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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79화
PAYLUA ORIGINAL · 제179화

179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대답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219자

오프라인 책장
제9 항로의 마지막 회신은 답변이 아니었다. 윤재하는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동안 많은 신이 사람들의 기도에 ‘들었다’는 표시를 보냈고, 천계는 그것을 업무 완료로 계산했다. 그런데 정작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고객센터에서 ‘접수되었습니다’를 ‘해결되었습니다’로 바꿔 놓았다는 거죠.” “그 비유는 대체로 맞아요.” 에반이 말했다. “제가 아주 오랫동안 팔아 온 서비스 설명이기도 하고요.” 유나는 마지막 회신의 봉투를 원본과 나란히 놓았다. 같은 종류의 실로 꿰맨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두 봉투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다. 하나는 강가 사람들이 사용하던 거친 종이였고, 다른 하나는 그 종이를 보존하기 위해 훗날 만든 우편 봉투였다. “문장을 처음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녀가 말했다. “다만 그 말이 원래부터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라는 뜻이 아니라, ‘당신의 말을 듣고 전달하겠습니다’라는 뜻이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어요.” 세리아는 유역 기록실의 돌판과 저울의 개조 계약서를 대조했다. 돌판에서는 아홉 사람이 서로의 선택을 남겨 두라고 했는데, 개조 계약서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수락할 수 있게 했다. 두 문서가 같은 약속을 뜻할 수는 없었다. 모나가 중앙 승강장에 놓인 작은 종을 들었다. “오랫동안 이 종은 신이 대답했다는 표시로 울렸어. 그런데 처음에는 사람이 편지를 받아 다른 사람에게 가져가겠다는 뜻이었지.” “그럼 이제 종을 어떻게 울려야 합니까?” 재하가 물었다.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9 항로는 신앙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길이어야 했다.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는 방식을 한 신이 마음대로 정한다면 다시 같은 문제가 생긴다. 그는 유나, 릴리, 하백, 소미 그리고 현장 보조들을 불러 작은 회의를 열었다. 중앙 승강장에 앉을 의자가 부족해 몇 사람은 빈 우편 자루를 깔고 앉았다. 카르도가 군용 의자를 가져왔지만 너무 크고 무거워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전쟁신님의 가구는 왜 전부 전투용이에요?” “전쟁 중에는 튼튼한 게 중요하다.” “회의 중에는 문으로 들어오는 게 더 중요합니다.” 회의의 첫 안건은 원본 편지를 어떻게 보관할지였다. 유나는 각 발신자가 원한 것이 서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어떤 사람은 공개적으로 구조를 요청했고,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만 전해 달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누가 썼는지 모르게 하기를 바랐다. 원본을 한꺼번에 공개하면 다시 피해가 생길 수 있었다. 소미는 “위험 장소와 대피로처럼 모두 알아야 하는 정보는 먼저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백은 “수백 년 지난 기록도 누군가 찾고 있을 수 있으니 임의로 없애지 말자”고 제안했다. 릴리는 “도움을 거부할 권리와 그 거부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구분해 기록하자”고 했다. 세리아는 각 제안이 실제로 어떤 책임을 만들지 확인했다. 재하는 종종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회의가 길어져서였다. 하지만 자신이 한 문장으로 결론을 내면 회의가 빨리 끝나는 대신, 그 문장을 실행할 사람들이 빠질 수 있었다. 그는 대신 질문을 했다. “편지를 읽은 뒤 바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표시하죠?” “읽음, 전달함, 확인 중, 구조 진행, 마무리 후 확인 같은 단계를 나누는 건 어떨까요?” 유나가 답했다. “완료라면 정말 완료됐는지 보내는 사람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해요.” 소미가 덧붙였다. “보내는 사람이 이미 떠났거나 찾을 수 없다면요?” 하백이 물었다. “그때는 완료라고 하지 않고 확인할 수 없는 이유를 남겨야죠.” 릴리가 말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답이었지만 지금껏 수많은 계약서에서 빠져 있던 항목이었다. 베르는 승강장 끝에서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는 징수관으로서의 권한을 당장 잃지는 않았다. 강제 배정 조항이 정지됐을 뿐, 과거에 어떤 계약으로 피해를 줬는지 조사받아야 했다. 그는 회의에 참석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원본 관리 결정에 대한 투표권은 받지 못했다. 이해충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발언할 수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 “네. 사실 관계에 필요한 내용은 말해 주세요.” 세리아가 말했다. 베르는 천계가 미응답 기록을 통해 운영 자금을 확보한 경위를 설명했다. 문제를 빨리 처리할수록 자금이 줄어드는 구조가 있었다. 그래서 부서는 일부 편지를 처리하지 않고 오래 남겨 두었다. 요청의 내용보다 미응답 기간이 더 높은 가치를 갖는 상품이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저희가 편지를 많이 잃은 게 아니군요.” 유나가 낮게 말했다. “일부는 일부러 늦게 보내졌어요.” 베르는 인정했다. 그는 변명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부를 내려놓았다. 재하는 그가 협조한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실제 위험을 줄일 자료가 생겼다는 사실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새 제도를 시험하자는 말이 나오자 곧장 반대 의견도 나왔다. 작은 도시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여성이 말했다. 자신은 여관 문 앞에 구조 연락함이 설치되는 게 싫다고 했다. 긴급 연락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모든 사람이 여관을 찾아와 자신을 호출하면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럼 그분한테 연락하지 않으면 되죠.” 재하가 말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소미가 대답했다. “여관이 길목에 있으니까 표지판만 봐도 사람들이 그쪽으로 갈 수 있어요. 장소 안내와 도움을 맡는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원한 건 마을 사람들을 외면하는 일이 아니었다. 대신 여관 옆의 공공 광장에 연락함을 놓고 주민들이 교대로 확인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새 연락함을 누가 수리할지, 위험한 밤에는 누가 확인할지도 함께 정했다. 이어서 다른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는 편지를 직접 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글씨를 읽을 수 없으면 이 새 제도를 어떻게 이용하느냐고 물었다. 릴리는 지역별 구두 접수 창구를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가 드러났다. 접수자가 말을 잘못 옮기면 발신인의 뜻이 바뀔 수 있었다. 유나는 원문 그대로 기록하고, 발신인에게 다시 들려주는 확인 절차를 설명했다. 발신인이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미확인’ 표시를 남기기로 했다. 처리 완료라고 적지 않는 원칙이 여기에도 적용됐다. 에반은 그림과 색으로 된 안내판을 제안했다. 그는 안내판을 그리면서 자꾸 화려한 문구를 넣으려 했지만 마르타가 지워 버렸다. “설명이 먼저죠. 사람 눈을 끄는 건 나중이에요.” “광고 전문가의 재능을 너무 무시하시는군요.” “좋은 재능이면 필요한 사람을 먼저 찾는 데 쓰세요.” 에반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는 글씨를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직접 안내판을 보여 주고 무슨 뜻으로 보이는지 물어봤다. 몇몇 그림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르게 해석됐다. 불꽃 그림이 ‘위험’이 아니라 ‘모닥불 있는 휴식처’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여러 번 다시 그렸다. 하백은 오래된 편지가 이미 해결된 사건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유나는 기록을 ‘완료’로 바꾸되 원래 확인받지 못한 사정을 덧붙이고, 필요하면 후손에게 소식을 전하자고 했다. 그러나 후손이 과거의 상처를 다시 듣고 싶지 않다면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선택도 남겨야 했다. “그렇다면 확인하지 못한 질문도 영원히 남을 수 있겠네요.” 하백이 말했다. “그럴 수 있어요.” 릴리가 대답했다. “모든 질문에 우리가 대답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모나가 오래된 작은 종을 탁자 위에 올렸다. 그 소리는 첫 번째 정차역에서 들었던 종과 같았다. 그러나 종을 울리는 사람은 모나가 아니라 주민 대표였다. 어떤 단어를 붙이고 어느 상황에서 사용할지 지역이 결정하게 했다. 종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종이 전달하는 뜻을 사람이 다시 정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재하는 회의록을 읽다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처음엔 모든 안건을 하나의 멋진 선언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건 여관 주인의 쉬는 시간,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의 접수 방법, 오래된 상처를 다시 말할지 결정할 권리 같은 구체적인 문제들이었다. 이 작은 차이를 무시하는 순간 커다란 정의라는 말도 누군가를 압박하는 도구로 변할 수 있었다. 세리아는 의견 중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을 별도로 남겼다. 중재가 필요한 안건은 다음 회의로 넘겼고, 임시 운영에 동의한 지역부터 시범 절차를 시작했다. 모든 지역의 동의를 이미 얻었다는 문구는 쓰지 않았다. 재하는 그 문장을 보며 짧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찬성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네요.” “동의한 범위에서요.” 세리아가 대답했다. “바로 그 조건이 중요합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노인이 다시 나타났다. 제9 항로 입구에서 빈 우편 자루를 끌던 그 노인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오래전에는 나도 이름이 있었지. 지금은 배달이 끝나면 아무 이름도 남기지 않으려 해.” “왜요?” 재하가 물었다. “한번은 내가 옮긴 편지 때문에 사람 하나가 살았어. 사람들이 나를 영웅이라고 불렀지. 그런데 그다음부터 누군가가 도와주면 전부 내 이름으로 기록되더구나. 내가 하지 않은 일까지.” “그럼 그 사실을 고치면 되죠.” “그래. 그래서 이 항로에 남았어. 사람마다 누가 도왔는지 다시 나누어 쓰려고.” 노인은 재하가 처음 들어올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누구도 대신하지 않고 확인하러 왔다는 말이었다. 그는 그동안 그 말을 들은 신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재하는 그것을 자신의 공적으로 기록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처음인지 여부가 아니었다. 그때 종이 울렸다. 긴급 신호가 아니었다. 중앙 승강장 아래에 있는 작은 인쇄 장치가 작동하면서 종을 한 번 울렸다. 주민들이 새로 정한 방식이었다. [새 접수 방식 시범 운영.] [요청 접수와 처리 완료는 별개의 상태입니다.] [개인의 동의 없는 책임 이전 금지.] 재하는 창을 바라봤다. 그동안 자신에게 나타나던 신성한 숫자 대신, 이번에는 아주 구체적인 업무 절차가 보였다. 조금은 김이 샜다. 엄청난 권능이 나타날 순간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스템 이름 정도는 멋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늘을 가르는 응답의 검’ 같은 거.” 릴리가 말했다. “검이 아니라 편지함인데요.” “그러면 ‘무한 응답의 신성한 우체통’…….” “신님, 그냥 우체통이라고 부르세요.” 새 안내문의 맨 아래에는 이 제도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적을지에 관한 논의도 있었다. 에반은 자신의 이름을 빼 달라고 했다. 과거의 잘못 때문에 누군가 서비스 이용을 꺼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세리아는 운영 책임자의 이름과 역할을 숨기는 것도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말했다. 결국 에반은 홍보 지원을 했다는 사실만 기록하고, 문서의 최종 책임자는 실제 담당자가 맡기로 했다. 재하는 자기 이름을 가장 위에 넣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신의 후원이 있을 수는 있어도 모든 지역의 결정을 자신이 대표할 수는 없었다. 마르타는 그 장면을 보고 웃었다. “신님, 이름을 안 넣어도 사람들이 고맙다는 건 알아요.” 재하가 대답했다. “그럼 빵값도 좀 깎아 주십니까?” 마르타는 정색했다. “그건 별개예요.” 한동안 승강장에 웃음이 퍼졌다. 책임을 나누는 회의가 반드시 무거운 얼굴로만 진행될 필요는 없었다. 유나는 임시 편지함 위에 작은 빈 종이 한 장을 걸었다. ‘바꾸고 싶은 점이 있으면 적어 주세요.’ 처음에는 아무도 글씨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곧 한 보관인이 펜을 들고 ‘혼자 야간 근무를 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적었다.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반송할 때 이유를 알려 주세요’라고 썼다. 에반이 종이를 떼어 새 홍보물에 싣겠다고 하자 유나는 먼저 쓴 사람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도를 고치는 첫날부터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무단으로 가져갈 수는 없었다. 작고 서툰 요청도 그 말을 한 사람의 것이었다. 그때 오랫동안 잠잠하던 재하의 신성 창이 다시 떠올랐다. 문구는 이전과 달랐다. [권능명: 아직 정해지지 않은 대답.] [활성 조건 확인: 본인이 답하지 않은 질문을 본인 의지 없이 처리 완료로 만들 수 없습니다.] 재하는 창을 오래 바라봤다. 그것은 전능의 기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답하지 않은 상태를 그대로 남겨 두는 힘이었다. “이런 권능으로 뭘 할 수 있죠?” 유나가 옆에서 말했다. “이제 누군가가 사람들의 침묵을 마음대로 팔아 버릴 수는 없겠죠.” 그 말에 재하는 처음으로 창의 이름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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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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