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의 공개 심리장은 지난번보다 의자가 많았다.
윤재하는 그 사실부터 확인했다. 자기 자리 앞에도 의자가 있었다. 그는 잠깐 감격할 뻔했다.
“이런 소소한 개선이 사람을 울립니다.”
에반이 옆에서 말했다.
“의자를 감동 요소로 잡는 신이 어디 있어.”
“제가 지난번에 세 시간 서 있었잖아요.”
이번 심리장에는 거대한 신상이 없었다. 대신 원형 탁자가 놓였고, 탁자 위에는 크기가 서로 다른 장부들이 쌓여 있었다. 카르도의 붉은 문서, 리아넬 신전의 은빛 치료 계약, 담보청의 검은 채권 장부, 그리고 누리가 가지고 온 얇은 공동 기록이었다.
가장 작은 종이가 제일 오래된 기록이었다.
심리를 맡은 세 명의 판정관은 각자 다른 신계 기관에서 파견됐다. 카르도는 참관인으로 참석했지만 심판권은 갖지 않았다. 세리아가 조사 과정의 이해관계 때문에 판정관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설명했다. 재하는 그 제도가 마음에 들었다. 완전하지 않아도, 심판관이 자기 사건을 판정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원채권 확인 심리를 시작합니다.”
가운데 판정관이 종을 울렸다.
“피신청 신격 윤재하. 귀하는 천계 신앙 담보청의 보증 자산을 임의로 해제하여 채권 회수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해제한 계약과 이유를 기록으로 제출했습니다.”
“담보청은 해당 계약이 적법하다고 주장합니다. 원채권 문서를 제출하십시오.”
미르켈이 검은 장부를 펼쳤다.
[채권 원금: 0]
[총 담보 기대 수익: 무한]
[기초 권원: 무명 신격 승계 계약]
관중석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판정관도 얼굴을 찌푸렸다.
“원금이 없는 대출이 어떻게 무한 채무가 되는 겁니까?”
“미래의 모든 신앙 관계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반 시설 사용료를 변동 이자로 책정한 것입니다.”
“이율은 누가 정했습니까?”
“담보청 표준 규정에 따라….”
“원금이 영인데 무엇의 이율입니까?”
미르켈은 처음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정해진 범위 안에서만 일해 왔기 때문에, 범위 밖의 질문은 대답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재하는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골랐다. 다 이긴 것처럼 굴지 않기로 했다. 원금이 영이라는 숫자만으로 모든 계약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누군가 기록 보관 비용을 부담했다면 그 비용은 정산할 필요가 있을 수 있었다.
“저희는 신전 시설을 유지한 비용이 있다면 조사하겠습니다. 다만 사람의 믿음을 본인 허락 없이 소유물로 삼은 조항은 다르게 보셔야 합니다.”
가운데 판정관이 누리를 불렀다. 종이 인형은 작아서 탁자 위에 올라가야 했다. 누리는 발밑을 정리한 뒤 정확한 목소리로 원계약을 읽었다.
“신앙은 한 사람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시작하며, 타인의 동의 없이 소유권을 이전할 수 없다.”
판정관이 물었다.
“이 원칙은 누가 정한 것입니까?”
“최초 계약에 참가한 여섯 지역 주민입니다.”
“신들은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대신해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에반의 손이 무릎 위에서 굳었다. 누리의 목소리에 그는 오래전에 만났던 무명의 신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우르센이 증인석에 섰다. 그는 판정관에게 고개를 숙이지도, 불손하게 굴지도 않았다. 자기 손으로 고친 강둑의 사진과 공공 기록을 내려놓았다.
“우리 마을은 신전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서로 믿는 건 사실입니다. 그 믿음으로 둑을 고쳤다고 해서, 왜 누군가 우리 둑을 압류하러 오는 겁니까?”
“신앙 계약의 보전 구조에 의한 것입니다.”
“그 계약에 우리 이름은 누가 써 넣었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리아넬 신전의 치료사가 나왔다. 그는 치료 기적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실제로 치료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 공급의 위험을 환자에게 숨긴 채 다른 신앙의 이용을 제한하는 조항은 불필요하다고 증언했다.
“저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 저희 신전을 찾아오는 일을 원합니다. 빚 때문에 다른 곳에 갈 수 없어서 찾아오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릴리는 노아의 진료 내역서를 들었다. 어떤 치료를 받았고 얼마를 냈으며, 어떤 계약에는 서명하지 않았는지 차분히 설명했다.
“저는 이 신님을 믿어요. 하지만 그 믿음으로 동생 치료를 담보 잡히고 싶지는 않아요.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재하는 그녀를 바라봤다. 처음 신전에서 지켜 주었던 소녀가 이제 신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대신, 신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반이 증인석에 섰다.
“신앙 담보 상품의 초안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재하는 에반이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조금 안심했다. 그는 자신이 넣었던 불이익 조항과 예측 수익 항목을 하나씩 설명했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에서는 자기 서명을 직접 가리켰다.
“저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계산이 틀리면,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도록 계약을 바꿨습니다. 제가 설계한 부분은 그겁니다.”
판정관이 차갑게 물었다.
“그래서 후회하십니까?”
“네. 하지만 후회했다고 기록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에반은 증언을 끝내며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
“피해와 회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데까지 협조하겠습니다. 제 책임도 함께 기록해 주십시오.”
판정관들이 장부를 대조하기 시작했다. 원계약과 담보청의 전자 기록 사이에는 이상한 공백이 있었다. 사람들의 이름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한꺼번에 검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 삭제는 누가 승인했습니까?”
미르켈은 입을 다물었다.
“서명권자가 승인했습니다.”
“서명권자의 이름은?”
“권한상 열람 불가입니다.”
“그 사람만은 책임을 묻지 말라는 겁니까?”
“저도 이름을 모릅니다.”
재하는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미르켈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가장 높은 자리의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조직이 모든 사람의 이름을 모으고 있었다.
판정관들은 증언을 중단하고 잠시 원계약의 진위를 다시 확인했다. 담보청 측은 오래된 문서는 위조될 수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누리는 스스로 문서의 봉인을 풀어 보였지만, 그건 보관소가 진짜라는 것만 증명할 뿐이었다.
세리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문서가 실제로 삼백여 년 전 기록인지 검증할 방법이 있습니다. 당시의 공동 수로 기록과 각 지역 지적 기록의 봉인 형식이 일치하는지 대조하면 됩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이미 비교용 표본을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유리포의 돌서가에서 받은 수로 장부를 펼쳤다.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두 기록의 가장자리에는 서로 다른 곳에서 찍었지만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작은 표식이 있었다. 마치 찢어진 지도의 양쪽 면처럼, 한쪽이 다른 쪽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카르도의 사제가 제출한 옛 병영 지적 장부도 그 표식과 이어졌다. 세리아는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기록까지 함께 제출했다. 전쟁신의 기록 역시 최초 계약의 한 부분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계약은 특정 신전의 선전물이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서로 경쟁하던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보관한 기록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미르켈은 반박하려 했지만 판정관은 손을 들었다. 적어도 계약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더 다툴 이유가 없었다.
이어서 방직촌의 안나가 증언석에 섰다. 그녀는 먼저 신성 계약을 맺을 당시의 사정을 설명했다. 동생을 먹여 살릴 돈이 없었고, 작업장에서는 선불금과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도움받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계약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저는 일을 하면 돈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기도하지 않으면 일을 못 하게 됐어요.”
“그때 항의하지 않았습니까?”
“항의했어요. 하지만 다들 처음부터 동의한 거라고만 했죠. 글씨를 읽을 줄 안다고 해서 계약이 바뀌는 걸 막을 수는 없었어요.”
그녀는 자신이 동의한 원금과 사전에 고지된 비용은 갚고 있다고 덧붙였다. 불합리한 계약을 해제했다고 해서 실제로 받은 돈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판정관은 그 부분을 별도로 기록하도록 했다.
재하는 그녀가 증언하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처음 무상의 약속이 발동했을 때는 매듭 하나를 풀기만 하면 악한 계약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은 책임을 정리하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당사자에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세리아가 자신의 감찰 기록을 제출했다. 군량 창고 화재 사건과 강제 봉헌 무효화 사건, 수로 개방 사건, 유리포의 압류 사건이 날짜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도 일부 잘못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관이 처음부터 정답을 알았다는 듯 꾸미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저는 법을 믿었습니다. 지금도 법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법을 지킨다는 말로 누군가에게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면, 그 규정의 정당성을 따져야 합니다. 이번 사건의 증인들이 한 일은 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슨 계약을 했는지 물은 것뿐입니다.”
한동안 심리장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재하는 세리아가 처음 신전에 왔을 때를 떠올렸다. 기록을 열면 자기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화를 냈던 조사관이었다. 이제 그녀는 책임을 피하려는 대신 책임의 범위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었다.
심리는 긴 휴정을 거쳤다. 판정관들은 천계 전체의 신앙 제도를 하루에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담보청은 여전히 많은 신전에 신성을 공급했고, 갑작스러운 중단은 병원과 수로와 병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재하는 그 점에 동의했다. 잘못된 계약을 바로잡는다고 해서 사람들의 오늘을 부숴서는 안 됐다.
마침내 결정이 내려졌다.
[1. 무명 신격 승계 계약에 의한 포괄 연대보증 집행 정지]
[2. 원계약 참가 지역 관련 신앙 기록의 임의 압류 금지]
[3. 기존 의료 및 공공 보호 공급 계약은 임시 유지]
[4. 담보청 원채권 산정 및 승인 경위에 대한 독립 감사 착수]
[5. 윤재하 신격에 대한 신성 거래 교란 혐의는 추가 조사 후 판단]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빼앗긴 기록 전부가 돌아온 것도 아니었고, 에반의 책임도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신도들의 신앙 관계를 가압류하겠다는 명령은 멈췄다.
재하는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결정을 읽었다.
“이번엔 진짜 의자에 앉아 봤네요.”
에반이 옆에서 낮게 웃었다.
“소감이 그거야?”
“서 있을 때보다 생각하기는 좋습니다.”
마을로 돌아오자 브렌이 제17보급대에서 돌아온 토마스와 함께 신전 앞에 서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조용히 웃었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둘은 같은 길 위에 서 있었다.
릴리와 안나는 기존 신앙 계약 설명회를 계속 열기로 했다. 사람들은 떠나기도 했고 새로 오기도 했다. 재하는 더 이상 하루 종일 신도 수만 바라보지 않았다.
에반이 새 간판을 가져왔다.
[무상의 신전]
[치료와 보호는 가능한 범위에서 제공합니다.]
[상담 및 계약 열람은 누구나 가능합니다.]
[신도 등록은 선택이며, 언제든 철회할 수 있습니다.]
재하가 마지막 줄을 두 번 읽었다.
“좋네요.”
“광고주 승인하신 겁니까?”
“이번에는요.”
그날 밤, 제단 밑에서 누리가 다시 올라왔다. 종이 인형은 무겁지도 않은 장부를 두 손으로 끌고 있었다.
“원계약 감사 절차가 개시되어 봉인이 하나 풀렸습니다.”
장부 안쪽에 작은 지도 하나가 나타났다. 여섯 지역 중 다섯 곳은 이름이 선명했지만, 마지막 마을은 여전히 먹칠되어 있었다.
“그 마을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누리는 잠시 망설였다.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폐허가 된 겁니까?”
“아닙니다. 그곳은 지금도 신앙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재하의 손끝이 굳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신앙이 나올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가 배운 규칙에서는 그랬다.
누리는 장부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소멸 처리된 전임 신격: 미확인]
[현재 활성 기록: 1건]
[기록 보유자: 최초 계약 서명권자]
그리고 아주 작은 문장이 아래에 떠올랐다.
‘그 신은 죽지 않았다. 누구의 이름도 빼앗지 않기 위해 자기 이름을 내어놓았을 뿐.’
재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에반. 당신이 만난 무명의 신 말인데.”
“왜?”
“그 사람, 혹시 아직 살아 있습니까?”
에반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서 농담이 사라졌다.
먼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종이 한 번 울렸다.
[누락된 제6지역: 이름 없는 마을]
[접근 허가 요청 수신]
[발신자: 무명의 신]
재하는 문서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빚 받으러 온 게 아니겠죠?”
누리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저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직접 물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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