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43화
PAYLUA ORIGINAL · 제143화

143화. 지워진 여섯 분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88자

오프라인 책장
“목격자의 이름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우아가 말했다. 윤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요.” “표정으로 물어보셨어요.” “표정도 개인정보입니까?” “그건 제가 대답하기 어렵네요.” 전날 4층 무인 송달함에서 찾아낸 메모에는 두 번째 응답자가 구조 요청 원본을 다시 보내려 했다고 적혀 있었다. 우아는 그 기록을 조사하던 중 뜻밖의 사실을 확인했다. 원본 재전송을 시도한 사람은 신격 관찰 프로그램의 참가자가 아니었다. 단순히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실수로 그 사람에게도 확인 요청이 도착했고, 그 사람은 ‘원본을 먼저 처리하라’고 답했다. 이름을 몰라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공동 경유실의 증인 보호 규정은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대체로는 신들의 전쟁에 휘말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기록을 제공할지 말지 선택할 권리는 인간에게 있었다. 우아는 익명 중개 창구를 통해 그 사람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았다. 다만 창구가 실제로 지구에 닿는다는 사실조차 보장할 수 없었다. “답장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질문을 보내는 거예요.” 릴리가 말했다. “상대가 원하면 답할 수 있게.” “그렇죠. 질문도 압박이 되지 않게 써야 합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재하는 가장 먼저 ‘당신은 그날 무엇을 보았습니까?’라고 적었다. 그리고 곧 종이를 구겼다. 지나치게 넓은 질문이었다. 사고를 겪은 사람에게 하루 전체를 다시 살펴보라고 하는 건 친절하지 않았다. 두 번째 종이에는 ‘당시 구조 요청의 전송이 지연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까?’라고 썼다. 세 번째에는 ‘원치 않으면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문장을 덧붙였다. 릴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러면 기계 설명서 같아요.” “그게 그나마 안전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읽을 편지잖아요.” 그들은 두 시간 동안 문장을 고쳤다. 결국 완성된 편지는 짧았다. ‘그날의 사고에 관한 송달 기록을 바로잡으려 합니다. 혹시 안전 기관에 보내려다 반송된 자료가 있는지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답장을 원하지 않으시면 그 선택은 그대로 존중하겠습니다.’ 재하의 이름도 신이라는 직함도 쓰지 않았다. 보낸 사람은 ‘독립 기록 정정 창구’라고만 적었다. 에반이 종이를 읽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광고로서는 최악이군요. 누가 왜 보내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고, 거절할 이유를 제일 먼저 주다니.” “우리 기준에선 괜찮다는 거죠?” “대단히 훌륭합니다. 제 뼈를 깎는 평가입니다.” 그때 가시골에서 모과의 긴급 연락이 왔다. 쉼터 동쪽 처마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도르와 목수가 바닥을 받쳐 놓았지만, 오후에 시장이 열리면 사람들이 모이는 길과 겹쳤다. 재하는 편지의 발송을 우아에게 맡기고 가시골로 돌아갔다. 누군가의 과거를 추적한다고 해서 현재의 안전을 미뤄 둘 수는 없었다. 처마 밑에는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카르도는 긴 장대를 들고 있었고, 노아는 분필로 바닥에 금지선을 긋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선을 밟고 지나갔다. “신님, 이쪽으로!” 모과가 외쳤다. “보조 기둥이 젖어서 미끄러져요.” 재하가 달려가 보니 목수가 기둥 아래 받침돌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재하는 본능적으로 손에서 기적을 꺼낼 뻔했다. 그러나 카르도가 먼저 그를 막았다.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 물어라.” 목수가 짧게 지시했다. “재하 님은 아이들을 뒤로 보내 주세요. 힘센 분은 저 기둥을 위로 조금만. 조금만입니다.” 카르도는 전쟁신답게 기둥을 가볍게 들었다. 너무 가볍게 들어서 처마가 더 벌어질 뻔했다. “내려! 내려!” 목수가 소리쳤다. “적을 들어 올릴 땐 높을수록 좋은데.” “지금 적이 아니잖아요!” 재하가 아이들을 뒤로 옮기며 웃음을 터뜨렸다. 노아가 다가와 물었다. “전쟁신님은 집을 못 고치세요?” “집이 공격해 오면 잘 고치겠다.” 카르도가 근엄하게 답했다. “집은 공격 안 하잖아요.” “그래서 어렵다.” 처마는 일단 지탱되었지만 오후 장터가 열리는 동안 통로를 막아야 했다. 모과는 장터 상인들에게 우회로를 안내했다. 평소에는 신전의 손님이 많다며 기뻐하던 상인도 오늘은 불평하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모두 손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재하도 직접 물통을 나르며 공사 현장을 도왔다. 해가 기울 무렵 우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익명 중개 창구가 발송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당사자가 메시지 자체를 받지 않도록 설정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답장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재하는 그 점을 기록했다. 가시골의 처마 공사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문제는 부서진 기둥 하나가 아니라 지붕 아래로 스며든 물이었다. 도르는 신격을 잃기 전에 이 지붕을 몇 번이나 고쳤다고 말했다. 기적이 부족할 때는 돌을 쌓고 나뭇가지를 엮어 수리했다. 그때마다 비가 오면 다른 곳에서 물이 샜다. 새 기둥을 세우기 전에 빗물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부터 정해야 한다는 목수의 말에 재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군요. 고치는 법을 알았는데 왜 계속 새는 거죠?” 도르가 물었다. “증상이 생기는 곳만 고쳤으니까요.” 목수가 대답했다. “물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 떨어지는 곳을 막았잖아요.” 에반은 그 말을 듣고 재하를 쳐다봤다. “그동안 우리가 조사한 계약들이랑 똑같네요.” “맞아요. 피해가 난 곳만 고쳐 놓고 원래 경로를 그대로 두면 다른 곳에서 또 새겠죠.” 목수는 신들의 대화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기가 말한 것이 아주 중요한 진실처럼 들리자 어깨를 폈다. 곧바로 망치를 들고 천장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도르는 목수가 부르는 때에만 받침돌을 움직였다. 카르도는 못을 곧게 펴는 일을 맡았다. 전쟁신은 작은 못을 손가락으로 눌렀다가 세 개를 부러뜨렸다. “못은 적이 아니에요.” 노아가 진지하게 말했다. “알겠다.” 카르도가 답했다. “오늘은 못에게 패배했다.” 릴리는 안전줄 뒤쪽에서 사람들의 통행을 안내했다. 어떤 주민은 먼길을 돌아가야 한다며 불평했다. 릴리는 그에게 공사 진행 상황과 우회 통로를 보여 주고, 몸이 불편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다. 통제의 이유를 설명하자 사람들은 훨씬 덜 화를 냈다. 모두가 같은 결정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오후에 공사 자재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비가 스며든 부분을 열어 보니 예상보다 넓은 면적을 교체해야 했다. 예비 목재는 겨울에 땔감으로 쓰려고 쌓아 둔 것이어서 함부로 가져다 쓸 수 없었다. 주민회의를 기다리기에는 처마가 불안정했다. 목수는 지금 필요한 최소 보강재와 나중에 교체할 자재를 구분했다. “새 지붕을 오늘 완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오늘 할 일은 사람이 다치지 않게 만드는 거예요.” 재하는 무릎을 쳤다. 며칠째 첫 사고의 모든 비밀을 한꺼번에 밝혀야 한다는 조급함에 시달렸는데, 목수가 자신에게 더 나은 순서를 가르쳐 준 것이다. 오늘은 구조 요청이 왜 늦었는지를 확인하고, 그 문제를 더는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다. 공사 끝에 모과가 보관하던 낡은 목재 장부가 나왔다. 수리 내역을 보니 어떤 날짜에는 ‘목수 없음’이라고 쓰여 있고, 다른 날짜에는 ‘동네 사람들이 비를 막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 대신 사람들이 함께 한 일이 남은 기록이었다. 재하는 그 장부의 간결함이 마음에 들었다. 재하가 신이 되기 전 마지막 하루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 없이도 누군가는 위험을 알리고, 다른 누군가는 장비를 옮겼을 것이다. 그는 새 장부에 이렇게 적었다. ‘동쪽 처마: 임시 보강 완료. 남은 위험: 다음 강풍 전 보강재 재확인. 다음 담당: 주민회의에서 결정.’ 아무도 서명하지 않았다고 작업이 끝난 척 처리하지 않았다. 그 방식은 처음으로 자신이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신전 운영 방식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노아가 릴리에게 질문했다. “신님이 처음 오셨을 때는 지붕이 안 샜어요?” “그때는 먼지가 너무 많아서 새는 줄도 몰랐지.” 재하가 답했다. “그럼 신님이 오셔서 더 좋아진 거예요?” “우리 모두 조금씩 고쳤으니까 좋아진 거야.” 노아는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물었다. “그럼 신님이 없어도 좋아져요?” 재하는 잠시 놀랐지만 진심으로 대답했다. “그렇지. 너도 고칠 수 있잖아. 오늘은 안전선을 그렸고.” “저는 사람이 자꾸 밟아서 화났어요.” “그래도 포기 안 했잖아.” 노아는 수줍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릴리는 재하에게 작은 눈짓을 보냈다. 다른 누군가의 과거를 알아보는 길이 아무리 복잡해도, 오늘의 선택을 한 사람들끼리 나누는 일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노아는 공사가 끝나자 자기 분필 선을 물로 지웠다. 내일도 같은 자리에 선을 그으면 사람들이 공사가 계속되는 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이 사라졌으면 위험 표지도 함께 바뀌어야 했다. 재하는 그 작은 행동을 보며 현장 사람들의 판단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그 일을 마무리했다면 다음 사람은 거기서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어야 했다. 그날의 공사 장부 끝에는 물통을 나른 사람의 이름도 따로 적히지 않았다. 필요한 일을 함께 했다는 사실만 남았다. 재하는 그 이름 없는 수고가 이곳을 지탱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장부를 주민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곳에 놓아두기로 했다. 밤이 되어 마을이 조용해지자 에반은 재하를 찾아와 오래된 회계 장부를 내밀었다. 4층 장치의 사용료 결제 기록을 추적해 봤다는 것이다. 안전 기관으로 보내는 원본을 지연시키는 기능은 공식 사업 항목이 아니었다. 하지만 ‘관찰 품질 유지비’라는 명목으로 비용이 청구되었다. “누가 냈어?” 재하가 물었다. “구체적인 이름은 없습니다. 공동 경유실의 특별 회계로 묶여 있어요. 다만 정산할 때마다 한 장의 증빙이 붙었습니다.” 증빙에는 지구 사고의 개별 정보 대신 ‘응답 지속 시간’이라는 수치가 적혀 있었다. 실제로 도움이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길수록 점수가 높았다. 에반의 얼굴이 굳었다. “이건 제가 알아요. 판매를 늘리려고 고객이 결제를 고민하는 시간을 지표로 만들었을 때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여기선 사람의 위험이 길어질수록 점수를 더 줬어요.” “그럼 사고가 일어나도록 일부러 놔뒀다는 건가?” “그렇게까지 말할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구조 요청을 늦게 보내는 데 금전적인 유인이 있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재하는 장부를 덮었다. 좋은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기관이라면 좋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다. 그러나 그 기관은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망설이지 않고 버티는지를 측정하고 있었다. 마치 불을 끌 사람이 있는지 보겠다며 불이 번지는 시간을 재는 것 같았다. 이상한 것은 자신만 감시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장부에는 이름이 가려진 여덟 건의 지구 관측 시험이 더 있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시험에는 ‘응답 후보 000001: 거절’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 사람의 사연을 찾아내려는 충동이 잠시 일었다. 하지만 재하는 이미 그 거절을 지키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이제 그 기록을 호기심으로 열어서는 안 됐다. 이튿날 새벽, 작은 답장이 도착했다. ‘자료가 있습니다. 다만 제 이름을 공개하거나 당신의 사고를 재현하는 데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날 다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날 늦게 도착한 신고가 왜 그랬는지에 관한 설명입니다.’ 재하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답장을 받은 사실과 열람 조건만 세리아에게 알렸다. 원본은 중개 창구에 보관하고, 필요한 부분은 제공자가 허락한 범위에서만 확인하기로 했다. 그는 창문을 열었다. 아침바람이 들었고 아직 수리하지 못한 처마 밑에 새로 친 안전줄이 흔들렸다. 몇 시간 전에는 이 줄을 누가 설치했는지가 중요했다. 지금은 이 줄이 앞으로도 버틸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사고 기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가 영웅이었는지보다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사실이 남아야 했다. 마지막으로 답장 아래 붙은 작은 첨부 기록을 보았다. [원본 재전송 시도: 18:43 / 안전 기관 실제 접수: 18:49]. 그 사이 여섯 분의 공백이 있었다. 지금까지 실험 기록에서 재하에게 보여 준 시각은 18시 42분 한 번뿐이었다. 여섯 분 동안 누가 무엇을 했는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마지막 하루보다 그 여섯 분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43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4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