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 직인의 주인을 확인하는 일은 예상보다 지루했다. 윤재하는 멋진 추적을 기대했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비밀 기록실에 잠입하거나, 전쟁신 카르도가 번개를 내려 오래된 진실을 밝히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현실에서는 복도에 줄을 서서 세 시간 기다렸다.
“제발 번호표 좀 줄여 주세요.” 재하가 중얼거렸다.
세리아는 곧장 대답했다. “새치기를 막으려면 번호표가 필요해요.”
“그럼 의자라도 더 놓죠.”
“그건 좋은 제안이네요.”
공동 경유실은 일곱 직인이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발급됐다는 사실만 우선 확인했다. 그중 세 개는 이미 폐기된 관청의 표식이었고, 두 개는 현재도 쓰는 전쟁 및 수송 관련 인장이었다. 나머지 두 개는 발급 기록 자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들을 곧바로 범죄의 증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위조일 수도, 오래된 권한의 남용일 수도 있었다.
“이쯤이면 그냥 다 위조라고 하면 안 됩니까?” 에반이 물었다.
“그럼 진짜 서명한 사람이 책임질 기회를 없애는 거죠.” 릴리가 대답했다.
“오늘의 명언이군요. 책임질 기회라니.”
재하는 칠판에 각 직인의 상태를 적었다. ‘발급 확인’, ‘본인 의사 불명’, ‘효력 확인 필요’. 다른 사람들이 덧붙인 말도 함께 남겼다. 이름이 알려지면 곤란한 사람들의 정보는 공개 장부에 넣지 않았다.
카르도는 오래된 전쟁 인장을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내 부하가 쓰던 보급 인장이다.”
“카르도 님이 직접 서명하셨나요?” 릴리가 물었다.
“아니다. 그때는 부대가 멀리 있었고, 나는 출정 명령을 내리는 중이었다.”
“그럼 누가 대신 사용했을 수 있겠네요.”
“가능하지. 하지만 내가 그런 대리 서명 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카르도는 자신의 부대에서 보관하던 문서 사본을 내놓았다. 예전 그는 병사들이 출동할 때마다 직접 승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광범위한 대리 권한을 허용했다. 그 권한은 나중에 구조대에도 적용됐고, ‘위험한 곳에 먼저 간 사람’이라는 이유로 영원한 의무를 부과하는 데 사용됐다. 그는 그 결정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조합이 내 이름을 썼다면 그 사실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내 직인이 찍혔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 서류의 모든 내용을 승인했다고 단정하지도 마라.”
“알겠습니다.” 재하가 답했다. “그게 우리가 지키려는 원칙이니까요.”
카르도는 자신의 부대 인장이 복사된 원본을 다시 살펴봤다. 전쟁신의 군대가 쓰던 인장은 원래 보급품이 전장으로 안전하게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도구였다. 병사들이 굶지 않게 만든 표식이 지금은 구조 요청의 소유권을 옮기는 근거로 쓰이고 있었다.
“내가 만든 길을 누군가 이렇게 사용할 줄은 몰랐군.” 카르도가 말했다.
재하는 대답했다. “모를 수는 있어도, 알게 된 다음엔 고쳐야겠죠.”
카르도는 예전 부하들에게 연락했다. 일부는 전쟁이 끝난 뒤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일부는 여전히 군대에 남아 있었다. 그들에게 인장을 누가 보관했는지 묻자 서로 다른 기억이 나왔다. 한 사람은 장부 관리인이 위조를 막으려고 인장을 금고에 넣었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긴급 출동을 이유로 대리 인장 사용을 허용했다고 했다.
카르도는 어느 한쪽의 말을 즉시 채택하지 않았다. 금고 출입 기록과 지급 기록을 따로 요청했다. 부하들은 놀랐다. 예전 같으면 전쟁신의 기억이 곧 증거가 됐기 때문이다.
“제가 틀릴 수도 있다.” 카르도가 말했다. “그러니 내가 확신하는 대목도 확인해 달라.”
재하는 그 말을 듣고 어쩐지 뿌듯했다. 이런 변화를 보려고 지난 몇 달 동안 싸웠는지도 몰랐다. 아니, 몇 달이라는 계산도 정확하지 않았다. 세계마다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니 그가 느낀 시간과 실제 시간이 같을 리 없었다.
부대의 옛 보급관은 표식의 한쪽 모서리에 작은 균열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원래 인장에는 없는 균열이었다. 이 조그만 차이는 누군가 낡은 원본을 본떠 복제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다만 한 사례만으로 나머지 여섯 인장도 위조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세리아는 관찰 사실만 문서에 적었다. '전쟁 보급 인장 이미지와 등록 원본의 외형 불일치.'
“끔찍하게 재미없는 문장이네요.” 에반이 말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거죠.” 릴리가 답했다.
일곱 직인 중 나머지 기록을 찾는 동안 외부 상황이 급해졌다. 경계 수송 보증조합은 열차 정산 시한을 앞당겨 통보했다. 기존의 6일 23시간은 경과됐고, 남은 시간은 하루도 되지 않았다. 조합은 바람절벽역과 가시골 보관역을 무허가 시설로 규정하고, 그곳에서 확인한 위험 완화 기록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철비항의 니라는 치료용 물품이 중단될까 봐 걱정했다. 도요 고원의 장수는 난방탑에서 쓰는 예비 연료의 대금이 오를 거라고 말했다. 재하는 그 사정을 듣고 화가 났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과 달리 거짓말로 안심시키지는 않았다.
“우리가 조합의 정산을 막을 근거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급을 유지하는 일은 별도로 진행해야 합니다. 각 지역에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지금 확인해 주세요.”
대답은 금세 돌아왔다. 철비항에서는 붕대와 해열 약품, 도요 고원에서는 연료, 수하리에서는 배수 장비가 부족했다. 주민들은 공통 보관소에서 물품을 빌리고 나중에 정산할 수 있는 방식을 논의했다. 조합의 채권을 새 채권으로 바꾸려는 게 아니라, 위험이 급한 곳에 실물을 먼저 보내자는 취지였다.
에반은 그 일을 맡으면서 자신에게 특별한 직함을 붙이지 않았다. 그는 물품을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영수증을 만들었다. 기부인지 대여인지, 언제 되돌려줄지, 받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는지를 분명히 적었다. 과거 화려한 설명으로 사람들의 선택을 흐렸던 악마가 이제 가장 단순한 문장부터 확인하고 있었다.
한편 세리아는 직인의 일련번호에 이상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든 인장은 유효 기간이 다르고 발급 기관도 달랐지만, 동일한 분류기에서 인식한 흔적이 있었다. 각 직인의 우측 하단에 검은 점 하나가 찍혀 있었다.
“누군가 이 직인들을 한꺼번에 조합한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진짜 인장을 복사해 다른 문서에 붙인 건지, 각 기관이 함께 쓴 건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요.”
“그럼 그 분류기는 어디 있죠?” 재하가 물었다.
“열차 맨 앞의 기관실. 하율이 말한 원래 운행 기록이 보관된 곳입니다.”
열차의 앞머리는 어떤 역에서도 열리지 않았다. 맨 뒤의 보관차와 달리 기관실에는 보관인이 없었다. 그렇다고 문을 부수면 운행 중인 열차의 통신이 멈출 수 있었다. 재하는 하율에게 우회 접근 방법을 물었다.
“정차역 신호를 세 곳에서 동시에 보내면 기관실은 안전 점검 상태로 들어갑니다.” 하율이 답했다. “하지만 제어권을 넘기는 건 아닙니다. 문을 열어도 조작은 할 수 없지요.”
“그 정도면 됐어요. 원본이 어떻게 생겼는지만 확인하면 됩니다.”
세 곳의 역이 각자 의논했다. 녹슨 플랫폼, 바람절벽역, 가시골 임시 보관역. 주민들과 역무 담당자들은 운행을 멈출 위험과 필요한 안전 조치를 듣고 점검에 동의했다. 카르도는 열차가 멈추는 동안 다른 구조 경로가 유지되는지 확인했다. 릴리는 탑승자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실제 점검에 들어가기 전, 세 정차역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견을 모았다. 녹슨 플랫폼에서는 하율이 역무 기록을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정리했고, 바람절벽에서는 주민들이 위험한 시간에 신호기를 켜지 않도록 바람의 세기를 확인했다. 가시골에서는 모과가 긴급 주민회의를 열었다.
“오늘 누가 책임질 건지 먼저 정합시다.” 모과가 말했다.
재하가 손을 들었다. “제가 책임을—”
“다요?”
“아뇨. 제 권능이 필요한 부분만요.”
“그럼 그 부분을 정확히 적으세요.”
사람들이 웃었다. 재하는 신으로 남기로 선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남겠다는 결정 뒤에는 권한과 역할을 어디까지 맡을지 매일 다시 묻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처럼 ‘신이니까 할 수 있다’는 말로 모든 일을 덮을 수 없었다.
회의에서 가장 큰 반대는 작은 제분소 주인에게서 나왔다. 그는 검은 열차가 정차한 뒤 밤마다 가축들이 놀라고, 철로의 그림자가 밭에 드리워지는 탓에 노동 시간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사람을 돕는다고 우리 마을이 손해만 보는 게 옳습니까?”
재하는 바로 사과했다. 미리 충분한 영향을 조사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세리아는 정차역 운영을 장기화한다면 소음과 이동 경로를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분소 주인은 그래도 사람들의 구조 요청을 버리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생활을 희생하는 데 동의한 적도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렇게 운영 조건에 새 항목이 추가됐다. 야간 경고음 제한, 가축 보호 구역 분리, 철로 그림자가 농지에 닿는 시간 기록, 정차 시설의 임시 운영 기한. 모과는 그 항목을 정식 주민회 장부에 적었다. 표결은 만장일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 이유가 기록으로 남았고, 반대한 주민이 더 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다.
카르도는 회의장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누군가 그에게 왜 전쟁신이 직접 적치장 통행로를 정리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전쟁에서는 이긴 자가 길을 정했다. 그런데 구조에선 돌아올 자가 길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집을 통과할 때는 허락을 구하는 게 맞더군.”
그 말을 들은 제분소 주인이 웃었다. “신님이 우리 마을 소음 문제까지 이해하시니 세상이 바뀌긴 했네요.”
“아직 이해하는 중일세.” 카르도가 답했다.
회의가 끝난 뒤 에반은 새 운영 조건을 그림으로 정리했다. 문장만 많으면 현장 작업자들이 읽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붉은 표시는 위험, 푸른 표시는 당사자 동의 확인, 검은 표시는 열람 금지. 그는 마케팅에서 쓰던 기법을 처음으로 사람을 현혹하기보다 사람을 보호하는 데 썼다.
릴리는 그림을 보고 한 부분을 고쳤다. “여기 ‘수신 거부’라고만 쓰면 편지를 아예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고 오해할 수 있어요. ‘내용 비공개, 위험 확인 별도’라고 해 주세요.”
“짧아야 광고가 잘 되는데.” 에반이 말했다.
“광고가 아니잖아요.”
“알겠습니다. 이제 제가 만든 모든 문구는 세리아에게 결재받겠습니다.”
세리아가 단호히 말했다. “그건 오히려 일을 늘리니까 역할을 나눠 주세요.”
사람들은 다시 웃었다. 재하는 그 소리를 듣고 안심했다. 천계의 거대한 계약을 바꾸는 일에도 이런 작은 회의가 필요했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일이야말로 나중에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출발점이니까.
점검 시간이 시작되자 검은 열차의 바퀴가 천천히 멎었다. 기관실 문 옆에 표시가 나타났다.
[안전 점검 승인: 세 정차역 독립 확인]
[열람 범위: 운행 기록 및 수신권 변경 이력]
[장치 조작: 금지]
릴리와 세리아가 기관실에 들어갔다. 안에는 조종석 대신 거대한 우편 분류기가 있었다. 구멍 난 금속판들이 서로를 스치며 돌아가고 있었다. 중앙의 바늘에는 일곱 직인의 그림자가 붙어 있었다.
세리아는 가장 오래된 기록을 찾아 읽었다. 조합이 주장한 ‘일곱 기관 공동 승인’이라는 문장 아래, 진짜 원본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보관권 분산을 위한 일곱 기관의 점검 요청]
[수신권 집약을 위한 서명: 없음]
[후속 처리: 무단 통합]
“함께 기록을 지키겠다는 뜻이었는데 누가 한꺼번에 소유하겠다는 뜻으로 바꿨군요.” 릴리가 말했다.
그때 기관실의 기판 아래에서 또 다른 문장이 나타났다. 아주 오래된 인쇄체였다.
[무단 통합 실행자: 경계 수송 보증조합 자동 관리자]
[관리자 신격: 지정되지 않음]
재하는 전달된 문장을 읽고 잠시 침묵했다. 악당 신 하나를 찾아내 싸우는 것으로 끝낼 수 없는 문제였다. 누군가 남긴 장치가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책임이 없는 건 아니죠.” 그가 말했다. “장치를 계속 쓰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까.”
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합의 현직 담당자와 이전 관리자들의 갱신 기록을 따로 보존해야 했다. 열차의 기록을 오늘부터 안전하게 만드는 것과 과거의 피해 책임을 가리는 일은 분리해서 진행할 수 있었다.
기관실 밖에서는 곧 정산 시계가 울리기 시작했다. 여섯 번의 종보다 훨씬 크고 차가운 소리였다.
[일괄 정산 개시까지: 00시간 38분]
열차는 멈춰 있었지만, 조합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제15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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