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관리국 제0심사실의 문은 두꺼운 수정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문에 비친 사람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윤재하는 이상하게도 넥타이를 맨 회사원 모습으로 비쳤고, 릴리는 오래전 동생을 업고 신전을 헤매던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비쳤다.
“감정 검사라도 하는 문인가요?” 재하가 물었다.
“최초 접수 상태를 표시하는 장치입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과거의 선택을 현재 소유권의 근거로 삼는 심사실답군요.”
재하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야근에 지친 얼굴이었다. 그때는 신이 될 거라고 상상한 적도 없었다. 사고 현장의 위험 신고 버튼을 누르면서도 누군가를 평생 떠맡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우리들의 과거는 기록일 뿐이죠.” 재하가 말했다. “오늘 문을 열어도 되는지는 지금 물어봐야 하는데.”
실라가 현장에 합류했다. 과거 외부 우편망의 반송 감시인이었던 그녀는 오래된 접수망을 잘 알고 있었다. 실라는 문 옆에 달린 작은 검증 창을 두드렸다. 신격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이 아니라 감사 기록을 열람하는 통로였다.
“여기는 강제 동의를 조사하는 장소입니다. 우리를 원본 소유자라고 등록하지 말고 조사 신청인으로 접수하세요.”
문이 오래도록 반응하지 않았다. 마침내 작은 숫자가 떠올랐다.
[접수번호: 없음]
[신청인의 권한: 기존 분류 체계에서 확인 불가]
재하는 한숨을 쉬었다. “신이면서도 출입증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출입증을 쉽게 만드는 쪽이 더 위험할 수 있죠.” 실라가 답했다.
그들은 건물 전체가 아니라 제0심사실의 변환 기록만 대상으로 보전 명령을 신청했다. 원점관리국과 분쟁 중인 다른 시설의 운영 기록까지 통째로 압류하면 환자와 주민의 삶이 멈출 수 있었다. 세리아는 사전 변환 규칙의 해시와 승인 시간만 남기도록 조항을 한정했다.
원점관리국 직원 하나가 창문을 열고 항의했다. 그는 대략 스무 해 동안 일하며 장부를 정리해 왔지만, 가장 오래된 변환 장치가 누구의 승인으로 설치됐는지는 몰랐다.
“우리가 전부 악당이라는 겁니까?” 직원이 물었다.
“아뇨.” 릴리가 말했다. “설비를 설치한 분과 지금 유지하는 분이 다를 수도 있고, 부당한 부분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죠. 그래서 기록을 조사하려는 거예요.”
직원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자기 일과표를 가리켰다. 오전 여덟 시에 접수된 현장 안전 신고를 오후 여섯 시까지 재분류하는 업무였다. 개인적 판단 없이 코드가 자동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항목을 수정하려고 하면 제 계정이 잠깁니다.”
“그렇다면 그 문제도 기록해야 합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그들은 직원의 이름을 공개 증언에 넣지 않았다. 대신 실제 계정 권한과 자동 분류 규칙이 어떤 관계인지 별도로 확인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잘못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을 같은 말로 묶어 버리면, 그 차이를 고칠 방법도 잃기 때문이었다.
오후에는 라엔이 나타났다. 그는 임시 심리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며 원점관리국이 생성한 모든 신격을 자신이 원본으로 관리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없었다면 너는 신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윤재하.”
“그럴 수 있죠.” 재하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제 인생이 당신 소유라는 뜻은 아니에요.”
“네 신격의 힘도 우리 인가망을 통해 흐른다.”
“그럼 그 망을 내가 고칠 권리가 있는지도 봅시다.”
라엔이 지팡이를 들었다. 수정문 안의 불빛이 붉어졌다. 치료소 인증뿐 아니라 철비항의 구조망, 도요 고원의 겨울등까지 원점의 심사를 받는 시설들이 차례로 경고를 띄웠다.
“내 인가를 거부하면 모두가 피해를 입을 것이다.”
재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서 그동안 모두가 침묵했나 보군요.”
카르도는 군의 비상 통신을 열었다. 직접 무력으로 관리국을 공격하지 않고, 피해 지역들이 필요한 장비와 인원을 서로 연결했다. 그는 이전에 전쟁신이라는 명목으로 강제 헌납을 요구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사람들을 지키는 방법이 전쟁을 선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배운 상태였다.
하율은 기술진과 연락하며 필수 시설의 인증을 단계적으로 분리했다. 첫 번째는 치료소 냉각기, 두 번째는 구조 경보, 세 번째는 겨울등 열 저장 장치였다. 급하게 전체를 끊으면 사고가 날 수 있어 설비별로 전환 가능 시간을 정했다.
“권능으로 한번에 못 고쳐요?” 재하가 물었다.
“신님, 그 질문을 하실 때마다 제가 일을 두 배 합니다.” 하율이 답했다.
“왜요?”
“못 고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니까요.”
재하는 고개를 숙였다. 이쯤 되면 신으로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기술자의 근무 시간을 존중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정오부터 제0심사실 앞에 작은 줄이 생겼다. 신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동의 기록이 남았는지 확인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세 명, 잠시 뒤에는 열 명이 넘었다. 대부분 이름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도 조회할 수 있습니까?” 한 여인이 물었다.
실라는 바로 이름을 요구하지 않았다. 조회하려는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기록만 확인할 수 있도록 별도 절차를 안내했다. 다른 사람의 기록이나 가족의 기록까지 한꺼번에 검색할 수는 없었다.
“제 동생이 실종됐는데, 제 기록만 확인하라는 겁니까?” 여인이 되물었다.
“걱정하시는 마음을 압니다.” 실라가 말했다. “하지만 동생분의 소재를 확인하는 문제는 별도의 긴급 실종 지원 절차가 있습니다. 여기서 동생분의 신격 관련 사생활을 열람하도록 허락할 수는 없습니다.”
여인은 답답한 얼굴로 돌아서려 했다. 릴리는 그녀와 함께 실종자 지원 창구로 향했다. 서로 다른 문제가 연결돼 있을 때 창구 하나에 모든 권한을 몰아주지 않는 일은 번거로웠다. 그러나 그 번거로움이 누군가의 사생활을 지키는 담장이 될 수 있었다.
재하는 접수대에서 안내표를 나눠 주었다. 안내문에는 간단한 문장만 넣었다. ‘내 기록만 확인하기’, ‘동의하지 않은 분류에 이의 제기하기’, ‘보관을 원하지 않는 개인정보에 삭제 요청하기’. 마지막 항목 옆에는 삭제가 가능한 기록과 보존이 필요한 증거를 구분한다는 설명도 있었다.
“이것도 다 저희가 도와줘야 하나요?” 한 보조원이 물었다.
“아니요.” 재하가 말했다. “할 수 있는 분이 스스로 확인하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우리는 안내와 안전한 장소를 준비하는 거고요.”
보조원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피곤했다. 그는 어제부터 계속 서류를 분류하고 있었고, 오늘 오후에는 쉬기로 돼 있었다. 재하는 그 사실을 놓칠 뻔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때문에 다른 사람의 휴식이 사라져도 된다는 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교대합시다.” 재하가 말했다. “제가 빈 상자 나르고 안내표를 채워 놓겠습니다.”
“신님, 이 서류 내용은 이해하고 계세요?”
“제가 읽을 수 있는 부분만 하겠습니다.”
보조원이 웃었다. “그럼 상자부터 부탁합니다.”
재하는 기꺼이 상자를 들었다. 그 일이 위대한 신격의 임무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일인 것은 분명했다.
한편 하율은 기술진과 함께 인증망 전환 시험을 진행했다. 치료소 냉각기의 출력을 낮춘 상태에서 예비 전원을 연결하고, 원점관리국의 허가 신호를 잠시 분리했다. 장비는 바로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점검 주기에 부품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가 자동으로 막혔다.
“그러니까 원점의 허가가 필요했던 건 작동 자체가 아니라 점검 기록이군요.” 하율이 말했다.
세리아는 그 차이를 기록했다. 장비를 안전하게 운영할 기술과, 그 기술을 누가 승인할 수 있는지는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장비가 잘 작동한다는 이유로 모든 허가 체계를 쓸모없다고 말해서도 안 됐다. 누군가는 안전 기준을 책임지고 확인해야 했다.
“그 일을 원점관리국 한 곳에서만 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하율이 말했다. “여러 지역에서 정한 기술 기준과 교차 검증을 마련하면 되죠.”
“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재하가 물었다.
“우선 임시 인증을 만든다고 해도, 모든 지역의 기술자를 교육하고 자재를 확보하려면 오래 걸립니다.”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네요.”
“그래도 시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들은 임시 전환 계획을 세웠다. 필수 공급을 유지하면서 일부 구역에서 독립 점검을 시험한 뒤, 사고가 생기면 되돌릴 방법까지 준비하는 계획이었다. 신성한 문구보다 복잡한 작업표였지만 실제로는 훨씬 안전했다.
에반은 그 내용을 작은 그림으로 바꿔 안내문을 만들었다. 멋진 빛과 위대한 신의 얼굴을 넣으려다가 유나에게 다시 그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번에는 장비의 선 두 개와 위험 표시만 넣었다. 자료를 보는 사람이 뭘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으로 광고 효과보다 설명 효과를 챙기고 있군요.” 재하가 말했다.
“제 인생 최고의 변신입니다.”
“아직 평가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알아보는지 시험해 봅시다.”
그들은 안내문을 세 명에게 보여 주었다. 한 사람은 화살표 방향을 거꾸로 이해했고, 다른 사람은 위험 표시를 수리 완료 표시로 착각했다. 에반은 얼굴을 붉히며 고쳐 그렸다. 나중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알 수 있게 그림을 단순하게 했다.
라엔은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는 이런 과정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최상위 기관이 정답을 써서 배포하면 더 빠르다고 믿었다. 하지만 원점의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그도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확인하는가?” 라엔이 물었다.
“설명한 사람만 이해하면 설명이 아니니까요.” 재하가 말했다. “받는 사람이 알아야죠.”
라엔은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여전히 자신이 허가한 장치 없이는 세상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 확신을 바꾸는 데에는 논쟁만으로 부족했다. 실제로 다른 방식이 작동한다는 기록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날의 시험 결과는 일부 성공, 일부 보류로 적혔다. 재하는 처음에는 그 애매한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 부분을 숨긴 상태에서 다음 지역에 도면을 나눠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모과는 다른 지역의 감사 참여자가 신전에서 숙박할 수 있는지 연락해 왔다. 재하는 빈방이 있다고만 답하지 않고 침구와 식사, 야간 통행의 안전을 누가 준비할지 물었다. 좋은 의도로 초대했다고 해서 숙박객의 불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주민회는 며칠 동안만 공동 숙소를 열기로 결정했다. 누구도 그 결정을 신의 기적이라 부르지 않았다.
임시 숙소의 당번표에는 재하의 이름도 있었다. 그는 신전 앞에 물을 채운 항아리를 놓고 야간 방문자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작은 등불을 달았다. 에반은 장엄한 소개문을 붙이자고 했지만 모과가 한 줄로 줄였다. ‘밤에는 이 문으로 들어오세요.’ 실제로 사람을 도울 때는 길고 아름다운 문장보다 짧고 정확한 문장이 더 유용했다. 재하는 한참 그 팻말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에 제0심사실의 변환 기록을 임시 보전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보전된 자료에는 이상한 공백이 있었다. 원점 창설 이후의 기록은 빼곡했지만, 창설 이전에 존재했던 첫 번째 대응망의 기록만 통째로 분리돼 있었다.
에반이 빈 목록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서부터 모든 사기가 시작된 거군요.”
“정확히는 여기서 원래 있던 것을 없는 척하기 시작한 거죠.” 유나가 말했다.
마지막 창에는 ‘원점 이전의 응답망’이라는 말 대신 작은 세 글자가 있었다.
[초기 명칭: 귀가선]
[기능: 길 잃은 사람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고 돌아갈 길을 알려 주는 장치]
재하는 낯익은 단어 앞에서 오래 멈췄다. 노아가 종이배에 적었던 ‘필요하면 타세요’라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그 장치는 처음부터 사람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한 길이었다.
라엔이 흰 장갑을 벗었다. 그 아래 손목에는 아주 오래된 구리 고리가 채워져 있었다. 고리 안쪽에는 아홉 개의 작은 매듭이 새겨져 있었다.
“돌아갈 길을 주는 일은 위험하다.” 라엔이 말했다. “돌아가지 않는 자까지 모두 구해야 한다는 질문이 생기니까.”
재하가 되물었다. “그래서 질문 자체를 지워 버렸습니까?”
라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동의가 아니었다. 다만 처음으로 한 번에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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