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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64화
PAYLUA ORIGINAL · 제164화

164화. 회의가 열리기 전에 통과된 결의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23자

오프라인 책장
마을회의가 예측 대상이 되었다는 소식은 신전의 벽보판에 붙지 못했다. 붙이려던 종이가 두 번이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세리아는 접착제를 살펴봤고, 릴리는 바람을 의심했다. 에반은 세 번째로 떨어진 종이를 바라보다가 씁쓸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종이가 우리보다 먼저 투표한 모양입니다.” 재하가 코웃음을 쳤다. “그 종이한테 의결권도 있나요?” 하지만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누군가 벽보판 아래에 붉은 통지문을 놓고 갔다. [가시골 주민회의 예정 결의: 우편열차의 최종 구조 요청을 신 윤재하에게 위임.] [예측 실현 시각: 사흘 뒤.] 마을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결의가 적혀 있었다. 주민들이 어떤 의견을 내든 문서상으로는 윤재하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게 되는 셈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결정한 적은 없는데요.” 마르타가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럴 필요가 없는 겁니다.” 릴리가 답했다. 재하는 통지문을 벽보판에 그대로 붙이지 않기로 했다. 문구 자체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주민회의 소집 이유를 정확히 적었다. ‘미확인 기관이 주민 결의를 예측하여 무단 공표함. 사실관계 검토와 기록 보존 필요.’ 마르타의 빵집에는 회의 날이면 사람이 몰렸다. 동네에서 제일 넓은 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반죽을 식히는 탁자였는데 회의가 시작되면 반죽 자국 위에 지도와 기록이 펼쳐졌다. 재하가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그다지 신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탁자에 앉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재하 님께 위임하면 빠르잖아요.” 젊은 수레꾼이 말했다. “저는 지금 집을 고쳐야 해서 회의에 오래 못 있어요.” 그 말에 나이 든 목수가 반대했다. “빠르다는 이유로 한 사람에게 맡기면 나중에 그 사람이 잘못했을 때 누가 책임지나? 당신도 그 사람한테 불평할 거야.” 수레꾼은 얼굴을 붉혔다. “그럼 아무 결정도 하지 말자는 겁니까?” 릴리는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자신이 양쪽 모두를 설득하려 들면 오히려 서로가 고집을 세울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질문을 하나 던졌다. “오늘 당장 필요한 결정이 뭔지 따로 적어 볼까요?” 수레꾼은 지붕 자재를 옮기는 일을, 목수는 수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통행을 막는 일을 적었다. 둘 다 실제로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예측국의 문서에는 그런 구체적인 일정이 없었다. ‘모든 구조 요청을 윤재하에게 위임’이라는 한 문장만 있었다. 마르타가 덧붙였다. “우리가 정하는 건 누가 우리를 대신 소유할지 아니잖아요. 오늘은 자재를 누가 옮길지, 내일은 누가 다리를 볼지를 정하는 거죠.” 그 말에 회의장 공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수레꾼은 자신의 마차를 빌려주겠다고 했고 목수는 작업 시간을 조정하겠다고 했다. 서로 먼저 화를 냈지만 결국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재하는 구석에서 말을 아끼고 있었다. 전쟁신이 앞에서 호위를 서지 않고 동네 빵집에 검을 맡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힘센 이가 결론을 먼저 말하면 다른 의견이 모이기 어렵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갈 때, 한 노인이 재하에게 물었다. “신님, 그래도 우리한테 위험이 생기면 도와주시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돕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이라. 신이 하는 말치곤 약하군요.” 재하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저는 예전엔 기적도 한 번 못 쓰는 신이었어요. 그때도 릴리와 노아를 돕겠다고 했고요. 지금도 한계를 감추고 무조건 된다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대신 다른 도움을 구하는 일까지 포기하진 않겠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믿을 만하네.” 회의가 끝난 뒤 수레꾼은 재하에게 다가와 작은 나무 조각을 내밀었다. 부러진 마차 난간이었다. 예측국 플랫폼 때문에 길이 비틀리면서 부러졌다는 설명이었다. “이거 보수비는 누구에게 청구할 수 있죠?” 재하는 조각을 받아 들었다. “아직 몰라요. 현장 기록과 설치 주체를 확인해 봅시다.” 수레꾼은 조금 실망한 듯했지만, 잠시 뒤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저더러 예정된 손해니까 그냥 참으라고 하진 않으시네요.” 이 말이 재하에게 오래 남았다. 신이 사람을 돕는 일은 모든 문제의 해답을 즉시 내놓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손해를 입었을 때 그 손해를 이미 계산된 운명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었다. 한밤중, 에반은 예측국 통지문에 붙은 작은 표기를 발견했다. 주민회의에서 다르게 결정한 부분이 전부 붉게 칠해져 있었다. 붉은 칠 위에는 ‘오차 제거 대상’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주민들의 서로 다른 생각 자체를 시스템이 고쳐야 할 오류로 보고 있었다. “저쪽에는 회의가 위험 요소로 보이는군요.” 에반이 말했다. “사람이 여러 명 모여서 마음대로 생각하니 계산하기 힘들겠죠.” 재하가 대답했다. 그는 접힌 회의록을 다시 펴 보았다. 같은 문제를 두고 말다툼하다가도 끝내 하나의 작업 계획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적혀 있었다. 결과만 보면 지저분해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누구도 위임하지 않은 권리를 빼앗지 않겠다는 공동의 선택이 담겨 있었다. 회의가 열리는 동안 카르도는 마을 밖에 서 있었다. 예측국이 주민들을 압박하면 군사적 경호를 하겠다는 제안은 있었지만, 신의 군대가 회의장 앞에 서는 것 자체가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할 수 있다는 릴리의 요청이 있었다. “신도 없는 신이 됐다더니 이제 신이 회의장에도 못 들어가는구나.” 카르도가 말했다. “들어갈 수는 있죠. 다만 무장한 채로 들어가면 다들 반대하기 힘들잖아요.” “그렇다면 내 검은 어디 두지?” “마르타 씨 빵집에 맡기세요. 대신 갓 구운 빵을 담보로 잡는 짓은 하지 마시고요.” 카르도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검을 맡겼다. 빵집 주인은 전쟁신의 검에 깨끗한 행주를 덮고 말했다. “제 가게에서는 칼도 밀가루를 묻히면 직접 씻어야 합니다.” 전쟁신이 그런 명령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마을 사람들에게 예상 밖의 안도감을 주었다. 회의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어떤 이는 재하에게 요청을 위임하는 게 빠를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는 한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언젠가 처음 신도가 없던 시절로 돌아갈 거라고 말했다. 검은 열차의 기록을 보존하는 일과 실제 구조에 나서는 일은 분리해야 한다는 하율의 의견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구조 요청의 공개 여부와 개인정보 처리는 독립 보관인이 검토한다. 현장 출동은 위치별 구조대가 판단한다. 신성 사용은 위험과 당사자 의사를 확인한 뒤에만 별도로 결정한다. 한 사람의 이름으로 모든 책임을 묶지 않는다. 세리아가 회의록에 시간을 적었다. 예상 결의문에 적힌 결과와 달랐다. 그 즉시 통지문의 붉은 직인이 반짝였다. [예정 결의 불일치.] [제8 환승선 조정 권고.] 하율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눌렀다. “저들에게서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통지문을 발행해 놓은 겁니다. 지금부터 예측을 맞추려고 조정이 들어올 수 있어요.” 조정은 그날 밤 나타났다. 열차 맨 앞의 경유차가 느닷없이 가시골 외곽으로 굴러왔고, 기관차 뒤편에는 지도에 없던 플랫폼이 하나 생겼다. 돌기둥은 새것이었는데, 새겨진 날짜는 마을을 세우기 전의 것이었다. 유나가 지친 얼굴로 통신관에 나타났다. “선로가 물리적으로 늘어난 게 아니에요. 등록된 도착지가 철길의 모양을 덮어쓰고 있습니다. 열차가 지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노아가 물었다. “천계에는 종이가 먼저고 현장은 나중이라는 기관이 너무 많거든.” 에반이 대답했다. 하율은 현장 구조팀과 함께 플랫폼을 조사했다. 새 돌기둥은 실제로 만질 수 있었지만, 그림자는 시각에 따라 반대로 움직였다. 그 아래에는 물이 빠져야 하는 구멍이 막혀 있었다. 누군가가 계획된 경로를 만들려고 실제 수로 위에 구조물을 덧씌운 것이다. “이걸 없애면 배수는 다시 됩니다.” 하율이 말했다. “하지만 기둥 아래로 원래 배수관이 지나가는지 먼저 확인해야 해요. 신이 손짓 한 번 하면 편할 것 같지만, 바닥에 무엇이 묻혔는지 알아야 합니다.” 릴리는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다. 카르도는 검을 가져오려다 대신 삽을 들었다. 본래 전쟁신에게는 수십 명을 한 번에 쓰러뜨릴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흙주머니를 옮기고, 위험한 곳에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었다. 재하는 플랫폼에 놓인 안내판을 읽었다. [예정 결의 반영 장소.] [승강 조건: 신 윤재하가 대표 수신을 선언할 것.] “결국 제 입으로 위임을 말하게 하려는 거군요.” 세리아는 판 앞에 공개 이의신청서를 붙였다. “위임이 실제로 없었다는 주민회의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치는 원본을 읽지 않고 설정된 문구만 기다리는 모양입니다.” 재하는 고민했다. 플랫폼이 배수로를 막고 있어서 물이 불어나면 마을 아래쪽 집들이 위험했다. 그가 대표 수신을 한마디 선언하면 장치가 멈출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기록이 자신의 것이 되어 버릴 수 있었다. 마르타가 다가왔다. “신님. 그 말만은 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집을 잠기게 둘 수도 없잖아요.” “우리가 집에서 나올 수 있게 길부터 만들어요. 집이 잠기면 다시 지을 수 있지만, 누군가의 이름에 우리 인생이 묶이면 그건 어떻게 풀어요?” 재하는 대답 대신 주민회의록을 다시 펼쳤다. 그가 가장 먼저 도울 수 있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선택의 순서를 지키는 일이었다. 우회 배수관을 파는 도중에는 작은 사고도 있었다. 한 작업자가 젖은 흙 위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접질렀다. 재하는 즉시 달려가려다가 릴리가 손을 들어 멈추는 것을 봤다. “일단 앉을 수 있게 돕고, 발목 상태부터 봐야 해요.” 그녀가 진찰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무너질 수 있는 흙더미를 지지했다. 부상자는 자신 때문에 일이 늦어진다고 미안해했지만, 하율은 쉬어야 할 사람이 억지로 일하다 다시 다치면 더 큰 손해라고 말했다. 재하는 그 말을 듣고 예측국의 기록을 떠올렸다. 예정된 공사가 늦어졌으니 이 시간도 채무가 될까. 하지만 주민들의 장부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혔다. ‘작업자 한 명 부상, 안전 조치 후 교대. 임시 통행로 재점검.’ 누가 빚졌다는 문장은 없었다. 잠시 늦어진 대신 다음 사고를 막는 쪽을 선택한 결과였다. 다음 날 새벽, 하율이 다른 길을 찾아냈다. 예측 플랫폼의 바깥에 원래 있던 좁은 우회 배수관.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아 막혀 있었지만 삽과 밧줄, 여러 사람이 있으면 열 수 있었다. 주민들은 젖은 땅을 파고 진흙을 퍼냈다. 재하 역시 삽을 들었다. 에반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신격 유지비가 너무 저렴하군요. 하루 종일 삽질만 해도 되다니.” “아니, 손바닥이 너무 비싼데.” 재하가 물집을 내보였다. 해가 떠오를 무렵 물이 흘렀다. 기존 수로와 새 플랫폼은 서로 간섭하지 않게 임시 분리됐다. 조합의 시계도 멈춘 건 아니었지만, 당장 집들이 잠기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다친 작업자는 발목을 쉬게 한 덕분에 통증이 줄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그의 몫을 대신 채운 사람에게 빚을 청구하지 않았다. 공동 작업에서는 누군가 잠시 쉬어야 할 때 다른 사람이 도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재하는 그 모습을 회의록에 적어 두었다. ‘작업 속도보다 안전 우선.’ 이 문장을 쓰는 데 신성 포인트는 한 점도 들지 않았다. 재하는 새로 정리한 우회 배수관 도면을 신전 문에 붙였다. 위험이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 아직 막힐 수 있는 곳을 주민들이 함께 확인하기 위한 자료였다. 릴리는 밑에 한 줄을 더했다. ‘틀린 정보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 한동안 아무도 그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하율은 도면의 가장자리에 임시 조치와 영구 보수의 차이를 적었다. 오늘 물이 빠졌다고 해서 내일도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주민들은 다음 점검 날짜를 함께 정했다. 그때 플랫폼 안내판의 마지막 줄이 바뀌었다. [우회 대응 확인.] [제8 환승선의 수신 대상 변경: 독립 보관인 유나.] 재하는 그 문장을 읽고 바로 통신관을 잡았다. 자신이 위임을 거절하자 이번에는 신이 아닌 유나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한 주장은 거짓이 아닐지도 몰랐다. 다만 저들이 바꾸려는 건 늘 남에게 돌아갈 책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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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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