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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44화
PAYLUA ORIGINAL · 제144화

144화. 비가 멈춘 18시 42분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66자

오프라인 책장
세리아는 지구 기록의 여섯 분을 확대하면서 먼저 못 박았다. “이건 영상이 아닙니다. 신격 관찰실의 표제와 안전 기관의 접수 시각을 대조한 결과예요. 재하 님이 무엇을 했는지는 아직 말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제 입에서 ‘확인해 보죠’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불안해요.” 재하가 말했다. “좋은 변화입니다.” “감찰관님이 저를 칭찬하는 날이 오다니.” “칭찬이라고 적지는 않겠습니다.” 열람실의 수정판에 나타난 첫 기록은 지구의 기상 정보였다. 비. 저녁 무렵 강해졌다가 한때 약해짐. 남부 순환도로의 보행 교량, 임시 보수 중인 난간, 차도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 기록은 인물 대신 물체의 위치를 도식으로 보여 주었다. 재하는 흐릿했던 기억 하나를 붙잡았다. 그날은 비가 그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산을 접기 시작해서 도로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릴리가 그를 살폈다. “어지러우면 여기까지만 해도 돼요.” “괜찮아요. 제가 보려는 부분만 볼 겁니다.” 수정판 아래쪽에 ‘접수 원본의 이동 경로’가 나타났다. 18시 42분 10초, 현장에서 긴급 연락이 시작됐다. 18시 42분 16초, 외부 관찰 보조국이 사본을 받았다. 18시 42분 18초, 본래 안전 기관으로 가야 할 원본이 4층 보류 장치로 분기됐다. 18시 43분 02초, 두 번째 사람이 같은 요청을 다시 발송하려 했다. 18시 49분 01초, 안전 기관이 도착 지연 알림과 함께 접수했다. “이렇게 복잡하게 꾸미지 않아도 됐을 텐데.” 카르도가 중얼거렸다.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사람 눈에 덜 띄게 꾸민 거죠. 본래 목적은 구조 요청 한 건입니다. 중간에 지나가는 기관이 많아질수록 누구도 전체를 보지 못해요.” “전쟁에선 보급선을 그렇게 나누지 않는다.” “전쟁을 하지 않는 곳이라 더 방심한 걸 수도 있습니다.” 재하는 도식에 표시된 물건들을 보았다. 접수 원본, 임시 분기, 송달 장치. 하지만 정작 현장 사람들의 대답은 없었다. 그는 문득 자신의 인간 시절 직장 동료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시스템 장애는 로그가 남지만, 그때 야근하던 사람의 표정은 남지 않더라.’ 그땐 웃어넘겼다. 지금은 그 표정이 중요할 수 있었다. 세리아는 중개 창구를 통해 허가받은 자료를 열었다. 두 번째 응답자는 사고 현장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 대신, 당시 안전 안내판에 직접 적어 둔 시간을 제공했다. 작은 종이의 복사본이었다. ‘18:43 신고 재전송 / 연결 불가 / 18:45 임시 차단 / 18:48 현장 우회 / 18:49 접수’. 누군가 긴박한 상황에서 계속 시간을 적고 있었던 것이다. “연결 불가라니.” 릴리가 말했다. “현장 통신 장애가 있었을 수도 있죠.” 리안이 답했다. “하지만 관측 장치가 끼어든 시점과 겹칩니다.” 재하는 사고 자체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비가 젖은 다리,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 누군가의 손. 머리가 지끈거리자 그는 눈을 감았다.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잘못된 장면을 머릿속에서 만들어 사실이라고 믿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억과 기록을 분리해 적기로 했다. 노트 한쪽에는 ‘기억: 비가 약해짐, 누군가 소리침’이라고 쓰고, 다른 쪽에는 ‘확인: 18:42 원본 분기, 18:49 기관 접수’라고 썼다. 에반이 노트를 보고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신이 됐더니 기록 관리가 좋아졌군요.” “인간일 땐 개발자였습니다. 로그는 원래 익숙해요.” “그런데 사람 일에선 로그를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 “그렇죠. 로그를 쓴 기계도 누가 만들었는지 봐야 해요.” 열람실에서 지구의 또 다른 자료가 도착했다. 담당 기관이 승인한 비식별 시설 점검 결과였다. 사고 당시 교량 옆 제어함의 비상 스위치는 눌린 상태였다. 누른 사람이 누구인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 스위치는 위험을 감지하면 차량 통행 신호를 일시 정지하도록 만든 장치였다. 그런데 가동 성공 기록이 없었다. “고장?” 카르도가 물었다.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스위치를 누른 순간과 교통 신호 이상이 정확히 겹쳤는지는 확인이 필요해요.” 재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스위치를 자신이 눌렀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느낌일 뿐이었다. 그는 성급히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제 기억이 맞다면 제가 그걸 눌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기록엔 그렇게 적지 말아 주세요.” 세리아가 펜을 멈췄다. “알겠습니다.” 기록을 읽는 동안 재하는 몇 번이나 자리를 벗어나 물을 마셨다. 수정판이 보여 주는 것은 숫자와 선뿐이었다. 그런데 그 숫자만으로도 지구의 공기가 떠올랐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냄새, 다리 아래를 지나던 버스의 거친 엔진음, 신호등이 바뀔 때 들리던 짧은 안내음. 그는 기억과 상상을 구분하려 애썼다. 실제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오래 살던 도시의 익숙한 소리를 지금 가져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떤 일을 하셨나요?” 릴리가 물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오류가 나면 원인을 찾고, 고치면 다시 시험해 보고. 그날은 야근이 길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신이 됐을까요?” “저도 그게 제일 궁금해요.” 재하는 웃었지만 웃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사고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없다는 생각은 때로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자신이 없어진 뒤 회사 업무가 어떻게 됐는지, 연락이 닿지 않은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그 사실들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과거의 기록을 열람하는 데 타인의 사생활을 볼 권리가 자동으로 붙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아에게 전송된 자료의 분류 목록만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개인 메시지와 사진은 제외하고 공공 시설의 동작 정보와 자신의 기기 작동 여부만 확인하기로 했다. 이 요청 하나를 처리하는 데에도 여러 부서가 승인을 나눠 내야 했다. 우아는 그 과정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예전의 문제는 여러 기관이 확인해야 할 것을 서로 떠넘기기만 했다는 데 있었다. “제가 이 자료를 봐도 되는지 확인할 사람이 있다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하네요.” 재하가 말했다. “사람을 돕는 데 너무 복잡한 허락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도 있죠.” 우아가 답했다. “하지만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공적인 안전 정보와 본인 허락이 있어야만 열 수 있는 생활 정보는 다릅니다.” 리안은 수정판 옆에 두 개의 작은 종이 시계를 놓았다. 한쪽은 지구 시각, 다른 쪽은 공동 경유실 기록 시각이었다. 시간을 맞추는 작업 자체는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열람 기록마다 사용하는 기준이 다르면 복사본이 원본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모순까지 생겼다. 그는 바늘을 움직이지 않고 오차를 표기한 별도 줄을 그었다. “기준이 다른 두 시계를 억지로 같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 어떤 기준이었는지 기록해 두고 서로 바꿀 수 있게 해야죠.” 그 말은 재하가 그동안 배운 많은 일과 비슷했다. 한 신이 모든 것을 같은 규칙으로 통제할 필요는 없었다. 서로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 그 사이를 연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잠시 뒤 카르도가 돌아왔다. 그는 계단 아래에서 길을 잃은 사절단의 통행을 안내하고 있었다. 큰 갑옷 때문에 사람들이 처음엔 그를 피했지만, 목적지를 묻고 길을 가리켜 주자 한 명씩 다가왔다. 한 사절은 전쟁신이 길 안내를 하는 모습을 믿지 못해 두 번이나 확인했다. “너는 정말 카르도인가?” “그렇다.” “그런데 왜 싸우지 않는가?” 카르도가 고개를 기울였다. “길을 물었는데 왜 싸워야 하지?” 사절은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재하는 그 말을 듣고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신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반드시 자신에게 붙은 역할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신격 판정 하나로 삶 전체를 정의할 필요는 없었다. 자료를 검토하던 중, 그는 우아에게 자료가 실제 사고를 재현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고서 첫머리에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기록을 대조하면 위험을 줄일 근거를 찾을 수 있지만,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완벽하게 다시 만들 수는 없다. 재하는 그것을 아쉽게 받아들였다. 정확히 안다는 것과 충분히 알아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리안은 시계를 정리하기 전에 실험에 사용한 오차 보정표를 봉인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재하는 그 행동을 눈여겨봤다. 정답이라고 선언하는 것보다 누가 다시 검증할 수 있게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었다. 자신의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의 감각을 다른 사람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언제 어떤 기록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는 따로 적어 둘 수 있었다. 나중에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지금의 결론을 바꿀 수도 있다. 재하는 그 가능성을 두려워하면서도 받아들였다. 과거의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는 목적은 영웅을 찾는 일이 아니라, 다음 사람의 위험을 줄이는 일이었다. 점심 무렵 경유실의 외부망 회선이 끊겼다. 오래된 접수 원본 경로를 정지시키는 작업이 다른 세계의 안전 시험 회선을 함께 멈춘 것이다. 우아가 당황한 얼굴로 뛰어왔다. “유리해의 구조 함선이 오늘 정기 훈련을 하는데 통신 검증 신호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재하는 즉시 일어났다. 기록 조사를 멈추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지난 세 지역의 공동 심리에서 약속한 것은 강제 계약을 중단하되 필수 구조 서비스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 약속이 아직 완전히 시험된 것은 아니었다. 마레의 목소리가 별도 통신관에서 들려왔다. “우린 출항을 연기할 수 있어. 대신 다른 선박에도 훈련 취소를 알려야 해.” 리안이 회선을 점검했다. 고장난 옛 선을 다시 연결하면 훈련 신호는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지만, 그러면 4층의 지연 장치도 함께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건 안 됩니다.” 재하가 말했다. “그러면 우회 통신을 써야 해요.” 리안이 답했다. “시간이 걸릴 겁니다.” 카르도가 자신의 사령 통신 장치를 내놓았다. “군사용이라 압력이 높은 해저에서는 잡음이 심할 거다. 그래도 육상과 함선 사이에는 쓸 수 있겠지.” 에반은 예비 통신망의 사용 계약서를 보고 웃었다. “마침 제가 과거에 만든 아주 비싼 서비스가 있군요. 그런데 오늘은 계약서의 자동 갱신 조항을 먼저 지우죠.” 모두가 각자 맡은 일을 했다. 마레는 현장에서 훈련을 취소하고 선박의 위치를 확인했다. 리안은 우회 신호를 연결했고, 세리아는 나중에 책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수동 송신 기록을 남겼다. 재하는 직접 신성 포인트를 쓰지 않았다. 그가 할 일은 정보가 엉뚱한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읽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두 시간이 지나 무사히 훈련 취소가 끝났다. 마레가 통신관 너머에서 말했다. “재하 님, 오늘은 기적 안 쓰셨죠?” “네. 오늘도 평범했습니다.” “우린 이쪽 평범한 하루를 지키려고 종일 배를 묶어 둔 겁니다.” 그 말에 재하는 웃었다. 저녁에 다시 기록실로 돌아왔을 때 우아는 지구의 시설 점검 자료를 마지막으로 읽어 주었다. 교량의 비상 스위치는 사고 직전 눌렸으나 가동 기록이 누락되어 있었다. 다만 그날 밤 이후 해당 스위치의 결선 오류가 발견되어 수리되었다는 문장이 남아 있었다. “그걸 확인한 사람은 살아 있나요?” 재하가 물었다. “기관에서 수리한 기록입니다. 개인을 특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하루가 완전한 비극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고장난 것을 고쳤고, 또 다른 사람은 신고를 다시 보냈다. 그날의 사고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며 같은 위험을 줄이려 노력했다. 그 순간 개인 우편함에서 새로운 서류가 나타났다. ‘본인 관련 관측 기록 추가 열람 가능’이라는 알림이었다. 발송자는 과거의 외부 관찰 보조국. 그리고 작은 조건이 붙어 있었다. [열람자에게 ‘신격 수락 의사’를 재확인함] 재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자기가 이미 신이 된 이유를 알아보려면, 다시 신이 되겠다고 서명하라는 말이었다. “누가 이런 절차를 짰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에반이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말씀드리자면 저도 모든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닙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의심스럽네요.” 재하는 알림을 닫았다. 새로운 서명은 하지 않았다. 기록을 열 권리와 신격을 수락할 권리는 별개라는 걸 이미 배웠다. 대신 조건을 없애 달라는 정정 요청을 제출했다. 우아는 접수 번호를 읽어 주었다. 그 번호는 그날 밤 그의 첫 번째 작은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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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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