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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80화
PAYLUA ORIGINAL · 제180화

180화. 회신이 도착한 뒤에 해야 할 일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292자

오프라인 책장
제9 항로를 열어 놓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윤재하는 새로운 권능을 얻었고 징수관 베르의 강제 계약을 멈췄으니 이제 모두가 박수를 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있는 선로는 여전히 한쪽이 무너져 있었고, 유역 기록실의 배수관은 수리가 필요했다. 검은 우편열차의 보관차는 한 번에 모든 역에 정차할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 편지를 보낸 사람들이 새 회신 절차를 실제로 원할지 확인해야 했다. “기적을 얻었는데 왜 일이 늘죠?” 하율은 공사 도면을 펼쳤다. “기적 덕분에 문제가 보인 거죠. 문제를 해결하려면 작업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런 현실적인 답변이 싫어요.” 마르타가 가시골에서 가져온 빵을 내려놓았다. “그럼 빵 드세요. 배고플 때는 그런 말을 더 많이 하더라고요.” 재하는 말없이 두 개를 집었다. 신이라서 굶어 죽지는 않지만 맛있는 건 먹을 수 있었다. 그 소소한 권리가 은근히 소중했다. 중앙 승강장에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물새골의 소미는 수로 경보 장치 기록을 가져왔고, 하백은 자신이 과거에 끊었던 뗏목의 줄을 보존할 방법을 물었다. 유나는 검은 열차의 원본 보관 규칙을 수정했다. 에반은 사람들이 접수 절차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한 안내문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모든 걱정을 한 번에 해결’ 같은 문구를 넣지 않았다. 대신 ‘못 하는 일은 못 한다고 설명합니다’라고 썼다. “마케팅 전문가로서 자존심은 괜찮아요?” 재하가 물었다. “충분히 아픕니다.” 에반이 말했다. “하지만 이제 과장 광고보다 다시 찾아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그 말을 처음부터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면 저는 지금 다른 악마들과 승진 경쟁을 하고 있었겠죠.” 릴리는 임시 상담 자리를 만들었다. 어느 편지가 구조 요청인지, 어느 편지가 가족의 소식인지, 어느 편지가 단순히 들어 달라는 말인지 구별하려면 실제 사람이 필요했다. 천계에서 내려온 자동 분류기는 여전히 편지의 내용과 책임의 소유권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자원한 보관인과 지역 대표들이 함께 내용을 확인하기로 했다. 세리아는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 규칙을 특별히 강조했다. 편지를 발견했다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었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신도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의뢰인이 없는 옛 기록은 공공의 위험과 관련된 경우에만 필요한 부분을 익명으로 공유하도록 했다. 모나는 그 규칙에 사소한 항목을 하나 더 붙였다. ‘모르는 것을 완료라고 쓰지 말 것.’ “이 문장은 제가 벽에 크게 붙이겠습니다.” 재하가 말했다. 베르에 대한 조사는 계속됐다. 징수관들은 서류를 제출해야 했고, 예전의 징수 기록이 실제 피해로 이어진 지역을 확인해야 했다. 베르는 중앙 승강장 운영권을 잃었지만 필요한 증언을 하겠다고 했다. 재하는 그에게 편지를 정리하는 일을 맡기자는 제안을 반대했다. 아직 책임 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사람이 피해 기록을 직접 관리하게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베르는 서명된 계약이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하는 공개 증언에 참석했다. 그는 어쩐지 말수가 줄었다. 그가 몇 번이나 자기 이름을 변명 대신 증거 옆에 적는 걸 보며 에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잘못된 제도가 어떻게 자랐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같은 편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하백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모나가 찾아낸 기록에는 그날 함께 뗏목을 탔던 사람들의 후손이 사는 마을이 있었다. 그는 방문 전에 편지를 보냈다. 사과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원한다면 만나고 싶다고. 답장을 받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재하는 서둘러 다음 결말을 말하지 않았다. “혼자 가도 되겠습니까?” “제가 가야 할 길이에요.” 하백은 웃었다. “나중에 어려우면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그때는 받으실 수도 있고 못 받으실 수도 있겠죠.” “가능하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말이면 돼요.” 아홉 손의 돌판은 원래 보관 장소에 남았다. 천계 중앙청은 유물을 가져가 공식 역사로 편입하고 싶어 했지만, 모나와 주민 대표들이 우선 현지 보존을 요구했다. 돌판에는 ‘하나의 신’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기 전의 사람들 목소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복제본을 만들되 원본을 옮기기 전에 공개 논의를 하기로 했다. 그날 늦은 오후, 재하는 신전으로 돌아왔다. 계단 위에는 노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재하에게 묻지도 않고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제가 쓴 편지예요.” “누구한테?” “미래의 저요.” 재하가 긴장했다. 지난번 미래 편지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났던 터였다. “이거 열면 또 제가 서명해야 하는 거 아니죠?” “아니요. 열지 않아도 돼요. 그냥 열 살 때 제가 뭘 생각했는지 나중에 알고 싶어서요.” 재하는 잠시 편지를 바라봤다. 예측국은 미래의 사람에게 현재의 책임을 강요하려 했다. 노아는 미래의 자신에게 작은 기억을 남기려 했다. 종이의 생김새는 비슷했지만 뜻은 달랐다. “좋네. 그럼 보관 날짜만 적어 두자.” “신님도 써 보세요.” “내일의 나한테?” “네. 마음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재하는 웃으며 작은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쓰려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아직 적을 말이 없었다. 노아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럼 나중에 쓰면 돼요.” 그 말이 꼭 새로운 권능의 설명처럼 들렸다. 재하는 그제야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대답’은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었다. 대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지켜 주는 힘이었다. 시범 운용 첫날에는 뜻밖의 착오가 있었다. 작은 농장에서는 새 편지함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도구 대여 신청서를 보냈다. 담당 보관인은 구조 요청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송하려 했다. 하지만 농장 주인은 비가 오면 무너질 담을 고치려면 삽이 필요하다고 적어 놓았다. 서류의 제목보다 실제 상황이 중요했다. 유나는 반송 결정을 보류하고 현장에 전화처럼 이어지는 통신관으로 내용을 다시 물었다. “지금 위험한가요, 아니면 비가 오기 전에 준비할 시간이 있나요?” “오늘은 괜찮아요. 하지만 이틀 뒤 큰비가 온다고 해서요.” “그럼 긴급 구조가 아니라 예방 작업 요청으로 분류하겠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장비를 빌릴 수 있는지 확인하고, 못 구하면 못 구했다고 알려 드릴게요.” 농장 주인은 한참 뒤에 감사하다고 답했다. 요청을 거절당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누가 무엇을 확인하고 있는지 알게 된 점이 좋다고 했다. 재하는 그 말을 회의록에 기록했다. 그는 여전히 이렇게 평범한 일이 신계의 커다란 개혁처럼 취급되는 것이 어이없었다. 두 번째 착오는 더 곤란했다. 한 마을의 담당자가 자기가 받은 편지를 전부 ‘완료’로 표시한 것이다. 그에게는 악의가 없었다. 처리를 맡기기만 하면 완료가 되는 줄 알았다. 유나는 다시 절차를 설명했고 담당자는 표시를 하나하나 고쳤다. 소미는 작은 예시 표를 만들었다. 물이 새는 집에서 신고가 오면 ‘접수’, 수리공에게 알리면 ‘전달’, 도착해서 상태를 살피면 ‘현장 확인’, 실제로 수리가 끝나면 ‘작업 완료’, 집주인이 결과를 확인하면 ‘확인 완료’. 어느 한 단계도 다른 단계로 속일 수 없었다. “이것도 너무 복잡하지 않나요?” 재하가 물었다. “실제 일이 원래 그렇게 나뉘어 있어요.” 하율이 대답했다. “복잡한 일을 종이에서만 단순하게 보이게 만들면 현장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셋째 날에는 아예 회신을 원하지 않는 편지가 들어왔다. 발신자는 자기 마음을 적어 놓을 곳만 필요하다고 했다. 누군가가 읽었는지 표시해 주는 것도 싫다고 적었다. 보관인들은 당황했다. 읽지 않으면 분류가 안 되고, 읽으면 발신자의 뜻을 어길 수 있었다. 세리아는 발신자가 제시한 조건대로 봉인 보관한 뒤 정해진 기간에 반환하거나 파기하는 별도 절차를 만들자고 했다. 모두가 그 방식에 동의한 건 아니어서 작은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그 편지를 멋대로 펼쳐 읽지는 않았다. 재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대답’은 특별한 순간에만 쓰는 힘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빈칸을 자꾸 대신 채우려는 습관을 멈추게 하는 일상이었다. 새 권능이 반짝이는 금빛으로 보이지 않아도, 그런 선택이 쌓이는 동안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의 말을 되찾았다. 가시골의 신전도 달라졌다. 신도들이 모이는 자리와 주민들이 쉬는 자리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던 예전 방식 대신, 신앙 모임에 참여하지 않아도 물을 마시고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릴리는 신전에서 기도하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예배 시간을 안내했고, 쉬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담요를 건넸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기록에 차별이 생기지 않게 했다. 노아는 출입문에 작은 그림을 붙였다. 물컵 그림 옆에는 ‘누구나’, 기도하는 두 손 그림 옆에는 ‘원하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재하는 그림을 보며 문득 처음 신도가 0명이라는 창을 바라봤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 자신은 숫자 하나를 늘리는 일에 매달렸었다. 이제는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도 이 신전에서 편하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며칠 뒤 유나에게서 첫 번째 새 보고서가 도착했다. 제9 항로의 시범 운영을 통해 다섯 건의 긴급 요청이 현장에 전달됐다. 두 건은 구조가 완료됐고, 한 건은 현장 접근이 어려워 대기 중이었다. 나머지 두 건은 아직 발신자 동의 범위를 확인하는 단계였다. 재하는 ‘다섯 건 해결’이라고 쓰고 싶은 유혹을 누르고 정확히 옮겨 적었다. [접수: 5건.] [현장 전달: 5건.] [구조 완료: 2건.] [진행 중 및 확인 중: 3건.] “옛날에는 이렇게 쓰는 게 왜 어려웠을까요?” 릴리가 물었다. “완료 숫자가 크면 성과가 좋아 보이니까요.” 에반이 대답했다. “그게 저를 먹여 살린 기술이었습니다.” “요즘은요?” “정확한 숫자로 먹고살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재하는 그 말에 웃었다. 처음에는 신도가 0명이라서 신격이 소멸한다고 했다. 그래서 누구든 믿어 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사람을 신도로 세는 것보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듣는 일이 먼저라는 사실을 배웠다. 신도는 누군가를 소유하는 숫자가 아니었다. 그날 밤, 새로 열린 제9 항로에서 마지막 시험 편지가 도착했다. 봉투는 아주 얇았다. 겉에는 발신인도 없었고 천계의 도장도 없었다. 그러나 유나는 그것이 오래된 기록의 복제본이 아니라 실제 새로운 편지라고 확인했다. 도착 시각이 정확했고 종이의 보관 이력에도 빈칸이 없었다. “주소는요?” 재하가 물었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해요. 이곳의 문자가 아니에요.” 재하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익숙한 한글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지구의 글씨가 그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윤재하를 신으로 보낸 사람에게.’ 재하는 여러 번 읽었다.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었다. 자신을 신으로 만든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발신인 칸에는 이름 대신 네 자리 숫자와 작은 문장이 있었다. [발신자: 응답 후보 000001과 동일한 지구 경로.] [전달 의사: 본문 열람 전 수신인 확인 요망.] 릴리는 재하가 봉투를 열려다가 멈추는 걸 보았다. “신님, 이번에도 바로 읽지 않으시네요.” “편지에 제 이름이 있다고 제 편지는 아니니까요.” 재하는 유나에게 보관 절차를 물었다. 자신을 보낸 사람에게 닿는 편지를 함부로 가로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편지가 도착했다는 사실만은 자신의 과거와 깊이 연결돼 있었다. “수신인이 누군지 확인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 사람이 실제로 있는지도요.” 신성 창이 조용히 떠올랐다. [새로운 응답 경로 발견.] [목적지: 지구.] [경로 상태: 보류. 발신인 권리 확인 필요.] 이제 그는 보류라는 글자를 보고도 두렵지 않았다. 모든 대답을 당장 내릴 필요는 없었다. 다만 묻지 않은 채 누군가의 선택을 대신해 버려서는 안 됐다. 재하가 봉투를 다시 돌려주자 노아가 물었다. “또 다음에 어디 가요?” “아마도 내가 살던 곳 이야기겠지.” “그럼 신님, 거기 가면 빵집도 있어요?” 재하는 웃었다. “있지. 그런데 거기는 계산하고 사야 할걸.” “여기도 계산하고 사는데요.” “아, 그렇구나.” 릴리가 고개를 저었다. “신님은 신이 되기 전에도 생활력이 없으셨던 모양이에요.” “유감스럽게도 그건 신격 승계로도 해결이 안 되네요.” 가시골에 웃음이 퍼졌다. 먼 밤하늘에서는 검은 우편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종착역이 정해지지 않은 편지를 억지로 떠밀지 않았다. 각각의 편지가 자기 길을 찾을 때까지 열차는 천천히 달렸다. 그날 재하는 새로운 장부 첫 장에 아주 짧은 문장을 적었다. ‘대답은 의무가 아니다. 그러나 들었다면, 들었다고 정확히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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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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