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선이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윤재하는 노아의 종이배부터 떠올렸다. 아이가 만든 작은 배는 ‘필요하면 타세요’라고 쓰여 있었고, 종착지도 노아가 마음대로 정하지 않았다. 그게 오래전 세계 사이에 놓였던 길의 첫 규칙이었다니, 재하는 반갑다가도 조금 슬퍼졌다.
“그럼 원래부터 신격 만드는 장치가 아니었어요?”
실라가 기록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도망친 사람, 길을 잃은 사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 안전한 경로를 알려 주는 장치였습니다. 목적지는 이용자가 정했고, 중간에 돌아갈지 말지도 이용자가 정했습니다.”
“그랬는데 왜 사람을 신으로 데려오기 시작했죠?”
“누군가 사람이 길을 선택하는 시간을 낭비라고 부르기 시작했거든요.”
실라의 대답은 원점관리국의 오래된 장부에서 나온 말이었다. 원래 귀가선은 길을 안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때로는 배가 오지 않아 사람들이 기다렸고, 때로는 필요한 구호품이 부족했다. 모든 세계가 함께 비용을 나눠 내기로 했지만 부담을 거부하는 지역도 생겼다. 그때 원점관리국의 초기 공증자는 하나의 묘안을 냈다. 도움을 요청하는 기록 자체를 담보로 잡으면 안정적인 재원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담보가 부족해지자?” 릴리가 물었다.
에반이 고개를 떨궜다. “미래에 도움을 줄 것 같은 사람까지 자산으로 잡기 시작했죠. 선의에 대한 예측을 신격 생성 적합도로 바꾸고, 실제로 도움을 준 사람의 응답을 장기 수탁 동의로 바꿨습니다.”
재하는 손끝이 차가워졌다. 자신이 신이 된 경위가 특별한 축복의 결과가 아니라 제도의 가장 극단적인 오용 사례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론이 곧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그 사이 릴리를 만났고, 노아를 도왔고, 수많은 사람과 함께 수로를 고쳤다. 그 시간은 장부에 잘못 적혔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라엔은 구리 고리를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고리를 공개 기록대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처음 귀가선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모두가 그를 돌아봤다. 그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원점관리국의 공증자는 부서 이름이 바뀌어도 동일한 직책을 유지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한 존재가 그 시간 전부를 살아왔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아홉 구조자 가운데 한 분인가요?” 릴리가 물었다.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구했다. 나는 그들의 기록을 분류했다.”
“그럼 최초의 신을 만든 게 당신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라엔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이라는 말도 없었다. 나는 그저 기록마다 확인 도장을 찍었을 뿐이다.”
기억의 일부가 낡은 수정벽 위에 나타났다. 흙탕물이 흐르던 강가, 다친 사람을 업은 사람들, 구호 물자를 옮기던 이웃들. 그 가운데 젊어 보이는 라엔이 장부를 들고 서 있었다. 한 사람이 떠난 뒤 다음 사람이 도착할 수 있도록 이름과 필요 물품을 적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기록을 남겨야 다음 사람이 찾을 수 있으니까요.” 세리아가 말했다.
“그래.” 라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내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다.”
기억이 바뀌었다. 물길이 복구됐지만 다시 비가 내리고, 새로운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다. 누군가는 기꺼이 갔지만 누군가는 그날 자기 집을 지켜야 했다. 초기 귀가선의 장부에는 ‘아직 확인하지 못함’과 ‘이번에는 갈 수 없음’이라는 표시가 늘어났다.
라엔은 그 빈칸들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연락이 가면 반드시 응답할 수 있는 체계를 꿈꿨다. 한 사람에게 무리한 책임을 맡기지 않는 대신 더 많은 구조자를 찾으면 됐지만, 그렇게 하면 예산과 물자가 끊길 수 있었다. 결국 그는 구조 요청을 계약으로 묶기 시작했다.
“누군가 반드시 대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라엔이 말했다.
“그런데 대답하기 싫다고 할 자유를 빼앗았군요.” 재하가 답했다.
“누군가는 대답해야 했다.”
“맞아요. 하지만 그 사람을 정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는 다른 문제잖아요.”
방은 조용해졌다. 라엔의 과거를 보여 주는 장면은 그의 책임을 덜어 주지 않았다. 처음의 고민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절한 사람을 지워 버리고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데려간 선택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재하는 라엔에게 물었다. “처음 귀가선을 같이 만든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대부분은 떠났다.”
“돌아올 수 있나요?”
“원하면.”
“그럼 물어보죠. 장부가 지금도 자신들의 기록을 사용해도 되는지.”
라엔은 고개를 저었다. “죽은 사람도 있다. 연락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모두를 소환할 수 없다.”
“그러니까 소환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권한부터 줄이자는 거예요.”
세리아는 새로운 임시 안을 작성했다. 신격 생성 장치가 귀가선의 원본 구조 기능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 장치를 이용한 새로운 강제 승계와 보상 수익 분류를 정지할 것.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어도 개인의 거절을 무효화하는 권한은 인정하지 않을 것. 다만 기존 구조망이 의존하는 필수 공급은 단계적으로 분리해 유지할 것.
“당장 모두 중단하면 도요 고원의 난방이 멎습니다.” 카르도가 말했다.
“그래서 공급과 강제 권한을 분리해야죠.” 하율이 답했다. “지난번에 만든 수동 전환 도면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단, 여러 지역의 동의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릴리는 가시골의 운영 회의 결과를 제출했다. 주민들은 원점관리국의 강제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동시에 구조망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 부담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누구도 모두를 대신할 수 없으니 각 지역에서 비슷한 회의를 열어야 했다.
귀가선의 원형 도면에는 중심역이라는 표시가 없었다. 윤재하는 한참 그것을 바라봤다. 지금의 천계 우편망은 반드시 한곳을 거쳐야 했는데, 처음의 길은 여러 마을을 옆으로 연결하는 모습이었다. 물길과 마을길, 고개를 넘어가는 작은 오솔길까지 표시돼 있었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누가 정했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이요.” 모나가 대답했다. “물이 많으면 배를 타고, 길이 무너지면 돌아가고, 밤에는 가장 가까운 집에서 쉬는 식이었어요.”
“그러면 모든 길이 똑같이 안전하지는 않았겠네요.”
“당연하지. 그래서 오가는 사람이 계속 고쳤지. 여기서 중요한 건 한 사람이 모든 길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거야.”
하율은 원본 도면에서 가장 위험해 보이는 구간을 짚었다. 나무 다리가 놓인 협곡이었다. 구조자들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었지만 다리의 유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모나는 그 시절에도 그런 갈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몇몇 마을은 물자를 충분히 내지 못했고, 어떤 길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그럼 공동 운영도 실패할 수 있었군요.” 재하가 말했다.
“그랬지. 공동이라는 말만 붙인다고 늘 공정해지지는 않아.”
라엔이 처음 단일 책임 장부를 만들려 했던 이유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늘어나는데 서로 책임을 미루면 구호가 늦어질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불안을 해결하려다 누군가의 거절까지 압수하고 말았다는 점이었다.
카르도는 다리의 옛 유지 규정을 검토했다. 그는 군대에서 보급로를 지키는 장교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 길은 무너진다고. 그러나 모든 책임을 한 병사에게 돌리면 그 병사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사람을 늘리거나 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카르도가 말했다.
“왜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요?” 릴리가 물었다.
“시간이 걸렸겠지. 그리고 권한을 나누어야 했을 테고.”
재하는 원점관리국의 기록을 다시 보았다. 초기 귀가선에서는 길을 새로 열 때마다 각 마을에 확인을 요청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거절도 많았다. 원점이 만들어진 뒤에는 한 사람의 확인 도장으로 대부분의 길이 열렸다. 처음에는 구조 속도가 빨라졌다고 적혀 있었지만 그 다음 해부터는 유지 비용을 내지 못한 사람들이 강제 계약에 묶였다는 기록이 나타났다.
“숫자가 좋아졌다는 이유로 모두가 좋아졌다고 생각했군요.” 재하가 말했다.
에반은 옛 통계 보고서를 한 장 꺼냈다. ‘미회신 감소율’이라는 제목 아래 아주 작은 주석이 있었다. 분모에서 ‘응답 거절’과 ‘응답 불가능’을 제외했다는 설명이었다. 거절한 사람을 통계에서 없애면 미회신은 줄어든다. 그러나 실제로 구조가 이루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런 보고서를 보고 예산을 집행한 겁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에반이 답했다. “당시에 저는 목표 달성률이 98퍼센트라고 홍보했습니다. 지금 보니 실제로 도움을 받은 사람의 비율과는 다른 수치였어요.”
그는 말없이 종이를 접었다. 과거를 인정한다고 해서 피해가 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어떤 숫자를 잘못 계산했는지 알면 다음에는 다른 지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은 기록실에서 구조망 평가표를 새로 작성했다. 응답 시간, 실제 도움의 도착 여부, 참여자의 안전, 거절을 기록한 비율, 대체 인원이 연결된 사례를 함께 보도록 했다. 누군가가 도움을 거절했다고 해서 벌점을 주지 않는다는 조항도 넣었다.
“그럼 다들 거절만 하면 어떡하죠?” 재하가 물었다.
“그런 경우에는 왜 아무도 나서기 어려운지 알아봐야죠.” 릴리가 답했다. “사람이 부족한지, 너무 위험한지, 할 일이 과한지.”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참여할 의무를 지고 있다면 부족한 구조 인원을 눈치채기 어려울 수 있었다. 누가 더는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비로소 누군가에게 추가 인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날 마지막 회의는 하백이 주관했다. 그는 작고 낡은 배의 운행표를 칠판에 걸었다. 아직 비가 오지 않아도 홍수 때 사용할 비상 연락망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예산이 없다’고 답하자 그는 다음달까지 필요한 선박 수리 비용과 물자를 제시했다. 불가능한 일을 기적으로 덮으려 하지 않았다.
“전쟁신님의 병사들이 도울 수도 있지만,” 하백이 말했다. “그것만 믿고 우리 배를 수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카르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의 도움이 언제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은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기간과 인원만 밝히는 것이 정확한 지원이었다.
재하는 회의 뒤 하백에게 물었다. “왜 그 많은 일을 본인이 하려고 합니까?”
“전부 하려고는 안 합니다.” 하백이 답했다. “안 하면 안 되는 일을 먼저 알려 주는 것뿐이에요. 나머지는 같이할 사람을 찾아야죠.”
그 말은 귀가선의 최초 구조자들이 남긴 기록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한 듯했다.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하는 대신, 누군가 먼저 위험을 알리고 다른 사람이 이어받을 수 있도록 길을 남기는 것.
밤하늘에는 가느다란 빛이 길처럼 펼쳐졌다. 어느 곳에도 원점관리국의 커다란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작은 등불이 서로 보였다.
모나가 옛 길을 설명하는 동안 재하는 도면 가장자리의 작은 수정 흔적을 발견했다. 누군가 두 마을 사이에 새로운 길을 그렸다가 그 위에 다시 점선을 그어 놓았다. 왜 지웠느냐고 묻자 모나는 그 길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겨울에는 건널 수 없다고 알려 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완전한 지도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지도가 아니라, 실제로 걷는 사람의 말을 듣고 고칠 수 있는 지도였다. 재하는 원점의 불변 원장을 생각했다.
그날 밤, 라엔은 혼자서 귀가선의 원래 도면을 바라봤다. 재하는 문밖에서 그를 보았다. 누구보다 오랫동안 응답의 의무를 강조했던 존재가, 처음에는 그저 잃어버린 사람의 귀가를 돕고 싶어 했다는 사실은 씁쓸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수는 없죠. 잘못된 기록 때문에 다친 사람도 이미 있으니까요.”
“그럼 무엇을 할 수 있나?”
재하는 잠시 생각했다. “적어도 오늘부터 다른 사람을 더 데려오지는 않을 수 있겠죠. 그리고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뭘 고쳐야 하는지 물어볼 수는 있고요.”
라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하는 더 말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과거를 미화하거나 쉽게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복도로 나오는 길에 유나가 급히 달려왔다. 제0심사실의 자동 처리량이 갑자기 늘었다는 통보였다.
[예정된 신격 생성: 27건]
[등록 처리 예정 시각: 6시간 후]
[기존 관리자의 서명 불필요]
원점관리국의 시스템은 라엔이 답하지 않아도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사람 하나가 떠나도 무너지지 않는 좋은 제도라면 좋았겠지만, 이 경우에는 누구도 멈추지 못하는 나쁜 제도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군요.” 재하가 말했다.
실라는 담담하게 답했다. “지금부터 실제로 고쳐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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