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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200화
PAYLUA ORIGINAL · 제200화

200화. 신도는 없어도 문은 열린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426자

오프라인 책장
가시골 신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물건은 축복받은 성수도, 신성한 부적도 아니었다. 수프였다. 마르타는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윤재하는 조금 섭섭했다. 자기가 엄연히 신인데 인기 투표에서 감자수프에게도 진 것이다. “마르타 씨, 제 기적도 나름 쓸 만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기적은 매일 마시면 배가 부르지 않잖아요.” “반박하기 어렵군요.” “그리고 수프는 설거지를 해야 먹을 수 있어요. 오늘 담당이 누구죠?” 재하는 말없이 앞치마를 둘렀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설거지 당번표는 대단히 강력했다. 귀가선의 마지막 심리가 열린 지 여섯 달이 지났다. 윤재하는 그날 지구행 열차를 타지 않았다. 그는 승차권에 ‘이번 운행은 탑승하지 않음’이라고 직접 적고, 가시골에 당분간 남겠다고 선택했다. 기한을 놓쳐 자동으로 신격에 묶이는 일이 없도록 실라는 그 선택의 효력을 명확히 기록했다. 재하에게는 언제든 다음 운행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가 남았다. 지구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구를 잊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가끔 옛 동네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누군가 자기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다만 지금 그는 가시골의 사람들과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 선택은 영원한 서약이 아니었다. 여섯 달 전의 자신이 정했고, 앞으로의 자신이 다시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전임 신 도르는 결국 옛 강가로 갔다. 강물은 기억과 달리 훨씬 넓어졌고, 나룻배가 있던 자리에는 낮은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신전을 세우지 않았다. 대신 작은 집을 얻어 아침마다 강을 걸었다. 때로는 가시골에 편지를 보냈다. 대부분 내용은 날씨와 강물의 색, 이웃에게서 배운 생선 요리법이었다. ‘여기선 아무도 나를 제17번 신격이라 부르지 않네. 어떤 할머니는 나를 그냥 느린 노인이라고 부르더군. 놀랍게도 마음에 든다네.’ 재하는 편지를 읽다가 웃었다. 도르가 원하던 삶이 어떤 거창한 이상향이 아니라 느리게 걸을 수 있는 강변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모래도 달라졌다. 그는 완전히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신격·인간·기록인의 법적 지위를 논의하는 독립 심의가 계속되는 동안, 자기 의사에 따라 일정한 시간만 귀가선의 안내를 맡기로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여행자들이 길을 물으면 대답하거나, 답하고 싶지 않으면 쉬었다. 모자를 벗은 날엔 누구도 그를 근무 태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오늘 열차는 시간표대로 출발합니까?” 재하가 역을 방문했을 때 물었다. “조금 늦습니다.” 모래가 말했다. “마지막 승객이 자기 목적지를 바꾸겠다고 해서요.” “그럼 또 장부를 고쳐야겠네요.” “네. 하지만 이젠 그 사람을 벌주지 않고 고칠 수 있습니다.” 모래는 기쁜 듯 모자를 벗어 흔들었다. 출발 전 승객들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는 일이 그의 새로운 업무가 됐다. 아직 서툰 부분은 있었지만, 서툰 것을 고칠 시간이 있었다. 도르가 강가로 떠난 뒤 첫 번째 큰비가 내렸을 때 주민들은 진짜로 시험대에 올랐다. 북쪽 교각의 관측 장비 하나가 멈췄고, 대체 인력으로 등록된 견습생은 가족의 병환 때문에 근무할 수 없었다. 그날만큼은 재하도 옛날처럼 전임 신을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율이 차분하게 말했다. “도르님께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는 있죠. 하지만 그분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로 돌아가선 안 됩니다.” 주민회는 즉시 임시 관측 조를 꾸렸다. 비를 맞으며 교각에 나간 사람은 신도를 대표하는 사제가 아니라 방앗간을 운영하던 아주머니와 수리 견습생 두 명이었다. 모두 전문 장비 사용법을 교육받았고, 위험 수위에 도달하면 접근하지 않고 대피하도록 했다. 한 사람의 무리한 용기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절차였다. 그들은 경보의 원인을 찾아냈다. 설비가 완전히 부서진 게 아니라 낙뢰 뒤의 접촉 불량이었다. 교체 부품이 도착할 때까지 다른 측정기와 육안 관측을 함께 사용했다. 장비가 멈춘 시간은 그대로 기록했고, 주민들에게 현재 경보의 한계를 공지했다. 재하는 도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낼까 고민하다가 편지를 다시 적었다. ‘이제 주민들이 관측을 직접 합니다. 당분간 수리할 게 많지만 배워 가고 있습니다.’ 답장은 며칠 뒤 왔다. ‘그렇다면 내 옛 신전이 드디어 자기 발로 서기 시작했군.’ 그 말을 듣고 재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만두는 사람이 있어도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지만, 필요하다는 이유로 상대를 붙잡지는 않는 방식이 가능했다. 가시골의 쉼터 역시 완벽하지 않았다. 북쪽 수로는 두 번 고장 났고, 인력이 모자라는 날에는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어떤 주민은 신격 권능을 더 많이 쓰자고 주장했고, 다른 주민은 장치를 인간 기술로 바꾸는 데 돈을 더 써야 한다고 했다. 회의는 자주 길어졌고, 가끔 서로 화가 나서 일찍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누가 화를 내고 떠났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식량 배급이나 치료 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회의에 남은 사람들은 그가 다음에 다시 와서 의견을 낼 자리를 비워 두었다. 릴리는 공식적인 성녀 대표직을 맡지 않았다. 대신 진료실과 구조 연락망을 함께 운영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응급 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신앙을 묻지 않았고, 때로는 신전에서 찬양하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두 일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 노아는 이제 달리기를 좋아했다. 한 번 열병을 앓았던 몸이 완전히 강철처럼 변한 건 아니어서 가끔 쉬어야 했지만, 그는 쉬어야 할 때 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어느 날 그는 재하에게 물었다. “신님, 제 첫 번째 기도를 기억해요?” “네가 어렸을 때라 내가 들은 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때 그냥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했거든요.” “그래.” “근데 요즘은 배가 고프면 마르타 아주머니한테 말해요.” 재하가 웃었다. “그게 더 빨리 해결될 때가 많지.” “그렇죠? 저도 그게 좋아요.” 아이의 말에 그는 오래전 자신이 처음 열어 봤던 신성 안내창을 떠올렸다. 등록 신도 0명, 포인트 0점, 기적 0회. 숫자로만 평가받던 존재에게 누군가의 배고픔을 먼저 묻는 생활은 놀라운 변화였다. 에반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이름은 ‘안 사셔도 되는 상점’이었다. 판매 상품은 구조 연락망 안내서, 계약서를 읽는 법을 설명한 소책자, 철도 시간표 등 실용적인 것들이었다. 무료 자료와 유료 자료의 차이를 크게 표시했고, 구매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길을 물을 수 있게 했다. “이름이 좀 이상한데요.” 재하가 말했다. “그게 매력입니다.” “매출은요?” “정직한 만큼 아주 천천히 늘고 있습니다.” 그는 웃었다. 하지만 환급 기금의 미완료 장부는 여전히 자기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는 과거를 한 번의 영웅적 희생으로 없앨 수 없었다. 지금도 피해자에게 자료를 요청받으면 제공해야 했고, 일부 사건에서는 법적 판단을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누군가 그가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재하는 조심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르도의 병사들은 이제 군용 훈련장에서 삽과 밧줄을 다루는 시간이 늘었다. 그는 여전히 전쟁신이었다. 전쟁을 기억하고, 필요할 때 힘으로 위험을 막아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강제 동원 장부를 검토하는 감사에도 협조했고, 병사들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임무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떤 병사는 군을 떠났고, 어떤 병사는 남았다. “이제 카르도 님은 무슨 신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전쟁신이다.” “여전히요?” “그 이름을 버리는 게 지난 일을 지우는 방법은 아니더군. 내 힘을 지금 무엇에 쓸지는 내가 정하겠다.” “그럼 구조신으로 겸업하실 수도 있겠네요.” “그런 부서가 생기면 먼저 모집 공고를 내게.” 재하는 배를 잡고 웃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자동 배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전쟁신의 농담이 된 날이었다. 천계 전체에서는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원점관리국의 과거 피해를 조사하는 절차는 이어졌고, 어느 신격이 자발적으로 맺은 계약인지 다투는 일도 남았다. 오래된 장부를 정정하다 보면 새로운 문제가 드러났다. 사람들에게 빼앗긴 시간은 서류를 고친다고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아무도 그 일을 완전히 해결했다고 거짓말하지 않았다. 새 안내판을 만드는 일을 두고도 주민회의는 한바탕 소란을 겪었다. 한 사람은 ‘신전’이라는 글자를 지우자고 했고, 다른 사람은 그 글자를 지우면 수백 년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재하는 둘 중 하나를 골라 주지 않았다. 대신 마르타가 제안했다. “건물의 이름을 두 개 쓰면 안 되나요? 오래전부터 여기서 기도한 사람도 있고, 밥 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게 간판은 ‘가시골 신전·마을 쉼터’가 됐다. 이름 아래에는 서로 다른 모임이 열리는 시간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적혔다. 어떤 사람이 찬양하러 왔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찬양을 강요하지 않았고, 조용히 쉬러 온 사람이 있다고 해서 노래하는 사람을 전부 쫓아내지도 않았다. 소음과 시간대를 조정하는 회의가 필요했다. 노아는 간판 맨 아래에 종이배 그림을 그리자고 했다. 모두가 동의했지만 에반은 살짝 아쉬워했다. 광고 문구를 넣을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건 브랜드 가치가 아주 큰 그림입니다.” 에반이 말했다. “가치를 계산하지 말아 주세요.” 릴리가 답했다. “아무도 계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최고의 브랜드군요.” 재하는 에반을 바라봤다. “말장난을 그만두면 정말 완벽할 텐데.” “그건 계약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웃었다. 건물의 이름을 두 개 적는 일은 쉬워 보였지만, 서로 다른 삶을 한 공간에 놓기 위해서는 계속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 어려움을 견딜 만큼 그들은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 가시골 신전의 문에는 새 안내판이 달렸다.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쉼터.’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 ‘거절하셔도 불이익은 없습니다.’ 재하는 안내판 앞에 서서 한참 웃었다. 신도가 한 명도 없던 첫날에는 거대한 교단을 세울 줄 알았다. 멋진 조각상, 기적을 기록한 벽화, 하늘까지 닿는 종탑. 그런데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은 고장 나면 고쳐야 하는 건물과, 쉬는 날을 챙겨 줘야 하는 사람들의 관계였다. “왜 웃으세요?” 릴리가 물었다. “이 신전, 처음엔 신도 모집이 목표였잖아요.” “그랬죠.” “그런데 이젠 아무도 신도 수를 세지 않네요.” “세지 않아도 누가 여기 있는지는 알잖아요.” 마침 노아가 달려와 재하의 팔을 끌었다. 동쪽 길목에서 처음 보는 여행자가 길을 잃고 서 있다는 것이다. 여행자는 지도를 들고 있었지만 글자가 지워져 있었다. 신전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신을 믿어야 입장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재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행자는 조금 머뭇거렸다. “잠깐 쉴 곳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신도 믿지 않아요.” 재하는 미소 지었다. “괜찮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거 안 묻습니다.” 여행자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재하는 문을 열었다. 수프 냄새가 났고, 마르타가 식탁을 닦고 있었다. 창가에는 도르가 보낸 강가 사진이 놓여 있었고, 귀가선 시간표가 벽에 붙어 있었다. 노아의 종이배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그 순간 오래된 신성 안내창이 마지막으로 열렸다. [등록 신도 수: 집계 기능 종료] [신격 유지: 당사자의 자발적 선택] [기도의 소유권: 등록하지 않음] [오늘의 도움 요청: 1건] 재하는 안내창을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도움 요청’이라는 항목 옆의 작은 글씨를 읽었다. [응답 여부: 확인 후 직접 선택] 그는 웃으며 창을 닫았다. 세상은 여전히 고장 나고, 기적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기도에 반드시 답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만은 알 것 같았다. “마르타 씨, 손님 한 분이요!” “수프는 두 그릇 남았어요!” “저도 한 그릇 주세요!” “신님은 아까 드셨잖아요!” 재하가 한숨을 쉬자 여행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재하도 따라 웃었다. 신으로서 체면을 잃는 일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 그는 종이배가 놓인 창가에 잠시 서서, 첫날 먼지투성이 신전 바닥에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떠올렸다. 신도가 하나도 없으면 무슨 신이란 말인가. 이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신도 수를 증명하지 않아도, 기적을 팔지 않아도,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면 자기 의사로 함께할 수 있는 신. 그리고 언젠가 신이 아니기로 선택해도, 지금 나눈 도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 윤재하는 마지막 그릇을 닦고 문을 활짝 열었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누구든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날 가시골에는 위대한 계시도, 천둥 같은 선포도 없었다. 작은 식탁에서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재하는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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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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