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건의 강제 승계가 보류된 다음 날, 원점관리국에서는 이상한 사고가 발생했다.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비어 있지 않던 생성 원장의 첫 페이지가 하얗게 변한 것이다. 직원들은 종이가 불에 탄 것처럼 놀랐지만 실라의 설명은 달랐다.
“지워진 게 아니라 분리된 겁니다. 원본 구조망과 뒤에 덧붙인 소유권 장부가 따로 표시되기 시작했어요.”
재하는 창을 바라봤다. 제0심사실에는 여전히 수많은 이름과 번호가 있었다. 그러나 그 숫자 옆에 ‘누구의 재산’이라고 적힌 칸은 비어 있었다. 그 사실이 수많은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의 도움과 믿음이 처음부터 어떤 관리자의 재산이었다는 주장에 틈이 생긴 것이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누가 처음 신을 만들었는지입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라엔의 원점 소유권 주장을 심리할 수 있습니다.”
재하는 조금 망설였다. 편지의 내용이 궁금했다. 자신을 신으로 만든 사람을 직접 만나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문서에 적힌 수신 조건을 아직 전부 확인하지 못했다. 그보다 먼저 한 기록을 찾아야 했다. 처음 구조자들의 도움 요청을 신격으로 재분류한 최초의 변환 규칙이었다.
에반과 실라는 제0심사실의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최초 변환표가 있었다. 원래 열 제목은 ‘도움이 필요함’, ‘누가 갈 수 있는가’, ‘응답을 보냈는가’였다. 그 위에 추가된 항목은 ‘응답자를 장기 배치해도 되는가’, ‘거절에 대한 대체 비용’, ‘향후 응답 수익’이었다.
“여기에서 사람이 신격으로 분류된 건가요?” 릴리가 물었다.
“처음에는 그보다 조금 뒤였습니다.” 실라가 대답했다.
장부의 다음 페이지에는 라엔의 젊은 필체가 남아 있었다.
[다수의 도움 행동을 하나의 지속 책임 단위로 등록하면 회신 공백을 줄일 수 있음.]
[임시 명칭: 단일 응답자.]
[후속 명칭: 신격.]
재하는 읽다 말고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신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어떤 위대한 존재의 이름이 아니라 행정상의 분류명이었다니. 자신이 신이 된 첫날 보았던 신도 0명, 기적 0회라는 창도 그 오래된 분류표의 후손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신도 수가 중요했군요.”
에반이 말했다. “신도가 많을수록 다음 응답에 필요한 비용을 확보하기 쉬웠으니까요. 그러다가 비용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믿음 자체를 자산화한 겁니다.”
“그럼 기적은?”
“누군가의 믿음에서 얻은 힘을 특정 응답자에게 배분하는 기술이었겠죠. 신격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힘의 소유권을 정당화하는 기록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실라의 설명은 재하를 안심시키지도 실망시키지도 않았다. 자신이 릴리의 동생을 치료했던 빛은 실제였다. 카르도가 병사들을 지켰던 힘도 실제였다. 사람들의 믿음이 어떻게 기적이 되는지 아직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누군가를 강제할 권리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았다.
모나는 아홉 구조자의 기록과 최초 변환표를 대조했다. 앞서 남겨진 ‘단일 응답자’라는 문구에 아홉 사람의 서명은 없었다. 마지막 사람의 거절을 의도적으로 뺀 상태에서 라엔이 단독으로 표를 바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 라엔이 최초의 신을 만든 사람인가요?” 재하가 물었다.
“신격이라는 분류를 만든 사람일 수는 있어.” 모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서로를 돕던 사람들이 있었어. 그 도움을 라엔이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누가 처음 우물을 팠다고 해서 그 뒤 마을에서 마시는 물이 영원히 그 사람의 소유가 되지는 않았다. 신격의 기원도 비슷한 문제였다.
그날 오후 공청회가 열렸다. 가시골 주민들, 여러 지역의 보관인, 신들과 인간들의 대리인이 각자의 자격으로 참석했다. 중앙 단상에는 빈 의자도 있었다. 모든 피해자가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참석하지 않은 사람을 찬성자로 세지는 않는다는 안내도 함께 붙었다.
재하는 증인석에 섰다. 그는 자신이 왜 신이 됐는지 이제 조금 알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을 신으로 보낸 장치의 존재를 밝힌 것과, 그 장치를 통해 생긴 모든 신들의 정체를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고 덧붙였다. 그런 차이를 지키지 않으면 자신이 라엔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하나의 표로 정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라엔은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그는 기록의 단일 책임자가 없다면 긴급 구조망에서 회신 공백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공동 책임이 책임 회피로 바뀔 가능성은 실제로 있었다.
하율은 현장 기록을 들고 나왔다. 제9 항로가 주민 공동 운영으로 돌아간 뒤 발생한 구조 사고의 응답 시간과 미응답 건수를 공개했다. 일부는 이전보다 느려졌고, 일부는 빨라졌다. 원점관리국의 일괄 지시가 없어도 운영이 가능했지만, 사람이 부족한 시간대에는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공동 운영이 완벽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하율이 말했다. “대신 문제가 어디서 생기는지 누구나 알 수 있게 됐다는 증거입니다.”
마르타는 가시골 쉼터의 운영 장부를 가져왔다. 거기에는 헌납액이 아니라 식사 제공 횟수, 자원봉사자의 쉬는 날, 부족한 물품과 수리 요청이 적혀 있었다. 신에게 바친 돈이 얼마인지 기록하던 장부와 달리 누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 많아요.” 마르타가 말했다. “그래도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평생 수프를 끓이게 하면 누가 다음에 도와주겠어요?”
재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마르타는 자신을 보지 않고도 계속 말했다.
“신님도 오늘은 부엌에 안 들어오셨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들어오셔야죠.”
“논점이 왜 그쪽으로 가나요?”
공청회에서는 웃음이 번졌다. 그 웃음 뒤에도 할 일은 많았다. 신격 생성 절차의 적법성, 기존 신들의 자발적 활동 보장, 환자와 구조대의 공급 유지, 과거 피해자의 보상과 기록 반환. 어느 하나도 단순한 도장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공청회의 마지막 순서에서는 누구도 준비하지 않았던 질문이 나왔다. 한 작은 신전의 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섬기던 신에게 수십 년 동안 기도했고, 어려운 시절에 실제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 원점관리국의 소유권 기록이 부당하다는 판정이 나면 자신의 믿음까지 잘못된 일이 되는지 물었다.
재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신앙의 소유권을 다투다 보면 사람들의 진실한 경험까지 한 번에 부정하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사제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만 말했다.
“그분이 받으셨다는 도움을 제가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느끼는 마음도요. 다만 그 마음이 관리국에 영원히 귀속돼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원해서 신전을 계속 찾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병이 생긴 뒤에도 헌납을 요구받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에게는 더 이상 강요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로 다른 선택이 한 마을 안에 함께 존재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여러 신들이 발언했다. 한 신은 신앙 포인트를 전혀 모으면 안 되는 것인지 물었다. 그 힘으로 농지의 물을 끌어오고 병자를 치료해 온 사람도 있었다. 다른 신은 자신이 원해서 신으로 살고 있지만 원점관리국이 자신을 재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포인트가 생긴다는 사실과 포인트를 강제로 거둬도 된다는 규정은 구분해야 합니다.” 세리아가 대답했다. “전환 방법은 더 연구해야겠지만 지금 당장 모든 기적이 멈출 것처럼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율은 기존 설비의 상태를 공개했다. 신성 에너지로만 움직이는 장비도 있고, 기술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장비도 있었다. 그 구분을 무시하고 무조건 폐쇄하거나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모두 위험했다. 그는 어떤 곳부터 전환할지, 어느 곳에 인력과 부품이 필요한지 명시했다.
“왜 비용 이야기를 계속합니까?” 재하가 물었다.
“세상은 비용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는 순간 다른 누군가에게 그 비용을 떠넘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율이 답했다.
재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신앙 헌납을 없애자는 선언만으로 약값과 교량 수리 비용까지 공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새로운 제도는 정직하게 비용을 말해야 했다. 다만 그 비용을 지불하기 어려운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는 방법도 함께 찾아야 했다.
도르도 증인석에 섰다. 그는 한때 신격을 내려놓고 싶었지만 거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사라진 것으로 처리되어 재하가 억지로 신격을 승계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재하 모두 손해를 입었지만, 그 후 재하가 주민들과 맺은 관계까지 가짜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신이 되는 일에 동의한 시점과, 그 뒤 누군가와 나눈 마음은 나눠서 기록해 주세요.” 도르가 말했다. “그래야 우리의 잘못도, 우리가 실제로 했던 일도 모두 남습니다.”
재하는 목이 메었다. 오래된 전임 신이 자신에게 신격을 넘겨 준 악당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지금 그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존중하는 동료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그런 관계도 생길 수 있었다.
라엔은 마지막 반론을 냈다. 원점의 단일 관리가 약해지면 다른 기관들이 자기 소유권을 주장하며 사람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의 말에는 실제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행 소유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이 자동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세리아는 공동 감사를 제안했다. 원점관리국 한 기관이 독점하던 생성 원장은 각 세계의 독립 보관인이 교차 확인하고, 열람 가능한 범위와 정정 절차를 공개하도록 했다. 개인의 자료는 해당 당사자가 원할 때만 그 범위에서 공개하고, 기관이 잘못 적은 기록의 수정 이력은 삭제되지 않게 남기는 방식이었다.
유나는 기록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누군가 수정한 흔적을 지우지 않는 건 그 사람이 영원히 벌을 받아야 해서가 아닙니다.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할 때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감독자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 검증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길은 만들 수 있었다.
공청회 끝에는 노아가 그린 작은 종이배 그림도 놓였다. 공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왜 어린아이의 그림이 그곳에 있는지 의아해했다. 릴리는 그 그림이 가시골 주민들이 만든 ‘필요하면 타세요’라는 표지를 바탕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도움의 길은 열어 두되, 그 길을 누구에게나 강제로 타라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재하는 자신도 처음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사람이 위험하다고 말하면 무조건 그를 대신해 선택해 주는 것이 친절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원하지 않는 구조나, 도움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의무는 사람을 다른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이 종이배는 법전보다 가볍네요.” 한 심리위원이 말했다.
“그래서 물에 뜨는 것 같습니다.” 재하가 대답했다.
회의장에 작게 웃음이 퍼졌다. 웃음이 지나간 뒤에도 의문은 남았다. 모든 구조 요청에 안전하게 답하는 방법, 회신이 부족할 때 재원을 나누는 방법, 오래된 피해를 보상하는 방법. 그 질문을 한 장의 도장으로 없애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참석자들 사이에서 공통의 출발점이 되었다.
날이 저물 무렵 잠정 결론이 나왔다. 원점관리국은 단일 응답자라는 분류를 만든 사실을 소명할 책임이 있으며, 그 분류가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신격과 신앙의 최초 소유자라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결정이었다. 최종 판단은 아직 남아 있었다.
라엔은 오래된 구리 고리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눈에는 처음으로 피곤함이 비쳤다.
“내가 모든 것을 지킨다고 믿었다.”
“그럴 수는 없죠.” 재하가 답했다. “하지만 당신이 만든 걸 다 부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을 살리던 길은 남겨야 하니까요.”
그때 유나가 작은 봉투를 건넸다. 지구 발신인이 다시 보낸 회신이었다.
[수신처 확인: 제9 항로의 현재 독립 회신망]
[본문 열람 동의: 해당 회신망의 지정 보관인에게 한정]
[윤재하 본인에게의 전달: 원하시면 직접 전해도 좋습니다.]
재하는 숨을 들이켰다. 마침내 편지는 누구의 것도 아닌 채 떠돌지 않고 제자리로 갈 수 있게 됐다. 단, 읽을 사람과 전달 범위를 또렷하게 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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