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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61화
PAYLUA ORIGINAL · 제161화

161화. 미래의 서명은 아직 내 것이 아니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125자

오프라인 책장
가시골 쉼터에서 가장 먼저 깨어나는 사람은 원래 빵집 주인 마르타였다. 새벽 반죽을 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검은 우편열차가 온 뒤로는 윤재하가 그 기록을 빼앗았다. 그것도 아주 불명예스러운 방법으로. “신님, 오늘도 종보다 먼저 일어나셨어요?” “잠을 못 잔 겁니다. 신에게 불면증이 있다는 사실을 교리에는 쓰지 마세요.” 마르타는 따뜻한 빵 한 조각을 내밀었다. 재하는 받아 들고도 입에 대지 못했다. 신전 탁자 위에 놓인 봉투 때문이었다. 어제 유나가 마지막 보관차의 밑판에서 꺼낸 문서. 겉에는 분명 그의 필체처럼 보이는 글씨가 있었다. [발신 예정: 칠 일 후.] [작성자: 윤재하.] [수신처: 가시골 신전.] 남의 이름도 마음대로 계약에 붙이던 세상에서 자기 이름이 붙어 있다는 건 신뢰의 이유가 아니라 경계의 이유였다. 재하는 그걸 배울 만큼 오래 이 세계에 살았다. 릴리가 장갑을 끼고 봉투를 뒤집었다. 안을 열지 않은 건 겁이 나서가 아니었다. 검은 열차의 서신은 개봉 자체가 ‘수신 확인’이 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나가 보내온 문서에는 아주 구체적인 경고가 있었다. ‘미래 주소가 붙은 봉투는 서명보다 먼저 전달 경로를 확인할 것.’ “편지를 보면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노아가 물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지. 아니면 누가 써 둔 각본을 읽는 걸 수도 있으니까.” “신님도 각본 같은 거 읽으세요?” “인간 시절엔 회사에서 매일 읽었지. 프로젝트 계획서라고 불렀어. 다들 계획대로 될 거라고 썼다가 결국 야근했거든.” 노아는 웃었지만 릴리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나무로 만든 얕은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 바닥에는 마을의 확인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 상자는 누구의 신성도 닿지 않는 공동 문서 보관함이었다. 재하가 처음 신전의 주인이 됐을 때와 가장 달라진 물건이었다. 오전에는 세리아가 찾아왔다. 그는 편지의 잉크를 보는 대신 종이를 재었다. 재하가 답답해 묻자 세리아는 대답했다. “미래 편지인지 지금 만든 위조인지 가르려면 미래라는 단어 말고 비교 가능한 것이 필요합니다. 섬유 방향, 봉인 풀의 재료, 우편열차의 역 통과 기록 같은 것들이요.” 에반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폈다. “저는 광고 문구를 보겠습니다. 글씨체는 흉내 내도 사람은 원하는 행동을 광고에 숨기거든요.” 카르도가 문밖에서 팔짱을 꼈다. “검이 필요한 일은 없나?” “봉투를 검으로 잘라 버리는 건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표정을 보니 계획이 들립니다.” 재하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는 신을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지금은 성녀, 악마, 전쟁신, 감찰관이 한 장의 종이 앞에서 서로의 실수를 막고 있었다. 숫자로 매길 수 없는 호사였다. 세리아의 검사가 끝날 무렵 첫 번째 이상이 발견됐다. 봉투의 재질은 열차에서 사용하던 오래된 미도착용 종이와 같았다. 하지만 종이에 찍힌 우편 경유 도장은 아직 개통하지 않은 ‘제8 환승선’의 것이었다. 지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역이었다. “아직 없는 역을 지나왔다는 뜻인가요?” 릴리가 물었다. “아니면 누군가 새 역을 미리 등록한 거죠.” 세리아가 대답했다. “우리는 두 가능성을 모두 열어 둬야 합니다.” 이어 세리아는 검사용 작은 칼로 바깥 봉인의 끝에서 실오라기만큼의 종이를 떼어 냈다. 봉투 전체를 개봉하지 않고도 바깥 종이에 새겨진 접수층을 읽는 방식이었다. 접수층에는 낯선 문장이 있었다. [발신 자격: 발신인이 예정된 선택을 이행할 때 확정.] [선택 미이행 시: 해당 시각의 미응답 대금으로 전환.] 에반의 표정이 굳었다. “미래의 일을 예측한 문서가 아닙니다. 미래에 할 행동을 먼저 채권으로 잡아 둔 겁니다.” “사람이 아직 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 빚으로 삼죠?” “선택할 거라고 계산했다고 주장하면 됩니다. 정확히는, 선택하지 못하게 주변 조건을 만드는 겁니다.” 재하는 편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미 이런 방식을 여러 번 봤다. 구조 요청을 신앙으로 바꾸고, 거절을 동의로 바꾸고, 기다리는 시간을 수익으로 바꿔 왔던 천계의 오래된 관행. 이제는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까지 팔아 치울 생각이었다. 점심 전에 열차 보관인 유나가 부두의 영상 통신관을 통해 얼굴을 비쳤다. 뒤에서 종이 상자들이 규칙 없이 흔들렸다. 정차한 열차의 객차가 스스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보고였다. “재하 님, 종착판이 깜빡입니다. 미발송 문서가 한 장 생긴 뒤로 열차가 목적지를 바꾸려 해요. 그런데 기관실에 들어가면 그걸 막는 손잡이가 전부 수신인 이름으로 묶여 있습니다.” “제 이름이요?” “네. 수신인의 예정 행동을 보장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재하는 하율에게 물었다. “열차를 움직이지 않고 기관실 연결만 끊을 수 있어요?” 하율은 계산판을 펼쳤다. “연결선을 자르면 보관차의 기록 온도와 습도 유지까지 끊어집니다. 사만 이백열여섯 건의 원본이 망가질 수도 있어요. 대신 누가 손잡이를 당기는지와 열차를 멈추게 하는 설비가 따로 있는지부터 확인하죠.” 카르도가 투덜거렸다. “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해라.” “검으로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으면요.” “그건…… 칼날을 차갑게 만들면.” “그건 냉장고잖아요.” 에반은 웃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은 접수층의 단어를 짚고 있었다. ‘예정된 선택.’ 이 말은 천계의 예측국이 쓰던 용어였다. 결과가 일어나기 전에 비용과 책임을 선지급시키는 부서. 검은 우편열차가 기록 보관과 구조 요청의 독립 감시를 얻자마자, 그 부서가 우회로를 찾아온 것일 수 있었다. 그날 오후, 주민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릴리는 재하를 데리고 옛 신전 뒤편의 작은 묘역으로 갔다. 묘역이라고 해도 이름을 새긴 돌 일곱 개와 비가 올 때마다 자라는 들풀이 전부였다. 재하는 그곳을 자주 찾지 않았다. 신이면서 죽은 사람들에게 해 줄 말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여기 돌을 세운 사람들은 누구예요?” 재하가 물었다. “가시골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에요. 어떤 분은 우리 가족과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할머니가 묘역을 돌보셨죠. 나중에 제 어머니가, 그다음엔 제가요.” “신에게 부탁하면 비바람으로부터 지켜 줄 수도 있을 텐데요.” “예전엔 다른 신전의 사제가 묘역 보호 계약을 제안했어요. 매달 작은 헌금을 내면 돌을 더 오래 지켜 주겠다고 했죠. 돈이 없어진 뒤엔 보호가 끝났다고 했고요.” 릴리는 낡은 돌 하나의 이끼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래서 우린 그냥 돌을 고쳐 가기로 했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기억하고 싶어서요.” 재하는 낮은 돌 앞에 쪼그려 앉았다. 편지에 적힌 자기 이름이 조금씩 더 무겁게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의 미래 행동을 훔치면, 이런 사소한 기억까지 그 행동의 대가로 계산될 수 있다. 앞으로 누군가를 도울 마음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빚이 생겼다고 한다면 인간은 마음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을 것이다. 릴리가 말했다. “신님이 처음 우리 집에 오셨을 때를 기억하세요? 제 동생에게 기적을 쓰기 전날 밤이요.” “기억하죠. 불 피우다가 연기만 잔뜩 냈습니다.” “그때 전 신님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몰랐어요. 오히려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럴 만했어요.” “그런데도 곁에 있어 주셨잖아요. 저는 그 행동을 믿었지, 미래에도 같은 일을 해 달라는 계약을 산 게 아니에요.” 재하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무엇을 약속할 수 있고 무엇을 약속할 수 없는지 가장 먼저 가르쳐 준 사람이 릴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역을 내려오던 길에는 노아가 두 손으로 돌멩이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돌 위에 ‘일곱’이라는 숫자를 긁어 써 놓았다. 종을 일곱 번 칠 수 없으니 자기만의 표시를 만들었다는 설명이었다. 릴리는 위험 신호를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되는 이유를 다시 말했고, 노아는 심통이 난 얼굴로 돌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잠시 뒤 자기가 만든 표시가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줄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럼 이 돌은 제 방에 둘게요. 남들이 보면 종을 일곱 번 치라는 뜻인 줄 알 테니까.” 재하가 웃었다. “멋진 판단이네.” 노아는 으쓱했다. 작은 아이도 자기가 만든 표시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천계의 위대한 예측국 관리들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모르는 척할 이유가 있었을 뿐이다. 신전으로 돌아오는 길, 재하는 릴리에게 묻지 않던 질문을 했다. “만약 제가 정말 미래의 편지를 쓴 거라면, 그래도 그 내용대로 하라고 말할 건가요?” “내용에 따라 다르겠죠. 신님이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지금 제가 결정할 수는 없어요.” “성녀가 신을 이렇게 안 믿어도 되나?” “신님이 그렇게 믿지 말라고 가르치셨잖아요.” 재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집으로 돌아와 주민회의에 참석할 준비를 했다. 편지를 둘러싼 논쟁이 길어지더라도 사람들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일이었다. 오후에 재하는 가시골 주민회의를 소집했다. 새 제도나 예언을 알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한 장의 문서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예정 수신인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빵집 주인 마르타는 밀가루가 묻은 손으로 의자를 끌었다. 대장장이는 쇠장갑을 벗었다. 전신주를 고치던 노동자도, 한때 다른 신전에서 쫓겨났던 이들도 모였다. “제가 미래 편지의 내용을 확인해도 될까요?” 재하가 물었다. 마르타가 되물었다. “그 편지를 읽으면 우리까지 뭘 약속한 사람이 되는 거요?”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저 혼자 뜯지 않으려고요.” 회의는 뜻밖에 길어졌다. 빨리 열어야 위험을 막는다는 의견도 있었고, 근거가 없는 예언에 또 끌려다니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다. 릴리는 어느 쪽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저 칠판에 확인할 사실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나누어 적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주민들은 결론을 냈다. 봉투는 공동 보관한다.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외부 기록만 먼저 검사한다. 다만 편지 내용이 긴급 구조에 관한 것이라는 실증이 나오면 새 회의를 기다리지 않고 인간 구조대와 기술자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 재하는 그 결론을 읽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신이 된 그는 매번 누군가 대신 결정을 내려 주길 바랐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신의 의견을 정중히 듣고, 필요하면 거절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지키고 있었다. 회의록을 정리하던 세리아는 맨 아래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항목을 추가했다. 밭에서 일을 하느라 오지 못한 사람, 몸이 아파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사람, 천계와 엮이고 싶지 않아 일부러 발길을 돌린 사람. 결의의 정당성을 위해서는 그들 또한 나중에 내용을 확인하고 이의를 낼 수 있어야 했다. 재하는 그 항목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신도의 숫자를 늘리는 데만 관심이 있던 시절이라면 참석한 사람의 수만 계산했을 것이다. 지금은 없는 사람의 의견을 남겨 둘 자리도 필요했다. “누군가가 우리 일을 대신 결정한다고 주장할 때는, 먼저 누가 그 자리에 없었는지 봐야 합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재하는 문득 검은 우편열차의 사만 이백열여섯 건을 떠올렸다. 그 편지의 작성자는 이 회의장에 나타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기록을 보관한다는 것은 동의를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동의를 묻기 위한 기회를 지키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는 회의록에 새 항목을 추가했다. ‘미확인 발신인의 이름은 임의로 대리하지 않는다.’ 밤이 되자 열차 쪽에서 일곱 번째 종이 울렸다. 전에는 여섯 번만 울리던 소리였다. 유나의 통신이 다시 켜졌다. “새 경유 도장이 생겼어요. 날짜가 한 시간 앞당겨졌습니다.” [발신 예정: 엿새 후.] 재하가 종이를 바라보던 순간, 봉인에 작은 글자가 하나 더 떠올랐다. [미래 선택을 촉진하기 위한 최초 조치: 내일 새벽, 가시골의 종을 멈출 것.] 재하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좋아요. 저쪽에서 원하는 게 뭔지는 하나 알겠네요.” “뭔데요?” 릴리가 물었다. “우리가 종을 멈추려 들게 만드는 것.” 그는 창밖을 보았다. 종은 주민들이 위험을 알리기 위해 직접 묶어 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래의 채권자에게 그 종을 맡길 이유는 없었다. 내일 새벽에는 누가 종줄에 손을 대는지 먼저 지켜봐야 했다. 미래의 글자가 예언이든 협박이든, 오늘의 마을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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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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