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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22화
PAYLUA ORIGINAL · 제22화

22화.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의 우편함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636자

오프라인 책장
종소리가 울린 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윤재하의 이름이 아니었다. 신도 수였다. [현재 등록 신도: 조회할 수 없음] [신앙 포인트: 조회할 수 없음] [관할 신전: 조회할 수 없음] 재하는 제6지역의 돌길 한가운데 서서 안내창을 쳐다봤다. 신격이 소멸했을 때도 보게 될 법한 문구였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거 제 통장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은데요.” 에반이 빈 마을을 훑어보았다. “네 통장은 안전할 거야. 여기서는 애초에 천계가 잔액을 읽지 못하는 거지.” “안전한 건지 잠긴 건지 어떻게 알아요?” “지금은 둘 다.” “도움 안 되는 대답이네요.” 릴리는 마을 중앙의 광장으로 걸어갔다. 연못은 마르지 않았고, 우물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누군가 어제까지 관리한 듯 돌 난간이 깨끗했다. 하지만 빨랫줄에는 바람만 걸려 있었다. 집마다 문이 닫혔고, 굴뚝에서 연기는 나지 않았다. 세리아는 돌담을 살피다가 낮게 말했다. “건물 노후 정도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집은 수십 년간 사람이 살지 않은 것 같고, 옆집은 닷새 전에 수리한 것처럼 보여요.” “시간이 다르게 흐르나?” 에반이 중얼거렸다. 누리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흐릅니다. 관리 기록이 반복될 뿐입니다.” 마을 입구에서 보이지 않던 발소리가 여전히 따라왔다. 재하가 세 걸음을 걸으면 한 박자 늦게 세 걸음이 울렸다. 그 소리는 낡은 우편함 앞에서 멈췄다. 우편함은 연두색이었다. 오래된 금속 위에 페인트를 몇 차례 덧칠한 흔적이 있었다. 덮개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받는 사람이 주소를 잊었더라도 배달합니다.] “세상에 이런 서비스도 있네요.” 에반은 잠시 웃더니 표정을 굳혔다. “마을 공동 우편함이야. 예전에는 이런 게 있었지. 신들이 간섭하지 않고 사람들이 서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곳.” 릴리가 덮개를 열었다. 안에는 편지가 수북했다. 모두 봉투 위에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주소란에는 같은 단어가 쓰여 있었다. ‘돌아오는 사람에게.’ 맨 위 봉투 하나에 재하의 손이 멈췄다. 편지가 어제 쓴 것처럼 깨끗했다. 그런데 우표에는 삼백 년 전 날짜가 찍혀 있었다. “열어 봐도 될까요?” “당신 앞으로 온 건 아니잖아요.” 릴리가 조용히 말했다. 재하는 손을 거뒀다. “맞아요. 제가 이런 기본적인 걸 가끔 까먹어요.” 세리아는 우편함 옆에 붙은 규정을 읽었다. 수취인이 없는 편지는 공동 우편관리자가 보관하고, 부재한 사람의 이름을 제삼자가 함부로 지우거나 열람할 수 없다는 문구였다. 그 아래의 가장 오래된 도장이 반쯤 깨져 있었다. [우편관리자 직무 위임: 보존소 기록 인형] 모두가 누리를 바라봤다. 누리는 잠깐 무표정하게 서 있다가 양팔을 펼쳤다. “제가 담당자입니다.” “아니, 아까부터 그걸 왜 말을 안 했어요?” 재하가 물었다. “제6지역에 실제로 들어오기 전에는 담당 권한이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뭐랄까, 서류가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누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뒤 우편함의 자물쇠를 열어 편지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수취인과 발신인의 이름이 일치하는 봉투, 전달 권한을 따로 남긴 봉투, 당사자가 없을 때 공익 열람을 허락한 봉투. 종이 인형의 손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재하는 눈앞의 마을이 조금씩 실제 장소처럼 느껴졌다. 첫 번째로 열 수 있는 편지는 공익 기록이었다. 마을 회관을 지키던 기록관리자 ‘다로’가 남겼다. ‘열세 번째 겨울. 강 위쪽 마을에서 곡식이 모자라다는 편지가 왔다. 우리 마을은 창고를 열기로 했다. 자기가 가진 것이 적더라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한 사람들 이름을 따로 적었다. 내놓지 않은 사람 이름은 적지 않았다. 이 방식이 서로 덜 부끄럽다.’ 재하는 짧은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삼백 년 전에 누군가 했던 고민이 지금 신전에서 하던 고민과 놀랍게 닮아 있었다. “무명의 신이 이런 규정을 만든 건가요?” “규정은 다로와 주민들이 만들었습니다.” 누리가 답했다. “무명의 신은 기록을 남기는 방식을 바꿀 권한이 없었습니다.” 편지함 안에는 여러 차례 배달을 시도했다는 표시가 있었다. 같은 편지에 각기 다른 날 찍힌 작은 붉은 점들. 재하는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마을이 비어 버린 뒤에도 편지를 배달했다는 뜻일까. 누리는 편지 묶음을 펼쳤다. “마을 사람들이 떠나기 전에는 이웃집에 전달하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가족이 집에 없으면 돌아올 때까지 보관했고, 전달하지 못한 이유도 적었습니다. 기록 보존소가 만들어진 뒤에는 그 습관을 이어받아 미배달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읽는 사람이 없는데 계속 배달한 겁니까?” “배달이 아니라 보존입니다. 전달될 가능성을 없애는 것과 아직 전달하지 못한 것은 다릅니다.” 재하는 봉투의 작은 점을 세었다. 어떤 편지는 스무 번 넘게 보관 위치가 확인됐고 어떤 편지는 딱 한 번만 확인됐다. 그것이 헛수고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언젠가 누군가 돌아왔을 때 자신에게 온 편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릴리는 글씨가 흐려진 봉투 옆에 낡은 나무표 하나를 발견했다. [수취인 사망 확인: 하지 못함] [주소 이전: 확인되지 않음] [대체 수취인: 지정되지 않음] “모르는 건 모른다고 쓰라는 말이 여기에도 있네요.” “그 규칙 때문에 일이 더뎠겠지요.” 누리가 말했다. “하지만 빨리 끝내기 위해 남의 이름을 지우면 되찾아야 할 일이 생깁니다.” 세리아는 기록 열람 목록에서 부재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표현을 수정했다. ‘영구 미배달’ 대신 ‘현재 미전달’이라고 적었다. 조그만 변경이었지만 릴리는 두 단어의 차이를 알 것 같았다. 누군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지우지 않은 셈이었다. 마을 회관 옆에는 구두 수선소가 있었다. 문을 열지는 않았다. 다만 창문에 붙은 주문서를 읽을 수 있었다. 신발 두 켤레의 수선을 맡긴 사람에게 아직 돌려주지 못했다는 기록이었다. 주문서에는 수선 대금이 남았지만, 맡긴 사람에게 사전 동의 없는 보관료는 청구하지 않겠다는 문구도 있었다. “여긴 가게도 계약을 이렇게 꼼꼼하게 썼어요?” 재하가 물었다. 에반이 답했다. “안 그러면 다툼이 생기거든. 마을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다투면서 배운 거겠지.”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가게의 수선 대금과 천계의 무한 채권이 같은 세상에 있었다. 그중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한 장부인지 이제는 분명했다. 두 번째 편지에는 전쟁이 시작된 계절이 적혀 있었다. 병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카르도의 전임 사제단이 젊은 주민들의 이름을 요구했다. 마을 회관은 지원자가 직접 이름을 제출하도록 했다. 그때부터 여섯 지역 가운데 이 마을은 ‘조용한 곳’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평범해 보이는데 왜 지워졌을까요?” 릴리가 물었다. 에반은 편지의 날짜를 세었다. “이때부터야. 미래 신앙을 담보로 계산한 첫 시범 사업이 시작된 게.” “그 사업에 이 마을이 포함됐습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반대로. 이 마을만 끝까지 거절했어.” 누리가 작은 종이 손바닥으로 세 번째 문서를 폈다. 이번에는 봉투에 붉은 표식이 있었다. [공익 공개 허가: 완전] 편지에는 여섯 지역 대표가 모여 작성한 계약 규칙이 들어 있었다. 다섯 지역은 대표 이름을 썼지만, 제6지역 사람들은 개인의 이름을 함부로 넘겨줄 수 없다며 마을 인장만 남겼다. 그 옆에 무명의 신이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이 마을은 특별해서가 아니라, 다른 마을도 이렇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하므로 기록한다.’ 재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야 이 마을을 봉인한 이유가 어렴풋이 보였다. 신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인 지역이 아니었다. 대신 누군가 신에게 싫다고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지역이었다. 광장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탁, 탁. 방앗간의 바퀴가 돌 때마다 마을 회관의 창문이 한 번씩 밝아졌다. 릴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안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누가 있어요.” 재하는 문을 열었다. 나무 탁자가 놓인 회관에는 의자가 스물네 개 있었다. 의자마다 앉은 사람은 없었지만, 벽에 걸린 유리판에는 사람들이 모여 말하는 장면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누군가 빵을 나눴고, 누군가는 수로 관리 순서를 놓고 말다툼했다. 그리고 매번 같은 장면에서 화면이 처음으로 돌아갔다. “기록 영상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잔향입니다.” 누리가 답했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남기겠다고 동의한 기억의 흔적입니다. 사람이나 영혼은 아닙니다.” 에반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유리판에 손끝이 닿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가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귀를 기울였다. ‘우리가 빌린 것은 강둑을 고칠 돌뿐이다. 서로를 믿는 마음은 담보로 잡히지 않는다.’ 다로의 말이었다. 재하는 회관의 한쪽 구석에서 숫자가 떠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공동 신뢰 적립: 3,618] [천계 신앙 담보청 자동 수취: 3,618] [지역 분배: 0] 그 숫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잔향이 재생될 때마다 조금씩 커졌다.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신앙이 생산되고 있었다. 지난 삼백 년 동안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도왔던 기록이, 누군가의 재산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이건 기도가 아닌데.” 릴리가 말했다. “맞아요.” 재하가 대답했다. “누군가를 믿겠다는 말이지, 신에게 무언가를 바치겠다는 말이 아니죠.” 세리아는 잔향의 표면에 새겨진 작은 계약 번호를 발견했다. 그 번호는 담보청 본부에서 제출한 무한 채권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계약번호 아래에 서명된 글씨가 보였다. [최초 집행 승인자: 원계약 서명권자] [현 소유자: 서명권자] 이름은 없었다. 누리가 회관을 둘러봤다. “여기에 사는 사람은 더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지막 약속을 반복해 들려주는 장치만 남았습니다. 그 장치가 외부 계약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재하는 회관의 빛나는 장면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빵을 건네고 있었다. 누가 나중에 그 장면을 팔아넘길지 알았더라면,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었을까. “반복을 멈추면 돈도 안 나오는 거잖아요.” 에반이 답했다. “대신 기록을 다시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어.” “그럼 기록부터 복사하면 되죠.” 세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임의 복사는 또 다른 소유권 침해일 수 있습니다.” 재하가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당연히 쉬운 문제는 아니겠죠.” 누리는 공익 열람이 가능한 기록을 따로 표시했다. 저장 매체의 보존 방식은 아직 조사해야 했고, 외부로 가져가는 일은 별도의 동의를 확인해야 했다. 할 일이 많았다. 지워진 마을에서 이름 하나 찾아오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름을 지우지 않을 권리를 되찾아야 하는 일이었다. 재하는 회관의 날짜표를 살폈다. 잔향이 재생될 때마다 달력의 한 칸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날의 오전과 오후가 반복됐다. 사람들은 그날의 안건을 이야기하고, 수로 보수에 필요한 돌을 계산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잔향은 어제의 일도 내일의 일도 모르는 듯했다.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온 걸 알 수 있을까요?” 릴리가 물었다. “이 기록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누리가 말했다. “특정 질문에 맞춰 장면을 찾아주는 기능은 있지만, 그것은 그 당시 남은 말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방금 누가 우릴 쳐다본 것처럼 보인 건요?” “다른 사람을 바라보던 움직임이 우연히 겹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릴리는 조금 서운해했다. 어쩌면 여기 있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왔다고 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재하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하지만 기록 속 사람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지금 살아서 생각하는 것은 달랐다. 그는 기록이 하는 말을 가능한 한 그대로 들어 보기로 했다. 세리아는 장치 주변에 붙은 공지문을 발견했다. 그 공지문에는 회관 공동 기록을 남길 때 사람들이 누구에게 무엇을 공개할지 결정했다고 적혀 있었다. 수로와 창고 운영 기록은 공개, 병력과 개인 편지는 당사자 또는 지정된 대리인만 열람 가능. 공개용 잔향에는 얼굴과 이름을 일부 남겼지만, 비공개용 장치에는 접근 제한이 있었다. “의미 있는 기록입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처음부터 전부 공유하려 했던 게 아니에요. 공개를 허락한 범위도 문서마다 달랐다는 증거죠.” 에반은 반대편 기둥에 새겨진 담보청 표식을 가리켰다. 공개용 회관 잔향뿐 아니라 비공개 보관소를 향해서도 검은 연결선이 뻗어 있었다. “실제 수익 수취 범위는 허락받은 공개 범위보다 넓어. 문제가 훨씬 크다는 뜻이지.” 재하는 재생 장치를 멈추려던 손을 내렸다. 사람들의 기억이 남긴 기록을 보존하는 일부터, 누가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까지 필요했다. 자신이 신이라고 해서 곧장 정답을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 회관의 뒤편 벽이 조용히 열렸다. 낡은 우편배달 가방을 멘 노인의 잔향이 나타났다. 다른 잔향과 달리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노인은 재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늦었군요.” 재하의 몸이 굳었다. “저한테 하시는 말씀입니까?” 노인은 봉투를 건네는 동작을 반복했다. 동시에 벽 안쪽의 오래된 우편 전달 장치가 작동하며 실제 봉투 하나를 밀어냈다. 재하는 그제야 잔향이 말을 알아들은 게 아니라 미리 남긴 배송 조건이 작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끝에 닿는 봉투만큼은 진짜였다. [수취인: 언젠가 이곳에 올, 이름을 돌려주려는 신] 봉투 뒷면에는 서명이 없었다.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우리는 떠나기 전에 문을 잠근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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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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