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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70화
PAYLUA ORIGINAL · 제170화

170화. 내일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77자

오프라인 책장
세 번, 그리고 두 번. 누군가 벽을 두드렸다. 미르덴의 시계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지만 윤재하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예측국이 내민 열두 분의 제한보다 벽 너머 사람의 손이 먼저였다. “하율 씨, 어디서 나는 소리죠?” 하율은 벽에 귀를 대고 작은 쇠막대를 두드렸다. 벽 너머에서 같은 위치를 따라 응답이 돌아왔다. 소리는 오른쪽 아래, 오래된 급수관 뒤편이었다. 숨겨진 공간이 있다는 뜻이었다. “문을 찾겠습니다. 일단 여기에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릴리가 벽을 향해 외쳤다. “밖에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할 수 있나요?” 잠시 뒤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있어요. 물이 올라와요.” 재하는 침을 삼켰다. 예측국이 가시골에 예정된 구조 요청이 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미래의 어느 날 발생할 사고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건물 아래에는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기록을 맞히려는 동안 눈앞의 위험을 놓친 것이다. 미르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아래는 폐쇄된 소각 수로입니다. 사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말하고 있잖아요.” 릴리가 대꾸했다. 하율은 급수관의 압력을 확인했다. 물이 빠지는 통로는 막혔지만, 위쪽에는 비상 배수관이 하나 있었다. 문제는 그 관이 예측국의 장비와 연결돼 있어 함부로 열면 발신실의 문서가 물에 잠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원본을 옮겨야 합니다.” 유나가 말했다. “하지만 이 종이들이 원본인지 합성 문서인지부터 구분해야 해요.” “얼마나 걸리죠?” “정확히 하려면 오래 걸립니다.” 재하는 주위를 둘러봤다. 책상마다 미발신 봉투가 떠 있었고, 벽 뒤에서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었다. 둘 다 지켜야 했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사람을 먼저 구합니다. 기록은 가능한 만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남은 것은 물에 젖은 상태까지 증거로 남깁시다. 원본이 사라지는 걸 막으려고 사람이 죽게 둘 순 없어요.”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동의해요.” 세리아가 급히 기록 보존 통을 열었고 에반은 바닥에 널린 종이부터 분류했다. 카르도는 문 가까이에서 무너질 수 있는 벽을 받칠 준비를 했다. 하율은 예측국 장비의 수동 해제 레버를 찾아 움직였다. 미르덴이 막아섰다. “그 레버를 당기면 예정 정산이 취소됩니다. 예측국의 모든 지원 예산이 위험해집니다.” 재하가 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지원 예산이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지키기 위해 지금 사람이 죽게 둘 수는 없습니다. 기록과 생명 중 어느 쪽이 더 소중한지 결정하라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살아 있어야 기록도 의미가 있죠.” 미르덴은 눈을 감았다. 그는 오래전에 구조 정보를 공개했다가 예산을 잃었다고 했었다. 그때 이후로 자신의 제도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만 증명하려 했다. 이제 눈앞에서 다시 선택해야 했다. “레버 옆에 두 번째 손잡이가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정산은 취소되지만 원본의 서명층은 보존됩니다. 제가 숨겨 놨습니다.” 하율이 설명을 확인했다. 두 번째 손잡이는 비상 구조용 우회로였다. 별도의 손잡이를 함께 당기면 물은 밖으로 빠지고 종이 보관실의 습도 유지 장치는 유지되었다. 위험을 만든 시스템 안에도 원래부터 구조를 위한 기능은 남아 있었다. 두 손잡이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 사람이 동시에 당길 수 없었다. 하율이 하나를 잡았고, 미르덴이 다른 하나를 잡았다. 재하는 그 중간에서 시간을 세었다. 카르도는 무너지는 벽을 붙잡았다. 유나는 소리가 나는 곳과 계속 대화했다.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유나가 물었다. “저는 레온입니다. 수로 점검 일을 했어요. 오늘 시설이 잠겨서 못 나갔습니다.” “혼자 계세요?” “아니요. 동료 하나가 발을 다쳤어요.” 그 말을 들은 릴리가 바로 응급 장비를 준비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을 구해야 했다. 벽 너머의 레온은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고 말했다. “셋에 당깁니다.” 하율이 외쳤다. 하나. 둘. 셋. 쇠바퀴가 삐걱거렸다. 오래된 관에서 검은 물이 쏟아졌다. 카르도의 손등에 상처가 났다. 그러나 벽은 더 무너지지 않았다. 하율이 압력계를 확인했다. 수위가 내려가고 있었다. 작은 문이 드러났다. 재하는 문고리를 잡았다가 곧장 손을 떼었다. 문 안쪽으로 물이 남아 있으면 열 때 위험할 수 있었다. 하율이 압력을 다시 확인한 뒤 문을 열었다. 레온과 다친 동료가 차례로 밖으로 나왔다. 릴리는 두 사람에게 담요를 덮어 주고 부상 부위를 살폈다. 재하는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신이라면서 이런 순간에는 겨우 물통을 건네는 일밖에 못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이제 부끄럽지 않았다. 누군가를 구하는 일에 신이 반드시 주인공일 필요는 없었다. 그 순간 발신실의 종이들이 한꺼번에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예정 사건: 불일치.] [예측 정산: 중단.] 열두 분의 시계는 아직 세 분 남아 있었다. 미르덴은 자신의 회중시계를 바라봤다. 바늘이 멈췄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시계를 두드리지 않았다. “내가 예상한 구조 대상은 당신이었습니다.” 그가 재하에게 말했다. “당신이 모든 책임을 수락하도록 갇히게 할 계획이었죠. 그런데 실제로 갇혀 있던 사람들은 내 장비를 점검하던 기술자들이었습니다.” 재하가 숨을 골랐다. “계획이 틀렸네요.” “네. 틀렸습니다.” 그 짧은 대답은 어떤 신탁보다 무거웠다. 자신의 예측이 틀렸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예측국의 관리자. 미르덴은 세리아에게 시계와 내부 장부를 제출했다. 그가 했던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더는 같은 방식을 감추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발신실의 가장 큰 기계에서는 마지막 안내가 떠올랐다. [미래 작성자의 서명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예정 채무 자동 배정 실패.] [기록 원본 보존 전환 가능.] 유나는 원본 보존을 선택했다. 그러나 혼자 서명하지 않았다. 독립 보관인, 마을 대표, 현장 기술자, 감찰관이 각자 맡은 범위를 확인한 뒤 기록을 나눠 보존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사만 이백열여섯 건의 편지를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세리아는 피해 지역별로 실제 구조 요청이 처리됐는지 확인할 명단을 만들었다. 개인정보가 담긴 기록은 공개하지 않고, 위험 장소와 필요한 자원만 공동으로 공유했다. 카르도는 군의 이송망을 무상으로 개방하겠다고 제안했다가 릴리의 눈빛을 보고 얼른 말을 고쳤다. “동의한 지역에만, 필요한 기간 동안 지원하겠다.” 재하는 박수를 쳤다. “전쟁신이 드디어 계약서를 읽습니다.” “그런 칭찬은 하지 마라.” 에반은 발신실 벽에 걸린 광고판을 떼어 냈다. ‘내일의 모든 걱정을 오늘 해결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그 문구가 왜 잘못됐는지 설명하는 보고서를 직접 쓰기로 했다. 실제 재난 대비는 필요하지만, 미래의 걱정을 누군가의 소유물로 만드는 일은 다른 문제였다. 마르타는 마지막 수프 냄비를 씻고 나서도 가게 문을 닫지 못했다. 비가 그친 뒤에도 마을 밖에서 돌아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었다. 그녀는 빵 몇 개를 천으로 감싸 현관에 걸어 두었다. 누가 가져갔는지 적지 않았지만, 다음 날 몇 개가 남았는지는 확인할 생각이었다. 에반이 그 장면을 보고 광고라도 해 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배고픈 사람이 가져가면 돼요. 이름은 몰라도 됩니다.” 재하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미래의 선의를 모두 장부에 묶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가시골로 돌아왔을 때 해가 지고 있었다. 방직 창고는 아직 젖어 있었고 수로는 공사 중이었다. 상황이 단번에 좋아지진 않았다. 그러나 마을의 종은 여섯 번도 일곱 번도 아닌 세 번 울렸다. 실제로 물이 높아진 곳이 있어 주민들이 점검하러 나선 신호였다. 미래의 장부가 아니라 현재의 위험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노아가 재하에게 물었다. “미래 편지는 어떻게 됐어요?” “누군가가 네가 앞으로 쓸 숙제를 미리 적어 놓은 것 같은 거였어.” “그럼 안 하면 되는 거네요.” “숙제는 선생님이 내주면 해야 할 수도 있지. 하지만 누가 네 이름으로 마음대로 약속을 적으면 확인해야지.”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종을 일곱 번 치는 건 아직 안 해도 되죠?” “그건 일곱 번의 의미를 정하는 회의부터 해야 한다니까.” 릴리가 웃었다. 마르타는 따뜻한 수프를 내왔고, 유나는 열차 보관 기록을 확인하러 돌아갔다. 재하는 신전 계단에 앉아 아무것도 쓰지 않은 종이 한 장을 펼쳤다. 미래의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린 결정은 남길 수 있었다. ‘오늘 두 명이 구조됐다. 현장을 확인한 사람들과 구조대가 함께 일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구조 요청을 자기 소유로 삼지 않는다.’ 그는 그 문장 아래 서명했다. 작성 시각은 오늘 저녁이었다. 내일의 날짜를 훔치지 않았다. 그날 밤 재하는 잠시 홀로 신전 지붕에 올랐다. 아래에는 일꾼들이 젖은 길을 정리하고 있었고, 먼 산 너머로 우편열차의 희미한 윤곽이 보였다. 검은 열차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그것이 세상 모든 미배달 기도를 실어 나르는 괴물처럼 보였었다. 이제 그는 그 열차 안에 적힌 수많은 서로 다른 사연을 떠올렸다. 어떤 편지는 이미 처리됐을 수도 있고, 어떤 편지는 지금도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재하는 속으로 말했다. 쉬워 보이는 결론이었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사만 건이 넘는 기록을 대조하고, 원래 발신자가 무엇을 원했는지 확인하고, 이미 해결된 요청을 지우지 않고 완료로 표시해야 했다. 혼자서 할 수 없었고 모든 일을 신의 권능으로 바꿀 수도 없었다. 문득 하늘에 작은 별 하나가 반짝였다. 지구의 밤하늘과 별다르지 않았다. 예전에는 죽어서 신이 되었다는 사실만 기이하게 느꼈다. 이제는 어디에 있든 누군가의 선택을 빼앗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점이 더 기이했다.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과, 사람을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소유하려는 욕심은 아주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릴리가 지붕 아래에서 불렀다. “신님, 내려오세요. 주민회의 회의록이 또 길어졌어요.” “제가 보기 전에 요약본부터 만들어 주세요.” “요약하면 또 중요한 조건을 놓치시잖아요.” “신계의 가장 강력한 적은 작은 글씨군요.” 재하는 웃으며 사다리를 내려왔다. 내일의 일을 모두 알 필요는 없었다. 다만 오늘 확인해야 할 문서는 끝까지 읽어야 했다. 재하는 창문을 닫고 회의록을 다시 펼쳤다. 빈칸이 많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에겐 내일 그 빈칸을 스스로 채울 시간이 있었다. 바로 그때 유나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낮았다. “신님, 검은 열차의 마지막 목적지에 새 이름이 생겼습니다. 예측국의 발신실은 멈췄는데도요.” “또 미래의 편지예요?” “아니요. 이번에는 반대예요. 아무도 발신하지 않았던 편지가, 어딘가에서 답장을 받았습니다.” 유나가 내민 종이에는 익숙한 도장도, 예측국의 붉은 직인도 없었다. 단 하나의 검은 우편인만 찍혀 있었다. [경유처: 제9 항로.] [발신 시각: 기록 이전.] [회신: 읽었습니다. 이제 당신들이 답할 차례입니다.] 재하는 숨을 삼켰다. 미래에서 왔다는 편지의 비밀을 겨우 풀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제9 항로와 기록 이전의 회신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는 종이를 접지 않고 릴리에게 건넸다. 이번에는 혼자 숨기거나 혼자 열어 보지 않았다. “내일 주민회의 안건이 하나 더 생겼네요.” 릴리가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이제 신전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회의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처음 신이 됐을 땐 기적이라도 쓰고 싶었는데.” “지금은요?” 재하는 창밖의 마을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다리를 수리하고, 늦게 돌아온 이웃을 맞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조금씩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은 내일이 누구 소유도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가 처음 신이 되었을 때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던 신성 창이 조용히 바뀌었다. [새로운 권능의 단서가 확인되었습니다.] [권능명: 아직 정해지지 않은 대답.] 재하는 한참 그 글자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름은 좀 짧게 만들 수 없나?” 그의 투덜거림을 들은 신전 사람들은 웃었다. 누구도 그 웃음을 천계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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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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