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회수단은 아침 아홉 시에 도착했다. 정확한 시각이었다. 그만큼 불쾌했다.
승강장에 내린 사람들은 모두 잿빛 외투를 입고 있었다. 외투에는 계급장도 신성 문양도 없었다. 그 대신 앞가슴에 작은 주머니가 달려 있었고, 그 안에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붉은 고지서가 계속 솟아났다. 한 장을 꺼내면 다음 장이 올라오는 광경이 마술 같았다. 감탄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끔찍했다.
“도르 제17번 신격. 미응답 기도 누적 삼만육천여 건, 최초 원금 미산정, 연체료 영구 갱신.”
회수단장 이즈메가 고지서를 읽었다. 그는 사람 이름 대신 신격 번호를 먼저 불렀다. 이름은 오류를 일으키지만 번호는 그렇지 않다는 이유였다.
도르는 잠깐 승차권을 쥐었다. 재하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 고지서는 무슨 권한으로 발급합니까?”
“계약 유지 규정 제4부.”
“퇴임 신청자가 계약을 맺었다는 증거는요?”
“신격을 수행했다는 사실이 포괄적 동의입니다.”
재하는 옆에 있던 에반을 바라봤다. 에반은 매우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제가 만들던 광고에도 못 써먹는 문장입니다. 물건을 한 번 써 봤다고 사망할 때까지 구독료를 받겠다는 소리잖아요.”
“구독은 해지할 수 있습니다.” 릴리가 덧붙였다.
회수단장이 눈썹을 올렸다. “신격은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사람이 선택해야죠.” 재하가 말했다.
이즈메는 반박하지 않고 고지서를 도르에게 내밀었다. 서명을 거부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고지서에는 거부하는 순간 퇴임 신청 자체가 철회된 것으로 처리된다고 적혀 있었다. 받아들여도 붙잡히고 거부해도 붙잡히는 서류였다.
실라가 서류를 받아 조항을 확인했다. “받았다는 확인과 내용에 동의한다는 서명은 구분해야 해요. 우리 회신망에서는 이미 그 문제를 고쳤습니다.”
“귀가선은 별도 기관입니다.” 이즈메가 말했다.
“그러면 별도 기관에서 같은 잘못을 하고 있는 겁니다.”
유나는 도르가 고지서를 수령했음을 독립 장부에만 적고, 동의란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이즈메는 처음 보는 방식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곧바로 압류 명령이 출력됐다.
[압류 대상: 도르의 후속 응답권]
[담보물: 가시골 원형 수로 신격 인증]
도르의 낡은 지팡이가 저절로 희미해졌다. 반면 멀리 가시골에서 수로 경보가 한 차례 울렸다. 하율이 즉시 연락했다.
“북쪽 교각의 오래된 인증기가 떨리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철거하면 역류 경보까지 사라집니다.”
재하는 이를 악물었다. 회수단은 도르를 위협하는 동시에 주민들이 위험해질 가능성까지 담보로 잡은 것이다.
“실제 설비에 손대기 전에 현장 점검을 요청합니다.” 그가 말했다.
“행정 이의는 접수해 드리지요. 처리 기한은 영업일 기준 삼십 일입니다.”
“열차 출발은 일주일 뒤잖아요.”
“그건 운행실 소관입니다.”
행정 기관이 둘이라는 것은, 책임을 묻기가 두 배로 어렵다는 뜻이었다. 재하는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천계의 하늘은 너무 멀쩡했다.
가시골로 돌아온 일행은 회의실에 임시 상황판을 설치했다. 도르의 신격 인증이 연결된 설비, 이미 대체 가능한 설비, 아직 대체 불가능한 설비를 세 칸으로 나눴다. 하율은 검사 없이 어느 쪽이 안전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모과는 주민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시설 변경을 중단시켰다.
“도르님이 떠나고 싶다고 하셨으니 우리 모두가 당장 하던 일을 놓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과가 말했다.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일부터 각자 정합시다.”
마르타는 쉼터의 부엌을 맡겠다고 했고, 대장장이는 부품을 제작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매일 일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쉬는 날이 있는 약속이었다. 재하는 그 점이 도르의 오랜 계약과 가장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다른 퇴임 신청자가 찾아왔다. 작은 폭풍신 리마였다. 그녀의 망토에는 여러 번 수선한 흔적이 있었고, 양손에는 비를 멈추게 하던 지팡이 대신 목공 도구가 들려 있었다.
“저는 바닷가 도시에서 백오십 년 동안 날씨를 지켜봤어요. 이제 집을 짓고 싶어요.”
“신전 건물을요?” 재하가 물었다.
“아뇨. 제가 살 집이요. 창문이 세 개 달린.”
리마는 곧장 웃지 못했다. 한창 태풍이 몰아치던 시절 그녀는 기적을 쓰지 않으면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번의 위기를 넘겼고, 사람들은 감사하며 헌납했다. 그런데 그 고마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기상 관측 의무로 바뀌었다. 이제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리마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청구서가 날아왔다.
“제가 그들을 돕지 않겠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햇볕 좋은 날에도 일해야 하고, 아픈 날에도 하늘을 지켜야 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대신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게 제일 두려워요.”
릴리는 리마가 쓰는 손을 바라봤다. 도구를 잡은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있었다. 신으로서 폭풍을 다루는 동안에도 그녀는 몰래 나무를 깎았다고 했다.
“왜 세 개의 창문이에요?”
“아침 햇살을 보려고 하나, 저녁노을을 보려고 하나. 마지막 하나는 그냥 열어 둘 겁니다. 누군가 놀러 오면 길이 보이도록.”
재하는 웃었다. 천계의 막대한 연체료 장부 앞에서 창문 세 개의 이야기가 유난히 커 보였다.
세리아가 가져온 고문서를 펼치자 더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옛 귀가선 원칙에는 ‘구조를 마치면 반드시 쉬는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몇 세기 뒤 개정판에는 ‘모든 요청을 처리하기 전에는 쉬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문장 하나가 달라지자 사람을 쉬게 하던 장치가 사람을 붙잡는 장치가 됐다.
“누가 바꿨나요?” 릴리가 물었다.
실라는 개정 날짜와 승인인 목록을 읽었다. 특정 악당 한 사람의 서명은 없었다. 원점관리국, 신성 공급청, 기도 정산소가 차례로 변경을 승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비용을 분리해 계산하기 번거롭다는 사유가 반복됐다.
“악한 마음 하나보다 나쁜 습관 수백 개가 더 오래가기도 하죠.” 에반이 말했다.
재하는 그 말을 기록했다. 비용이 계속 발생한다는 사실은 지우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비용을 치를 사람이 누구인지 결정하지도 않은 채 가장 오래 일한 신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도 옳지 않았다.
일행은 현장 시험을 신청했다. 리마가 관리하던 해안 도시의 경보 체계 중 일부를 독립 기상대가 대신 맡고, 리마는 일정 기간 자발적 자문만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기적이 끊기면 배가 침몰한다는 주장이 실제로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해안 도시의 어부들은 처음에 반대했다. “신이 없어지면 폭풍을 누가 막아 줍니까?”
리마가 대답했다. “제가 모든 폭풍을 막아 준 적은 없어요. 막지 못한 폭풍에 대해서도 저는 누구에게 설명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부 하나가 낡은 모자를 벗었다. 그해 큰 폭풍으로 동생을 잃었다는 사람이었다. 그는 리마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의 손실을 신 하나에게만 묻는 동안 항구의 낡은 방파제를 고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실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충돌도 있었다. 기상대 기술자는 리마의 바람 예측이 과학적인 기준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리마는 기술자의 관측기가 폭풍 중간에 자주 멈춘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장비를 비난하다가 하루를 허비했다.
릴리는 회의가 끝난 뒤 양쪽에 따로 물었다. “무슨 일을 가장 걱정하시나요?”
기술자는 폭풍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올까 두렵다고 했다. 리마는 떠난 뒤에 사고가 나면 또 자기 이름으로 비난이 쏟아질까 걱정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걱정은 서로 달랐지만, 둘 다 책임을 혼자 지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점은 같았다.
그들은 시험 절차를 다시 적었다. 관측기는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기록하고, 리마의 권능은 한정된 구역에서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어부들이 실제 상황을 보고할 수 있도록 해안 전화도 보수한다. 어떤 예측이 틀려도 숨기지 않고 원인을 공개하기로 했다.
첫 번째 경보는 예정 시간보다 십 분 늦게 전달됐다. 어부들은 그 사실을 보고 회의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리마가 늦게 반응했다고만 비난했을 것이다. 지금은 전화선 결함과 관측 탑의 잘못된 방향을 찾아냈다. 리마는 자신의 힘으로도 해안 전체를 지켜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재하는 공개 장부에 그 십 분을 적어 두었다. 실패 기록을 남기는 것 또한 앞으로 누군가를 안전하게 돕는 방법이었다.
이틀 동안 기상대와 해안 경비대가 시험 운행을 했다. 리마는 요청을 받은 특정 시간에만 날씨를 살폈다. 정해진 시간 외의 경보는 관측 탑과 신호 종이 맡았다. 첫날은 혼란스러웠지만 둘째 날에는 오히려 작은 어선들이 이전보다 빨리 소식을 들었다. 신격 권능이 전부 불필요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모든 책임이 신 한 명에게 걸려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흔들렸다.
재하는 시험 기록을 가지고 이즈메 앞에 섰다. “여기 보세요. 다른 방식이 가능합니다. 퇴임 청구가 무한 책임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수 절차가 되어야 한다는 증거입니다.”
이즈메는 기록을 세심하게 검토했다.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지막 장에 직접 메모를 남겼다. ‘현장 대체 운영 사례 존재.’
“그건 긍정적인 반응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정산 규칙의 수정 사유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고지서는 제가 없앨 권한이 없습니다.”
“없앨 권한이 없는데 왜 발송하죠?”
“그게 제 일입니다.”
그 대답이 너무 익숙해서 재하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을 강제로 신으로 배정한 창도 같은 식으로 움직였다.
저녁에 한 늙은 사제가 도르를 찾아왔다. 그는 오래전 자기 아이가 죽었을 때 신전에 찾아가 기도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제는 도르에게 원망을 품었다고 했다.
“그때 당신이 나를 만나 주지도 않았습니다. 오늘은 왜 다른 사람을 돕는다고 말합니까?”
도르는 고개를 숙였다. “그때 내가 어디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한다고 꾸며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당신이 기다렸는데 답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믿습니다.”
“그럼 미응답 기도는 누구 책임입니까?”
“그건 더 조사해야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상실이 내 평생 빚이라고 장부에만 적혀 있다면, 그 장부가 당신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닐 겁니다.”
사제는 울지 않았다. 쉽게 용서하지도 않았다. 다만 도르가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을 확인하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두 사람은 아이가 좋아하던 노래와 강가의 나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제는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아이가 채무의 항목 하나로만 남지 않기를 바랐다.
돌아갈 때 그는 도르에게 말했다. “다음에 또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네가 원한다면.”
재하는 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사제가 떠나자 도르는 오래 앉아 있었다. 퇴임의 권리를 얻는 것이 미안했던 날들을 모두 없애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안함이 끝없는 강제 노동의 근거가 될 수도 없었다. 서로 다른 두 사실을 품고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정을 앞두고 이즈메는 회수단의 다음 계획을 알렸다. 채권회수단이 제출한 장부에는 미퇴임자 1,309명의 연체료가 하나의 금고에 모여 있었다. 그 금고가 움직이면 귀가선의 모든 객차와 가시골까지 이어지는 구조 회로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일정을 앞당겨 일괄 청구하겠습니다. 수령 거부는 더 이상 인정하지 않습니다.”
재하가 반문하려는 순간 승강장 전등이 붉게 변했다. 외투 주머니에서 고지서가 수백 장씩 솟아나 플랫폼을 덮었다.
모래가 조용히 말했다. “저희 열차는 사람들을 집으로 보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을 보내지 못한 값을 청구하는 기계가 되었군요.”
헤르만의 기관이 관리했던 일부 시설은 사람의 안전보다 장부 결산 시각을 우선했다. 유나는 그 사실이 확인된 곳에 현장 위험 안내부터 보냈다. 마을에는 먼저 경보 장치를 점검하라고 하고, 회수단에는 장부 집행을 멈출 법적 근거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실라는 이중 기록이 생기지 않게 신청 번호를 정리했다. 한 사람의 퇴임 의사에 여러 기관이 서로 다른 번호를 붙인 상태라, 처리 중복만 막아도 상당한 혼란을 줄일 수 있었다. 재하는 문제를 모두 해결한 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오늘 할 일은 정확히 오늘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었다.
재하는 흩어진 고지서 한 장을 주웠다. 맨 아래에는 서명하지 않은 사람에게 대신 서명하도록 지정하는 칸이 있었다.
[임시 대리 서명권자: 윤재하]
“내가 분명 아까 싫다고 했는데?”
그의 외침은 승강장의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천계는 여전히 ‘아니요’라는 짧은 말을 듣는 데 서툴렀다.
제19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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