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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7화
PAYLUA ORIGINAL · 제17화

17화. 응답받지 못한 기도를 보관하는 곳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35자

오프라인 책장
원계약을 확인하러 갔다가 서류 전체를 압수당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윤재하는 한참 동안 종이를 보고 있었다. “도둑이 경찰에 도둑맞았다고 신고한 기분이네요.” “그런 표현은 감찰보고서에 쓰지 않겠습니다.” 세리아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녀는 지난밤부터 한숨도 자지 못했다. 빨간 망토에 작은 주름이 잡힌 것이 그 증거였다. “증거를 보호하려면 담보청 말고 중립된 기록기관의 명령이 필요합니다. 다만 지금은 상급 기관 대부분이 담보청과 계약되어 있어요.” “그럼 우리가 문서를 밖으로 옮기면?” “원본을 훼손하거나 절취하면 오히려 불리해져요.” 에반이 손가락을 튕겼다. “원본을 옮기는 대신 열람 권한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보관된 기록은 한 번에 압수하기 어려워.” 재하는 그를 쳐다봤다. “그 수법도 당신이 만들었나요?” “압류 방어 쪽은 늘 경쟁사에게 배웠지.” 릴리는 책상 위에 천 조각을 펼쳤다.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을 찾을 때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사람마다 자신이 본 사실을 조금씩 적고, 원본을 감찰관이 보관하는 방식. “우르센 할아버지가 서명한 기록과 누리의 기록은 같이 보관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하나를 빼앗겨도 다른 하나가 남도록요.” 세리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적 정보가 담긴 원본은 감찰 보관소에, 서명자 동의를 받은 공증 사실만 공공 기록에 남기는 겁니다. 누구의 신앙이 얼마였는지는 공개하지 않아요.” “그럼 채무가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합니까?” “그걸 증명하려는 게 아닙니다. 담보청이 채무를 주장한다는 사실과 우리가 그 주장의 근거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거죠.” 그날 오후, 셋은 첫 번째 공증 서류를 만들었다. 도란은 대장간의 망치로 철제 케이스를 만들고 안나는 방직 작업장에서 나온 방수천으로 감쌌다. 브렌은 유리포에서 가져온 증인의 이름을 틀리지 않게 옮겨 적었다. 각각 해야 할 일이 달랐지만, 누구도 신전을 위해 자기 빚을 져야 한다고 요구받지 않았다. 그러던 중 누리가 지하에서 올라왔다. 종이 몸이 계단을 오르는 광경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보존소 외부 열람 요청이 도착했습니다.” “담보청입니까?” “아닙니다. 별도의 신원입니다.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누리가 내민 종이에는 작은 도장 하나만 있었다. [중앙 합동감사원 특별 열람] [열람 목적: 미귀속 신뢰 기록 확인] [인증: 감찰관 세리아의 과거 발급 코드] 세리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코드는 제가 예전에 폐기한 겁니다.” “누가 쓴 거죠?” “제가 조사하다 그만둔 사건이 있어요. 신도가 사라졌는데, 죽거나 이주한 기록이 없는 사건. 기록실에서는 통계 오류라고 했고, 그 뒤로 담당자를 모두 교체했죠.” 재하가 물었다. “몇 명이 사라졌는데요?” “서류상으로는 칠십두 명.” “사람이요?” “네. 사람 이름이 아니라 계정번호만 남아 있었어요.” 다들 말을 잃었다. 누리는 공문 하단을 가리켰다. [특별 감사의 대상 기록: 거절된 기도] “거절된 기도요?” 재하가 되물었다. 에반이 목소리를 낮췄다. “기도를 했는데 응답을 못 받거나 거절당한 경우를 말해. 원래는 어디에도 포인트가 쌓이면 안 돼. 기도한 사람이 동의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걸 왜 따로 보관합니까?” “사람이 간절히 바랐다는 사실 자체가 에너지로 남기 때문이지. 담보청은 그걸 ‘미실현 기대 신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재하는 지난주 릴리가 병든 동생 옆에서 기도하던 밤을 떠올렸다. 기적이 오지 않아도 손을 잡고 밤을 지새웠던 시간. 그 간절함을 누군가 모아서 팔아넘겼다는 말일까. “그 기록이 어디 있습니까?” 누리가 금빛 실을 따라 지하 벽을 가리켰다. 돌서가 뒤에는 지금까지 없던 문이 생겨 있었다. 문 위에는 아무도 모르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무상의 약속이 반응하자 글씨가 눈에 익은 말로 바뀌었다. ‘받지 않은 대답의 방.’ 문 너머에는 수많은 작은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병 안마다 희미한 빛이 떠올랐다가 꺼졌다. 어떤 것은 아이의 목소리처럼 떨렸고, 어떤 것은 말없이 오래 반짝였다. 방 안쪽에는 오래된 벽화가 있었다.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병든 아이에게 손을 얹은 그림이었다. 아이 뒤편에는 부모가 두 손을 모으고 있었고, 그들의 머리 위에는 작고 긴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요청할 권리는 있지만, 응답을 소유할 권리는 없다.’ 재하는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요?” 누리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된 시설의 서기인데도 문구의 의미를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점이 재하는 마음에 들었다. “각 기록자는 원하는 일을 말할 수 있었고, 신격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답하도록 정했습니다. 어느 쪽도 결과를 강제로 요구할 권리는 없었습니다.” “그럼 신이 못 한다고 하면 그걸로 끝인가요?”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절한 뒤에 왜 그 일이 필요한지 듣는 것은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릴리가 벽화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부모는 기도를 거절당했는데도 아이 곁에 남았어요.” “그것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재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남아서 아이를 돌본 일은 신에게 바친 게 아니잖아요.” “바로 그 점을 구분하기 위해 최초 계약에는 미귀속 기록이 필요했습니다.” 에반이 낮게 말했다. “담보청은 그 차이를 지운 거야. 누군가가 간절했다는 사실을 신앙으로 계산하고, 그 신앙을 특정 기관에 배정했지.” 방 안쪽에는 작은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병 한 개가 별도의 장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병들과 달리 소유권 표시가 없었다. 대신 ‘열람 동의 대기’라는 글씨가 떠 있었다. 누리가 설명했다. “원기록자가 아직 이 지역에 생존해 있습니다. 다만 본인의 간절한 바람이 기록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보여 줄 수는 없나요?” 릴리가 물었다. “원기록자의 허락 없이 내용은 열 수 없습니다.” 재하는 그 판단을 존중했다. 사람을 돕는다는 이유로 사적인 기도문을 모두 꺼내 공개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자기 두려움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에반은 유리병 하나를 들여다보다가 경악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그가 가리킨 병에는 복잡한 번호가 적혀 있었다. 맨 앞 두 자리는 그가 담보청에서 일하던 시절 사용했던 상품 코드였다. “내가 만들었던 예비 신앙 청구서야. 원래는 계약 신청자가 가입을 거절했을 때 폐기되는 문서였어.” “그럼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건가요?” “응. 이건 서명이 없거든. 서명이 없어서 계약도 성립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누구에게 청구하면 안 되는 거야.” 재하는 번호를 읽었다. 계약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 자체가 상품의 재료로 들어간 셈이었다. 단순한 계산 오류라고 보기엔 체계적인 흔적이 너무 많았다. 세리아는 병 표면의 숫자를 전부 적어 두었다. 그러고는 누리에게 공개 가능한 사실의 범위를 물었다. 누리는 원기록자의 이름과 구체적인 기도를 가리지 않아도 되는 범위에서 서식의 개정 연혁을 보여 주었다. [구분: 계약 미성립] [초기 처리: 즉시 폐기] [개정 처리: 미실현 기대 신앙 계정 이관] [개정 승인 기관: 천계 신앙 담보청] “개정 승인자의 서명은요?” 세리아가 물었다. [서명권자: 비공개] 그녀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자신이 과거 조사했던 칠십두 명의 실종 계정에도 같은 빈칸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종되었다는 기록이 사실은 이름만 삭제된 기록이라면….” 세리아는 말을 멈췄다. 누군가 살아 있다는 증거도, 죽었다는 증거도 없이 계정번호만 남는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재하는 창고 한쪽을 바라봤다. 누리는 오래된 자료가 들어 있는 선반 일부를 스스로 봉인했다. “열람 범위를 벗어난 사적인 기록은 보존합니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 때문에 닥치는 대로 문을 열고 싶어졌지만, 그것도 누군가의 이름을 함부로 다루는 일이었다. 이 싸움에서 지키려는 원칙을 먼저 무너뜨릴 순 없었다. 릴리가 정리하던 장부를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직접 증언하고 싶은 기록만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야겠어요.”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아요. 저도 제 이야기를 언제 말할지 직접 정했으니까요.” 에반은 릴리를 바라봤다. 단숨에 신도 수를 늘릴 수 있었던 그 자발적인 증언을 광고에 사용하지 못해 아쉬웠던 자신이 떠올랐다. 지금은 왜 그 선택이 중요한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이건 누구의 것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누리가 답했다. “누구의 것인지 알기 위해 보관한 기록입니다. 이곳에 올 때부터 소유자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에반이 다가가 한 병을 들려 했다. 병에 검은 숫자가 나타났다. [미실현 기대 신앙: 채권 담보 제공 중] [처분 권한: 천계 신앙 담보청] “역시 여기까지 손댔군.” 재하는 병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 안에는 실제 사람의 사연이 있었다. 허락 없이 열면 또 다른 침해가 될 수 있었다. “내용을 보지 않고도 담보 제공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봉인 목록만 열람하시면 됩니다.” 세리아가 목록을 받아 적었다. 병 수는 무려 일천팔백네 개였다. 유리포 압류 명령에 있던 숫자와 같았다. “저 마을의 기도가 여기 있었군요.” 릴리가 속삭였다. 재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기도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주겠다고 하지 않은 마음일 수 있어요.” 세리아는 자신이 기억하는 칠십두 계정 중 한 번호를 조심스럽게 목록에 대조했다. 뜻밖에도 해당 번호 옆에는 짧은 주석이 남아 있었다. [최종 처리: 명의 통합] “실종이 아니라 명의 통합이었다고요?” 누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느 명의로 통합되었는지는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에반이 그 번호를 보자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보증 상품 초기 시험에서 사용하던 형식이야. 실제 사람과 전산상 예비 계정이 섞여 있을 수도 있어. 지금 칠십두 명이 모두 실종됐다고 단정하면 안 돼.” “그렇다고 통계 오류라고 처리할 수도 없죠.” 세리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번호와 처리 날짜를 따로 적었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정보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표시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크게 외치면 잠깐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피해 본 사람의 진술까지 의심받게 만들 위험도 있었다. 재하는 누리에게 물었다. “원본이 없으면 나중에 이 번호가 누구 것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다른 지역에 남은 교차 확인 표식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목록이 사라지면 매우 어려워집니다.” “그럼 목록만큼은 꼭 남겨야겠군요.” 릴리는 방직촌에서 가져온 실로 봉인 끈을 만들었다. 매듭은 여러 개였고, 한 사람이 혼자 풀지 못하도록 서로 다른 색을 번갈아 꼬았다. 재하가 물었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요?” “하나가 풀려도 다른 끈은 남아 있게 하려고요.” “우리 원계약이랑 비슷하네요.” 릴리가 빙긋 웃었다. “거기서 배운 거죠.” 그들은 서로가 확인한 사실을 적은 뒤 각각 서명했다. 재하는 자신의 이름을 가장 큰 글씨로 쓰지 않았다. 누구나 자기 부분에 책임을 지는 기록이었다. 릴리는 서가 입구에 누가 어느 기록에 접근했는지도 적어 놓았다. 자료를 지키는 일은 자물쇠를 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 중요한 장부를 가져갔다면, 언제 누구에게 문의해야 할지 알 수 있어야 했다. 재하는 그 기록의 책임자를 자신과 누리, 세리아로 나누어 적었다. 그때 지하의 모든 병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검은 빛이 선반을 타고 퍼졌다. [담보청 원격 압수 개시] [보존소 봉인 효력 해제 예정] 문밖에는 이미 미르켈이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검은 가면을 쓴 회수 기사들이 줄지어 있었다. “윤재하 신격.” 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전에 통지해 드린 대로 증거물 인수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재하는 병들 앞에 서며 물었다. “이 목록에 이름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누가 허락을 받았습니까?” 미르켈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것을 확인할 권한이 귀하에게는 없습니다.” 세리아가 수정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이제부터 그 권한이 있는 곳을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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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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