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를 고친 다음 날, 가시골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일기예보에는 맑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붕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지붕을 살펴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골목의 웅덩이는 마른 흙 위에 생겼다가 사라졌다.
“신님, 이건 기적이에요?” 노아가 물었다.
“기적이면 최소한 편리해야지. 젖지도 않는데 빨래 걱정만 시키잖아.”
하율은 창틀을 두드리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습도계의 바늘은 정상이었다. 시각 기록판에만 물이 내려온 것으로 표시돼 있었다. 실제 비가 아니라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도시 설비에 입력되고 있었다.
폭우가 내리기 전, 마을 남쪽에는 작은 경고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방직 창고 앞 수레바퀴가 평소보다 깊게 빠진 일이었다. 두 번째는 창고 옆 돌계단 아래에서 물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 일이었다. 두 현상 모두 눈에 띄지 않아 지나치기 쉬웠지만, 오래 살던 주민들은 땅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마르타는 빵 배달을 하다가 그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즉시 하율에게 알렸다. 하율은 아직 비가 오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넘기지 않았다. 오래된 지도와 새 플랫폼의 구조도를 비교하고, 수로 관리인들에게 현장 확인을 요청했다. 그들은 돌계단 아래 작은 틈으로 젖은 흙이 올라오는 걸 봤다. 땅속의 물길이 막혀 다른 쪽으로 밀려 나오는 증거였다.
“이게 예측국이 보여 준 미래인가요?” 재하가 물었다.
“아니요. 지금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상이죠.” 하율이 답했다.
그 말에 재하는 이해했다. 실제로 위험을 미리 알아내는 일과 누군가 예측했다고 주장하는 일은 다르다. 마을 사람들이 땅을 밟고 변화를 확인한 일은 진짜였다. 그들이 본 것을 미르덴의 시계가 먼저 계산했다고 하더라도, 이 정보는 마을 사람들의 것이었다.
창고 관리인 라비는 처음에 대피 요청을 거절했다. 안에 쌓인 곡물과 원단을 두고 나가면 다음 주 장사에 큰 손해를 입을 것이었다. “저걸 다 잃으면 우리 식구가 먹을 게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릴리는 단순히 당장 피하라는 말만 하지 않았다. 물자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물었고, 운반할 수 있는 짐과 손댈 수 없는 짐을 함께 적었다. 마르타는 빈 창고 일부를 내주겠다고 했고, 카르도의 공병들은 안전한 운반 경로만 지원하겠다고 했다. 누구도 라비에게 새로운 신앙 계약을 요구하지 않았다.
짐을 옮기던 도중 라비의 어린 딸이 창고 안쪽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오래된 목재 상자를 놓고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어머니가 남긴 자잘한 물건들이 있었다. 위험한 곳에 다시 들어가면 안 됐지만 아이는 자기 물건을 버리고 간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재하는 아이의 눈높이로 몸을 낮췄다. “상자에 뭐가 있는지 적어 볼까? 그리고 안전해지면 누가 다시 찾을지 계획하자.”
아이는 손가락으로 물건을 하나씩 꼽았다. 작은 리본, 낡은 인형, 나무 빗. 재하는 리스트를 적었고 하율에게 창고 안쪽 구역 표시를 부탁했다. 모든 걸 지금 가져갈 수는 없어도 돌아갈 방법을 남길 수 있었다.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은 조용히 그 장면을 기록했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아이가 상자를 포기하게 하려면 더 자극적인 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감정의 방향을 통제하는 문구가 아니었다. 잃을 수도 있는 물건을 정말로 잃는지, 나중에 돌아올 수 있는지를 알 권리였다.
다음 날 하율은 라비에게 임시 보관증을 건넸다. 보관증에는 물자의 소유권을 옮긴다는 문구가 없었다. 누가 몇 개를 어디에 놓았는지, 훼손 위험이 생기면 누구에게 먼저 연락할지를 적었을 뿐이었다. 라비는 종이를 읽다가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에서 보관증에 소유권 양도 조항이 없는 걸 처음 봅니다.”
재하가 대답했다. “그러게요. 그냥 물건을 맡긴 걸 물건을 바친 걸로 바꾸는 데는 천계가 익숙하더군요.”
저녁 무렵 라비의 딸이 재하에게 와서 물었다. “신님은 미래를 아세요?”
“아니. 많이 궁금해할 뿐이야.”
“그럼 내일 엄마의 빗을 찾을 수 있을까요?”
재하는 쉽게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전 확인을 하지 않은 장소에 들어가겠다고 약속할 수 없었다. “먼저 사람이 들어가도 되는지 확인하자. 괜찮으면 같이 찾고, 안 되면 나중에 찾자.”
아이는 실망한 얼굴을 했으나 잠시 뒤 말했다. “그럼 먼저 사람들이 안전한지 확인해 주세요.”
재하는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 아이가 그 대답을 내릴 때까지 기다렸을 뿐이었다. 그날 그들이 만든 대비 계획은 미르덴의 예언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물길을 확인했고, 대피할 사람을 세었고,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도 숨기지 않았다.
그날 오전, 예측국의 책임자 미르덴이 도착했다. 드레인과 달리 무장을 하지도 않았고, 화려한 깃발도 없었다. 하얀 장갑 한 쌍과 낡은 회중시계만 들고 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정중히 인사했고, 장터에서 빵 한 개를 정가에 샀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점이 더 불길했다.
“우리는 모두 위험을 피하고 싶습니다.” 미르덴이 말했다. “제가 하려는 일은 미래에 피해를 볼 사람을 미리 돕는 것뿐입니다.”
재하는 미르덴 앞에 회의록을 펼쳤다. “그런데 왜 주민이 하지 않은 동의를 적어 놓았습니까?”
“도움의 동기를 묻다 보면 사람을 놓칩니다. 통계로 가장 안전한 선택을 유도하는 편이 낫습니다.”
“안전한 선택과 강요한 선택은 다른데요.”
미르덴은 웃었다. “말씀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오늘 누군가를 구조할 확률이 구십육 퍼센트라면, 그 구조를 위해 인력을 준비하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준비하는 건 좋아요. 그런데 제가 구조하지 않으면 빚을 지는 건 왜죠?”
“예측에 기반해 준비한 비용이 발생하니까요.”
재하는 그제야 상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았다. 미르덴은 예언자가 아니었다. 사람의 선행을 담보로 예산을 만드는 관리인이었다. 도움을 주면 그것은 자신의 실적이 되고, 도움을 거절하면 그것은 상대의 채무가 됐다.
미르덴이 회중시계를 열었다. 바늘은 아직 한낮인데 저녁 여섯 시를 향해 있었다.
“엿새 뒤, 이 지역에는 커다란 비가 내릴 겁니다. 제8 환승선이 준비한 우회로가 없다면 마을 아래 수로가 넘치고 수십 명이 위험해집니다. 저는 그 장면을 수차례 확인했습니다.”
릴리가 물었다. “그러면 위험 지도와 필요한 장비를 공유해 주세요. 주민들과 기술자가 대비하겠습니다.”
“지도는 예측국 내부 자산입니다.”
“미리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 지도를 공개하면 주민의 행동이 바뀌어 예측 정확도가 손상됩니다.”
“그러면 사람을 살리는 것과 예측을 맞히는 것 중 뭐가 더 중요합니까?”
미르덴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도장 찍힌 작은 카드를 건넸다. ‘예정 피해 예방을 위한 단독 현장권.’ 재하에게 모든 결정과 비용을 위임하면 지도와 비상물자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재하는 카드를 접지도, 받지도 않았다. “제가 혼자 결정해야 하는 조건이 왜 있죠? 구조대와 마을이 이미 있는데.”
“동시에 너무 많은 사람이 결정하면 기록이 어지러워집니다.”
“생명을 살리는 데 필요한 기록은 예쁘게 정리된 숫자가 아니라 누가 어디에 있는지입니다.”
그는 미르덴을 돌려보내고 곧장 하율에게 향했다. 예측국의 지도 없이 위험을 확인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율은 오래된 수로도와 고지대 산책로를 겹쳐 놓았다. 비가 오면 가장 먼저 물이 쌓일 곳은 남쪽 방직 창고였다. 창고 아래에는 예전에 폐쇄한 환풍 통로가 있었다. 우편열차의 새 플랫폼은 바로 그 통로와 이어져 있었다.
“비가 와서 위험한 게 아니라, 저들이 플랫폼을 세운 자리가 위험을 만들 수 있다는 거군요.” 재하가 말했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하율은 직접 현장을 답사했다. 폐쇄 통로의 안쪽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새로 설치된 쇠막대가 배수문을 걸어 잠근 채였다. 손잡이는 조합의 회중시계와 같은 문양으로 봉인돼 있었다. 누군가 비가 내리기 전에 물길을 막아 놓고, 그 결과를 미래의 재난이라고 부르려 했다.
릴리는 즉시 창고 주인에게 사실을 알렸다. 화물과 귀중품을 높은 곳으로 옮기고, 대피할 사람의 수를 확인했다. 재하는 신의 힘으로 봉인을 뜯는 방법을 떠올렸다. 하지만 봉인과 수문이 하나로 붙어 있어 잘못 건드리면 압력이 한꺼번에 풀릴 수 있었다.
카르도는 병사를 보냈다. 무기를 내려놓은 공병들이 수문 양쪽에 목재 버팀대를 대고 압력을 측정했다. 에반은 가게 문마다 대피 안내문을 붙였다. 노아는 벽보를 나르다가 에반이 쓴 ‘예측국의 재난을 이겨내는 위대한 희망의 행진’이라는 문구를 보곤 다 지워 버렸다.
“너무 길어요. ‘물 오르면 높은 곳’이면 되잖아요.”
“아이가 내 광고의 핵심을 잘라 버렸어.”
“살리는 데 핵심이 따로 있어요?”
에반은 잠시 노아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가장 큰 글자로 ‘높은 곳으로’라고 적었다.
라비가 창고에서 마지막 짐을 꺼냈을 때, 마르타는 따뜻한 물을 건넸다. 라비는 남겨 두고 온 낡은 상자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재하는 안전 표시를 다시 확인한 뒤, 물이 빠지면 기술자와 함께 들어가 상태를 확인하자고 말했다. 절박한 사람에게 무조건 괜찮다고 약속하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나중에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보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절차를 정확히 말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었다.
오후가 되자 비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기록 속의 비가 아니었다. 하늘이 검어지고 무거운 빗줄기가 기왓장을 때렸다. 그러나 마을의 기록에는 여전히 맑음으로 표시됐다. 실제 기상과 예측국의 기록이 엇갈린 것이다.
“누가 시간을 바꿔 놨다더니 이제 날씨도 장부랑 싸우는군.” 재하가 중얼거렸다.
세리아는 증거를 모았다. 사람의 눈으로 본 비, 물의 깊이를 잰 표식, 하율의 시간별 압력 기록. 미르덴의 예측 날짜가 맞든 틀리든, 실제 위험은 지금 벌어지고 있었다. 기록이 현장을 따라오게 해야지 현장이 기록에 맞춰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율은 마른 종이에 현장 지도를 다시 그렸다. 예측국의 화려한 지도와 달리 이 도면에는 추측한 부분에 점선이 그어져 있었다. 확인하지 않은 곳은 확인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재하는 그 점선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 잘못된 확신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모르는 곳을 인정하는 선이 훨씬 안전했다.
그때 남쪽 방직 창고에서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문 아래로 물이 차오르면서 창고 관리인이 안에 갇혔다. 창고에는 응급 치료용 마른 천과 곡물도 보관되어 있었다. 물이 더 차면 인명뿐 아니라 며칠간의 생필품까지 잃을 수 있었다.
카르도가 출동하려 했지만 릴리가 막았다. “문을 그냥 부수면 안 됩니다. 안쪽이 바깥보다 물이 높아요. 부수는 순간 사람이 다칠 수 있어요.”
하율은 수문의 압력을 읽었다. 대장장이가 작은 배출구를 만들고, 공병들이 물이 빠지는 방향을 잡았다. 재하는 높은 곳에 올라가 사람들을 안내했다. 누구도 혼자 모든 일을 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난 뒤 관리인이 구조됐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하율의 팔을 잡았다. “우리가 살았다고 기록해 주세요. 기적 덕분이라고 말하지 마시고, 문을 제대로 열어서 살았다고.”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기록하겠습니다.”
빗속에서 미르덴이 다시 나타났다. 그의 회중시계는 같은 시각에서 멈춰 있었다.
“제 예측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 구조는 제 예방 권고의 실현입니다.”
“그럼 아까 비가 언제 온다고 했는지 기록을 공개하시죠.” 세리아가 말했다.
미르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회중시계의 덮개를 열었다. 바늘이 거꾸로 한 칸 움직였다. 하율이 측정한 수문의 위험 표식에도 붉은 빛이 번졌다.
[현장 조정: 예정 사건에 편입.]
“멈추세요!” 재하가 외쳤다. “사람이 살았는데 왜 다시 사고로 기록하려는 겁니까?”
미르덴은 낮게 말했다. “예측이 틀리는 순간 우리 기관은 사람을 지킬 예산을 잃습니다. 정산 없는 구조는 다음 구조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재하는 그 말에 담긴 두려움을 들었다. 틀린 예측을 인정하면 기관 자체가 무너진다. 그래서 기관은 재난까지 만들어 예측을 증명한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예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그건 예방 기관이 아니죠.”
빗물 아래에서 회중시계가 다시 한 칸 움직였다. 가시골의 종은 세 번 울렸다. 실제로 물이 올랐다는 주민들의 신호였다. 하지만 제8 환승선의 시계는 종소리를 일곱 번으로 바꾸어 기록하고 있었다. 다음 예정 사고는 이제 막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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