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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25화
PAYLUA ORIGINAL · 제25화

25화. 전쟁신의 군대가 지킨 사람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178자

오프라인 책장
카르도에게서 온 병사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는 구령을 외치듯 자기소개했다. “제17보급대 소속 마테오 하사입니다. 본 신전과의 연락은 우호적 공무 협조로 기록해 주십시오.” 윤재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전쟁신 쪽에서 이제 저희를 우호적으로 생각한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럼 왜 그런 문구를?” “상부에서 ‘적대적인 구출로 오해받지 않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아주 잘되고 있군요.” 마테오는 딱딱한 표정으로 낡은 나무 명패를 내밀었다. 손바닥만 한 명패에는 ‘제6지역, 서쪽 짐승길’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었다. 그 글씨를 쓰다듬던 노인은 마테오의 뒤에 서 있었다. 회색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할머니였다. “저는 헤이나라고 합니다.” 노인은 자기 이름을 말한 뒤 재하에게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대신 릴리의 손을 잡았다. “사라진 마을을 찾는다기에 왔어요. 제 할머니가 거기에서 태어났어요.” “직접 다녀오신 적은 있나요?” 릴리가 물었다. “없어요. 할머니는 그곳 이름을 말하지 않았거든요. 이름을 말하면 또 빼앗긴다고 했어요.” 재하는 노인이 가져온 작은 천주머니를 보았다. 안에는 낡은 목걸이와 편지 조각이 담겨 있었다. 재하가 손을 대려 하자 릴리가 살짝 눈짓했다.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보여 주셔도 괜찮습니까?” 헤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걸이는 마을 회관에서 보았던 천과 같은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세 가닥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교차하는 방식이었다. 편지에는 할머니가 마을을 떠나던 날에 적은 짧은 글이 남아 있었다. ‘강이 얼기 전에 아이들을 먼저 보내자. 이름이 적힌 명단은 우리 손으로 가져가자. 신전의 안전 보증서는 받아도 사람의 이름을 넘기지는 말자.’ “떠난 이유는요?” 세리아가 물었다. “식량이 끊겼대요. 마을의 수로를 지키던 돌이 어느 날부터 금이 갔고, 군량을 빌려주던 신전에서 지원을 중단했다고 해요. 대신 전원 보호 계약에 서명하면 식량과 기적을 다시 주겠다고 했대요.” 헤이나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오래전에 가족에게서 들은 이야기였으니 감정이 마르지 않을 만큼 여러 번 되풀이한 듯했다. “할머니는 서명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흩어졌죠. 다들 살아남긴 했지만 다시 모이지는 못했어요.”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군요.” 재하가 말했다. “몇 명인지는 몰라요. 그걸 모르는 게 우리 집안의 가장 오래된 숙제예요.” 헤이나가 편지를 접는 동안 재하는 그날의 일을 가족 역사로만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 삼백 년 전 마을을 비운 것은 한 번의 위협 때문이 아니었다. 식량 지원 중단, 수로 고장, 치료 기회 축소, 군 이동 제한이 차례로 닥쳤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주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떠났다. 어떤 집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보호 계약에 서명했고, 어떤 집은 끝까지 서명하지 않은 채 다르게 살 길을 찾았다. 어느 선택이 더 용감했는지 지금의 사람들이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서명을 안 했다고 하셨죠.” 릴리가 물었다. “네. 그렇지만 서명한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으셨어요. 식량이 없으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법이니까요.” 헤이나가 대답했다. 재하는 문득 릴리가 노아의 병 때문에 다른 신전을 찾아갔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도 그때 쉽게 말하지 못했다. 남의 선택을 보장한다는 신이 정작 누군가 떠나는 것을 견디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헤이나는 자기 이야기를 마친 뒤 곧장 재하를 향해 물었다. “그럼 신님은 우리의 이야기를 가지고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우선 기록의 출처와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다음에는 실제 관련자가 자신의 자료를 어떻게 쓸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요.” “그걸로 신도가 늘어날까요?” “모르겠습니다.” 헤이나가 웃었다. “솔직하네요.” “늘어난다고 약속하면 그게 더 사기겠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하에게 작은 조언을 했다. “우리 할머니는 누가 자기 이야기를 잘 써 주는 것보다, 틀리게 썼을 때 고칠 수 있는 걸 더 좋아하셨어요. 기록이 남는다고 다 좋은 건 아니거든요.” 재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열람뿐 아니라 정정 요청 방법도 필요.' 신전에서 새로 만드는 상담 창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었다. 여행용 가방을 열어 보자 우르센이 만들어 준 작은 나침반이 나왔다. 바늘은 북쪽이 아니라 강변 수로의 수위를 가리키는 장치였다. 헤이나는 그걸 보고 웃었다. “우리 집에도 비슷한 게 있었어요. 방향을 모를 때 길을 알려 주는 물건이 아니라, 물이 넘칠 때 집을 지키게 해 주는 물건이었죠.” 이곳 주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거대한 신의 이름보다, 자신의 집과 이웃이 안전한지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수단이었던 모양이었다. 마테오는 명패 뒷면의 작은 흠집을 가리켰다. 옛 군인들이 부대 물자를 검사할 때 남기던 흔적이라고 했다.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정식 인장처럼 쓰지는 않았지만, 원래 물건이 어디서 나왔는지 확인하는 데는 도움이 됐다. “이런 것까지 들고 오셨네요.” 재하가 말했다. “상부에서 필요 없는 물건이라며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재하는 작은 흠집을 보았다. 이름 없는 마을의 기록을 찾으러 온 날, 이런 사소한 흔적이 결국 가장 쓸모 있는 증거가 될지도 몰랐다. 카르도의 군기는 다리 앞에 세워져 있었다. 마테오는 부대장을 통해 구 병참로 기록을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삼백 년 전 병사들이 제6지역 사람들을 국경 밖으로 인도한 기록이 있었는데, 그 기록에서도 마을 이름은 지워져 있었다. “그런데 출발한 사람 수는 적혀 있습니다.” [피난 안내 인원: 117] [보호 중 이탈 또는 사망: 미확인] [도착 확인: 83] 재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른네 명의 기록은요?” 마테오는 고개를 떨궜다. “없습니다. 중간 보급 초소의 장부가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에반은 숫자를 보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이건 그냥 누락이 아니야. 계약 검증을 할 때 도착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을 미회수 신앙으로 분류했을 가능성이 있어.” “그게 무슨 뜻인데요?” 헤이나가 물었다.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면, 신전은 그 사람이 미래에 바칠 기도를 계속 계산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헤이나의 눈빛이 변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면서?” “예.” 에반이 낮게 답했다. “그래서는 안 됐습니다.” 재하는 마테오에게 감사 기록을 요청했다. 병사가 전쟁신의 명령으로 왔다고 해도 기록은 전쟁신의 소유일 수 있었다. 마테오는 정식 열람 신청서를 내면 부대 기록관의 승인을 받겠다고 했다. 누구나 마음대로 뒤져도 되는 문서는 아니었다. “카르도 신이 허락하실까요?” 릴리가 물었다. “허락하실 겁니다.” 마테오가 말했다. “다만 어떤 결론이 나오든 저희 군의 과거 책임도 함께 조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재하는 입을 다물었다. 적의 약점을 찾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쪽 기록까지 조사하라고 보냈다니. 전쟁신이 변했다고 말하기는 일렀지만,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이는 신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마을로 다시 들어간 사람은 헤이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었다. 마테오는 다리 앞에 남았다.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을 군 명령으로 들여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헤이나는 입장 질문을 받았다. [이곳에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당신의 소유라고 주장합니까?] “아뇨. 우리 할머니 이름도 제 것이 아니에요.” [기록을 읽을 때 원래의 뜻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제가 아는 만큼은 바꾸지 않을게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돌다리는 오래전부터 놓여 있었던 것처럼 단단히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을 본 헤이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물가의 낮은 돌담, 반쯤 쓰러진 배나무, 좁은 회관 앞에 매달린 종. 할머니가 밤마다 해 주던 말 속의 풍경이었다. “정말 있었구나.” 릴리가 곁에 섰다. “여기에서 나온 사람들에게는 계속 있었을 거예요.” 헤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관에 들어간 뒤에는 다로의 공개 기록을 읽었다. 자신의 할머니가 자주 언급했던 수로 관리자 이름이 있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그 글자를 짚었다. “할머니는 이 사람을 싫어했어요. 물을 나누는 날마다 말다툼을 했대요.” 재하가 놀라 물었다. “좋은 기억만 있는 게 아니었군요.” “마을이었으니까요. 사람이 사는 곳이 늘 아름답기만 하면 그건 마을이 아니라 전단지죠.” 에반이 소리 없이 웃었다. 재하는 뜻밖에 헤이나와 말이 통할 것 같았다. 회관 뒤편에는 주민들의 생활 도구가 보관된 작은 창고가 있었다. 헤이나는 오래된 수레바퀴를 보다가, 할머니가 자주 하던 말을 떠올렸다. 전쟁신이 누구를 지킨다고 약속했는지 몰라도, 자기 마을에서 아이들을 태워 보낸 수레가 몇 대였는지는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제가 그 말을 들을 때는 정말 지루했어요.” 헤이나가 말했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 수레바퀴 숫자에 집착하나 했죠.” 그녀가 손으로 작은 바퀴를 굴렸다. 나무는 삐걱였지만 중심축은 아직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숫자가 누가 피난길에 남았는지 확인하는 유일한 단서였어요.” 세리아는 창고 벽에서 수레 대여 기록을 찾았다. 피난 날 새벽 수레 열두 대가 출발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홉 대였다. 반납되지 않은 수레 세 대에는 별도의 주석이 남아 있었다. [사유: 인명 수송 계속 진행 중] [반납 의무: 확인하지 않음] 재하는 감탄했다. “사람을 먼저 살리느라 못 돌려준 수레에 연체료를 매기지 않았군요.” “우리 할머니가 좋아했을 규정이에요.” 헤이나가 말했다. 하지만 그 규정의 아래에는 누군가 나중에 추가한 붉은 문구가 있었다. [미회수 수레 및 탑승 인원에 대한 비용은 지역 신앙 보증 잔액으로 합산] 에반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원래는 사람에게 빚을 묻지 않는 기록이었는데, 나중에 그걸 담보 자산으로 바꿔 놨어.” “반납하지 못한 수레는 어디로 갔을까요?” 릴리가 물었다. “사람을 태우고 끝까지 달렸을지도 모르죠.” 재하가 답했다. “아니면 길에서 버려졌을 수도 있고요. 일단 기록을 찾읍시다.” 헤이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더라도 슬퍼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다만 모른다는 이유로 누군가 자기 가족을 빚쟁이로 만들었다는 사실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재하는 수레 대여 장부와 군단의 피난 인원 수를 나란히 놓았다. 수레 열두 대의 좌석 수는 대략 백여 명을 나눠 태울 수 있었다. 기록은 어렴풋이 맞아떨어졌지만, 누구를 어느 수레에 태웠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는 빈칸을 그대로 두었다. 이름을 찾기 위해 온 사람들이 성급한 추측으로 새 이름을 덧씌우면 안 됐다. 그날 오후, 세리아는 피난 기록을 공개하기 위한 공동 열람 회의를 제안했다. 헤이나 혼자 다른 모든 피난민을 대표할 수는 없었다. 후손이 확인되는 가구마다 기록 열람 동의 여부가 달라질 수 있었다. 일부는 가족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군 기록에 적힌 생존 확인 인원은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마을 이름부터 되찾으면 좋겠어요.” 헤이나가 말했다. “그 이름을 누가 결정했는지 확인하고요.” 재하가 답했다. “우리가 새로 지어 주는 건 아니잖아요.” 밤이 되자 마테오가 다시 연락을 보냈다. 카르도의 병영에서 구 병참로 장부에 보관되어 있던 마지막 운송 허가서가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오래된 허가서 끝에는 군단장의 서명과 함께 별도의 지시가 붙어 있었다. ‘사람의 이름을 명단에서 지우지 말 것. 상부가 요구하더라도 사망 확인 없는 사람을 사망으로 처리하지 말 것.’ 서명자는 카르도의 옛 제17군단장이었다. 사라진 장부의 보관 장소도 적혀 있었다. [중간 보급 초소, 제6지역 북문 밖] “거기면 우리가 지나왔던 숲이잖아요.” 릴리가 말했다. 에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데 그 숲에는 초소가 없었어.” 누리는 그 말을 듣고 회관의 지도를 펼쳤다. 북문 밖의 공간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재하가 이곳에 들어올 때 들었던 늦은 발소리 두 개가 다시 나타났다. [미도착 인원 기록 34건] [전송 대기: 완료되지 않은 귀환 보고] 헤이나는 가슴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기다리던 이들이 있었다고.” 재하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들이 찾는 것은 사라진 마을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누가 어디까지 걸어갔고, 누가 돌아오지 못했는지 알려 달라는 오래된 요청이었다. 그리고 숲 쪽에서 누군가 군화 끄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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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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