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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27화
PAYLUA ORIGINAL · 제27화

27화. 돌아오지 않은 서른네 명의 행방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74자

오프라인 책장
서른네 명이 사라진 길에는 이정표가 없었다. 윤재하는 그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제6지역에 온 뒤로 그는 이정표라는 것이 대부분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적은 주장에 가깝다는 것을 배웠다. 지도의 공백이 곧 빈 땅을 뜻하지도 않았다. “서쪽으로 갔다는 건 확실한 겁니까?” 세리아는 보급대 장부를 뒤집어 발급 번호를 확인했다. “당시 군단장의 원본입니다. 인장과 재료가 일치하고, 뒤쪽 장에는 같은 날 지급한 식량이 적혀 있습니다. 적어도 서쪽으로 가도록 인도했다는 부분은 믿을 만해요.” “서른네 명이 다 무사히 갔다는 뜻은 아니군요.” “맞습니다. 우리가 아는 건 마지막 확인 지점뿐입니다.” 헤이나는 노트에 그 말을 적었다. 할머니 이야기를 사실로 만들고 싶어 이곳까지 왔지만, 자기 바람을 확인된 기록처럼 적을 수는 없었다. 북문은 오래된 풍차 뒤에 있었다. 과거에는 짐승길이 이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키 큰 풀과 가시나무가 덮었다. 토마스가 보내 준 길 찾기 도구를 사용하자 반쯤 묻힌 도랑과 돌다리의 흔적이 드러났다. 릴리는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헤이나의 손에 생긴 작은 상처를 감쌌다. “괜찮아요.” 노인이 말했다. “작아도 상처는 상처예요.” “할머니한테 듣던 잔소리를 여기서 또 듣는군.” 둘이 웃는 동안 재하는 돌계단에 앉았다.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기록을 찾아주는 일이 왜 이렇게 고된 것인지 새삼 실감했다. 그때 누리가 길가의 오래된 나무패를 발견했다. [서쪽 피난길 이용 규칙] [1. 먼저 떠나는 사람은 뒤에 올 사람을 위해 위험을 표시한다.] [2. 돌아온 사람이 없더라도 수를 임의로 줄이지 않는다.] [3. 닫힌 문을 발견하면 안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묻는다.] “이 마을은 규칙이 참 많아요.” 재하가 말했다. “예전에는 규칙이 사람을 지키기 위해 쓰인 때도 있었으니까요.” 세리아가 말했다. 오솔길 한복판에는 쓰러진 나무가 가로놓여 있었다. 오래된 바람 피해인지 의도적으로 누가 베어 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네 사람은 함께 나무를 넘었다. 헤이나가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을 찧었지만 다행히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다. 릴리가 부축했고, 세리아는 노인의 보행 속도에 맞춰 길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나 때문에 늦어지는 것 같네요.” 헤이나가 말했다. “우리가 빠르게 갔다고 옛 기록이 먼저 열리는 건 아니잖아요.” 재하가 대답했다. 헤이나는 그 말에 잠깐 웃었다. “신님은 정말 시간이 많으시군요.” “예전에는 마감에 쫓겨 살았어요. 지금은 천계가 마감을 정해 주니 더 괴롭습니다.” 그는 손바닥의 안내창을 확인했다. 신격 유지 시간은 이번에는 줄어들지 않았다. 더 이상 일주일 안에 포인트를 모으지 못하면 사라지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날은 삼백 년 전 길을 걷는 일이 그때의 일주일보다 급해 보였다. 오솔길 중간에는 덩굴에 가려진 옛 물길이 있었다. 바닥에 쌓인 진흙을 헤집자 돌로 만든 작은 배수로가 나타났다. 누리는 마을의 기록에서 그 배수로를 찾았다. 주민들이 서쪽 숲의 습지를 피하려고 만들어 둔 것이었다. 피난민들이 떠날 때도 이 길을 썼을 가능성이 있었다. “천계에는 이 길도 없다고 되어 있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세리아가 지도를 펼쳤다. 공식 지도에는 나무와 절벽만 있었다. 배수로도, 서쪽 출입문도, 길을 표시한 돌도 없었다. “모두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있군요.” 그녀는 장부 옆에 지도를 따로 그렸다. 공식 지도 위에 없는 길을 억지로 덧쓰지 않고, 현장 측량이라는 제목으로 새 종이를 썼다. 두 기록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증거였다. 에반은 경사를 살폈다. “서른네 명이 이 길을 걸었으면 어린아이와 노인은 수레가 필요했을 거야.” “수레 세 대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재하가 말했다. “그렇다면 연결될 수 있지. 다만 남은 바퀴 자국이 삼백 년을 버텼을 리는 없어. 물건이 남아 있는지 봐야 해.” 헤이나는 작은 배수로를 한참 바라봤다. 오래전 사람들이 어디로 도망쳤는지를 숫자로만 읽었을 때보다, 발을 딛고 걸어 봤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 자신도 걸어가기 힘든 길을 아이와 짐을 안고 지나갔을 사람들이 있었다. 길 끝에는 절벽이 나타났다. 아래쪽으로 좁은 계곡이 이어졌는데, 절벽 면 한가운데 사람 키만 한 홈이 파여 있었다. 홈에 누리가 들고 온 첫 번째 열쇠를 대자 돌이 조용히 물러났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열쇠가 아니었다. 군단장이 남긴 ‘무명의 신이 건넨 첫 번째 열쇠’라는 문장이 빛으로 변해 홈에 들어갔다. “비밀번호가 문장이었어?” 에반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확히는, 그 말을 기억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 문장을 확인한 것입니다.” 누리가 답했다. 재하가 감탄했다. “남의 이름을 안 쓰고도 이렇게 문을 만들 수 있었군요.” “열리는 조건이 원본 기록에 남으므로 위조가 어렵습니다.” 돌문 너머에는 작은 동굴이 있었다. 바닥은 오래된 발자국 모양으로 패여 있었고, 벽에는 횃불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맨 안쪽에는 나무 상자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모두 피난길에 쓰였던 물건이었다. 말린 곡식이 들어 있던 주머니, 깨진 접시, 아이의 나무 장난감. 상자마다 개인의 물건임을 알리는 손글씨가 남아 있었다. “이건 유적이 아니라 대피소네요.” 릴리가 말했다. 헤이나는 작은 인형을 들여다봤다. 인형 등에는 바느질한 글씨가 있었다. ‘미엔의 딸 사라에게.’ 노인의 손이 떨렸다. “미엔. 저희 할머니 이름이에요.” 재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헤이나가 인형을 만질지 말지 직접 결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할머니가 남긴 물건이긴 해도, 그것이 곧 손녀가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헤이나는 인형을 제자리에 두고 말했다. “사진을 남길 수 있을까요? 원본은 이곳에 두고요.” 세리아가 공익 보존 기록에 따라 사적 유품의 촬영은 당사자 가족의 동의와 목적을 명시하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헤이나는 자기 동의서에 서명했다. 그 작은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동굴 벽에는 오래된 물자 분배표도 남아 있었다. 식량을 고르게 나눠 주기 위한 표였지만, 누가 몇 몫을 가져갔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물건이 부족했는지, 다음에 오는 사람에게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중심으로 기록했다. 재하는 무심코 물었다. “왜 개인별 지급 명단을 안 만들었을까요?” 누리가 답했다. “사람들이 이동 중에는 매번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날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뒤에 남는 양을 확인하는 것이 더 정확했습니다.” 릴리는 가방에서 남은 마른 과일을 꺼내 헤이나에게 건넸다. “지금도 비슷하게 하면 되겠네요.” 헤이나는 한 조각을 받았다. 에반도 먹으려 손을 뻗었지만 릴리가 눈짓했다. “나중에 일하는 사람들 몫도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일하는 사람인 나도 먹어야지.” “얼마나 일했는데요?” “말을 아주 많이 했어.” 재하가 웃음을 참았다. “그럼 물부터 마시세요.” 빈 동굴에 웃음소리가 잠깐 울렸다. 오래된 유적이 아니라 지금 사람들이 머무르는 대피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동굴 끝에는 두 번째 문이 있었다. 문에 적힌 문장은 의외로 짧았다. ‘이 뒤에 있는 기록은 살아남은 사람이 지키기로 했다.’ 재하가 문을 밀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릴리가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에반은 마법을 쓰려다 손을 내렸다. 권능으로 억지로 열어도 안쪽 기록의 보존을 보장할 수 없었다. “어떻게 열어야 하죠?” 재하가 물었다. 헤이나는 문 옆에 새겨진 표식을 발견했다. 서른네 개의 작은 홈이었다. 그중 일부에는 매듭 세 개가 겹친 형태가 새겨져 있었다. 헤이나가 목걸이를 꺼내 홈에 대자 돌문이 가볍게 떨렸다. [기억을 확인한 후손 1명] [전체 기록 공개 동의: 불가] [제한적 가족 기록 열람: 가능] “모두 열 수는 없군요.” 릴리가 말했다. “그게 맞는 것 같아요.” 헤이나가 대답했다. “제가 모르는 다른 집안의 사정을 혼자 공개할 수는 없으니까.” 허용된 작은 창이 열렸다. 안쪽에는 미엔의 손으로 쓴 편지 한 장이 있었다. ‘우리는 서쪽 동굴을 지나 강 너머로 갔다. 아이들이 자라기 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길이 닫혔다. 우리 서른네 사람 가운데 스물아홉은 다른 마을에 정착했다. 다섯 사람의 행방은 도중에 갈라져 알지 못한다. 모른다고 적어 두자. 모르는 이름에 죽었다는 도장을 찍지 말자.’ 헤이나는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마지막 줄을 읽을 때 손끝이 떨렸다. “서른네 명 전부가 사라진 게 아니었어요.” “적어도 스물아홉은 새로운 곳에 도착한 기록이 있네요.” 세리아가 말했다. “다만 나머지 다섯 명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담보청은 이 사람들 대부분이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몰랐겠군요.” 재하가 물었다. 에반이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겠지. 실종자로 묶어 두는 편이 기대 신앙을 계산하기 쉬웠으니까.” 누리가 기록 창 아래의 오래된 주석을 읽었다. ‘제6지역 주민의 생존과 이주는 해당자의 권리를 소멸시키지 않는다.’ 재하는 그 문장을 듣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권리가 마을 주소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 기록을 찾아오면 할수록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 놀랍도록 평범하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미엔의 편지를 읽은 뒤에도 헤이나는 곧장 문을 떠나지 않았다. 동굴 한쪽에 앉아 할머니의 이름을 몇 번이나 입속으로 되뇌었다. 재하는 조용히 곁에 앉았다. “제가 너무 늦게 온 걸까요?” 헤이나가 물었다. “무엇보다 늦었다는 뜻인가요?”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여길 찾았으면 함께 와 볼 수도 있었을 텐데요.” 재하는 바로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그때 직접 오고 싶어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마을을 떠난 사람에게 돌아오는 일은 그리움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일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오길 원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편지를 읽고 계신 건 헤이나 씨잖아요. 그건 또 다른 일 아닐까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할머니를 위해서만 온 건 아니에요. 제가 듣고 자란 이야기의 시작이 어디였는지 알고 싶었죠.” 그녀는 손에 쥔 목걸이를 보았다. 같은 매듭이 동굴 안쪽 문에 새겨져 있었다. 후손 한 사람이 모든 역사를 열 수 없게 만들어 둔 규칙을 헤이나는 오히려 안심하며 받아들였다. “제가 열 수 없는 기록이 있다는 게 좋은 일이네요.” “왜요?” 릴리가 물었다. “다른 집안에서 자기 기록을 열러 올 자리가 남아 있으니까요.” 세리아는 동굴에서 확인한 내용만 공적 보고서에 적었다. 서른네 명 중 스물아홉 명이 다른 마을로 도착한 기록이 있다는 사실, 다섯 명의 행방은 여전히 미확인이라는 사실. 후손에게 전달된 개인 편지의 전문은 헤이나의 동의가 없으므로 첨부하지 않았다. 에반은 숫자를 다시 보았다. 스물아홉과 다섯. 이전 담보청 장부에서는 모두 같은 ‘복귀 불확실’ 항목이었다. 삶의 행방이 달라졌어도 하나의 숫자로 고정해 놓은 것이었다. “장부에서 이 사람들 모두가 미회수 자산이야.” “그럼 이제부터 아니라고 따질 수 있겠네요.” 재하가 말했다. “다만 다섯 사람은 어떻게 처리하지?” “그대로 확인 중이라고 적어야죠. 행방이 밝혀질 때까지 그 이름으로 수익을 계산하는 건 막아야겠고요.” 누리는 동굴 벽에서 오래된 문구 하나를 읽었다. ‘찾지 못한 사람을 없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재하는 수첩의 맨 아래에 그 문장을 적었다. 자신이 신격을 잃을까 봐 두려웠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도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으면 없는 존재처럼 취급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동굴의 사람들은 삼백 년 전부터 그 생각에 저항하고 있었다. 돌문이 다시 닫히기 전, 작은 금속판 하나가 떨어졌다. 그 판에는 담보청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제6지역 원기록 정산 재개 요청] [상태: 승인 대기] [발신자: 서명권자] “이건 언제 온 겁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누리가 날짜를 확인했다. “오늘 아침입니다.” 재하는 숨을 삼켰다. 누군가 지금도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판의 맨 아래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승인 시 제6지역 신앙 산출량 두 배 적용] “남의 기억으로 돈을 벌더니 이제 생산량까지 늘리겠대요?” 재하가 말했다. 에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네가 이곳을 발견한 게 그들에게는 시장의 재개장 신호인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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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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