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수송 보증조합은 바람절벽역의 정차 승인에 즉시 항의했다.
항의문은 일곱 장이었다. 조합의 업무상 손실, 계약상 불이익, 미확인 자산의 가치 하락, 우편물 처리 질서 침해 같은 말이 빼곡했다. 그런데 그중 어디에도 구조 요청을 보낸 사람들에 관한 문장은 없었다.
윤재하는 항의문을 접어 책상 다리 밑에 받쳤다. 흔들리던 다리가 멈췄다.
“용도가 하나는 있네요.”
세리아가 종이를 뺏어 다시 폈다. “공식 문서예요. 보관해야죠.”
“책상이 계속 흔들리는데요.”
“책상도 수리 요청을 하세요.”
그녀는 항의문에 접힌 자국이 생겼다는 사실까지 기록했다. 세리아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뒤 재하는 종종 공문을 손대지 않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하지만 그 엄격함 덕분에 천계 조합이 나중에 말을 바꾸는 것을 여러 번 막을 수 있었다.
열차가 멈춘 열한 분 동안 확보한 자료는 많지 않았다. 바람절벽역의 첫 봉투에는 적당한 의약품 목록과 대피 경로만 있었다. 수신자는 존재하지 않는 마을 위원회였다. 두 번째는 지진으로 끊어진 산길을 알려 달라는 요청, 세 번째는 같은 문장이 열두 번 복제된 구조 신호였다. 모두 개인 정보는 봉인돼 있었다. 릴리는 발신인의 이름을 추측하지 않았다. 대신 현재 위험 여부를 독립 검증할 수 있는 지역 연락처를 찾았다.
“이걸 하나씩 확인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노아가 물었다.
“오래 걸릴 거야.” 재하가 말했다.
“신님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면 다 볼 수 없어요?”
“볼 수 있는 힘이 있다 해도 남의 편지를 마음대로 읽으면 안 되지.”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가 읽고 싶은지 물어봐야겠네요.”
“그렇지.”
“사만 명한테요?”
“……숫자를 굳이 다시 말하지 않아도 돼.”
모과는 사람들을 불러 수신 절차를 논의했다. 이 문제를 가시골 신전 하나가 맡으면 곧 그 신전의 이름으로 모든 기록이 쌓일 것이다. 처음부터 그러지 않기로 했으니, 다른 마을과 세계의 의견을 받아야 했다. 세리아는 기록 분류를 맡는 중립 보관소, 주민들은 실제 위험을 확인하는 현장 창구, 신들은 이동과 통신에 필요한 권능만 제공하는 안을 제시했다.
에반은 칠판 앞에서 물었다. “신들은 그럼 무슨 이름으로 남습니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협력자’?”
“이름이 꼭 있어야 합니까?” 릴리가 물었다.
“이력서엔 필요하죠.”
모과가 웃었다. “그럼 공로 기록에는 이름을 남기되, 편지의 소유자가 되지 않는다고 쓰세요.”
그 문장은 새로운 원칙의 출발점이 되었다. 가시골의 공동회의는 우편열차의 요청을 일괄 인수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출처와 위험 정보를 구분할 수 있는 임시 회신 창구를 열어 두기로 했다. 누구든 참여할 수 있고, 참여를 거부해도 다른 공공 서비스에 불이익이 없도록 했다.
그날 오후 첫 회신 창구가 천막 안에 설치됐다. 특별한 마법은 없었다. 종이와 잉크, 분류 상자, 소형 통신관 세 대가 전부였다. 동쪽에는 아직 위험한 지역을 알리는 게시판을 세웠고, 서쪽에는 ‘답장받기를 원하지 않는 요청도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붙였다.
카르도는 구조 수송표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수송대를 보내기 전마다 현장 인원의 동의를 확인하고, 이동에 필요한 식량과 대체 인력도 함께 점검했다. 릴리는 의료 지원팀을 분리 운영했다. 구조 신호가 신앙 계약으로 바뀌더라도 의료 물품의 배급이 끊기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다.
조합의 항의가 다시 도착했을 때는 창구가 이미 열려 있었다.
[당 조합은 민간 창구의 회신을 정식 처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재하는 문장을 읽고 어깨를 으쓱했다. “정식 처리로 인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장 위험한 곳에 필요한 사람이 가는 게 먼저니까요.”
그러나 세리아는 더 깊이 생각했다. “조합이 인정하지 않으면 지금 줄인 위험이 장부에 반영되지 않을 겁니다. 이후 정산 때 다시 이 요청을 자산으로 계산할 수 있어요.”
“그럼 기록은 두 군데 남겨야겠네요.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조합이 그걸 왜 인정하지 않았는지.”
“맞아요. 거절도 기록이죠.”
천막을 설치한 날의 가장 큰 문제는 통신망이 아니었다. 어떤 말을 공개해도 되는지 서로 의견이 달랐다는 점이었다. 주민 중 한 사람은 모든 편지를 읽어야 숨겨진 구조 요청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은 한 줄도 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 주장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세리아는 양쪽에게 별도 기록을 맡겼다. 긴급 위험을 나타내는 기계 신호만 추출하면 개인적인 내용을 드러내지 않고도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계가 위험을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최종 확인은 현장 사람의 보고와 대조하기로 했다.
“양쪽 다 완벽하진 않네요.” 에반이 말했다.
“그래서 서로 감시하는 장치가 필요한 거죠.” 세리아가 답했다.
릴리는 다른 지역 의료진과 연락망을 만들었다. 병력이나 개인 이름이 아니라 현재 필요한 의료 물품의 종류만 먼저 받았다. 카르도는 수송대의 이동 시간을 추정하되 무리한 경로는 제외했다. 사란은 수로 지도를 맡았고, 하율은 역마다 기록된 시간의 기준을 통일하는 일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작업에 참여하자 모과는 식사 담당을 별도로 구해야 했다. 그녀는 재하를 불렀다.
“신님, 이 많은 사람은 아무것도 안 먹고 일합니까?”
“아. 그 생각을 못 했네요.”
“그러니까 장부에 적힌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봐야죠.”
재하는 요리 솥을 옮겼다. 다행히 그는 기적을 쓰지 않고도 감자를 씻을 수 있었다. 한동안 열차의 거대한 비밀을 풀고 있다는 생각에 빠졌던 그는 감자 껍질을 벗기는 일이 새삼 반가웠다. 신의 일은 대단한 순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을회의에는 의외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수하리의 사란은 새 경보 장치 도면을 들고 왔고, 철비항 구조대장 니라는 독립 출동 기록을 제출했다. 도요 고원의 장수는 모직 담요를 한 수레 보냈다. 서로 다른 마을이 신전을 믿어서 온 것은 아니었다. 각자 자신이 겪은 잘못된 계약이 다른 곳에서 반복되는 것을 막고 싶어서였다.
재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자신이 처음 신이 됐을 때 ‘신도를 모집해야 한다’는 창을 보고 가장 먼저 궁리한 것은 광고였다. 에반이 그때 옆에 있었다면 아마 거창한 모집 행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천막에는 신도가 아닌 사람이 더 많았다. 숫자는 적지 않았다. 다만 그 숫자를 자기 장부에 쓸 이유가 없었다.
“우리 신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다들 신도는 아니네요.” 에반이 말했다.
“오히려 그래서 괜찮네요.” 재하가 답했다.
첫날이 끝나갈 무렵 세리아는 접수 결과를 정리했다. 열세 개 위험 표식 가운데 네 건은 지리 정보가 오래돼 현재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세 건은 현장 소식과 연계됐고, 한 건은 젖은 계단의 수로 안전 조치였다. 나머지는 시간대와 발신 경로부터 검증해야 했다. 사람의 생명을 숫자 하나로 소거하지 않기 위해 분류 사유를 일일이 적었다.
임시 회신 창구가 문을 연 첫날,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이유로 찾아왔다. 한 할머니는 오래전에 보낸 구조 요청을 취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확한 요청 번호를 몰랐다. 또 다른 청년은 자기 형제가 우편열차에 편지를 보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이름을 찾아 달라고 했다. 두 사람의 바람은 서로 달랐지만, 어느 쪽도 종이 한 장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었다.
릴리는 할머니에게 먼저 안전한 곳에 앉으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마른 손으로 비단 주머니를 쥐고 있었다. 주머니 안에는 삼십 년 전 집을 잃은 뒤 이웃이 써 준 쪽지가 있었다. ‘도움을 보내겠음. 오래 걸릴 수 있음.’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고, 할머니는 다른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집을 다시 지었다.
“이제 와서 누군가 잘못했다고 혼내고 싶진 않아요.” 할머니가 말했다. “그때 도우려던 사람도 길이 막혔을지 모르니까. 다만 그 편지를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적어 놓지는 않았으면 해요.”
릴리는 요청을 바로 취소하지 않았다. 본인 확인과 보존 범위를 안내하고, 어떤 말만 공개할지 할머니의 선택을 받았다. 할머니는 이름 공개를 원치 않았지만 ‘이미 다른 도움을 받아 현재 구조 요청은 종료됨’이라는 사실은 기록해도 된다고 했다. 세리아는 그 말을 현장 확인으로 남기고, 열차 원본과 연결할 증빙 절차를 정했다.
청년의 요청은 더 어려웠다. 그가 찾아 달라는 형제의 이름은 현재 공개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보낸 편지를 가족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청년은 화를 냈다.
“가족인데도 안 된다고요? 혹시 살아 있는지라도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재하는 청년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도 지구의 마지막 하루를 조사하면서 알지 못하는 두 번째 응답자의 이름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선택을 먼저 존중하기로 했었다.
“당장 이름을 알려 드릴 순 없습니다.” 재하가 말했다. “대신 생사나 긴급 위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정당한 연락 경로가 있는지 조사하겠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싶다는 요청은 남길 수 있어요.”
청년은 한참 침묵하다 의자에 앉았다. 그는 누군가 자기 절박함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비밀을 열어 보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재하는 공용 연락망을 통해 지역 수색 담당자를 연결해 주었다. 형제가 보낸 편지를 읽는 것과 형제를 찾는 일은 별개로 진행할 수 있었다.
첫날 창구의 처리 실적은 형편없었다. 완료 0건, 현장 위험 확인 3건, 본인 연락 대기 7건. 에반은 숫자를 보고 이마를 짚었다.
“마케팅 보고서라면 내일부터 예산 삭감입니다.”
“그러면 마케팅 보고서에 넣지 마세요.” 모과가 말했다.
“수치를 숨기자는 겁니까?”
“아뇨. 수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쓰자는 거죠. 사람이 서류를 덜 냈다고 일을 안 한 건 아니잖아요.”
그 말에 에반은 빈칸에 설명을 덧붙였다. ‘당사자 권리 확인 및 위험 분류에 소요된 시간’. 예전에는 늘 성과로 보이지 않던 항목이었다. 릴리는 모든 사람의 요청을 마감 처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심됐다. 그동안 천계의 장부는 일을 끝냈다는 숫자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의 상태를 무시해 왔기 때문이다.
저녁에 노아가 천막으로 왔다. 그는 자기가 접은 편지봉투를 들고 있었다. 재하는 장난삼아 물었다. “너도 구조 요청이 있니?”
“아니요. 제가 누나한테 미안하다고 쓰려고요.”
릴리가 눈을 크게 떴다. “나한테?”
노아는 낮에 약병을 정리하다 하나를 떨어뜨렸는데 혼날까 봐 말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도와 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는 편지를 직접 건네고 싶어 했다. 릴리는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다음엔 깨진 유리 같은 건 혼자 치우지 말고 먼저 불러 줘.”
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봉투를 건넸다. 재하는 그 광경을 보며 기차의 편지들도 같은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내는 사람이 말하고 싶은 내용과 받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경로를 구분하는 것. 그렇게 단순한 일을 시스템은 왜 어렵게 만들었을까.
그날 저녁 임시 창구는 처음으로 ‘답장을 원하는지 확인한 사람’이라는 새 항목을 만들었다. 누구도 자동으로 수신인을 지정하지 않기로 했다. 세리아는 그 원칙에 동의한 지역 세 곳의 승인서를 보관했다. 숫자로 치면 겨우 세 곳이었지만, 그 세 곳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원칙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날 밤 갑자기 검은 우편열차에서 알림이 들어왔다.
[바람절벽역 출발 후, 정차 예정지 변경]
[다음 정차: 임시 회신 창구]
[운행 중 수신인 수정 시도 감지]
재하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신전 앞의 천막은 역이 아니었다. 레일도 없었다. 그런데 열차가 그곳을 정차역으로 인식한 것이다. 밖으로 나가니 하늘의 검은 선이 서서히 굽어 신전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노아가 창고에서 뛰어나왔다.
“신님, 이번엔 진짜 우리 집 앞에 기차가 와요!”
“여긴 플랫폼도 없는데?”
모과가 대답했다. “있죠. 사람들이 필요할 때 머물다 가는 쉼터잖아요.”
그 말에 재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느 곳이든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약속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약속을 이용해 강제 수신권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신성 창이 경고를 띄웠다.
[비인가 수신인 변경]
[변경 예정 수신인: 윤재하]
[동의 확인: 생략]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사람들의 기다림을 자기 이름으로 묶으려는 장치가 이제 가시골까지 찾아온 것이다.
제15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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