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가 처음 검은 우편열차에 탄 것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누구도 더는 편지를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보관차에는 오래전에 발송인이 죽은 편지, 주소가 사라진 편지, 받는 이가 거절한 편지가 뒤섞여 있었다. 유나는 그중 무엇 하나 마음대로 버릴 권리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제 가시골의 예측 플랫폼은 그녀를 ‘독립 보관인’이 아니라 ‘대표 수신자’라고 불렀다.
[예정 수신: 유나.]
[불이행 채무: 사만 이백열여섯 건의 대기 비용.]
“저한테 보관료를 내라고요?”
열차 통신관 너머로 들린 목소리는 조용했다. 그 조용함 때문에 재하는 더 불안해졌다. 화를 낼 틈도 없이 계산하고 있을 때 유나는 언제나 위험했다.
“보관해 줬다는 이유로 책임까지 지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릴리가 말했다.
“그 말이 여기서는 잘 안 통하죠. 저는 오래전에 통신이 끊긴 사람들 편지를 보관한 죄로 이미 두 번이나 체포될 뻔했으니까요.”
“이번엔 혼자 대응하지 마세요.” 재하가 말했다.
유나는 대답 대신 객차 안쪽을 비췄다. 조그만 선반마다 편지들이 천으로 싸여 있었고, 선반 아래는 온도를 유지하는 작은 관이 지나갔다. 열차가 계속 움직이던 시절에는 선로의 마찰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서류를 보존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멈추자 그 설비가 고장 나기 시작했다.
“저쪽은 기록을 인질로 잡고 있어요.” 유나가 말했다. “수신 책임을 받아들이면 보존 연료를 주겠다는 문구가 들어왔습니다.”
하율이 확인하자 실제로 보존 설비의 연료량이 떨어지고 있었다. 한꺼번에 사라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열차 객차별 온도가 달라 종이의 습기가 번지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그들은 열차를 구조 구역으로 옮길지 논의했다. 신의 권능으로 움직인 열차는 그 기록까지 신의 소유가 됐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추위를 견디며 기다릴 수만도 없었다. 주민들과 기술자들이 열차에 들어가 임시 열원부터 설치하기로 했다.
카르도가 병사를 부르겠다고 했을 때 유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군복을 본 순간 도망치는 사람들의 기록도 많아요. 필요하면 무장 없는 짐꾼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전쟁신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검을 지붕 위에 내려놓고 직접 나무상자를 나르기 시작했다. 재하가 놀려 보려다 그만뒀다. 누군가가 이유를 듣고 행동을 바꾸는 일은 농담보다 귀중할 때가 있었다.
보존 열원을 설치하던 날 유나는 마지막 객차의 구석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찾았다. 사진 속에는 열차를 돌보던 스물세 명이 있었다. 지금은 그중 몇 사람이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진 뒤편에는 어린 글씨로 ‘모두가 돌아올 때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왜 남겨 두셨어요?” 릴리가 물었다.
“제가 이 일을 처음 맡았을 때 보관인 선배가 줬어요. 우편열차는 지친 사람을 한 명씩 놓치기 쉬운 곳이니 얼굴을 기억하라고요.”
“다들 어디로 갔나요?”
“어떤 사람은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어떤 사람은 병이 들었어요. 어떤 사람은 편지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며 직장을 그만뒀죠. 그 선택을 비겁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유나는 사진을 작은 상자에 넣었다. 그녀가 마지막 보관인이 된 건 가장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다 끝까지 남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예측국은 바로 그 사실을 이용해 그녀에게 사만 건의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
재하는 사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처음 신이 됐을 때도 그랬습니다. 전임자가 소멸했다는 말만 듣고 신격을 넘겨받았어요. 그 사람이 정말 소멸했는지, 왜 거절했는지, 뭘 맡아 왔는지 묻지도 못했죠.”
“그러다 전임 신 도르를 만났잖아요.”
“네. 소멸했다는 기록과 달리 살아 있었어요. 누군가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맡은 모든 걸 다음 사람에게 떠넘기는 게 옳진 않더군요.”
유나는 손가락으로 사진의 한 사람을 가리켰다. 오래된 보관차의 목조 난로를 만들었던 기술자였다. 지금은 이름만 장부에 남아 있었다. 기술자가 남긴 설명서에는 보관 온도를 유지하는 법뿐 아니라 불이 나면 무엇을 먼저 꺼야 하는지도 적혀 있었다.
“전 저분이 혼자 다 해 줄 거라고 믿었어요. 그분이 떠난 뒤에야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았죠.”
하율은 설명서를 살펴보다가 한 페이지를 펼쳤다. 난로의 연통이 막히면 화재 위험이 생긴다는 항목이었다. 그는 열차의 연통 상태를 살펴보고, 예상보다 일찍 청소해야 한다고 알렸다. 예측국이 지급할 연료를 받아도 그 관리가 없으면 기록을 잃을 수 있었다.
작업은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진흙과 먼지로 지저분해진 객차 바닥을 씻고, 낡은 창틀의 틈을 메우고, 선반을 하나씩 고정했다. 마르타는 먹을거리를 가져왔지만 작업 도중에는 불 가까이 두지 않으려 애썼다. 전쟁신 카르도가 나무상자를 잘못 들었다가 종이가 든 상자를 뒤집을 뻔하자 유나가 크게 소리쳤다.
“그건 왼쪽부터 받쳐야 해요!”
카르도는 즉시 자세를 고쳤다. 그 모습을 본 재하는 소리 내어 웃었다. “군대에서는 장군인데 여기서는 신입이네요.”
“상자를 드는 일도 전쟁이다.” 카르도가 대꾸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세상 모든 일이 전쟁이죠.”
“적어도 넘어뜨리면 내가 진 거다.”
작업이 끝났을 때, 유나는 보관차의 습도계를 다시 확인했다. 완벽하진 않았다. 그러나 수치가 안정되고 있었고, 밤새 버틸 수 있는 연료도 확보됐다. 그녀는 종이에 단 한 줄을 적었다.
‘오늘 열차는 여러 사람의 손으로 보존되었다.’
그 문장은 이전 보관인들의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오늘 도운 사람들에게 평생의 의무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그저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 유나는 오랫동안 그 한 줄을 바라보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얼마 뒤 재하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일이 끝나면 저도 쉬어 보려고요. 누군가가 이 열차를 잠시 봐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믿게 됐거든요.”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밤은 제가 보초라도 서 드릴까요?”
“신님이 서 계시면 예측국이 또 소유권을 주장할 텐데요.”
“그러네요. 그럼 마르타 씨와 교대로 마을 쪽만 살펴볼게요.”
유나는 웃었다. 보관을 혼자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열차의 어떤 연료보다 든든했다.
저녁, 열차의 예고판에 새 문장이 떴다.
[유나의 예정 선택: 보존을 위하여 수신권 수락.]
유나는 글자를 빤히 쳐다봤다. “선택이 아니라 협박이네요.”
에반은 과거 예측국의 내부 업무 편람에서 비슷한 수법을 찾아냈다. 대안을 없애 놓고 남은 행동 하나를 사람의 자발적 선택이라고 기록하는 방식. 그는 편람 맨 아래에 자신이 고안했던 표현이 찍혀 있음을 발견했다. ‘부드러운 선택 안내.’
“에반.” 재하가 말했다.
“말씀하지 않아도 압니다. 제가 이걸 만들었습니다. 광고 문장만 손본 줄 알았는데, 문서 속에서는 구속력을 얻었군요.”
“그럼 지금 뭘 할 수 있죠?”
에반은 잠시 망설였다. “그 문장의 반대편을 보여 주겠습니다. 수락 외에 선택지가 있었다는 증거가 필요해요.”
유나는 객차 아래의 작은 문을 열어 오래된 정비 공책을 꺼냈다. 과거 열차가 망가졌을 때 수리비를 조금씩 모았던 보관인들의 기록이었다. 공식 계약은 없었지만 누가 나무를 가져오고 누가 난로를 고쳤는지 꼼꼼히 적혀 있었다. 재하는 공책에서 특별한 숫자 하나를 찾았다.
[수선 참여 인원: 17명.]
“열일곱 사람이 보관을 도왔어요. 보관인은 한 사람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마지막까지 남았을 뿐이에요.”
그들은 보존 작업을 여러 사람의 공동 기록으로 다시 남기기로 했다. 각자 맡은 범위와 종료 시각을 적었다. 작업이 끝나도 전체 편지를 소유하지 않는다. 특정 편지를 열람할 수 없다. 안전 작업과 신앙 계약은 연동되지 않는다. 눈에 띄게 느린 방식이었지만, 누구도 보존을 빌미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
노아도 손을 들었다. “저는 창문 틈에 천을 끼울게요.”
릴리는 웃으며 말렸다. “객차 아래는 위험하니까 네가 할 일은 따로 있어. 준비된 담요 숫자를 세 줄래?”
“그것도 기록해요?”
“그럼. 누가 도왔는지보다 무엇이 준비됐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마르타는 빵을 보내 왔다. 카르도는 마차 바퀴를 밀었고, 하율은 난로의 배기관이 종이에 닿지 않는지 살폈다. 서로 다른 일들이 작은 연필 자국으로 정비 공책에 남았다.
한밤중, 조합은 경고장을 다시 보내 왔다. 유나가 수신권을 받지 않으면 연료 지급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연료라고 주장한 물자는 사실 주민들이 이미 안전하게 설치한 난로용 숯과 별개였다. 협박의 실효성이 줄어들자 경고장은 신앙 부족을 탓하기 시작했다.
재하가 코웃음을 쳤다. “고장 난 난로를 고쳤더니 신앙이 부족하다고요?”
“그러니까 저쪽에선 종종 정비사를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에반이 말했다.
열차에 밤이 내리자 유나는 잠깐 빈 객실에 누웠다. 작은 창으로 바람절벽의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예전 같으면 이 시간에도 수백 장의 종이를 세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사람이 교대로 습도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보관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보관이 한 사람의 목숨을 먹어야만 지속되는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잠이 들기 전, 유나는 자기 이름이 적힌 예정 채무 통지서를 다시 읽었다. 그 밑에는 아주 작은 글자가 있었다. ‘대체 수신자가 나타나면 자동 이전.’ 미르덴이 원하는 건 유나 한 사람의 충성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계속 책임을 떠안고, 뒤따르는 사람도 거절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끝없는 사슬이었다. 그는 종이를 접지 않고 옆의 봉투에 넣었다. 내일 세리아에게 증거로 제출할 생각이었다.
유나는 창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보관차 문을 두드릴 때마다 그녀는 예전처럼 겁내지 않았다. 다만 방문 목적과 필요한 열람 범위를 물었다. 마지막 보관인으로 남았다고 해서 마지막 결정권자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사진 속 옛 동료들에게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그들이 떠난 뒤 혼자 견디는 것이 책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동료를 들이는 것도 책임이라는 걸 알았다. 기록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어 받으며 지켜져야 했다.
기차역에서 임시 야간 근무를 맡은 주민은 유나에게 교대 시간을 정확히 알려 달라고 했다. 그는 일을 돕겠지만 다음 날은 가족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나는 기꺼이 시간을 정해 주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밤새 일을 해 주는 사람이 진짜 선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 삶을 지키며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더 신뢰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시간을 알고 나누면 기록도 오래 지킬 수 있었다.
기관실에서 멀리 종소리가 들렸다. 유나는 시간표에 경유 시각을 적고, 오늘 맡을 사람이 해야 할 일 세 가지만 남겼다. 습도계를 확인할 것, 물이 새는 곳을 발견하면 먼저 출입을 막을 것, 허가되지 않은 봉투는 열지 말 것. 열차를 사랑한다고 해서 열차 안의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마지막 항목 아래에 덧붙였다. ‘확인되지 않은 일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고하기.’
그녀는 회수 작업자들에게 야간 교대 명단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누가 쉬었고 누가 다음 차례를 맡는지 분명해야 사고가 나도 서로를 찾을 수 있었다.
동트기 전 유나는 열차 외벽에 붙은 새 문서를 발견했다. 제8 환승선은 보관인이 수신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건을 ‘예측 실패’로 기록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내지 않았다. 교정 과정이 자동 시작된 것이다.
[예정 수신 실패.]
[수신 자격의 근거 제공자 조사 개시.]
[조사 대상: 가시골 신전의 신격 유지 선언.]
“또 저로 돌아왔네요.” 재하가 말했다.
유나의 대답은 간결했다. “우리가 서로를 도왔으니까요. 이 시스템에서는 그것이 가장 수상한 행동일 거예요.”
객차 바깥에서는 새벽 종이 울렸다. 여섯 번째 뒤에 침묵이 찾아왔다. 재하는 그 침묵을 오래 들었다. 아무것도 울리지 않는 잠깐 사이에도 사람들은 열차를 고치고 밥을 짓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저들이 미래를 모두 계산할 수 있다고 해도, 도움이 소유권으로 바뀌는 순간을 허락할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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