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골의 종은 자정부터 여섯 시까지 세 번 울렸다. 새벽 종을 멈추라는 문서가 나타난 뒤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그 세 번을 모두 세었다. 첫 번째는 바람에 흔들린 소리였다. 두 번째는 마르타가 빵 굽는 화덕에 불을 붙이는 소리를 누군가 잘못 들은 것이었다. 세 번째는 진짜였다.
“노아가 종줄에 매달려 있어요!”
릴리가 뛰어나갔다. 재하는 신전의 낮은 돌담을 넘다가 옷자락이 걸려 그대로 앞으로 구르려 했다. 카르도가 목덜미를 잡아 세워 주었다.
“신답게 좀 움직여라.”
“신도 물리 법칙에 구독료를 내나요?”
“기적을 쓰면 되지 않나.”
“누가 허락했어요?”
카르도는 입을 다물었다. 재하가 남들의 동의 없이 힘을 쓰지 않으려는 이유를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노아는 종 아래에 있는 나무 발판 위에 서 있었다. 종줄을 잡은 건 맞지만 당긴 건 아니었다. 아이의 옆에는 낯선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회색 제복의 남자는 오른손에 장부를, 왼손에 커다란 칼을 쥐고 있었다. 칼날은 종줄을 자르기 직전이었다.
“왜 종줄을 자르려고 합니까?” 릴리가 물었다.
남자는 반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래 신앙 계정의 위험 예방입니다. 이 지역 종소리는 미래 송신자의 선택 이행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안전 신호를 없애도 된다는 건가요?”
“예정된 손실을 줄이는 것이 공익입니다.”
“가시골의 공익은 가시골 사람들이 정합니다.”
그 말이 릴리에게서 나왔을 때 재하는 안도했다. 자신이 나서서 거창한 신탁을 외칠 필요가 없었다. 종에 누구의 손이 닿아야 하는지 이곳 사람들은 이미 정해 두었다.
회색 제복의 남자는 자신을 예측국 현장 등록관 드레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허가 문서를 내밀었다. 붉은 직인과 천계 표준규격의 격자무늬가 찍혀 있었다. 유나가 보내온 도장 비교표에는 없던 양식이었다.
“신 윤재하의 미래 행위가 이미 공인되었습니다. 이곳의 종은 사고 개입 변수입니다. 변수를 제거하지 않으면 예정된 선택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재하가 말했다. “미래에 제가 무슨 일을 한다고요?”
“아직 작성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공개할 수 없습니다.”
“작성도 안 됐는데 공인됐다는 건 무슨 소리죠?”
“확률은 이미 충분합니다.”
에반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가장 나쁜 말을 가장 예쁜 직인과 함께 가져왔군.”
드레인은 자신을 조롱한다고 생각했는지 장부를 펼쳤다. 그 안에는 마을 주민의 이름과 행동이 촘촘히 적혀 있었다. 마르타는 내일 빵을 열두 개 기부한다. 대장장이는 사흘 뒤 무상으로 다리를 고친다. 릴리는 엿새째 의료소에 남는다. 노아는 일곱 번째 날 종을 여섯 번 친다.
“무섭게도 자세하네요.” 재하가 중얼거렸다.
노아가 드레인 뒤로 몸을 숨기며 말했다. “난 일곱 번 칠 건데.”
“왜?”
“일곱 번 치고 싶으니까.”
드레인은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글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에반이 즉시 그 변화를 기록했다.
“보셨죠? 예상과 다른 말 한마디에 계정이 반응합니다. 이건 단순한 관찰 기록이 아닙니다. 사람의 선택을 끊임없이 맞춰 놓는 장치예요.”
드레인은 장부를 덮었다. “예측에 대한 불법 간섭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할 일을 말하는 것도 간섭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드레인은 공식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통고했다. 카르도가 그를 붙잡으려다 멈췄다. 주민회의가 승인한 경계선을 넘지 않는 이상, 신의 힘으로 단순 공문 전달자를 붙잡을 근거는 없었다.
등록관이 떠난 뒤 노아는 종줄을 놓고 재하 옆에 섰다.
“제가 틀린 말을 했어요?”
“아니.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했지.”
“그럼 일곱 번 쳐도 돼요?”
“안전 신호는 아무렇게나 바꾸면 안 돼. 일곱 번 치는 게 무슨 뜻인지 마을이 합의하면 그때.”
노아는 잠시 입을 내밀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선택을 존중받는 것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건 다른 일이었다.
수로 점검을 나서기 전, 하율은 드레인이 들고 온 장부에 적힌 예측을 실제 작업 일정과 하나씩 대조했다. 날씨와 작업자 명단뿐 아니라 점심을 누가 준비하는지까지 적혀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세밀한 기록이었다. 그런데 하율은 그 안에서 이상한 공백을 발견했다.
“안전 담당자가 없습니다.”
“안전 담당자 이름이 빠졌나요?” 재하가 물었다.
“아뇨. 안전 확인이라는 과정 자체가 없어요. 부상을 입을 확률은 적어 놓고, 부상을 막기 위해 누가 무엇을 확인하는지는 빠졌습니다.”
에반은 장부를 들여다보며 설명했다. “예측국은 확률을 다룹니다. 사람이 사고를 막으면 원래 예측한 피해 비용을 청구할 수 없으니 그런 과정을 계산식에서 뺐을 수 있죠.”
하율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위험을 분석하는 보고서에서 예방하는 사람을 빼다니요.”
그는 주민들에게 자신이 가진 오래된 안전 점검표를 나눠 줬다. 사소한 체크 항목이 열두 개나 있었다. 길을 막아 뒀는가, 비가 오면 흙이 무너질 가능성은 없는가, 작업자가 혼자 들어갈 곳은 없는가, 공구를 사용한 뒤 누가 보관할 것인가. 재하는 그 표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서류가 너무 많은데요?”
“신님, 이번엔 실제 안전을 확인하는 서류예요.”
“아, 그럼 좋습니다. 천계에서 받은 서류는 대개 동의하지 않은 데 동의했다는 내용뿐이라서.”
하율은 점검표를 바닥에 펼쳐 놓고 작업자들과 함께 읽었다. 주민들 가운데 글자를 읽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어 항목마다 그림을 그렸다. 경고문이 길어지면 중요한 내용이 묻힌다는 노아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누군가가 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했다면 그 표 역시 효력이 없다고 하율은 못 박았다.
점심시간에 대장장이는 마르타가 가져온 빵을 나누면서 드레인의 예측대로 정확히 열두 개가 왔는지 세었다. 빵은 열세 개였다. 마르타가 노아의 몫을 하나 더 챙긴 탓이었다.
“예측국 장부엔 열두 개라던데.” 그가 농담했다.
“열세 개를 먹으면 안 됩니까?” 마르타가 물었다.
재하는 빵 하나를 받아 들고 말했다. “한 개가 남는다면 제가 희생하죠.”
“신님은 식사를 안 해도 되잖아요.”
“신도 맛은 알아요.”
그들이 웃는 동안 에반은 아주 조용히 기록을 남겼다. 빵의 개수가 틀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한 개가 왜 생겼는지였다. 노아가 오늘 처음으로 작업장에 나왔고, 마르타가 그를 생각해 하나 더 만들었다. 그건 예측국이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할 미래가 아니었다. 누군가 그 순간에 마음을 써서 만든 차이였다.
일을 마친 하율은 어두워질 무렵 종탑에 들렀다. 노아가 처음부터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아이는 드레인이 해 버린 말 때문에 종을 칠 날이 두려워졌다고 고백했다. 예측이 맞으면 누군가가 자기 뜻을 훔친 것 같고, 틀리면 자신 때문에 사고가 날까 봐 무섭다는 이야기였다.
하율은 종 아래에서 노아와 나란히 앉았다. “종은 미래를 맞히는 기계가 아니야. 위험을 확인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는 도구지.”
“그럼 제가 잘못 치면요?”
“그때는 왜 잘못 쳤는지 확인하고, 뜻을 다시 알려 주면 돼. 네가 한 번 실수했다고 모두를 빚진 사람으로 만들진 않아.”
노아는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종줄을 손에 쥐었다가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이 예측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위험을 알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오전의 회의에서 마르타가 처음 입을 열었다. “내일 빵 열두 개 기부한다고 적혀 있대요? 나는 그럴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누가 그걸 보고 내 몫으로 청구서를 만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대장장이도 말했다. “다리가 무너지면 당연히 고칩니다. 그렇지만 그 전에 재료를 구해야 하고, 사람이 다치지 않게 안전 줄도 쳐야 합니다. 장부에는 그런 게 없더군요.”
릴리는 칠판에 ‘도움의 의사’와 ‘강제 이행’이라는 두 줄을 그었다. 마을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미래의 예상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일상을 누군가의 빚으로 기록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증명하려고 일부러 돕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누가 곤란해지면 그때 가능한 사람이 도울 뿐이었다.
세리아는 드레인이 놓고 간 장부의 표면을 복사해 천계 감찰실로 보냈다. 원본은 등록관의 소유였지만 현장에서 공개된 문구는 검증할 수 있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장부의 발행기관은 예측국이 맞았다. 하지만 문서가 인용한 상위 규정에는 아직 효력이 없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래 신앙 담보 규칙 제0항: 선택 예측의 승계 가능성.]
“승계 가능성이라고요?” 재하가 물었다.
“본인이 하지 않은 약속을, 본인이 될 것이라고 예측된 존재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리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신이 되었던 당신에게 사용한 강제 승계의 다음 단계죠.”
재하는 불현듯 지구에서 사고를 당하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길 위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서 몸이 먼저 움직였던 순간. 누구도 자신이 그때 누군가를 도울 거라고 계산해서 명령하지 않았다. 그 행동을 이용해 천계가 신격 동의서를 꾸몄지만, 적어도 손을 뻗었던 이유는 그의 것이었다.
하율은 주민들의 자발적 수리 기록을 가져왔다. 오래된 수로의 나무 판 세 장이 썩어 있었다. 마을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흘 뒤 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예측국이 그 사실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결과가 일어날 만한 조건을 찾아 사람들의 행동을 계산하고, 이후에는 그 행동을 자기 예측이 실현됐다는 증거로 삼는 방식.
“그럼 이제 다리를 안 고쳐야 하나요?” 대장장이가 물었다.
“고쳐야죠.” 릴리가 말했다. “예측 때문에 고치지 말자는 건 오히려 저쪽에서 원하던 일일 수 있어요. 우리가 먼저 위험을 확인했고 우리가 수리 날짜를 정할 겁니다.”
수리팀은 난간 아래 임시 통행로를 만들었다. 마르타는 빵을 준비했고, 노아는 물통을 나르다가 두 번이나 엎질렀다. 에반은 홍보 문구를 써 주겠다고 나섰다가 주민들에게 ‘공사 중 통행 금지’ 네 글자면 충분하다는 말을 들었다.
“브랜드를 만들 기회를 놓치다니.”
“사람이 안 다치게 하는 게 먼저예요.” 하율이 못을 박으며 말했다.
공사가 끝난 뒤 대장장이는 재하를 불러 새로 고친 다리 아래쪽을 보여 줬다. 낡은 지지대 옆에 작은 나무판이 있었다. 판에는 예전에 사고를 막으려고 힘을 보탠 사람들의 이름이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 돈을 냈든 나무를 날랐든 서로 다르게 도왔지만, 누구 하나를 다리의 주인이라고 적지 않았다.
“저 이름들은 언제 지울 생각이세요?” 재하가 물었다.
“지우긴 왜 지워요. 낡으면 다시 새겨야죠.”
“그럼 이 다리는 모두의 것이네요.”
“정확히는, 누구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죠.”
재하는 손끝으로 나무의 거친 표면을 쓸었다. 미래의 장부에는 그들의 이름도 어느 날 누군가의 도움을 이행할 의무자로 적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다리 아래의 이름은 약속을 강제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이 누군가의 수고를 기억하게 하는 흔적이었다. 기록을 남기는 목적이 다르면 같은 이름도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을 그는 실감했다.
노아는 공사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종탑을 다시 올려다봤다. 종을 치는 일이 갑자기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하율이 알려 준 안전 신호의 뜻을 떠올리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자신이 할 일은 예측을 맞히는 게 아니라 실제 위험을 봤을 때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저녁에 유나에게서 새 소식이 왔다. 열차의 미발송 문서가 갑자기 늘었다. 한 장이 아니라 열두 장이었다. 각 문서의 작성자는 한 사람씩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어제 열차를 지키기 위해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던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예정 도움 행위 자동 등록: 12건.]
[예측 충족률: 87.4%.]
재하는 글자를 노려봤다. 사람들의 선의를 모아 미래의 의무를 만들어 놓고, 자발적인 도움을 인질로 삼는 기계. 그것이 검은 우편열차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아래 아주 작은 조건이 발견됐다.
[향후 일곱째 날, 지정된 구조 요청 1건에 응답하지 않을 경우 모든 예정 도움 행위는 미이행 채무로 간주.]
릴리가 말했다. “결국 우리에게 일부러 누군가를 버리게 하려는 건가요?”
“아니요.” 재하가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를 돕게 만들면서 그 도움의 주인이 자기들이라고 선언하려는 거예요.”
그는 종을 바라봤다. 안전을 알리는 종이 빚을 세는 종으로 바뀌어선 안 됐다. 그리고 미래에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오늘부터 채무자로 만들 권리도, 그 어떤 신에게 없었다.
제16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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