 가능 횟수가 없어서요.”
소녀가 한숨을 쉬었다.
“역시 가짜였군요.”
그녀가 돌아서려 하자 재하가 다급히 불렀다.
“잠깐만요. 여기 왜 왔어요?”
소녀는 멈췄다.
“소원을 빌러요.”
“무슨 소원인데?”
“동생이 아프거든요.”
그녀는 꽃을 제단 위에 놓았다. 꽃잎은 이미 말라 있었지만 누군가 마지막까지 소중히 간직한 흔적이 보였다.
“다른 신전에도 가 봤어요. 그런데 치료 기적을 받으려면 봉헌금이 필요하대요. 저한테는 그런 돈이 없어서….”
재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자신에게는 아무 힘도 없었다. 신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이름이 뭐예요?”
“릴리요.”
“동생은 어디 있어요?”
“마을 끝에요.”
재하는 제단에서 내려왔다.
“일단 같이 가죠.”
릴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기적은 못 쓴다면서요?”
“기적을 못 쓰는 거지, 손발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두 사람은 황무지를 걸었다. 길가에는 버려진 신전들이 줄지어 있었다. 대부분 돌문에 봉인이 붙어 있었다. ‘전쟁신 카르도 소유’, ‘풍요신 아메리아 공식 지부’. 신전마다 화려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재하는 그중 가장 큰 신전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치료를 위해 동전을 바치고 있었다. 신관이 그 돈을 세며 외쳤다.
“신의 은혜는 믿음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돈이 많으면 믿음도 큰 모양이네요.”
재하가 중얼거리자 릴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세상은 원래 그래요.”
마을 끝의 집은 창문 틈을 천으로 막아 둔 허름한 오두막이었다. 안에서는 어린아이가 기침하고 있었다. 재하는 아이 이마에 손을 얹었다. 뜨거웠다. 의학 지식은 많지 않았지만 탈수 증상이 걱정될 정도였다.
“물을 끓일 수 있어요?”
“장작이 없어요.”
재하는 밖으로 나가 나뭇가지를 주웠다. 한참을 걸어 마른 나무 몇 개를 모았다. 돌을 부딪쳐 불을 붙이는 일부터 서툴렀다. 릴리가 웃으며 부싯돌을 건넸다.
“신님도 불 붙이는 건 못 하시는군요.”
“신입이라서요.”
그는 밤새 아이 곁을 지켰다. 물을 조금씩 마시게 하고 창문 틈을 막았다. 위급해 보이는 호흡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조여 왔다.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었다. 한밤중에는 아이가 헛소리를 했다.
“누나….”
릴리가 손을 꼭 잡았다.
“여기 있어. 내가 여기 있어.”
재하는 말없이 다른 손을 잡았다. 차가워진 작은 손가락이 그의 손바닥 안에서 떨렸다. 이 세계에 와 처음 느낀 것은 권능이 아니라 무력감이었다.
새벽이 밝아올 즈음 아이의 열이 조금 내려갔다.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지만 숨소리가 한결 편안해졌다. 릴리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고맙습니다.”
“아무것도 못 했어요.”
“아니에요.”
릴리가 눈물을 닦았다.
“다른 신전에서는 돈이 없다고 쫓겨났어요. 그런데 신님은 제 동생 곁에 밤새 있었잖아요.”
그 순간 재하의 눈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첫 신앙 관계가 생성되었습니다.]
[등록 신도: 1명.]
[신앙 포인트: 1.]
재하는 숨을 삼켰다. 숫자 하나가 놀랍도록 눈부셨다. 사람 한 명이 자신을 믿었다는 사실이 시스템의 숫자로 표시되는 것이 이상했지만, 지금 그에게는 무엇보다 귀중한 숫자였다.
[기적 사용 가능 횟수: 1회.]
재하는 아이를 돌아봤다. 한 번뿐인 기적.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제발 낫게 해 주세요.”
손끝에서 약한 금빛이 피어났다. 뜨거운 이마가 서서히 식었다. 아이의 호흡이 고르게 변했다. 릴리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안내창이 다시 나타났다.
[신앙 포인트 소모: 1.]
[등록 신도: 1명.]
[현재 신앙 포인트: 0.]
재하는 헛웃음을 흘렸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루도 채 쌓이지 않은 포인트를 전부 썼다. 이상하게도 아깝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회복했다는 소식에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도 있었고, 다친 손을 숨긴 대장장이도 있었다. 모두 재하에게 같은 말을 했다.
“기적을 보여 주십시오.”
재하는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못 합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한 여자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신이면서 왜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거죠?”
“포인트가 없어서요.”
“포인트?”
“기적을 쓰려면 조건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기대 섞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급한 환자부터 함께 돌봅시다. 제가 장작을 모으고 물을 길어 올게요.”
몇 사람은 실망한 얼굴로 떠났다. 또 몇 사람은 집에 남았다. 릴리는 그들 옆에서 웃었다.
마을이 조용해지고 사람들이 돌아간 뒤 재하는 제단의 낙서를 지우기 시작했다. 릴리는 동생에게 죽을 먹인 다음 찾아와 함께 돌을 닦았다. 구겨진 천과 낡은 물 한 통이 청소 도구의 전부였다.
“신님은 원래 사람 몸으로 태어나셨어요?”
릴리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높은 신전 신들은 사람들한테 말도 잘 안 해요. 그런데 신님은 물동이도 직접 들어 주시고….”
재하는 잠깐 웃었다.
“여기 오기 전에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일도 하고 월세도 내고, 퇴근하면 편의점에서 저녁 먹고요.”
“월세는 뭐예요?”
“남의 집에 살면서 돈 내는 거요.”
“신도 돈이 부족했던 적이 있군요.”
“지금도 부족해요.”
릴리는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에는 쉽게 가시지 않는 불안이 남았다. 그녀는 동생에게 기적을 써 준 대가로 재하가 어떤 벌을 받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신님. 제 동생이 아픈 게 제 탓이면 어떡하죠?”
“왜 그렇게 생각해요?”
“전쟁신 신전에서는 믿음이 약한 사람의 집에 병이 온다고 했어요.”
재하는 걸레를 내려놓았다.
“그 말을 믿어요?”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요.”
그는 잠시 생각했다. 신이 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세상의 모든 병과 기적에 대해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모르는 것을 확신하는 척하는 건 싫었다.
“릴리 씨. 병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겁니다. 저는 아직 다 몰라요.”
“신님도 모르는 게 있어요?”
“많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동생을 살리려고 뛰어다닌 당신이 잘못한 건 없습니다.”
릴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누구도 그렇게 말해 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병든 동생을 집에 혼자 두고 돌아다닌 것부터 봉헌금이 없는 자신까지 모든 것을 탓하며 살았다.
재하는 제단 앞에 놓인 시든 꽃을 물병에 꽂았다. 꽃잎 하나가 흩날렸다.
“그리고 다음에 누가 신에게 돈이 없어서 기적을 못 받았다고 말하면, 일단 우리 신전에 오라고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게요.”
“기적을 못 쓰시잖아요.”
“그래도 밥은 만들 수 있죠.”
“신전에는 식량이 없는데요.”
재하의 어깨가 처졌다.
“그러네요. 식량부터 구해야겠군요.”
릴리는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돌아올 때는 작은 주머니에 감자 두 개와 마른 빵 한 조각을 담아 왔다.
“이거라도 같이 먹어요.”
재하는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천계는 자신에게 폐허 신전 하나와 숫자 0을 남겼다. 릴리는 감자 두 개와 빵 한 조각을 가져왔다. 신이 된 뒤 처음 받은 선물이었고, 이상하게도 그 어느 금화보다 소중했다.
그들은 금 간 제단 앞에 앉아 빵을 나누었다. 밖에서는 황무지의 바람이 불었다. 재하는 조용히 생각했다. 신이란 무엇일까. 기적을 많이 쓸 수 있는 사람? 높은 신전에서 돈을 거두는 존재? 지금 자신에게 신의 자격이 있다면, 최소한 누군가와 빵을 나눌 수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 제단 위에 아주 희미한 문구가 나타났다.
[새로운 신앙 행동을 감지했습니다.]
[믿음의 정의가 재설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재하가 읽으려는 순간 문구가 지워졌다. 대신 금이 간 제단 사이에서 작은 새싹이 올라왔다.
“릴리 씨, 이거 원래 있었어요?”
릴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여기는 꽃도 잘 안 자라요.”
재하는 싹을 건드리지 않았다. 신앙 포인트는 여전히 0이었다. 그럼에도 아무 대가 없이 생긴 변화였다. 그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날 오후, 신전 앞에 검은 마차가 섰다. 마차에서 말끔한 청년 하나가 내려왔다. 머리에는 작은 뿔 두 개가 솟아 있었다. 악마 에반이었다.
“당신이 신도가 한 명도 없던 그 신인가?”
재하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한 명입니다.”
에반이 박수를 쳤다.
“축하해. 하지만 그 속도로는 폐업까지 사흘 남았어.”
그가 건넨 서류에는 붉은 글씨가 찍혀 있었다.
[신격 유지 최소 기준: 7일 안에 신앙 포인트 100점 확보. 미달 시 신격 자동 회수.]
재하는 어이가 없었다.
“최소 기준을 이제 알려줘요?”
“천계 업무는 원래 그런 법이지.”
에반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마케팅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겠어? 난 악마지만 영업 실적은 자신 있거든.”
그는 소매에서 화려한 전단을 꺼냈다.
[신규 신전 오픈! 첫 기도 고객에게 신앙 포인트 두 배 적립!]
재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전단을 쳐다봤다.
“이런 광고를 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왜? 다른 신들도 다 하잖아.”
“난 사람들 믿음을 장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에반의 미소가 조금 바뀌었다.
“그래? 그럼 경쟁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겠군.”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붉은 깃발이 펼쳐졌다. 마을 중앙의 전쟁신 신전에서 종이 울렸다. 전쟁신 카르도의 사제가 광장으로 나와 외쳤다.
“무허가 신전의 불법 기적이 적발되었다! 신격 회수 심판이 열릴 것이다!”
재하는 자신이 구한 아이를 돌아봤다. 릴리는 동생을 품에 안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재하가 말했다.
에반은 팔짱을 끼고 웃었다.
“책임? 신앙 포인트도 없는 신이 무슨 수로?”
재하는 먼지가 쌓인 제단을 바라봤다. 한 사람에게 믿음을 받고 한 사람의 열을 내릴 수 있었다. 분명 작았지만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자신에게는 기적이었다.
그때 신전 바닥에서 아주 낮은 소리가 들렸다.
[숨겨진 권능 활성화 조건 확인.]
[조건: 신도에게 아무런 보상을 요구하지 않은 첫 번째 기적.]
[권능명: 무상의 약속.]
재하의 눈이 커졌다.
[이 권능은 신앙 포인트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신이 거둔 강제 헌납을 무효화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천천히 밖을 바라봤다. 광장에서는 돈이 없는 사람들이 신전 앞에서 쫓겨나고 있었다.
에반도 그 문장을 본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잠깐, 그 권능은….”
“뭔데요?”
“천계에서 금지된 신의 권능이야.”
멀리서 전쟁신의 군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재하는 손바닥에 남은 약한 금빛을 바라봤다.
신도가 한 명뿐인 신에게, 천계 전체가 숨기려 했던 힘이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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