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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50화
PAYLUA ORIGINAL · 제150화

150화.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신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264자

오프라인 책장
윤재하는 결국 신이 되기로 했다. 그 결정은 하늘에서 천둥이 치는 가운데 내려진 것이 아니었다. 가시골 쉼터의 주방에서 찻잔이 세 개 깨진 다음, 그는 바닥을 쓸다가 문득 결심했다. “여기서 계속 도울까 봐요.” 모과가 빗자루를 든 채 그를 바라봤다. “여기서요?” “네. 다만 신격 계약 때문에 억지로 남는 건 아니고요.” “그러면 못 사 오는 것도 자발적인 거예요?” “오늘도 그 얘기입니까?” 모과는 어깨를 으쓱했다. “약속은 작을수록 지키기 쉬운데요.” 재하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위대한 신으로 남겠다고 말하는 것보다 못 한 움큼 사 오는 편이 훨씬 확실한 약속이었다. 그는 외투를 걸치고 시장으로 향했다. 최종 판정문이 가시골에 도착하기 직전, 하엔은 재하에게 조용히 연락을 보냈다. 판정은 강제 승계를 정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같은 형태의 수탁 계약이 등록될 때 자동 검증을 요구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모든 신격 후보의 동의를 일괄적으로 판정하지는 않았다. 사람마다 맺은 계약과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전부 무효로 하면 간단하지 않나요?” 재하가 물었다. “간단하긴 하겠지요.” 하엔이 답했다. “하지만 이미 자발적으로 신격을 맡아 마을과 협의한 이들에게서 권한을 갑자기 거두는 것도 또 다른 일방적 결정일 수 있습니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동의를 존중한다는 말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모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부당한 계약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생활이 예상치 못하게 무너지는 일은 막아야 했다. 가시골 주민회의에서도 의견은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신격이 강제였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니 재하가 당장 신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재하가 마을을 떠날까 두렵다고 했다. 어린 노아에게 치료가 필요했던 날처럼 긴급 상황이 오면 어쩌느냐고 걱정하는 주민도 있었다. 모과는 발언 순서를 정했다. 재하는 가장 마지막에 말하기로 했다. 자기 이름을 중심으로 회의가 진행되고 있어도, 영향을 받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신님이 없으면 우물 물이 안 나올까요?” 노아가 손을 들고 물었다. 리안이 답했다. “우물은 우리가 고쳤으니까 잘 관리하면 계속 나올 거야. 다만 큰 고장이 나면 다른 기술자의 도움이 필요하겠지.” “그럼 신님이 계셔도 고장이 나면 기술자를 불러야 하네요?” “맞아.” 주민들은 웃었다. 복잡한 걱정의 일부가 너무 쉬운 문장으로 정리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쉼터의 응급 구호 장치 중에는 신격의 인증이 필요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주민회는 그 장치의 교체와 비상 운영 계획을 다음 달 안건으로 남겼다. 마침내 재하의 차례가 왔다. “제가 여기서 계속 도울지는 제가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돕겠다고 했다는 이유로 여러분의 일과 삶을 대신 결정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은 남고 싶습니다. 나중에 일이 바뀌면 다시 이야기할게요.” 그 말에 모두가 박수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고, 어떤 사람은 안도했다. 모과는 서로 다른 표정을 장부에 적지 않았다. 대신 결정된 사항만 남겼다. ‘현재 운영 방식 유지. 신격 의존 설비 축소 계획 추진. 주민의 자유로운 신앙 선택 보장.’ 그 기록이 재하에게는 어떤 환호보다 믿음직했다. 회의가 끝난 뒤 노아가 재하를 따라왔다. “신님, 이제 진짜 신님인 거예요?” “전에도 신이긴 했는데, 이제는 제가 결정한 거지.” “그럼 아주 큰 기적도 쓸 수 있어요?” “그건 모르겠네. 기적을 쓰려면 또 다른 조건들이 있으니까.” “아쉽다. 하늘에 엄청 큰 글씨로 ‘숙제 없음’이라고 써 주시면 좋을 텐데.” 재하가 웃었다. “그건 너희 선생님과 이야기해야겠구나.” “신님도 못 해요?” “못 하는 게 아니라 하면 안 되는 게 있지.” 노아는 잠시 실망했지만 금세 종이배를 접으러 달려갔다. 재하는 그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노아는 여전히 어른에게 뭐든 부탁할 수 있었고, 거절당해도 다음 놀이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아이의 일상이 신의 판단 한 번으로 전부 달라질 필요는 없었다. 밤이 깊어질 무렵 도르는 쉼터에 남아 촛불을 갈았다. 그는 새로운 신을 위해 특별한 선서식을 열 생각이 없었다. 재하가 원한다면 언젠가 주민들과 함께 축하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따뜻한 식사와 안전한 집이 더 중요했다. 둘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식탁을 정리했다. 도르가 마지막에 물었다. “기분이 어떤가?” “이상하게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그게 좋은 걸세. 신이 된다는 일이 다른 사람의 일상을 뒤집어 놓는 축제가 아니라, 오늘 할 일을 스스로 고르는 일이 되었으니까.”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 지구에 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돌아갈 길을 찾을지 여부도 미래의 선택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은 가시골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묻고, 자기 힘이 미치는 곳에서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허락된 첫 번째 온전한 신격 선택이었다. 그날 오전 공동 경유실은 윤재하의 신격 수탁 기록에 대한 최종 판단을 전달했다. 인간 시절의 구조 신고 협조를 영구적인 신격 수탁 동의로 바꾼 것은 유효한 동의로 볼 수 없다는 결정이었다. 외부 관찰 보조국이 생성한 강제 승계 효력은 정지되고, 그 기록을 근거로 재하에게 추가 의무를 부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한 조사와 책임 판단은 별도로 계속되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끝난 것은 아니었다. 기관의 옛 장치들은 다른 세계에도 남아 있었고, 그 장치를 거쳐 신격을 받은 사람들의 사정은 제각각이었다. 재하의 결정 하나로 그들의 계약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엔은 그런 부분을 판정문에 분명히 적었다. 하지만 재하에게만큼은 새로운 질문이 가능해졌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원해서 신으로 남을 것인가. 재하는 첫 신도가 된 릴리에게 물었다. “만약 제가 신이 아니어도 당신은 여기 남겠어요?” 릴리는 그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노아가 아플 때 곁에 있어 주셨다는 건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누군가의 신도가 되려고 여기 있는 것만은 아니에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려고 있는 거죠.” “그럼 신앙 관계도 다시 정할 수 있겠네요.” “당연하죠. 제가 처음 신님을 믿었던 것도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그녀가 자신을 믿는다고 말하던 날, 신성 창에는 신도 1명과 신앙 포인트 1점이 표시됐다. 그는 기뻐했고, 곧바로 그 1점을 노아의 치료에 사용했다. 그런데 릴리가 자신에게 준 것은 점수보다 더 큰 것이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믿어 볼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 에반은 선택을 듣고 한동안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제 광고 문구를 어떻게 써야 할지 정말 어렵군요.” “광고를 안 하면 되잖아.” 재하가 말했다. “그럼 저는 뭐 먹고 삽니까?” “정당한 서비스 비용을 받으면 되지.” 에반은 입을 삐죽였다. “마케팅 악마의 이름이 무색해지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정확한 표어를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기도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릴리가 웃었다. “그 말은 좋네요.” “단, 누구든 우리 신전을 선택할 의무가 없다는 문장을 더 크게 적어요.” 재하가 말했다. 에반은 그 말을 공책에 적었다. 광고문구보다 중요한 건 실제 행동으로 지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역시 과거 잘못된 추천 시스템을 만들었던 책임을 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의 거절을 자산으로 바꾸는 대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카르도는 쉼터 창고에서 수송 훈련을 하고 있었다. 전쟁신이 된 뒤 처음으로 군대의 승리 말고 사람들의 겨울 나기를 목표로 삼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옛 수송 체계가 응급 구조를 강제로 동원하는 데 쓰인 사실을 되돌아보며, 거절할 수 있는 예비 인력 배치표를 새로 만들었다. “윤재하.” 카르도가 말했다. “정말 신으로 남겠나?” “당분간은요.” “당분간?” “언젠가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은 남겠다고 정했습니다.” 카르도는 놀라운 표정이었다. “신격 유지란 영원한 결심이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게 문제였잖아요.” “그렇군.” 그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오늘은 전쟁보다 수송 훈련을 하겠다. 내일은 내일 가서 결정하지.” 재하는 크게 웃었다. 카르도는 그 웃음에 어색해했지만, 이내 함께 웃었다. 도르는 신전의 종을 점검하고 있었다. 전임 신이었던 그에게 재하가 내린 결정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도르는 오래전 자신이 신격을 내려놓으려 했지만 천계가 그 거절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소멸한 신’으로 취급당했다. 이제 재하는 자신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확인받고 신격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을 자네가 했군.” 도르가 말했다. “저 혼자 한 게 아니에요.” “안다네. 그래서 더 좋네.” 재하는 도르에게 신전 운영 공동회의의 기록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중요한 변경은 주민과 신전 관계자가 함께 결정하고, 신격 권능이 필요한 일은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 동의를 받은 뒤 진행한다는 원칙이었다. 신전을 떠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고, 신앙 포인트를 내지 않는다고 치료나 물을 끊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었다. 도르는 한참 문서를 읽다가 마지막 부분을 가리켰다. “여긴 조금 더 적어야겠어.” “뭘요?” “신도 아닌 사람이 와서 도와줄 수도 있다는 내용.” 재하는 펜을 들었다. 가시골 쉼터의 문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열려 있었다. 그 원칙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해 질 무렵 릴리와 노아가 쉼터 앞 작은 광장에 등불을 걸었다. 오늘은 승리 축제가 아니라 겨울을 준비하는 주민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사람들은 필요한 물품과 이번 달 수리 일정을 확인했고, 신전 창고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정했다. 신이든 인간이든 회의에서 한 표 이상을 갖지 않았다. 재하 역시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자, 마지막 안건입니다.” 모과가 장부를 덮었다. “동쪽 문짝 수리 완료. 그리고 누가 약속했던 못을 사 왔습니까?” 재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주머니에서 제대로 포장된 못을 꺼냈다. 주민들이 박수를 쳤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요?” “신님이 세상을 바꿔 놓고 못은 못 사 오셨잖아요.” 노아가 말했다. 사람들이 웃었다. 재하도 웃었다. 그제야 어깨가 조금 가벼워졌다. 자신이 어떤 신인지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 할 일이 있는 곳에 있을 수 있었다. 밤이 되자 신성 창이 조용히 열렸다. 예전과 달리 ‘신앙 포인트 부족’이나 ‘신격 회수 경고’가 먼저 나타나지 않았다. [신격 수탁 강제 효력: 종료] [신격 유지: 본인 자발적 선택으로 갱신] [신전 운영: 가시골 주민 공동 운영] [신앙 관계: 각 당사자가 언제든 변경 가능] 재하는 창을 닫았다. 숫자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해서 누군가의 삶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늘은 그날 할 일을 했고, 내일도 필요한 일이 있으면 먼저 물어볼 것이다. 그러나 한밤중, 가시골 쉼터의 종이 스스로 울리기 시작했다. 종을 흔드는 바람은 없었다. 도르가 밖으로 나가보니 먼 북쪽 하늘에 검은 선 하나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선은 마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철도처럼 보였다. 세리아가 긴급 통신을 보냈다. “공동 경유실에 미배달 요청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보낸 사람은 확인되지 않고, 수신 신격도 없습니다.” “몇 건인데요?” 재하가 물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지금 확인한 것만 사만 건 이상입니다. 모두 같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수정판에 글씨가 나타났다. [긴급 요청: 도착할 곳이 없어 계속 이동 중] [발신: 검은 우편열차] [필요한 응답: 특정 신의 선택이 아닌, 먼저 도울 사람의 확인] 재하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 막 신격을 자발적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는데, 내일부터 일이 또 늘어날 모양이었다. “이상하네. 신도가 없을 땐 할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릴리가 옆에서 웃었다. “이젠 사람들이 신님한테 모두 맡기지 않으니까 더 바빠진 거예요.” “그건 좀 억울한데요.” “그래도 싫진 않으시죠?” 재하는 검은 선을 바라보았다. 오래전 누군가의 도움 요청 앞에서 그가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확인해 보겠다는 약속. 그 약속을 누군가의 평생을 붙잡는 족쇄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가 원할 때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은 가능했다. “먼저 어디서 멈추는 열차인지 확인합시다.” 그가 말했다. 신도가 한 명도 없었던 신의 새로운 하루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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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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