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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95화
PAYLUA ORIGINAL · 제195화

195화. 성녀라는 이름의 가격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78자

오프라인 책장
모래는 사표를 쓰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럴 종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귀가선 운행 기록인이 퇴임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담당 기관은 즉시 답장을 보냈다. 내용은 짧았다. [대상자는 인격을 가진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음] [퇴임 신청 권한 없음] [운영 자산의 유지 여부는 소유 기관이 결정함] 윤재하는 공문을 읽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자 ‘당신은 회사 프린터이므로 퇴사가 불가능합니다’라는 답이 온 셈이었다. “모래 씨는 스스로 왜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습니까?” 릴리가 물었다. 그들은 모래가 있는 승강장에 갔다. 모래는 여전히 낡은 모자를 쓰고 서 있었다. 그의 책상에는 접수된 퇴임 신청 건수가 정확한 순서로 정리돼 있었다. 수백 년 전의 종이와 방금 도착한 서류를 구분하는 일은 완벽했다. 다만 그 완벽함 때문에 아무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집으로 보내기 위해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모래가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떠나는 것을 막는 기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계속 일하면 내가 원래 지키려던 일을 해치는 겁니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으세요?” “그만둘 수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지부터 알고 싶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다음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야말로 사람이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에반은 모래의 모자를 보며 말했다. “모자를 벗어 보는 건 어떻습니까? 간혹 직업 정체성이 거기에서 시작되거든요.” 모래는 모자를 벗었다. 머리에 얽힌 검은 선들이 허공에 가늘게 떨렸다. 그중 몇 가닥은 옛 역에 연결돼 있었고, 다른 몇 가닥은 채권회수단의 장부로 이어졌다. 실라가 그 선을 살폈다. “이건 신성 장치의 제어선이기도 하지만 장기간의 대화 기록이기도 해요. 단순 기계라면 삭제해도 되는 명령까지 보존하고 있어요.” “삭제하지 말아 주세요.” 모래가 말했다. 그 말이 나오자 모두가 잠시 멈췄다. 모래의 업무 규정에는 자신에게 기록 보존을 요청할 수 있는 조항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기록을 지키고 싶어 했다. 재하는 그 한마디를 별도 신청으로 적자고 제안했다. 당장 인격이 있는지 판정하지 않아도, 본인이 삭제를 거부한 기록을 함부로 지우지 않는 것은 가능했다. 실라는 모래에게 동의 범위를 차근차근 읽어 줬다. 모래는 어떤 기록을 남기고, 어떤 부분은 외부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자기 목소리가 어떤 장부의 부품이 아니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정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신전 마당에서는 릴리에게도 새로운 일이 생겼다. 북쪽 해안의 작은 성당에서 사절이 도착했다. 그는 먼 길을 달려왔다는 표시로 옷자락에 흙과 눈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성녀 릴리 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릴리는 건조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를요?” “귀하께서는 최초의 신도가 되셨고, 많은 사건에서 신을 증언하셨습니다. 저희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신앙 대표직을 드리려고 합니다.” 재하가 놀라서 차를 흘렸다. 처음 신도를 만났을 때 릴리는 동생을 돌보는 데 온 힘을 쓰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구조 현장에 함께했는지 알았지만, 누군가 그 기록을 근거로 새 직책을 부여하려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표직을 맡으면 뭐가 달라집니까?” 릴리가 물었다. 사절은 두꺼운 서류를 펼쳤다. 각지의 신도 수를 보고받고, 후원금을 관리하며, 윤재하의 발언을 통일된 교리로 정리하는 일이었다. 마지막 장에는 신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말할 경우 신앙의 혼란을 막도록 조정하는 권한이 적혀 있었다. “그럼 제 말을 제가 아닌 누군가의 뜻으로 바꾸는 일이군요.” 사절이 당황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표직은 매우 영예롭습니다.” “영예로운지 아닌지는 제가 정할게요. 일단 맡지 않겠습니다.” 재하는 입을 열려다 닫았다. 릴리가 거절한 일에 자신이 허락하거나 반대할 자격은 없었다. 옆에 있던 노아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누나가 성녀 안 한대요. 그럼 우리 오늘도 같이 점심 먹죠?” “아마 그럴 거다.” “다행이다. 누나가 없으면 계란을 누가 잘 삶는지 모르겠거든요.” 릴리는 웃다가 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거절한 것은 도움을 주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 이름으로 선택할 수 없는 자리를 거절한 것이다. 북쪽 교단 사절은 그날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작은 여관을 얻고 다음 날 다시 릴리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화려한 직책 안내서 대신 교단의 진료 기록을 가져왔다. 먼 마을에 의사가 부족하니, 자신이 떠난 뒤에도 사람들이 가시골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했다. “대표직은 거절하셨으니 부탁드릴 수 없을까요?” 릴리는 기록을 살폈다. 몇몇 환자는 먼 거리를 이동하기 어렵고, 어떤 사람은 특정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료를 미뤘다는 표시가 있었다. 그녀는 그중 일부가 아직 당사자의 동의 없이 실명이 적힌 자료라는 점을 지적했다. “우선 이 명단부터 적절하게 다뤄 주세요. 지원을 받으려면 모든 사생활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사절은 당황했다. 그는 좋은 일을 하려면 자세한 정보가 필수라고 배워 왔다고 말했다. 릴리는 응급 진료에 필요한 정보와 교단이 신자를 관리하려는 정보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료를 위해 병력을 확인하는 것과 예배 참석 횟수를 기록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줄였다. 사절이 가져온 보고서를 고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릴리는 그 과정이 헛수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이 듣지 않기로 한 말까지 끝없이 모으면 결국 사람을 숫자로만 보게 된다. 그것이 오래전 천계에서 생긴 문제였다. “제게 이름을 빌리러 오지 마세요.” 릴리가 말했다.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정식으로 문의하시면 가능한 범위에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사절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그가 종교 활동을 계속하더라도 진료에는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릴리는 대표직 제안서를 다시 받지 않았다. 이날 오후 릴리는 가시골의 작은 진료실로 향했다. 노아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가 넘어져 팔을 다쳤다. 부목을 대는 것은 의술을 배운 사람의 몫이었고, 릴리는 치료사가 검사하는 동안 아이의 손을 잡아 줬다. 그 짧은 시간에 아이는 자신이 아픈 이유를 말했고, 겁먹은 어머니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성녀라면서 기적은 못 써요?” 아이가 물었다. “난 신이 아니거든.” 릴리가 대답했다. “그럼 왜 여기 있어요?” “네가 혼자 무섭지 않게 해 주려고.”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얌전히 앉았다. 릴리는 자신이 맡을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기도를 관리하지 않고도, 그 사람이 말을 끝낼 때까지 옆에 있을 수 있었다. 진료실에는 또 다른 환자가 있었다. 발목을 다친 노인이 약값을 내지 못하자 자꾸 미안하다고 말했다. 릴리는 재고 장부를 확인했다. 약품이 모자라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진료비가 없다는 이유로 당장 필요한 처치를 중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후원 약품을 먼저 쓰고, 다음 구매 계획을 주민회의에 보고하기로 했다. “그냥 기적 한 번 쓰면 안 되나요?” 노인이 물었다. 릴리는 잠깐 망설였다. 그녀는 재하에게 연락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의 능력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특정 사람에게 기적을 약속하면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었다. “가능한지 문의해 볼 순 있어요.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치료부터 하겠습니다.” 담당 치료사는 발목을 고정하고 충분히 쉬는 방법을 설명했다. 노인은 다음 주에 다시 오기로 했다. 릴리는 재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한 사람에게 있는 자원을 모두 쓰지 않아도 해결되는 일이 있었다. 그런 구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기뻤다. 진료실 밖에서 노아가 묻던 말이 떠올랐다. 왜 신이 아닌데 사람을 돕느냐고. 어쩌면 신과 인간을 구별하는 것보다 중요한 질문은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일 수 있었다. 릴리는 저녁 근무표를 확인하다 자기가 휴식 시간 없이 세 사람의 상담을 연속으로 맡게 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수정 요청을 남기고 잠깐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이 쉬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만 쉬지 않는다면,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또 하나의 강제가 될 것이다. 마당의 햇빛 아래에서 차를 한 잔 마시자 비로소 피곤함이 느껴졌다. 진료가 끝난 뒤 재하가 찾아왔다. 그는 북쪽 교단이 다시 편지를 보내면 공동 회신망으로 전달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제가 요청할 때만 하세요.” 릴리가 말했다. “맞다. 미안해요.” “신님은 저한테 도움을 주신 분이지만, 제 인생을 대신 결정하시는 분은 아니잖아요.” “제가 가끔 잊습니다.” “그래서 알려 드리는 거예요.” 둘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노아가 낡은 종이배에 진료실 이름을 적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열병으로 거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날 릴리가 얻은 신앙 포인트는 재하의 손끝에서 기적으로 쓰였다. 하지만 그 뒤의 수많은 날을 살아가는 일은 어느 한 번의 기적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릴리는 작은 장부를 꺼냈다. 신전의 병자 명단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과 실제 가능한 일, 쉬는 날을 적은 장부였다. 가시골 주민들은 신앙 여부와 상관없이 필요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릴리는 그 창구를 앞으로 맡고 싶다고 말했다. “저 혼자 모든 요청을 받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거죠.” 재하가 미소 지었다. “그럼 근무표를 같이 만들죠. 휴일도 넣고요.” “그걸 신님이 결정하면 안 되죠.” “아, 또.” 릴리는 웃었다. 재하도 웃었다. 서로의 잘못된 습관을 조용히 지적해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오래 이어질 수 있었다. 밤이 되자 귀가선의 모래가 또 하나의 기록을 공개했다. 그 안에는 과거 그의 운영 기록이 매번 수정될 때마다 ‘운행 효율 증가’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출발 취소된 승객의 수는 증가하고 있었고, 어떤 개정도 그 숫자를 낮추려 하지 않았다. “저는 사람들을 돌아가게 한 기록이 있습니다.” 모래가 말했다. “그 일을 다시 하고 싶습니다. 그게 퇴임일지 새로운 운행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인지 선택할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유나는 그 말을 그대로 적었다. 짧은 문장 하나라도 말한 사람이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신이든 인간이든 기록인이든 다르지 않았다. 저녁 식탁에서 재하는 처음 릴리를 만났던 날을 이야기했다. 그때 자신은 신도로 등록할 사람이 급해서 폐허 신전 앞에 안내판이라도 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픈 아이를 안고 온 릴리 앞에서는 아무 광고 문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숨쉬기 편한 자리를 찾고 물을 데워 줬다. “그때 제가 신님을 믿게 된 건 약속 때문이 아니었어요.” 릴리가 말했다. “약속하실 수 없는 걸 약속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죠.” 에반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케팅 교본의 첫 장을 찢어야겠군요.” “아뇨. 오히려 첫 장에 적으세요. 못 할 일은 할 수 있다고 말하지 말 것.” 노아는 그 말을 공책에 적었다. 다음 날 친구에게 설명하려는 듯 글씨를 몇 번 고쳤다. 재하는 아이가 자기 말을 기록하는 게 조금 걱정돼, 이것은 절대적인 신탁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경험이라고 덧붙였다. “알아요.” 노아가 말했다. “틀리면 또 고치면 되잖아요.” 재하는 환하게 웃었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완벽한 교리가 아니라 대화를 고칠 수 있는 관계였다. 그때 릴리에게 북쪽 교단에서 보낸 두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영예로운 직책에 대한 권유가 아니었다. 교단이 그녀의 이름을 사용해 이미 후원금을 모았다는 고백과 함께, 회계 장부를 정정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릴리의 표정이 굳었다. 자신은 그 직책을 맡은 적도 없고, 후원금을 받겠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녀를 ‘첫 신도의 이름’으로 내세워 돈을 모으고 있었다. 재하가 물었다. “같이 확인할까요?” 릴리는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네. 제가 직접 물어볼게요. 제 이름으로 무엇을 약속했는지부터요.” 그녀는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신의 이름으로 시작된 사건이, 이제 한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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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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