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우편열차가 가시골 상공을 돌아 신전으로 내려오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낡은 검은 줄이 허공에서 뒤틀리더니 마을 지붕 위로 커다란 그림자를 던졌다. 바퀴가 보이지 않는 선로를 굴러가는 동안 지붕의 기와들이 잔뜩 떨렸다.
“또 지붕이네.” 모과가 탄식했다. “이번에야말로 재하 씨가 수리하세요.”
윤재하는 고개를 들었다. “이건 제가 부른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조합이 물어내라고 소송하세요.”
농담을 하는 동안에도 주민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노아와 아이들은 미리 정해 둔 대피 장소로 향했다. 모과는 수리 중인 동쪽 복도를 막았고, 릴리는 의무실 침대를 비워 두었다. 카르도는 구조 수송대와 함께 마을 바깥에 중장비를 세웠다. 신전이 더 이상 한 신의 사유물이 아니었기에, 재하도 주민들의 행동을 직접 명령하지 않았다.
세리아가 통신관에 소리쳤다. “조합의 수신인 강제 변경이 실행 직전이에요! 당신 이름이 모든 객차의 수신란에 입력되고 있습니다.”
“저는 승낙한 적 없습니다.”
“알아요. 그래서 막을 수 있는지 확인 중입니다.”
재하가 신성 창을 열었다. 동의 생략 절차는 오래전 자기 신격을 강제로 넘겼던 방식과 닮아 있었다. ‘타인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사람을 임시 소유자로 지정한다.’ 아름다운 말로 만든 족쇄였다.
에반은 이빨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건 제가 만든 기본 옵션의 변종이에요. 원래는 오류 난 우편물을 임시 보관하기 위한 수신함이었는데, 조합이 소유권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럼 해제할 방법도 있죠?”
“있지만 단순히 해제하면 열차가 전부 반송됩니다. 원래 도착지도 없으니 되돌아갈 곳이 없는 봉투는 자동 정산 대상이 되고요.”
결국 또 같은 문제였다. 누군가의 잘못된 명령을 끊으려 하면 도움이 필요한 기록까지 사라질 수 있었다. 재하는 하율에게 연락했다. 스물여섯 해 동안 역을 지켜 온 남자는 잠시 통신관을 두드리더니 말했다.
“도착지를 강제로 정하면 열차가 멈춥니다. 하지만 편지는 열차에 남아 있어야 하지. 수신인이 아닌 곳에 임시 정차시켜야겠소.”
“어떻게요?”
“차가 쉬는 선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이 내리는 역 말고, 우편물이 잠시 머무는 중립 보관역.”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작해야지요.”
그들은 가시골 쉼터 앞 광장을 임시 정차 공간으로 쓸 수 있는지 긴급 회의를 열었다. 일부 주민은 반대했다. 위험한 열차를 마을로 불러들이는 것은 자신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상점 주인 하나가 손을 들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잘못된 계약 때문에 왜 우리 마을이 위험해져야 합니까?”
재하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을 위에 열차를 멈추는 안에는 반대합니다. 안전한 바깥 지점을 찾고, 이용에 동의한 사람만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은 뜻밖에 빨리 났다. 마을 외곽에는 지난겨울 사용하지 않은 채 남겨 둔 곡물 적치장이 있었다. 튼튼한 돌바닥과 넓은 빈터가 있었고, 집들과도 멀었다. 주민들은 그곳에 열차를 임시 정차시키는 데 조건부로 동의했다. 열차가 닿더라도 사유지와 우물을 훼손하지 않고, 위험이 생기면 즉시 철수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카르도는 중장비를 돌렸다. 하율은 오래된 역 신호기를 가져왔고, 사란은 젖은 계단에서 복구한 독립 경보 장치를 연결했다. 철비항의 니라는 위험 구역과 대피 동선을 점검했다. 도요 고원의 장수는 사람들이 밤새 작업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마른 양말을 보내 왔다.
“이게 바로 세계를 구하는 방법이군요.” 에반이 말했다. “양말을 보내는 것.”
릴리가 대답했다. “물에 젖은 발로는 아무도 오래 못 걸어요.”
중립 정차 신호를 켜기까지 세 번의 실패가 있었다. 첫 번째는 신호등의 방향을 잘못 잡아서 열차가 마을 우물 위로 내려왔다. 다행히 아직 충분히 높은 곳이었지만, 우물 옆 장독대의 뚜껑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모과가 재하를 노려봤다.
“저 장독대는 주민회 재산이에요.”
“제가 변상하겠습니다.”
“재하 씨 돈으로요. 신앙 포인트로 변상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소한 말처럼 들렸지만 그것이 가시골 신전 운영 방식의 중요한 차이였다. 개인이 일으킨 문제를 신전이나 신도라는 이름으로 떠넘기지 않는 것.
두 번째 시도에서는 신호기의 방향은 맞았지만 지표의 진동이 너무 컸다. 철비항 기술자가 수송차 바퀴 아래에 쇠 받침대를 끼워 진동을 확인했다. 열차가 멈추는 순간 적치장의 오래된 벽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카르도가 벽을 직접 부수어 안전한 공간을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모과가 막았다.
“여기 창고는 마을 공동 물품을 보관하는 곳이에요. 부수려면 먼저 안에 있는 물건을 옮겨야죠.”
“벽을 살리다 사람을 다치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카르도가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을 대피시키고, 물건도 옮기고, 벽을 안전하게 철거하자는 말이에요.”
카르도는 잠시 당황하다가 웃었다. 싸움에 익숙한 신이 평생 보급창고의 장부를 쓰는 사람 앞에서 배울 줄은 몰랐다. 그는 수송대원들에게 어떤 작업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자원자를 받았다. 주민들과 함께 창고의 물품을 옮긴 뒤 안전 울타리를 쳤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열차가 정차역의 좌표를 알아보지 못했다. 가시골에는 원래 철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율은 오래된 황동 신호기를 들고 곰곰이 생각했다.
“열차가 아는 건 건물 이름이 아니오. 누군가 위험을 확인하고 기록을 보존해 주는 자리라는 사실이지.”
“그게 좌표가 될 수 있나요?” 재하가 물었다.
“옛날엔 그랬소. 역무원이 자기 이름을 밝히고, 다른 역무원이 그 말을 확인하면 두 지점 사이에 임시 선로가 생겼지.”
세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개인 한 명의 이름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떠나거나 이름을 빼앗기면 선로가 무너지잖아요.”
하율은 잠시 생각하더니 현장 기록자 세 사람의 서명으로 신호기를 갱신했다. 모과는 주민회를 대표해 적치장 사용을 확인했고, 니라는 기술적 안전 상태를 확인했다. 하율은 우편물의 관리가 아니라 열차의 정차 사실만 기록했다. 누구도 편지의 수신인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복잡하게 해도 정말 멈춥니까?” 에반이 물었다.
“모르오.” 하율이 답했다. “그러니까 시험해야지.”
릴리는 시험 전에 대피 시각을 정했다. 열차가 예상 경로를 벗어나거나 벽이 다시 흔들리면 즉시 포기하기로 했다. 재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할 수 없는 구조는 구조가 아니라 강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배웠다.
한편 조합의 수신권 변경 장치는 계속 재하에게 서명을 요구했다. 신성 창에 ‘승인 시 책임 한정’이라는 문장이 나타났다. 에반은 작은 글씨를 확대해 읽더니 코웃음을 쳤다.
“책임 한정은 맞습니다. 조합 책임만 한정되네요. 재하 님 책임은 무제한입니다.”
“저런 문구를 누가 만듭니까?”
에반이 딴 곳을 봤다. “우리가 이미 서로 많이 배웠으니 이 질문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재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하지만 바로 창을 닫았다. 오늘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모든 요청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열차가 편지를 빼앗기지 않고 머무를 곳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 카르도가 통신관을 내려놓았다. “바람절벽역 주민들이 신호를 보태겠다고 한다. 수하리도 준비됐고. 우리가 여기서 실패하더라도 다른 두 곳이 위험 기록을 받아 줄 수 있네.”
“좋네요.” 재하가 말했다. “실패했을 때도 누군가 이어서 할 수 있는 거.”
카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승리밖에 몰랐던 전쟁신이 이제는 실패했을 때도 사람이 다치지 않을 방법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정차를 위한 마지막 안전 점검에는 예상보다 많은 질문이 나왔다. 적치장 옆에서 작은 채소밭을 가꾸던 주민은 열차에서 떨어진 검은 먼지가 흙에 남는지 물었다. 물길을 관리하던 사람은 비가 오면 임시 선로가 미끄러지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니라는 모든 질문을 따로 적었다. 단순한 불평으로 넘기지 않았다.
재하는 무심코 “신성으로 깨끗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술자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뭔지 모르는 가루를 먼저 지우면 조사도 못 합니다. 샘플을 보관하고 위험한지 확인해야죠.”
“그렇네요.”
“신님이 먼저 모른다고 말해 주시면 다른 사람도 편합니다.”
재하는 입을 다물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시절에는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른다고 하는 게 누군가를 살릴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과는 작업자들의 교대표를 확인했다. 이미 여덟 시간 넘게 현장에 선 사람이 두 명 있었다. 그들을 내보내고 다른 자원자에게 일을 넘겼다. 카르도는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을 자지 않은 병사가 얼마나 위험한지 자기가 더 잘 안다고 했다.
노아는 담요를 옮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을 뻔했다. 릴리가 아이를 안전 울타리 안쪽으로 데리고 와 고개를 숙였다.
“궁금하다고 아무 데나 들어가면 안 돼.”
“신님이 있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어요.”
“신님이 있어도 위험한 건 위험해.”
노아는 입술을 내밀었지만 곧 알겠다고 했다. 재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같은 실수를 자주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스스로 신이니까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믿고 위험을 먼저 계산하지 않았던 순간들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율이 녹슨 종을 두드려 신호를 시험했다. 바람절벽역에서도 같은 음이 돌아왔고, 수하리에서는 짧은 빛으로 확인했다. 세 곳의 연락망이 이어졌다. 열차가 못 멈추더라도 편지와 위험 정보가 어디로 흘러갈지 기록할 길이 생긴 셈이었다.
열차가 광장 위로 내려앉으려던 순간, 중립 정차 신호가 켜졌다. 검은 선로가 크게 흔들리더니 적치장 쪽으로 곡선을 그렸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기관차는 마침내 돌바닥 위에서 멈췄다. 바퀴가 회전하는 동안에도 레일은 더 내려오지 않았다.
[임시 보관역 확인]
[우편물 소유권: 미이관]
[현장 관리: 독립 주민 회의]
환호가 터지려던 찰나, 객차 문 하나가 벌컥 열렸다. 안에서 날아온 편지들이 적치장 바닥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종이를 줍기 시작했지만 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읽지 마세요! 발신자 동의 여부를 확인하기 전엔 번호만 보이게 뒤집어 주세요!”
모두 멈췄다. 어린 노아도 편지를 주우려다 손을 거뒀다. 모과가 종이 상자를 가져와 번호가 보이는 면만 위로 놓기 시작했다. 읽을 권한과 도울 마음이 같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재하는 열차 바깥에 서서 각 봉투를 지켜보았다. 그중 하나가 스스로 열리려다 멈췄다. 신성 창에 묘한 문장이 나타났다.
[강제 수신 변경 실패]
[대체 수신인: 미지정]
[시스템 제안: 인근 최고 권능자에게 재배정]
“아뇨.” 재하가 말했다.
그는 다시 한 번 거절했다. 이번에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었다. 이미 원본을 맡지 않으면서도 기록을 보존할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그는 수신자 자리를 포기하되 위험 신호를 확인하는 작업에는 계속 참여하겠다고 선택했다.
객차에서 날아오는 편지 중에는 글씨가 없는 것도 있었다. 세리아는 바로 뜯어 보지 않고 봉투의 보존 번호를 확인했다. 빈 종이처럼 보이지만 특정 수신인에게만 글씨가 드러나는 방식일 수 있었다. 하율은 역무실에 이런 편지를 다룬 규정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했다.
재하는 작게 중얼거렸다.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모르는 일이 세 개 생기네요.”
릴리는 천천히 종이를 뒤집었다. “그래도 지금은 몰라도 되는 부분이 있어요. 당장 위험한 신호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하면 되죠.”
그들은 붉은 표식이 있는 봉투만 따로 놓고, 나머지는 닫힌 상자에 옮겼다.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름 대신 담당 시간을 적었다. 누가 어떤 편지를 만졌는지 기록되지만, 편지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도록 했다.
노아는 안전 울타리 밖에서 그 광경을 보았다. 아이는 자기 종이배와 비슷한 봉투들이 쌓이는 것을 보며 물었다. “저 안에 편지가 사만 장이면, 종이배도 사만 개 접어야 돼요?”
“그러면 네 손이 먼저 아플 거야.” 재하가 대답했다.
“그럼 나눠서 하면 되죠.”
재하는 웃었다. 어른들이 몇 달째 토론하던 공동 관리라는 개념을 아이는 손가락 개수로 이해했다. 그는 그 말을 마음속에 남겼다. 나눠서 할 수 있는 일은 한 사람의 신격에 떠넘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열차 맨 끝 객차에서 무거운 쇳소리가 들렸다. 잠긴 문이 안쪽에서 두 번 두드려졌다. 하율의 얼굴이 굳었다.
“이상하군. 마지막 보관차는 사람 손으로 열리지 않는데.”
다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세 번. 그 사이에 가느다란 목소리가 섞였다.
“밖에 누가 있습니까? 아직 편지를 읽지 않았다면, 열지 말고 대답부터 해 주세요.”
재하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누군지는 아직 모릅니다.”
열차 안의 목소리가 짧게 웃었다.
“그럼 다행입니다. 여기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이름을 요구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제15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