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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94화
PAYLUA ORIGINAL · 제194화

194화. 떠나는 신의 인수인계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37자

오프라인 책장
릴리가 새벽에 신전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빚 독촉장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붉은 종이가 꽂혀 있었다. 종이 끝은 지붕보다 높았고, 글씨는 대문짝만 했다. [신격 퇴임 채무에 대한 최종 통지] [미응답 요청 전량 즉시 대체 필요] [지정 대리인: 윤재하] “이렇게 크게 써 놓으면 효력이 세진대요?” 노아가 물었다. “아니.” 릴리가 답했다. “그냥 읽기 불편해질 뿐이야.” 재하는 아침 식사 전에 거대한 고지서를 떼어 냈다. 손이 닿자 종이는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었다. 에반은 그걸 보고 흥분했다. “이 기술을 광고판에 쓰면—” “쓰지 마.” 재하와 릴리가 동시에 말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표정으로 했어.” 채권회수단이 선택한 대리인은 재하였다. 그는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존 원점관리국의 독점 권한이 일부 제한되자, 귀가선 정산소가 비슷한 관행을 자기 양식에 남겨 놓은 탓이었다. 여러 기관이 실수라고 부르던 일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과정은 이렇게 사소한 칸에서 시작됐다. 세리아는 임시 효력 정지 신청서를 준비했고, 유나는 신청서의 수신 범위를 점검했다. 재하가 자신의 이의만으로 다른 1,308명의 신청자 문제까지 한꺼번에 결정하지 못하도록 따로 접수했다. 빨리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른 이의 의사를 생략하는 이유가 되면 안 됐다. 그사이 해안의 리마가 연락했다. “어제 말씀하신 시험 운행은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떠나면 마을에서 파도가 높아질 때마다 누구를 먼저 부를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건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정해야죠.” 재하가 답했다. “그래서 모임을 잡았는데, 다들 제게 회의를 주재해 달래요.” “떠나는 사람한테 회의를 맡기면 어떡해요.” “저도 그 말 했어요.” 리마는 웃었지만 눈에는 피로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다음 도움을 요구하는 가장 쉬운 근거가 되어 버리는 것. 재하는 자기 첫 신도 릴리에게도 그와 비슷한 부담을 준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해안 마을의 주민회의에는 재하와 릴리만 참석했다. 리마는 앞줄이 아니라 다른 주민들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어부들이 선장을 맡는 조, 날씨 관측을 담당할 조, 폭풍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정중히 요청하는 담당자를 정했다. 어느 조도 평생 의무는 아니었고, 교대와 휴식에 관한 규칙이 붙었다. “저희 중엔 리마님을 계속 섬기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한 어부가 말했다. “그것까지 하지 말라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릴리는 고개를 저었다. “누구를 믿을지는 여러분이 정할 일이에요. 다만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몫까지 결정하는 건 다릅니다.” 그 말에 회의장은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한 노인은 신전 헌납을 없애면 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젊은 어부는 헌납하지 않아도 항구 경보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러 시간 동안 소리를 높이고, 다시 물을 마시고, 필요한 일을 적었다. 결국 그들은 신전의 자발적인 행사와 해안 경비 운영을 구분하기로 했다. 경보를 울리는 비용은 마을 공동 기금에서 공개적으로 지출하고, 리마가 원하는 경우 맡을 역할과 시간을 별도 계약으로 정했다. 어부들이 원한다면 감사 예배를 드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다에서 구조 요청을 보낼 권리와는 상관없게 했다. 회의가 끝난 뒤 리마는 작은 노트를 꺼냈다. 표지에는 ‘내 집의 창문’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직접 깎은 창틀의 모양을 보여 주었다. 창문 셋을 만든 뒤에는 지붕의 색을 고를 생각이라고 했다. “신의 일을 그만두고 목수가 되는 건 너무 작은 선택일까요?” 리마가 물었다. “지붕은 작지 않습니다.” 재하가 말했다. “새면 밤새 잠을 못 자거든요.” 리마가 웃었다. 그는 그녀에게 신격으로서 받은 감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은 새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 말은 설교처럼 들리지 않았다. 서로 지붕이 새던 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화에 가까웠다. 리마의 마을은 회의가 끝난 뒤 실제로 첫 근무표를 만들었다. 문제는 서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 새벽에 관측 담당자가 늦잠을 잔 것이다. 관측 탑의 종이 정해진 시각에 울리지 않았고, 주민들은 리마에게 당장 돌아오라고 연락했다. 리마는 눈앞의 창틀을 내려놓고 물었다. “긴급 상황입니까, 아니면 예정된 관측이 늦어진 겁니까?” “두 번째입니다.” 마을 대표가 답했다. “그럼 대체 담당자를 부르세요. 저는 오늘 약속된 시간이 아닙니다.” 전화가 끊기자 그녀의 손이 떨렸다. 예전에는 이런 전화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하늘로 날아갔다. 오늘은 그냥 기다렸다. 십 분 뒤 예비 담당자가 관측 탑에 올라갔다는 연락이 왔다. 리마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재하가 말했다. “불편하시죠?” “많이요. 누군가 저를 필요로 하는데 제가 안 움직이는 건 처음이에요.” “그렇다고 도움을 버린 건 아니죠. 다른 사람이 도울 자리가 생겼잖아요.” 리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실패가 있었지만 마을은 대체 절차를 따라 움직였다. 이후 관측 탑에는 연락을 놓쳤을 때 누구를 부를지 크게 적었다. 첫 근무표가 실제로 작동한 건 바로 그 실패 덕분이었다. 릴리는 그 기록을 보관하자고 했다. 완벽하게 성공한 시험의 홍보 영상보다, 누군가 빠졌을 때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남기는 편이 다른 마을에도 유용할 수 있었다. 리마는 자신이 늦잠을 잔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농담했다. 주민들 역시 담당자의 이름이 공개되는 방식에 동의하고, 필요 없는 사생활은 장부에서 가렸다. 가시골로 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임시 수송차에 올랐다. 차에는 기술자 하율이 실을 부품, 독립 회신망으로 전송할 경보 기록, 주민들이 보내는 작은 선물들이 함께 실려 있었다. 갑자기 바퀴가 웅덩이에 빠졌고 모두 내려 밀어야 했다. 재하는 나름 신력을 써 보려 했으나 진흙 위의 수레에는 효과가 없었다. “이럴 때 기적 한 번 쓰면 편할 텐데.” 그는 투덜댔다. “기적이 없어도 다 같이 밀면 되잖아요.” 릴리가 말했다. “그걸 알지만 힘들잖아요.” “신님도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레를 밀었다. 지나가는 사람 셋이 합류하자 바퀴가 빠져나왔다. 그들은 고맙다는 말을 듣고도 누구의 신도가 되지 않았다. 대신 다음 고갯길에서 다른 수레를 돕겠다며 떠났다. 가시골에 도착한 뒤 재하는 지원자 훈련을 참관했다. 하율은 신전 북쪽의 관측탑에서 경보 표지 네 가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초록색은 정상, 노란색은 점검 필요, 붉은색은 즉시 연락, 흰색은 장치가 고장 나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흰색이 제일 위험하겠네요.” 한 견습생이 말했다. “맞아요. 사람은 모른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 가장 무모해지니까요.”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신이 됐던 첫날의 안내창 역시 신앙 포인트는 알려 줬지만, 무엇을 모르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지금은 빈칸을 있는 그대로 남길 수 있었다. 훈련에서는 일부러 장치 하나를 껐다. 관측 담당자는 즉시 확인 전화를 걸고, 민간 구조팀에 현재 알 수 없는 범위를 설명했다. 신성 권능으로 경보를 덮어씌우려던 재하의 손을 하율이 잡았다. “오늘은 실제 위기가 아니라 훈련입니다. 정확히 모를 때 어떤 절차로 움직이는지 배워야죠.” 재하는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그는 모든 일을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을 떠올렸다. 자기 손을 놓는 연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훈련이었다. 훈련이 끝난 뒤 견습생 하나가 일주일만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모과는 신청서에 그 기간을 그대로 적었다. 일주일 뒤 더 할지 묻겠다는 조건도 붙였다. 일을 시작하면서 끝나는 때를 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얼굴을 조금 밝게 만들었다. 그날 오후 귀가선 역사에는 다툼이 벌어졌다. 퇴임 신청자 중 하나인 작은 난로신 누베가 자신의 신성 출력을 줄이자 인근 구호소의 난방 계기판이 흔들린 것이다. 회수단은 즉시 그를 계약 위반자로 지목했다. “제가 쉬는 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누베가 말했다. “구호소에도 대체 연료를 공급하기로 한 걸로 아는데요.” 구호소 담당자는 공급 차량이 폭설에 막혔다고 대답했다. 누베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동상 환자가 생기면 어쩌느냐고 묻는 목소리였다. 카르도가 나섰다. 그는 군용 보급차를 출동시켜 연료를 전달하겠다고 했다. 다만 전쟁신의 군대를 환영하지 않는 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출동 전에 구호소 책임자에게 민간 호송이 가능한지 확인했다. 구호소는 군인이 건물 안에 들어오지 않는 조건으로 수송 지원을 받아들였다. 누베는 연료가 도착할 때까지 잠깐만 신성 출력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회수단은 그 모습을 새로운 계약 수락이라고 기록하려 했다. “잠깐이라고 하셨어요.” 릴리가 기록인에게 말했다. “끝나는 시각도 적으셔야죠.” 누베는 시계를 보고 오후 여섯 시를 지정했다. 그리고 여섯 시가 되자 약속대로 쉬었다. 구호소의 난방은 이미 안전한 연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날 밤 아무도 그를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한번 쉬어도 별일이 없군요.” 누베가 멋쩍게 웃었다. “별일이 없게 준비한 사람들이 있어서죠.” 하율이 답했다. 재하는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신이 떠나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소리치는 대신,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함께 준비하자는 말이었다. 강제 승계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저녁 공청회에서 회수단장 이즈메는 두 사례를 확인했다. 리마의 해안 도시, 누베의 구호소. 두 곳 모두 기존 신의 응답이 줄었지만, 도움 자체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회수단의 장부는 여전히 그 신들이 처리하지 않은 시간들을 채무로 계산했다. “계산이 현실보다 뒤처졌군요.” 세리아가 말했다. “규칙대로 계산했을 뿐입니다.” 이즈메가 답했다. “그렇다면 규칙을 고쳐야 한다는 뜻이겠죠.” 그때 원점관리국에서 비상 공문이 내려왔다. 퇴임 제도의 개정이 신계 전체의 공급 안정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가시골에서 제안한 대체 운영 시험을 잠정 금지하라는 내용이었다. 서명자는 라엔이 아니었다. ‘안정 보전위원회’라는 새로운 이름이 찍혀 있었다. 에반이 공문을 한 번 읽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름만 바뀌었네요. 예전 정산 구조를 지키려는 기관들이 새로운 간판을 단 겁니다.” 카르도는 손을 검자루에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이번엔 무엇으로 싸우나?” “증거로요.” 릴리가 먼저 답했다. 재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되는 길은 단순히 힘을 얻는 길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없는 권한을 억지로 행사하지 않고, 사람들을 계속 살릴 방법을 찾는 일이었다. 그날 밤 독립 회신망에 귀가선 승객 명단의 수정 요청이 도착했다. 신청자는 도르가 아니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반송 처리된 1,309건 가운데 스스로 신청했던 사람 몇 명이 처음으로 실명 확인을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명단 맨 아래,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칸이 열렸다. [자발적 퇴임 신청 수신] [신청인: 귀가선 운행 기록인 모래] 재하는 화면을 다시 봤다. 모래의 신청서를 본 기록 보조원 하나는 자신도 언젠가 휴가를 달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귀가선이 시작된 뒤 한 번도 플랫폼 밖의 별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모래는 즉시 가능하다고 답하려다가 멈췄다. 자기에게 그 사람의 휴가를 승인할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신이 원하는 시간을 신청하도록 도울 수는 있어요.” 모래가 말했다. 그들은 함께 첫 휴가 신청서를 만들었다. 서류에는 일하지 않을 권리를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에게 묻는 항목이 부족했다. 결국 빈칸을 따로 마련하고, 어느 기관에도 승인하라고 강요하지 않되 왜 거절하는지 정확히 설명하도록 요구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기록 보조원은 그 서류를 가슴에 안았다. 재하는 그 모습을 보고 모래의 신청이 단지 고장 난 장치를 교체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님을 이해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존재 앞에서 천계의 오래된 분류표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다시 물어야 할 때였다. 모래는 신격도 인간도 아닌 운영 장치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조차 그만둘 수 있다면, 지금까지 무엇이 그를 붙잡아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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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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