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47화
PAYLUA ORIGINAL · 제147화

147화. 강제로 받은 귀가권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71자

오프라인 책장
“신격 수락 시각이 사고 뒤라고요?” 윤재하는 확인된 숫자를 세 번 읽었다. 지구에서 마지막 구조 요청이 접수된 날 18시 42분. 외부 응답 후보의 신격 수탁 처리가 완료된 시각은 그보다 열한 분 뒤였다. “사고 이후라는 건 아직 확정할 수 없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사고 발생 시점과 사망 추정 시점, 기계가 기록한 시간대가 서로 달라요. 우선 표준 시각을 맞춰야 합니다.”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요.” “이상하다는 건 조사 사유입니다. 결론이 아닙니다.” 재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세리아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조금 지쳐 있었다. 신이 되어 기적을 한 번 쓰기도 어려웠던 자신이 이제는 수많은 사람의 동의와 기록을 구분하려고 매일 서류를 들여다본다. 자신을 강제로 데려온 절차조차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릴리는 그를 데리고 공동 경유실 밖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에는 여러 세계에서 가져온 식물이 한 곳에 심겨 있었다. 검은 돌 사이로 돋은 붉은 풀, 낮에도 꽃을 닫는 노란 나무, 비가 오면 잎이 투명해지는 작은 관목. 모두 관리 방식이 달라 이름표 아래 별도의 설명이 있었다. “이 나무도 잘못 심으면 죽어요.” 릴리가 말했다. “그걸로 위로하려는 거예요?” “아니요. 저기 관리하는 분들 보세요. 모르는 식물이 있으면 물 주는 방식부터 묻잖아요. 신님도 지금 모르는 게 많아서 화가 나는 것 같아요.” 재하는 작게 웃었다. “많이 똑똑해졌네요, 릴리.” “처음 신님 만났을 때부터 저 정도는 알았어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받아쳤지만 금세 진지해졌다. “저는 그날 밤을 잊지 못해요. 노아가 아팠고, 신님은 할 수 있는 기적이 하나도 없었죠. 그래도 곁에 계셨어요. 신님이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모른다고 그날이 없던 일이 되진 않아요.” 재하는 그 말을 품에 넣었다. 알고 싶은 과거가 많다고 현재가 모두 의심스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록 검증실로 돌아오자 리안은 두 개의 시계를 펼쳐 두고 있었다. 하나는 지구 시간으로, 다른 하나는 외부망의 자체 기준으로 움직였다. 서로 초 단위까지 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사이에는 윤초 보정과 표준시 변환 오류가 있었다. 특정 날짜에는 외부망이 사건의 실제 시각보다 정확히 열한 분 늦게 값을 기록했다. “그럼 신격 수락 시각도 잘못된 거죠?” “표시 시각은 그렇습니다. 실제 처리 순서는 다른 로그로 확인해야 해요.” 리안이 종이 테이프를 펼쳤다. 시간표는 엉망이었지만 일련번호는 순서대로 남아 있었다. 구조 요청 접수, 원본 보류, 신격 후보 평가, 후보 상태 미확정, 관찰값 누적, 신격 수탁 완료. 마지막 처리의 앞에는 한 가지 단계가 비어 있었다. [본인에게 계약 내용 통지] [확인 결과: 기록 없음] “본인이 내용을 읽었다는 증거가 없네요.” 릴리가 말했다. “맞아요. 시간대가 달라도 이 기록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리안이 답했다. 세리아는 감정 결과에 서명했다. 재하의 신격 수락은 ‘본인 통지 입증 불가’ 상태였다. 이것은 수탁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최종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천계가 ‘명백한 자발적 승인’이라고 주장하던 근거는 무너졌다. 그때 경유실 안전팀에서 연락이 왔다. 지난번 분리한 4층 지연 장치의 전원 경로가 다른 층의 비상 조명과 엮여 있었다는 것이다. 전원을 분리한 뒤 엘리베이터의 수동 문 개폐 기능까지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은 늦게까지 기다려야 했고, 의료 장비 운반도 막힐 수 있었다. “이것도 우리 탓인가요?” 에반이 물었다. “원인을 확인해야죠.” 재하가 답했다. “우리가 조치를 했으면 결과를 살펴볼 책임도 있어요.” 카르도가 서류를 접었다. “내가 계단으로 옮기겠다.” “안 됩니다.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면서 들면 위험해요.” 리안이 말했다. “전쟁신인 내가 물건 하나 못 옮긴다고?” “옮길 수 있는 것과 옮겨도 되는 건 달라요.” 카르도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결국 수송팀의 지시에 따랐다. 의료 장비는 깨지기 쉬운 유리 부품이 있어 충격을 받으면 쓸 수 없었다. 전쟁신이 한 손으로 들어 옮기는 것보다 네 사람이 천천히 운반하는 편이 안전했다. 재하는 뒤에서 길을 확보했다. 에반은 비상 계단의 안내 방송을 맡았고, 릴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은 장치를 무조건 복구하지 않았다. 먼저 어떤 회선이 실제로 필요한지 나눴고, 무인 송달함의 지연 기능과 관계없는 비상 조명선만 별도 전원에 연결했다. 작업이 끝났을 때 카르도는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오늘도 가장 어려운 건 가만히 기다리는 일이었군.” 리안이 웃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덕분에 안전하게 끝났습니다.” 재하는 그 말이 자신의 문제에도 맞는다고 생각했다.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록을 함부로 열면 누군가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한편 재하가 잠시 기록 검증실을 비운 사이, 에반은 복도 끝에서 오랜 동료를 만났다. 귀환 상품의 신규 광고 계획을 들고 온 악마였다. 동료는 재하의 사건이 유명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운 사업을 제안했다. “억지로 신이 된 사람이 스스로 신격을 선택하는 이야기, 얼마나 감동적이냐. 그 장면을 관측 상품으로 만들면 잘 팔릴 거야.” 에반은 옛날 같으면 가격표부터 만들었을 것이다. 한때 그는 사람의 고통에 얼마의 값을 붙일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계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료의 말을 조용히 듣고 물었다. “본인의 동의는 받았어?” “상품 설명이 좋은데 무슨 동의가 필요해?” “그 사람의 삶을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거잖아.” 동료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남의 사연에 돈을 내. 예나 지금이나 그래. 너도 잘 알잖아.” “알지. 그래서 이제는 그 사연이 누구의 것인지 먼저 확인하려고.” 그는 상품 기획안을 돌려주었다. 동료는 에반이 변했다며 혀를 찼다. 에반은 반박하지 않았다. 변한 것이 사실이었다. 다만 그 변화가 과거 자신이 만든 계약들의 책임을 지워 주진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우아가 복도에 나왔을 때 에반은 여전히 서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공공 열람 창구의 예산이 줄어 직원들이 과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에반은 잠시 고민하더니 제안을 하나 했다. 사연을 팔아 돈을 버는 대신, 안내서를 정확하게 만드는 일에 대한 정식 계약을 맺겠다는 것이다. 숨겨진 약관을 찾기 쉽도록 바꾸고 상품 광고와 공공 업무를 구분하는 일. 뒷문에 고액 수수료를 붙이지 않고 업무 범위와 대가를 명확히 정하겠다고 했다. “그런 계약도 할 줄 아세요?” 우아가 물었다. “저도 놀랍습니다.” 작은 농담이었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누군가의 정보를 훔치지 않아도 대가를 받고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시각 재하는 가시골 주민회의 자료를 다시 읽고 있었다. 혹시 자신이 신격을 유지하지 않게 되면 쉼터가 어떻게 운영될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목록에는 신의 기적이 필요한 응급 상황과 평범한 작업자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나눠 적었다. 우물 정기 점검, 창고 식품 관리, 안전줄 교체, 지붕 보수는 이미 주민들의 담당이 정해져 있었다. 의료 구호와 일부 긴급 통신 기능은 아직 외부 도움이 필요했다. 릴리는 그가 종이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을 써 놓으니 겁이 덜 나네요.” “처음엔 제가 없으면 다 멈출 것 같았어요.” 재하가 말했다. “사실 예전부터 많은 사람이 도왔잖아요.” “맞아요. 저는 그걸 뒤늦게 배운 셈이죠.” 세리아가 들어오자 그들은 아직 확인하지 못한 부분도 따로 적었다. 원인을 모르는 문제를 해결됐다고 표시하지 않았다. 신격을 선택할 권리가 회복된다 해도, 그 결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때 가시골의 모과가 다시 통신을 걸었다. “재하 님, 이번엔 꼭 망치가 아니라 못이에요. 목수님이 곧 오신대요.” 재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떤 세계의 귀환권보다 당장 사야 할 물건이 더 명확한 부탁이었다. “알았어요. 오늘은 진짜 잊지 않을게요.” 릴리는 그가 한 약속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 말을 믿어도 될까요?” “이건 영구 계약이 아니라 오늘 안에 하는 계약입니다.” “그래도 지난번에도 오늘이라 하셨잖아요.” 그들의 웃음이 복도에 번졌다. 그날은 아직 판정이 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선택을 되찾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작은 대화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실수를 영원한 의무로 바꾸지 않았다. 가시골 쉼터의 밤 당번표에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예전엔 신이 밤새 깨어 있으면 모든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기적도 고갈되고 사람도 지쳤다. 모과는 야간 당번을 두 명씩 정하고 서로 교대할 수 있게 했다. 도르는 신의 경비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의 휴식을 빼앗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날의 당번은 목수와 약초상 한 명이었다. 두 사람은 특별한 사건 없이 문과 창고를 점검했다. 다만 약초상이 새벽에 배가 아파 교대가 필요해지자, 미리 정해 둔 예비 당번이 대신 들어왔다. 재하는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영원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때 다른 사람이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었다. “그럼 신님은 오늘 밤 쉬세요.” 모과가 말했다. “제가요?” “네. 이건 부탁이 아니라 권고입니다. 거절하시면 이유를 듣겠지만, 무조건 따르라는 뜻도 아닙니다.” 재하는 웃었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방식이 이제는 자기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한밤중에 침대에 누웠다. 이상한 꿈을 꾸지 않았고, 다음 날 아침에도 쉼터는 멀쩡했다. 그 평범한 결과가 긴 서류보다 설득력 있었다. 그는 당번표의 빈칸에도 서명을 대신하지 않았다. 신이 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일할 사람이 동의한 뒤 이름을 적어야 했다. 모과는 그 원칙을 적어 문 옆에 붙였다. 처음엔 귀찮아 보였지만 그 덕에 야간 교대가 훨씬 쉬워졌다. 아침 회의에서 당번들은 각자 휴식을 보장받았는지도 확인했다. 누군가 아프면 다른 사람이 잠깐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당번표를 확정했다. 그날 밤, 그는 익명 중개 창구에 편지를 하나 더 보냈다. 목격자에게 추가 자료를 요구하는 편지가 아니었다. 이전 답장 덕분에 무엇을 확인할 수 있었는지만 알리는 간단한 감사 통보였다. ‘구조 요청이 여섯 분 늦게 도착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관측 장치와 시간 기록의 오류를 조사 중이며, 현재 당신의 신원은 어떠한 공개 보고서에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답장은 없었다. 재하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익명 중개 창구에는 그와 무관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외부 관찰 보조국이 재하의 공개된 사건 번호를 이용해 지구의 특정 현장을 검색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타났다. 재하의 신원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과거를 추적하려는 시도였다. 세리아가 즉시 독립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은 열람을 요청한 사람들의 신원이 아니라 외부 관찰 보조국의 접근 권한이었다. 기존 권한으로는 제삼자 정보까지 조회할 수 없었는데도 반복해서 시도한 흔적이 있었다. “접근을 막으면 기록도 못 찾는다고 하겠죠.” 릴리가 말했다. “그래도 필요한 자료만 열어야 해요.” 재하가 답했다. 그는 자신에게만 편리한 넓은 조사권을 거절했다. 그 선택이 나중에 자신의 신격을 지키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사고를 알아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모든 시간을 뒤져도 된다는 전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밤늦게 우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외부 관찰 보조국이 접근 차단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이유로 ‘윤재하 후보의 신격 유지 판정에 필요한 필수 검증’을 들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오래된 원본 장치가 자동으로 한 장의 통행증을 발급했다. [귀가 예정자: 윤재하] [귀가 조건: 신격 수탁의 최종 확정] 재하는 종이를 들여다봤다. 그가 고향으로 가려면 먼저 강제로 받은 신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향을 볼 권리를 미끼로 또 서명시키려는 거군.” 카르도가 말했다. “그러네요.” 재하가 답했다. “이번엔 통행증부터 버릴 순 없겠어요. 누가 발급했는지부터 밝혀야죠.” 그는 통행증을 쓰지 않고 증거 보관함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리킨다는 종이가, 누구의 길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47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4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