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하 신전에 ‘불법 신성 거래 주의’라는 표지판이 붙은 다음 날, 신도들은 오히려 더 많이 찾아왔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화가 나 있었다는 점이었다.
“불법이라면서요? 우리 애가 여기서 치료받았는데 문제 생기는 거 아니에요?”
“신전이 문을 닫는답니까?”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빼앗는 거 아니오?”
재하는 신전 입구에 탁자를 놓고 하나씩 설명했다. 자신이 치료한 일과 제3자가 제공한 의료 서비스를 구분했고, 현재 신앙 관계가 법적으로 분쟁 중이라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여기서 도움받았다는 이유로 여러분이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닙니다. 다만 어떤 기관에서는 제 신격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노파 마르타가 물었다.
“그러면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하냐?”
“그건 제가 정할 일이 아니죠.”
“언제까지 그런 말만 할 거야.”
마르타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널 믿으려고 온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으러 온 거야.”
재하가 잠시 멈췄다. 그 말은 자신이 자꾸 놓치는 부분을 가리켰다. 선택할 권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실제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와 안전이 제공되어야 했다.
“오늘 저녁에 상황 설명회를 열겠습니다. 확인된 일과 모르는 일을 따로 적을게요. 질문도 적어 주세요.”
릴리가 그 말을 받아 칠판을 가져왔다. 신전 앞에는 금세 질문이 가득 붙었다.
‘우리 마을 수로는 계속 쓸 수 있나요?’
‘카르도 신전의 보호를 받으면 이곳에는 못 오나요?’
‘리아넬 신전에서 치료받아도 되나요?’
‘담보청이 우리 이름을 알고 있나요?’
마지막 질문을 본 재하의 손이 잠깐 멈췄다. 담보청은 어떤 사람의 간절한 기도까지 병에 담아 장부에 올려 놓았다. 그가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그들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해가 저물기 전, 붉은 깃발을 단 병사들이 길에 늘어섰다. 카르도 신전에서 나온 경비대였다. 선두에는 베르만 대신 새로 임명된 사제 라그온이 타고 있었다.
“윤재하 신격. 담보청의 협조 요청에 따라 귀 신전 주변 신성 시설을 봉쇄하겠습니다.”
재하가 물었다.
“시설만요, 아니면 사람 출입도요?”
“신성 거래를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무단 출입도 제한될 수 있습니다.”
“누구 집에 가는 길도 여기로 지나갑니다.”
라그온은 표정을 굳혔다.
“우리는 명령을 수행합니다.”
“명령서를 보여 주세요.”
에반은 옆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인생은 명령서 보여 달라는 말로 끝나겠어.”
라그온은 서류를 펼쳤다. 표지에는 ‘신성 시설’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대상 구역은 신전 담장 안쪽뿐이었다. 신전 밖 길을 봉쇄할 권한은 없었다.
“이 도로는 포함되지 않았네요.”
“치안상 필요하면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 판단은 누가 합니까?”
“현장 지휘관이.”
“그럼 지금 누가 위험에 처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세요.”
병사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라그온이 대답하기 전에 구름이 갈라졌다. 하늘에 거대한 갑옷의 형상이 떠올랐다. 전쟁신 카르도였다.
“라그온. 무기를 내려라.”
병사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카르도의 목소리는 바위가 구르는 것처럼 낮았다.
“나의 명령은 신성 시설의 안전한 봉인이었다. 민간의 길을 끊으라는 명령은 하지 않았다.”
라그온은 얼굴을 붉혔다.
“신이시여, 담보청 측 요청에는 사람의 접근을….”
“나는 담보청의 부하가 아니다.”
주변이 고요해졌다. 재하는 카르도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두렵고 위압적인 신이었다. 그는 자신과 생각이 같아서가 아니라, 자기 병사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금지하고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하가 말했다.
“착각하지 마라.”
카르도의 눈빛이 번뜩였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다. 내 병사들이 민간인의 길을 막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맙습니다.”
카르도가 잠깐 말을 잃었다. 그러고는 재하에게 한 장의 문서를 던졌다.
[제17보급대 귀환 보고]
[토마스 포함 생존 병사 19명 귀환 완료]
[미확인 인원 4명, 계속 조사 중]
재하의 표정이 환해졌다.
“브렌 씨에게 이 소식은….”
“이미 전달했다. 부디 내가 아닌 네가 그들을 살린 것처럼 떠들지 마라.”
“그럴 생각 없습니다.”
전쟁신이 사라지자 병사들은 신전 담장 안쪽의 창고만 봉인했다. 그들은 수로와 민가로 이어지는 길을 비워 두었다. 재하는 그 조치가 불완전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세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리아넬 신전의 의료 수레가 북쪽 길에서 멈췄다. 차량 바퀴에는 담보청의 검은 봉인이 감겨 있었다.
“공급 계약이 잠겼습니다!”
치료사가 외쳤다.
“우리는 환자를 보러 가야 합니다!”
라그온은 자기 병사들이 건드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봉인은 인간의 손으로 끊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에반이 차량 아래를 들여다봤다.
“담보청이 거래 보류를 보복으로 돌려 버렸군.”
재하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까지 자신을 불법이라 부르던 사람들이 이제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택은 단순했다. 본부 심리를 준비하느냐, 눈앞의 환자를 돕느냐.
그는 릴리에게 물었다.
“신전 설명회는 맡아 줄 수 있겠어요?”
“제 이야기만 할게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그게 제일 좋겠네요.”
세리아는 이미 의료 수레의 봉인을 조사하고 있었다.
“차를 열려면 담보청의 지시가 필요합니다.”
“그럼 지시를 요청합시다.”
“거절할 겁니다.”
“거절했다는 기록이라도 남겨야죠.”
재하는 편지를 썼다. 의료 수레를 막으면 병자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창고 봉쇄 명령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계약 당사자들이 동의했는지 차례로 물었다.
답장은 짧았다.
[담보청 본부 지시: 신앙 분쟁 해소 전 신규 집행 보류]
재하는 이마를 짚었다.
“아니, 치료 수레가 신규 계약은 아니잖아요.”
에반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맞아.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건 수레의 계약 번호를 기존 치료 계약으로 다시 분류하는 거야.”
그들은 치료사가 가져온 진료 접수증과 신성 조달 번호를 비교했다. 오래된 진료 계약에 연장된 예약이 신성 거래로 분류되면서 통째로 봉인된 것이었다. 세리아가 현장 조사 권한으로 오분류를 바로잡자 바퀴를 감싼 봉인이 풀렸다.
늦은 오후, 브렌이 수로 쪽에서 달려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두 손에는 접혀진 편지를 꽉 쥐고 있었다. 그는 재하를 보자마자 숨을 골랐다.
“토마스가 왔소.”
“지금요?”
“북쪽 초소에서 출발해 오늘 마을에 들어왔다오. 그런데 바로 이쪽으로 올 수가 없다고 하더군. 귀환 병사들은 아직 보호 신앙 계약을 정리해야 한대.”
세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전쟁신 측에서 귀환 명령을 내렸다면 귀가를 막을 권한은 없습니다. 다만 신앙 보호 계약의 전산 해지 절차가 남아 있을 수는 있어요.”
“또 계약입니까.”
브렌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죽었다고 들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기뻐하고 싶은데, 문턱마다 서류가 놓여 있었다.
재하는 잠시 망설였다.
“제가 대신 해지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겠네요.”
브렌은 놀라서 그를 보았다.
“왜요?”
“토마스 씨가 어떤 약속을 했는지 본인에게 들어야죠. 대신 어디에 문의해야 하는지는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병영을 찾아갔다. 토마스는 생각보다 말수가 적은 청년이었다. 군복의 소매가 닳아 있었고 눈 밑에는 잠을 못 잔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재하가 자기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아버지께서 기다리셨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한 일을 누가 다 아는 건 아닙니다. 저도 그곳에서 제가 옳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재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지금 다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부터 확인하세요.”
토마스는 병영 담당자에게 가져갈 서류를 물었다. 담당자는 보호 계약 기간이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계약을 자세히 살펴보니 남은 것은 전투 중 구조될 때 제공받은 기적에 대한 비용 정산뿐이었고, 복무를 강제할 근거는 없었다.
“그럼 집에 가도 되는 겁니까?”
토마스가 되묻자 담당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끄덕였다.
“미정산 비용은 별도로 청구합니다.”
“정확한 내역을 보내 주세요.”
토마스가 먼저 말했다. 재하는 그 말에 웃음이 났다. 도란과 릴리에게도 자꾸 명세서를 요구하는 습관이 옮은 것 같았다.
병영 밖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 섰다. 브렌은 아들을 한동안 만지지도 못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다시 사라질까 두려운 것 같았다. 토마스가 먼저 손을 뻗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그제야 브렌이 아들을 끌어안았다. 재하는 조용히 뒤돌아섰다. 기적보다 더 소중한 순간에 자기가 주인공처럼 서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이 리아넬 신전의 의료 수레 앞에는 사람들이 더 모여들었다. 차가 움직이지 않아 진료가 늦어진 환자들이었다. 치료사는 답답한 얼굴로 수레의 유리병을 살폈다.
“우리는 계약할 때 진료받기로 이미 약속한 사람이 있으면 우선 공급한다고 배웠어요.”
“그 규칙을 보여 주세요.”
세리아가 요청했다. 치료사는 책갈피가 달린 작은 규정집을 펼쳤다. 이전에 재하가 본 신성 거래 계약과 달리, 응급 공급 우선 조항은 앞부분에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계약 담당자가 빼먹은 건가요?”
“아마도요. 거래를 멈추라는 명령을 새로운 환자 계약과 이미 예약된 치료 계약에 똑같이 적용했으니까요.”
재하가 말했다.
“그럼 치료실도 마음대로 신성을 공급할 수 없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는 수레의 바퀴에 붙은 봉인을 보았다. 누가 아플지, 어떤 비용을 내야 할지는 사람이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공급할 힘이 부족하다면 누군가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그 결정이 투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이 왜 치료받지 못했는지도 모른 채 돌아가야 했다.
“치료사님, 환자분들께 지금 사정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다들 화내실 텐데요.”
“화내실 권리는 있죠.”
치료사는 잠깐 망설이다 밖으로 나갔다. 그는 치료가 지연된 이유를 숨기지 않고 설명했고, 상태가 급한 사람부터 마을 의사가 다시 살피도록 연결했다. 누군가는 화를 냈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무 이유도 모르고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라그온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평생 명령을 따르며 살았고, 군사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설명보다 속도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런데 설명 때문에 다소 늦어져도 오히려 사람들이 서로 돕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워졌다.
“신격께서는 왜 모든 사람에게 설명하려 합니까?”
그가 물었다.
“그냥 하라고 하면 더 빠를 텐데.”
재하가 대답했다.
“그냥 하라고 해도 되는 일은 많겠죠. 하지만 제가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고 싶지는 않아서요.”
라그온은 그 말을 한동안 곱씹었다. 그는 여전히 카르도의 사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음 명령서를 받으면 표지보다 안쪽을 한 번 더 살펴보게 될 것 같았다.
그날 밤 의료 수레는 늦게나마 환자들에게 향했다.
신전 설명회가 끝난 뒤 재하는 마당을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모두 기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가 믿는 다른 신전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재하는 그들에게 길을 알려 주었다.
한쪽에서 에반이 종이 묶음을 들고 왔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나쁜 것부터요.”
“담보청이 너를 원계약 심리 당사자가 아니라 신성 거래 교란 혐의의 피고로도 추가했어.”
“좋은 소식은?”
“심리가 공개로 전환됐어. 그리고 방청 신청자가 예상보다 많아.”
에반은 그 명단을 보며 잠깐 웃었다. 신도가 아닌 사람도 있었고, 얼마 전까지 재하를 싫어하던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의료 공급의 중단이 두려워 참석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이름이 담보로 거래되었는지 알고 싶어 참석했다.
“이 사람들은 널 구하러 오는 게 아니야.”
“알아요.”
“자기 일을 설명하려는 거지.”
“그게 더 좋습니다.”
재하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대신 화를 내 주는 일보다, 각자가 자기 문제를 직접 말하는 자리에서 무엇이 달라질지 궁금했다.
그가 내민 명단에는 유리포의 우르센, 방직촌의 안나, 귀환한 병사 토마스, 리아넬 신전의 이름 모를 치료사까지 적혀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서명자가 없었다.
[참석 요청: 계약에 이름을 빼앗긴 모든 사람]
재하는 그 문장을 바라보다 한참 후에 말했다.
“이번에도 의자는 모자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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