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 항로라는 이름은 지도에 없었다.
지도 제작자가 게으르거나 잉크를 아껴서가 아니었다. 천계의 공식 운송 규정에는 항로가 여덟 개뿐이라고 명시되어 있었고, 그 뒤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아홉 번째 항로에 관한 문의는 접수하지 않습니다.]
“문의하지 말라니. 있기는 있다는 뜻 아니에요?”
윤재하가 규정집을 덮자 릴리가 건너편에서 찻잔을 밀어 주었다.
“신님, 그 문장 바로 아래는 읽으셨어요?”
“작은 글씨는 제 천적입니다.”
“제9 항로를 언급하는 행위는 실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인정에 따른 모든 수신 책임은 언급자에게 이전된대요.”
“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아홉 번째 항로가 있다고요.”
“취소. 항로 아니고 오이로입니다. 오이가 아홉 개.”
가시골 신전의 회의 탁자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니, 마르타만 웃었다. 빵을 굽는 사람은 그날 새벽 여섯 시간 동안 세금 고지서 같은 규정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아니었다.
탁자 위에는 검은 우편열차의 마지막 봉투가 놓여 있었다. 발신 시각은 ‘기록 이전’. 수신인은 ‘편지를 읽은 모두’. 회신은 하나였다.
[읽었습니다. 이제 당신들이 답할 차례입니다.]
최근 예측국이 만들어 낸 가짜 미래 편지를 막은 참이었다. 그러나 이번 문서는 달랐다. 예측 장부의 획도, 천계의 봉인도 없었다. 우편 보관인 유나가 확대경으로 살핀 종이의 섬유에는 오래된 강바닥에서 나는 흙냄새가 배어 있었고, 가장자리의 작은 구멍들은 기계의 바늘 간격과 달랐다.
“누군가 꿰매서 보관했던 종이예요.” 유나가 말했다. “봉투보다 오래된 실이 안쪽에 남아 있어요. 봉투를 위조했다고 해도 실의 이동 경로까지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세리아가 손을 들었다. “오래됐다는 사실과 진짜 최초의 회신이라는 결론은 다릅니다. 우리가 아는 건 출처가 불명확하다는 사실까지예요.”
“맞아요. 이번에는 모른다는 걸 확실히 알고 시작합시다.”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은 창문을 열어 먼지를 털었다. 악마에게도 먼지 알레르기가 있냐고 물으면 그는 언제나 ‘불쾌한 기억에 대한 알레르기’라고 답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말이 적었다. 천계 우편 계약의 초기 광고문을 쓴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여러 번 책임을 인정했지만, 어떤 수치심은 고백했다고 사라지는 종류가 아니었다.
“우편열차가 제9 항로로 들어가려면 정차 구역이 있어야 합니다.” 에반이 입을 열었다. “공식 기록에서는 지운 역입니다. 제가 예전에 검토한 계약서에는 ‘막차가 서지 않는 플랫폼’이라고만 적혀 있었어요.”
“왜 지웠습니까?” 카르도가 물었다.
“답장을 배달한 뒤에도 보관인이 책임을 끝내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보내는 사람이 없고 받는 사람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소유권을 붙일 대상이 없었죠. 천계는 소유권을 붙일 수 없는 일을 아주 싫어합니다.”
“참 특이한 취향이군요.” 재하가 중얼거렸다. “사람은 좋아하고 소유권은 싫어할 수도 있는데.”
회의가 끝날 무렵, 노아가 신전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릴리의 동생은 이제 열이 없었고, 밖에서 달리다가 무릎을 까질 만큼 건강해졌다. 어른들은 그의 새 상처를 보고 종종 한숨을 쉬었지만 릴리는 그것을 살아 있다는 증거로 여겼다.
“누나, 역을 찾으려면 이거 보면 되는 거 아니야?”
노아가 펼친 것은 그림이었다. 그는 검은 열차가 밤에 지나갈 때마다 지붕에서 바라보았다. 그림 한쪽에 철길은 여덟 갈래로 갈라졌고, 마지막 선로는 끊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너머에 노아는 작은 돌계단 세 칸을 그려 놓았다.
“저 돌계단은 네 상상 아니야?” 릴리가 물었다.
“아니. 열차가 안 보일 때 종이 세 번 울렸어. 종이 울리는 쪽에 계단이 있었어. 빛이 없는 곳인데 계단만 젖어 있었거든.”
재하는 유나를 바라봤다. 유나의 얼굴이 굳었다. 보관차 안에 있는 오래된 근무 수칙에도 ‘젖은 계단이 보이면 종을 치지 마라’라는 경고가 있었다.
계곡으로 출발하기 전, 신전은 작은 소동에 휘말렸다. 새로 바꾼 응답 절차를 시험한다며 각 지역에서 확인 요청을 한꺼번에 보내 온 것이다. 어떤 편지는 실제 위험에 관한 정보였지만 어떤 것은 ‘나중에 답해도 된다’고 적혀 있었고, 또 어떤 것은 단순히 상대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유나는 마지막 줄을 유심히 읽었다. 언제까지 답해야 하는지 적혀 있지 않은 편지에 기한을 마음대로 설정하면 예측국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우선 긴급한 것부터 확인해 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다고 급하지 않은 사람의 편지를 버리지는 말고요.”
노아는 우편 바구니에 색깔별 끈을 묶었다. 빨간 끈은 현장에 위험이 있다는 뜻, 푸른 끈은 전달만 해도 되는 소식, 흰 끈은 발신자 의사를 확인해야 하는 문서였다. 에반은 이를 보고 사흘 동안 광고 문구를 만들 수 있겠다고 했다. 릴리는 끈의 의미가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전달되도록 작은 그림을 그려 붙였다. 글씨를 모르는 사람이 위험에서 빠지면 분류가 아무 소용없었다.
“아까부터 신전이 우체국 같아요.” 노아가 말했다.
“그렇지?”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난 신전에 큰 제단부터 세울 줄 알았는데.”
“제단 세우면 빵 놓을 자리만 늘잖아요.”
“빵은 중요하지.”
마르타가 밀가루 묻은 손으로 문을 밀고 들어왔다. “빵집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방금 새로 받은 장부에 제 빵 세 상자가 적혀 있네요. 난 두 상자만 보냈어요.”
유나는 즉시 수량을 대조했다. 잘못된 숫자 한 개가 재고를 늘리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가 세 상자를 받았다고 믿으면 실제로 남아 있어야 할 한 상자를 찾으며 시간을 허비할 수 있었다. 재하는 자기 몫으로 덜어 놓은 빵을 보여 주었다가 눈총을 받았다. “제가 먹은 건 별도로 적어 두겠습니다.”
이 사소한 오류를 바로잡는 동안, 세리아는 검은 봉투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구멍 사이에 낀 희미한 파란 실이었다. 실을 여러 줄 겹쳐 만든 매듭은 해상 운송에서 짐을 묶을 때 쓰던 형태와 닮아 있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편로가 하늘이 아니라 강길과 연결됐던 시기를 추정할 수 있었다.
“제9 항로가 원래 철로가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하율은 그 말을 듣고 창문에 걸린 오래된 지형도를 확인했다. 현재의 철길 아래로 예전 강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가시골의 물길은 수백 년 전에는 반대 방향으로 굽었고, 침수 위험이 높은 지역에는 지금도 강바닥 같은 잔돌이 남아 있었다.
“젖은 계단도 수로를 오르내리던 선착장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아의 그림이 정확하다면요.”
노아는 자기가 그린 계단 세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저기였어요. 종 세 번 울린 곳.”
카르도가 아이에게 물었다. “혼자 그곳에 갔느냐?”
“아뇨. 신전 지붕에서 봤는데요?”
“잘했다. 밤에 낯선 곳에 혼자 가지 마라.”
재하는 카르도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웃었다. 전쟁신이 어린아이에게 안전 교육을 하는 모습은 여전히 낯설었다. 노아는 카르도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럼 검도 혼자 뽑지 마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에반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출발 준비는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일행은 누가 어떤 자료를 들고 가는지 목록을 남겼고, 돌아오지 못할 경우 마을에 알릴 담당자를 정했다. 재하가 ‘신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 농담하자 릴리는 그가 지난달 창고 안에서 출입문을 못 찾아 헤맨 일을 상기시켰다. 그는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앞에 가는 사람과 가장 뒤에 가는 사람이 일정 간격마다 서로 보이는지 확인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떠난 일행의 가방에는 봉투 한 장보다 훨씬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밧줄, 물통, 등불, 기록 사본, 붕대, 그리고 마르타의 빵이었다. 신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밀을 찾아가는 길에 빵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재하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 손으로 들고 가겠다고 한 물건의 무게를 누군가에게 넘기지는 않았다.
그날 오후, 일행은 노아가 그린 방향으로 향했다. 신전과 멀지 않은 계곡이었다. 예전 수로를 따라 자란 은빛 갈대가 바람에 누웠고, 땅에는 오래된 마차 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다. 철로는 없었다. 하지만 지면을 파 보니 검은 자갈과 녹슨 쇠붙이가 간헐적으로 발견됐다.
하율은 발밑의 경사를 측정하며 말했다. “계곡의 자연 배수 방향과 자갈층이 다릅니다. 철길을 걷어냈어도 토목 흔적은 남아요.”
“그런데 계단은 왜 안 보이죠?” 재하가 묻자 카르도가 턱짓했다.
“누군가 지나간다.”
계곡 저편에서 짐을 실은 수레 한 대가 오고 있었다. 끄는 사람은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팬 노인이었다. 짐칸에는 빈 우편 자루만 잔뜩 쌓여 있었다. 바퀴가 진흙을 밟는데도 자국이 남지 않았다.
“혹시 역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재하가 물었다.
노인은 멈춰 섰다. “어느 역?”
“제9 항로…… 아니, 젖은 계단이 있는 곳이요.”
“비어 있는 곳엔 역이 없어.”
“그럼 저 자루는 어디로 가져가세요?”
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받을 사람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들을 돌려놓으러.”
유나가 앞으로 나섰다. “반송인가요?”
“반송은 주소가 있을 때나 하지. 여기 있는 건 주소를 받기 전의 것들이야.”
재하는 질문을 바꿨다. “혹시 누군가 도움을 청했습니까?”
노인이 처음으로 재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렇게 물은 사람은 오래간만이군.”
그는 빈 자루 하나를 내밀었다. 자루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재하가 손을 넣자 찬물이 손끝에 닿았다. 마치 강바닥의 돌에 손을 뻗은 것 같았다.
“이건 뭡니까?”
“오래된 소리.”
바람이 멈추었다. 계곡 아래에서 종이 세 번 울렸다. 한 번은 아주 낮게, 두 번째는 멀리서, 세 번째는 바로 발아래에서 들렸다. 갈대 사이에 젖은 돌계단이 나타났다.
“표를 보여 줘.” 노인이 말했다.
재하가 머뭇거리자 에반이 외투 안쪽을 뒤졌다. 예전 계약서를 비롯한 종이들이 한 아름 나왔다. 유나가 보관인의 증명서를 꺼냈다. 카르도가 군용 통행증을 제시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소유한 걸 보여 달란 뜻이 아니야. 누구 대신 여기 들어오는지 말해.”
재하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검은 열차에 쌓인 사만 이백열여섯 건의 편지가 떠올랐다. 그중 몇 명이나 이들의 방문에 동의했을까. 이름을 안다고 대신할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누구도 대신하지 않습니다.” 재하가 대답했다. “그저 답장이 왔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확인한 뒤 누구에게 알려야 할지는 다시 묻겠습니다.”
노인은 천천히 웃었다. “좋아. 네 표는 그거다.”
유나가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저는 보관 중인 원본이 훼손되지 않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발신인을 대신해 모든 결정을 내릴 수는 없어요.”
“너도 통과.”
릴리는 “실제로 위험한 사람이 있으면 구조에 참여하겠다”고 말했고, 하율은 “시설 상태를 살피되 안전하다고 확인할 수 없는 구간은 멈추겠다”고 밝혔다. 카르도는 잠시 망설이다가 “누가 원하든 무력으로 통행을 강제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에반이 작게 박수를 치다가 바로 카르도의 시선을 피했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에반을 보았다. “너는?”
“과거에 이런 길을 폐쇄하는 문구를 팔았습니다.” 에반이 말했다. “이제는 그 문구가 무슨 피해를 남겼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제 잘못을 남의 허락 없이 지울 생각은 없습니다.”
노인은 자루를 어깨에 메고 계단을 내려갔다. “따라와. 다만 조심해.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건 거짓말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라며 너무 쉽게 내린 대답이니까.”
계단 끝에는 작은 역이 있었다. 천장도 벽도 없는데 플랫폼만 물 위에 떠 있었고, 시계는 열두 시를 가리키면서 초침만 반대로 움직였다. 역명판은 비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종이 아닌 작은 나무 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첫 번째 정차: 질문을 잃어버린 자리.]
갑자기 재하의 신성 창이 깜박였다.
[해당 구역에서는 신도 수, 신앙 포인트 및 신격 서열 표시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뭐야. 또 제 재산이 없어졌어요?”
“재산이 아니라 통계죠.” 릴리가 대꾸했다.
“제가 가진 몇 안 되는 숫자인데요.”
그러나 재하는 곧 창이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신이 된 뒤 처음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표시가 없었다. 앞에 놓인 건 길과, 사람들과, 아직 확인하지 못한 질문뿐이었다.
플랫폼 끝에서 검은 우편열차의 기적 소리가 들렸다. 열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맨 앞의 빈 선로 위로 누군가의 손글씨가 천천히 떠올랐다.
‘도와달라고 했던 사람이 아니라, 듣고도 지나갔던 사람을 찾으시오.’
재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이번 편지는…… 저희에게 편한 질문을 하는 성격이 아닌 모양이네요.”
제17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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