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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99화
PAYLUA ORIGINAL · 제199화

199화. 남을 권리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712자

오프라인 책장
윤재하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날, 가시골 신전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물론 정말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노아는 마당에서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었고, 에반은 물건을 전혀 팔지 않는 광고 문구를 만들겠다며 혼자 중얼거렸다. 마르타는 부엌에서 설탕을 빌려 간 사람을 찾았고, 모과는 새 근무표를 그리느라 분주했다. 다만 재하가 가끔 웃음을 멈추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면 주변 사람들도 잠시 말을 고르게 됐다. “돌아가실 수 있군요.” 릴리가 먼저 말했다. “예. 지구로요.” 그는 통지서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종이에는 48시간의 기한과 한 사람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과거에는 누군가 그의 구조 행동을 신격 수락 서명으로 바꿔 놓았다. 이제는 정말로 자기 손으로 선택해야 했다. “기쁘세요?” 재하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지구는 어두운 도로와 차가운 공기, 누군가 위험하다고 외치던 소리였다. 그 뒤로는 이 세계의 시간이 흘렀다. 지구에서 얼마나 많은 날이 지났는지, 돌아간다고 해서 자신이 알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돌아갈 길이 있다는 건 기쁜데, 돌아갔을 때 무엇이 남아 있을지는 무서워요.” 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이해했다. 그녀는 재하에게 어느 쪽이 옳은지 말하지 않았다. 처음 신도가 되었을 때 자신도 무엇이 옳은지 몰랐다. 다만 아이가 아팠고,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었다는 것을 기억할 뿐이었다. 재하는 귀가선으로 향했다. 열차는 이제 검은색이 아니었다. 낡은 녹을 완전히 지운 것은 아니지만, 창문은 다시 열렸고 객차마다 출발 시각과 목적지가 따로 표시됐다. 모든 좌석은 비어 있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떠나기로 정했고, 어떤 사람은 더 머물겠다는 선택을 했다. 원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가는데도 플랫폼은 이전보다 안정돼 보였다. 도르는 역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낡은 승차권과 작은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목적지를 정하셨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그래. 옛 강가에 가 보기로 했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수 있지만, 물소리는 남아 있을 테니.” “천 년이면 강도 변했을 겁니다.” “그래서 가 보고 싶네. 변한 걸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도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재하를 보았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서 오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신격을 내려놓는다고 내가 겪은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럼 다른 곳에 가셔도 되죠.” “이제야 그런 말을 듣는군.” 그가 웃었다. 재하는 눈물이 날 것 같아 괜히 승차권 가장자리만 만졌다. 전임 신이자 자신에게 오래된 문제를 남긴 사람. 어느새 그가 떠나는 것이 아쉬워질 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재하가 말했다. “나도 자네에게 신세 졌네.” “돌아가시면 설거지 없는 세상에서 사시길 바랍니다.” “그건 어디를 가도 어려울 걸세.” 도르는 마지막으로 신전 쪽을 바라봤다. 그가 돌아가더라도 가시골의 물은 흘러야 했다.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의 이름은 이제 도르 한 사람의 장부가 아니라 여러 주민의 교대표에 적혀 있었다. 도르는 그것을 보고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역에서는 모래가 새 안내문을 달고 있었다. 그의 퇴임 신청은 아직 최종 판정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소유 기관은 그를 초기화하거나 강제로 이동시키지 못하게 됐다. 모래는 기존 기록을 독립 보관소로 옮길지, 새 운행 계약을 체결할지 검토할 시간을 받았다. 그는 자기 모자를 고쳐 쓰며 말했다. “이제 승차권에 반드시 목적지를 적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여러 번 바꾸어도 됩니다.” “모래 씨는 어디 가고 싶어요?” 재하가 물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먼저 내 발로 플랫폼을 걸어 보려고요.” 그는 기록실 책상에서 나와 선로 끝까지 걸었다. 단지 몇 걸음이었지만, 발걸음마다 낡은 제어선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걸어 볼 수 있게 두었다. 카르도는 떠나는 열차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는 남쪽 보급로의 병사들에게 강제 동원 명령이 아니라 자발적 지원 명단을 받았다. 군이 해야 할 일은 위험을 막는 것이었고,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윤재하.” 그가 말했다. “자네가 지구로 가면 가시골은 누가 지키나?” “가시골 주민들이요.” 카르도가 잠시 생각했다. “맞는 말이군.” “전쟁신님도 언제든 들르시면 되죠.” “나는 당분간 수송 훈련을 계속할 생각이다.” “좋네요. 다만 사람한테 검 대신 삽을 빌려주는 건 어때요?” 카르도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삽은 이미 충분히 마련했다.” 재하는 웃었다. 몇 달 전 같았으면 전쟁신이 이런 대답을 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에반은 역 구석에서 이상한 전단을 나눠 주고 있었다. 거기에는 ‘귀가선 무료 상담’이라고 쓰여 있었다. 밑에는 작은 글씨로 ‘정확한 운임은 운영 기금에서 공개합니다. 무료란 상담에 돈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드디어 정직한 광고를 만들었군요.” 재하가 말했다. “지금까지 만든 것 중 가장 어렵습니다.” 에반이 대답했다. “문장을 길게 쓰면 오해가 생기고, 짧게 쓰면 숨긴 게 생기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이 물어볼 곳을 만들었습니다.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두고요.” 에반은 환급 기금의 진행 상황도 보여 주었다. 일부 피해자는 이미 돈을 돌려받았고, 어떤 사례는 아직 증빙을 찾고 있었다. 그는 그 미완료 건수를 전단에 적어 놓았다. 재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잘못을 없었던 일로 포장하지 않는 광고였다. 노아는 재하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불만을 숨기지 못했다. 신전 뒤쪽에 있는 물통을 발로 찼다가 릴리에게 꾸중을 들었다. 재하는 아이를 나무 그늘로 데려가 앉혔다. “화났어?” “신님이 가면 누가 저랑 종이배 만들어요?” “누나랑 만들 수도 있고, 모과 씨도 잘 만들던데.” “그건 다른 배예요.” 노아의 대답에 재하는 목이 메었다. 그에게는 수많은 사건이 지나갔지만,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함께 접은 배의 모양이었다. 자신이 떠나더라도 그런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그렇게 설명한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섭섭할 수 있어.” 재하가 말했다. “나도 널 못 보면 많이 섭섭할 거야.” “그럼 가지 마세요.” 재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 부탁이 자신의 선택을 대신하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전 도르가 누군가의 필요 때문에 신격을 내려놓지 못했던 일을 떠올렸다. “결정은 내가 해야 해. 네가 잘못해서 떠나는 것도 아니고, 네가 붙잡아서 남는 것도 아니야. 그래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노아는 고개를 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손이 재하의 소매를 잡았다. “그럼 오늘은 배 하나만 더 접어 주세요.” “그건 할 수 있지.” 둘은 작은 종이를 접었다. 노아는 배 밑면에 ‘돌아와도 좋아요’라고 썼다. 어디를 향한 말인지 묻지 않았다. 아이는 누군가 떠난 뒤에도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어 했다. 저녁에 릴리는 아이가 잠든 뒤 재하에게 말했다. “노아가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래도 신님을 붙잡을 사람으로 만들진 않을게요.” 재하는 고맙다고 말했다. 선택의 자유는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슬퍼하고 그리워할 수 있으면서도 상대의 발목을 묶지 않는 일이었다. 정오 무렵 재하는 혼자 승강장 끝에 섰다. 지구행 열차의 문은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는 낯익은 신호음이 들렸다. 지하철역 안내 방송과 비슷한 리듬이었다. 그 소리에 그는 한순간 퇴근길 사람들 사이로 돌아간 듯했다. 한국에서 그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위험을 보고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것이 다른 세계에서는 신격 수락으로 기록됐다. 잘못은 바로잡혔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만나게 된 사람들의 시간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재하는 창을 열었다. 귀가선은 돌아갈 권리를 보장한다. 다만 지구의 현재 상황을 자세히 알려면 당사자 정보를 함부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 실라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귀환했을 때의 신체 상태와 시간대 불일치 가능성, 그리고 원한다면 독립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정도였다. “돌아갈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군요.” 그가 혼잣말했다. 누군가 뒤에서 대답했다. “그건 어느 길이나 마찬가지일걸요.” 릴리였다. 그녀는 노아가 만든 종이배를 가져왔다. 배에는 이번에도 ‘필요하면 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신님, 저희는 지구가 어떤 곳인지 몰라요. 가시골은 잘 알지만요. 제가 바라는 건 신님이 어디 있든 자기 선택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돌아가면 서운하지 않겠어요?” “서운하죠. 그래도 그건 제가 감당할 마음이에요. 신님이 대신 갚아야 할 빚은 아니고요.” 재하는 한참 동안 종이배를 바라봤다. 그는 이 세계에 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제 그 말을 자기에게도 적용할 차례였다. 해가 기울자 귀가선의 안내가 시작됐다. 재하는 자기 승차권을 꺼냈다. 한쪽에는 지구, 다른 한쪽에는 가시골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세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의 운행은 한쪽으로만 향했다. 열차에 오르기 직전 재하는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상상을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졸고 있을 그에게 신이 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미리 알려 준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처음에는 믿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는 월급을 받을 수 있는지부터 물을 것 같았다. 신도 0명에 월급도 없다고 하면 분명 기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시골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야기에 등장하면 달라질지 몰랐다. 아픈 동생을 위해 도움을 구하던 릴리, 자신이 잘못 만들었던 규칙을 고치려고 애쓰는 악마, 검을 내려놓은 전쟁신, 강가로 돌아가고 싶었던 늙은 신. 그들에게도 자기 인생이 있었다. 재하가 떠난다고 모두 멈추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유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돌아갈지 말지에 대한 답은 제가 대신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탑승 의사를 직접 말씀해 주세요.” “지구에 갈 수 있는 길이 앞으로도 있습니까?” “현재 운영 원칙상 다음 회송을 다시 신청할 수 있어요. 다만 시간대와 도착 상태는 그때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의 선택이 미래의 결과까지 보장하지는 않아요.”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 좋은 거짓말이 아니어서 오히려 안심이 됐다. 그는 지금 떠나고 싶은 마음과 가시골에 남고 싶은 마음을 둘 다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하나를 없는 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시골에서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다. 수로 대체 장치의 마지막 시험, 릴리가 만들기 시작한 진료 연락망, 열차에서 돌아온 도르가 보낸 편지의 답장. 그 일을 모두 끝내야만 지구로 떠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재하는 지금 이 일상을 더 살아 보고 싶었다. 누군가 대신 시킨 일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게 된 일들이었다. 그는 동의란 위쪽의 작은 글씨를 읽었다. ‘탑승하지 않더라도 벌금이나 강제 승계는 발생하지 않음.’ 바로 이 문장 때문에 긴 싸움을 벌였다. 재하가 서명을 거절하거나 다음 날 생각을 바꿔도 어느 기관도 그의 삶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는 창밖의 기차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번 열차에는 타지 않겠습니다. 가시골에 남겠어요. 다만 영원히 남겠다고 맹세하는 건 아닙니다.” “그대로 기록하겠습니다.” 유나가 말했다. “그리고 지구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제가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하고 싶은데, 제가 직접 아는 사람에게 보낼 수 있는 안전한 경로가 있는지 나중에 문의할 수 있을까요?” “그런 경로가 실제로 확인되는지부터 조사해 볼 수 있어요. 상대가 연락을 원한다는 사실도 확인해야 하고요.” 재하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모든 관계를 당장 되찾지는 못해도, 그리워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다. 그가 서명하자 승차권에서 붉은 글씨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검은 글자로 짧은 문장이 남았다. [이번 운행: 탑승하지 않음] [신격 유지: 기존의 자발적 선택 계속] [향후 귀환 신청권: 유지] 재하는 승차권을 주머니에 넣었다. 출발 안내가 울리고 객차의 문이 닫혔다. 그는 열차에 오르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마음 한편이 아팠지만, 다른 한편은 조용히 놓였다. 처음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누구에게 붙잡히지도 않은 채 한곳에 남는 선택을 했다. 그는 오래된 승차권을 한 번 더 펼쳤다. 이번에는 다른 기관이 아니라 자신이 쓴 글씨가 분명히 남아 있었다. 가시골. 당분간은 여기서 살겠다는 뜻이었다. 지구행 열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차창 너머에서 도르가 손을 흔들었다. 돌아갈 곳을 스스로 고른 늙은 신은 더 이상 미응답 기도의 채무자가 아니었다. 재하는 그를 오래 바라보다 함께 손을 들었다. “잘 다녀오세요!” 멀어지는 열차의 종소리가 골짜기를 건넜다. 그 소리는 작별 인사 같기도 하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약속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인지 확실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릴리는 재하의 곁으로 와서 물었다. “이제 돌아가실까요?” 재하가 웃었다. “네. 내일은 진료소 창틀을 고쳐야 한대요.” “신님이 고치시는 건가요?” “하율 씨가 고치고 저는 공구를 전달하죠. 제 전문 분야입니다.” 둘은 역의 계단을 내려왔다. 그날 재하는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자신의 결정이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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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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