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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54화
PAYLUA ORIGINAL · 제154화

154화. 흑색 재고라는 이름의 기다림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308자

오프라인 책장
에반은 ‘흑색 재고’라는 말을 들은 뒤 아침까지 한숨도 자지 않았다. 물론 악마는 원래 잠을 안 자도 된다. 하지만 윤재하가 새벽에 깨어나 보니, 에반은 평소보다 더 피곤한 표정으로 장부를 붙들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지워진 계약서 사본들과 잘게 찢은 광고 전단이 쌓여 있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숙제를 안 한 학생 같네요.” 재하가 말했다. “성적은 제가 매기면 안 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제가 가르쳤던 과목이니까요.” “어떤 과목인데요?” “고객이 답하지 않아도 고객이 답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법.” 재하는 의자를 끌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에반의 말투에는 평소 같은 장난기가 없었다. 그는 검은 우편열차의 숫자를 종이에 써 놓았다. 40,216. 그 아래 붉은 줄을 그으며 말했다. “응답이 오지 않은 요청은 금융 장부에서 아주 편리한 숫자였어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거든요. 요청이 끝나지 않았으니 언젠가 신앙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그러니 미래 수익을 담보로 잡을 수 있다는 논리죠.” “사람이 도움을 청한 일인데요?” “그들에게는 위험을 감수한 누군가의 목소리보다, 그 목소리가 남긴 흔적의 매매 가치가 중요했죠.” 그는 예전 서명 양식 한 장을 건넸다. ‘응답 누락 추정분. 자동 신앙채권 발생.’ 그 아래에는 자신의 필체가 작게 남아 있었다. 악마는 도망치지 않았다. “이건 제가 설계에 참여했습니다. 다만 검은 우편열차 자체는 그보다 오래됐어요. 누군가 제가 만든 공식을 열차의 보존 장치에 연결한 겁니다.” 릴리가 기록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어두운 방을 둘러보고 먼저 창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들어오자 에반이 몸을 움츠렸다. “밤새 죄책감만 느꼈다면 지금부터는 도움이 되는 걸 하세요.” “인정사정없군요, 성녀님.” “대신 당신이 아는 부분을 빠짐없이 적어 주세요. 모른다면 모른다고요.” 에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검은 재고의 원형인 ‘미도착 청구서’가 원래 구조 자원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설명했다. 한 마을이 큰 재난을 당하면 이웃 마을이 먼저 곡물과 나무를 준비했고, 요청이 실제로 확인되면 그때 창고가 열렸다. 그런데 누군가 구조 자원을 확보하는 과정을 신앙 수익 확보로 바꾸었다. 물품은 줄어들었고, 장부의 숫자만 커졌다. “그 사람을 잡으면 끝나는 건가요?” 재하가 물었다. “끝나지 않습니다. 이미 이 시스템으로 돈을 빌려 치료소와 수로를 유지한 세계도 많으니까요. 잘못된 채권을 한꺼번에 소멸시키면 필요한 물품 공급이 멈출 겁니다.” 그 답은 재하에게 익숙했다. 천계의 나쁜 구조는 언제나 좋은 일을 볼모로 잡고 있었다. 강요된 신앙을 끊으려 하면 병원의 약이 끊기고, 허위 계약을 지우려 하면 겨울 난방이 멈췄다. 그러니 옳은 판정을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루를 지킬 다른 길도 함께 찾아야 했다. 세리아는 공동 경유실의 기록 열람 신청서를 준비했다. 일괄 정산까지 6일 남짓. 전 세계의 미배달 요청을 누가 보낸 건지 밝힐 시간은 없었다. 우선 요청을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계약 당사자와 예정 시각을 확인해야 했다. 하율은 역무실의 오래된 기관 코드를 건넸다. 검은 우편열차 정산 담당 기관 이름이 종이 뒤에 있었다. ‘경계 수송 보증조합.’ 재하는 그 이름을 세 번 읽었다. 낯설었다. 에반은 고개를 숙였다. “조합이 아직 있었군요.” “아는 곳이에요?” “신들에게 반품되지 못한 기도를 사서 파는 곳. 한때는 천계의 모든 채무자가 신세를 지는 기관이었죠. 지금도 남아 있다면….” “더 말해 봐요.” “그들이 왜 열차를 계속 달리게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열차가 멈추는 순간 모든 요청의 현재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계속 달리면 확인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장부를 불릴 수 있어요.” 조합의 사무실은 공동 경유실 서쪽 회랑에 있었다. 벽에는 낡은 시간표들이 붙어 있었고, 창구마다 ‘지연은 관리 가능한 자산입니다’라는 표어가 걸려 있었다. 재하는 그것을 보고 입을 벌렸다. “지연을 광고 문구로 쓰는 곳이 진짜 있네.” “제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에반이 급하게 말했다. 창구 직원은 서류를 받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검은 열차의 건을 수신하시려는 신님이시군요. 사만 이백열여섯 건 전체를 받아 주시면 신앙 대체 적립률을 우대해 드립니다.” “안 받을 겁니다.” “그럼 일부라도?” “그것도 아니고요. 정산 근거를 확인하러 왔어요.” 직원은 웃음을 멈췄다. “수신권이 없는 분은 장부 열람이 어렵습니다.” 세리아가 감찰 허가서를 내밀었다. “당사자가 아니어도 공공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정산 규정은 열람 대상입니다. 다만 개인 요청의 내용은 공개하지 말고, 조합 측 적용 조항과 총계만 보여 주세요.” 직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른 창구로 안내했다. 세리아가 합법적 열람 절차를 지킨 덕분에 비밀스러운 신성이나 힘은 필요하지 않았다. 뒤편의 차가운 보관실에는 커다란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었다. 기록상 명칭은 ‘미응답 관리 시계’였다. “정산할 때 이걸 멈춥니까?” 재하가 물었다. “아뇨. 반대입니다. 열차가 계속 이동하도록 시간을 보내죠.” 직원이 말했다. “그럼 발신자에게 답장은요?”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정산은 소관이고요?” 직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재하가 수십 장의 문서에서 가장 많이 본 문장은 한 가지였다. ‘응답 책임을 지지 않음.’ 아무도 답할 책임을 지지 않는데 모두가 남의 기다림을 거래했다. 릴리는 책상 위에 놓인 소책자를 펼쳤다. 한 장에는 정산 뒤 지급되는 자금의 사용처가 적혀 있었다. 철비항의 치료비와 도요 고원의 연료 보증 일부도 그 돈에 기대고 있었다. 재하는 곧장 종이를 찢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대신 페이지를 복사해 관련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신들이 이 계약을 끊으면 치료소를 잃는 사람이 있어요.” 릴리가 말했다. “그러면 사람을 위해서 계약을 유지해야 하지 않나요?” 직원이 물었다. “사람들을 볼모로 잡지 말아야죠. 그들이 다른 방식을 고를 기회부터 줘야 합니다.” 보관실에서 나오기 전 재하는 조합의 사무 담당자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정산 시계가 돌아가면 실제로 어떤 일이 생깁니까?” 직원은 자신이 아는 범위를 설명했다. 첫날에는 조합 장부에 새 자산이 잡힌다. 다음 날부터 일부 세계의 보증 한도가 조정되고, 그 뒤에는 수송망 유지비를 이유로 각 지역에 새로운 분담금이 부과된다. 정산이 끝났다고 편지가 배달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조합이 새로운 소유자가 되어 원본 열람을 제한할 수 있다. “그럼 구조 요청을 확인할 능력이 더 줄어들겠군요.” 릴리가 말했다. “절차상으로는 기록 관리가 통합되므로 효율이 높아집니다.” 직원이 대답했다. “그 효율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직원은 말이 없었다. 오래 근무한 탓인지 그는 자신이 이용하는 보고서만 알고 있었다. 천계 조합에서 지급한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평범한 직원이었다. 재하는 직원에게 분노를 쏟아 놓기보다 업무상 실제로 알게 된 사실과 모르는 사실을 구분해 달라고 했다. 직원은 한참 망설이다 별도의 의견서를 써 주었다. ‘나는 열차의 원본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직접 출동한 구조대와 연락한 적도 없다. 장부에 숫자가 올라간다는 것만 보고 업무가 성공했다고 적었다.’ 세리아는 그 의견서에 서명 날짜를 적게 했다. 직원은 손이 떨렸다. “이런 걸 남기면 회사가 저를 해고할 수도 있어요.” “증언 여부는 본인이 정하셔야 합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다만 서명 전에 노동자 보호 절차와 비공개 증언 조건을 먼저 설명할게요.” 그는 서명하지 않은 초안을 일단 가져갔다. 아무도 다그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에반이 씁쓸하게 웃었다. “예전에 제가 하던 말과 똑같더군요. 수익이 늘면 고객이 행복해진다고 믿었어요. 장부 밖의 현장을 못 봤죠.” 재하는 대답 대신 창가에 멈춰 섰다. 조합의 맞은편 골목에는 약국이 있었다. 문 앞에 의약품 상자가 쌓여 있었다. 약국 주인은 정산이 지연되면 물품이 끊길 수 있다며 걱정했다. 몇몇 주민은 조합을 폐쇄하면 당장 약을 어떻게 구하느냐고 재하에게 따졌다. “반대한다고 환자가 낫는 것도 아니잖아요!” 누군가 소리쳤다. 재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대체 공급선을 찾는 걸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계약을 유지한다는 말이 누군가의 구조 요청을 거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들은 공용 연락망을 이용해 물품 운송 가능 지역을 찾았다. 철비항의 니라는 재고를 확인하고, 도요 고원의 장수는 약을 실을 수 있는 마른 창고를 빌려 주었다. 수하리의 사란은 수로 옆 길을 통해 통행료 없이 운송할 수 있는 구간을 알려 주었다. 카르도는 지역 협의체가 정한 기준에 따라 수송 차량을 배분했다. 이 일은 화려한 법정 싸움과 거리가 멀었다. 상자가 몇 개인지, 비가 오면 어디가 미끄러운지, 밤에는 누가 통행 문을 열어 줄지 적는 작업이었다. 그날 오후 처음으로 빈 의약품 상자 열한 개가 다른 공급선에서 채워졌다. 규모는 작았지만, 조합이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다. 릴리는 수량을 두 번 확인했고, 에반은 영수증에 조합 이름 대신 실제 보낸 사람과 받은 사람을 기재했다. “이런 영수증은 처음입니다.” 약국 주인이 말했다.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죠.” 에반이 답했다. 재하는 자신이 무엇을 해결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품이 오늘 도착했어도 내일의 일은 아직 모른다. 그래도 적어도 누군가에게 서명하라고 협박하지 않고 약을 나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자기가 직접 옮긴 상자에서 손을 떼고 창고 문을 잠갔다. 그날 저녁 경유실 공개 게시판에는 조합이 확보하려는 금액과 연결된 긴급 공급 명세가 익명 통계로 올라갔다. 철비항의 의료인들은 대체 공급선 조사를 시작했다. 도요 고원의 노파 장수는 답장 대신 장작 트럭 한 대를 보내 주었다. ‘빚은 나중에, 불은 오늘.’ 검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재하는 그 글씨를 보며 웃었다. 천계가 사람들의 기다림을 숫자로만 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이미 서로에게 도착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의약품을 옮긴 뒤 재하는 제분소 옆 작은 대피소를 찾았다. 그곳에서는 조합의 정산 지연이 곧바로 생활비 부족으로 이어질까 봐 걱정하는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재하에게 먼저 말을 건 사람은 빈 손수레를 끌고 온 노인이었다. “당신들은 신앙 계약을 없애겠다고 말하지만, 우리 창고에 들어올 곡물은 누가 책임지겠소?” 재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건 제가 한마디로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신 오늘 확보된 물품과 다음 운송 일정은 보여 드릴 수 있어요.” 노인은 재하가 내민 표를 한참 읽었다. 그 표에는 확정된 물품과 아직 구하지 못한 물품이 분명히 나뉘어 있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약속하지 못한 것까지 적어 놨군.” “없다고 적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신이란 양반이 못 한다는 말을 참 잘하네.” 재하는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잘 못했습니다. 기적도 신도도 없었으니까요.” 노인이 웃었다. 그는 자기 마을의 방앗간이 며칠 뒤부터 돌아갈 수 있다는 정보를 보탰다. 곡물을 빻을 수 있게 되면 다른 마을에 빵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릴리는 그 제안을 공용 연락망에 올리고, 대가와 운송 조건은 주민들이 직접 정하도록 했다. 밤늦게 조합 직원에게서 비공개 통신이 왔다. 낮에 서명을 망설였던 사람이었다. 그는 개인 의견서를 아직 제출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공개 기록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정산 일정과 물류 명세의 번호를 알려 주었다. 세리아는 합법적으로 공개된 정보인지 다시 확인했다. 직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 범위에서 그 정보는 현장 대체 공급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됐다. “이분도 무서운 거겠죠.” 릴리가 말했다. “그렇겠죠.” 재하가 답했다. “아무도 오늘 당장 영웅이 될 의무는 없으니까요.” 그들은 위험을 줄일 방법을 하나씩 적었다. 그것이 누군가 서명했다고 표시되는 장부보다 훨씬 느리고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적어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정을 넘기자 조합의 톱니바퀴가 한 칸 빨라졌다. 창에는 새로운 공지가 떴다. [검은 우편열차: 정산 대상 고정] [사전 검증 방해 가능성 감지] [긴급 조치: 제2정차역 폐쇄] 하율이 경보를 보냈다. 열차가 다음 역에서 멈추지 못하면 붉은 위험 신호 중 몇 건이 확인 기회를 잃는다. 그 다음 역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바람절벽이었다. “폐쇄된 역으로 가야겠군요.” 재하가 말했다. 에반은 오래된 지도를 접었다. “역을 폐쇄한 기관이 조합이라면, 저는 그들이 어떤 방법을 썼는지 압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도요.” 그는 자기를 가리켰다. 이번에는 농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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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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