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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42화
PAYLUA ORIGINAL · 제142화

142화. 원본보다 빠른 사본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191자

오프라인 책장
윤재하가 다시 공동 경유실을 찾은 날, 에반은 현관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감탄했다. “대단하군요. 누군가 저 줄을 기다림의 경제로 포장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겠어요.” “이미 당신 표정에 그 생각이 적혀 있는데요.” 릴리가 말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안 하겠습니다.” 줄은 사고 기록 열람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주민들이 분실된 우편물과 잘못된 구조 호출 기록을 정정하려 모인 것이었다. 누구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다른 신전으로 간 사연을, 누구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서약이 통지서에 인쇄된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재하는 자기가 겪은 일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 앞의 우아가 번호표를 나눠 주고 있었다. 지난번엔 조잡한 금속 상자 하나로 접수를 받더니 오늘은 임시 창구를 두 개 늘렸다. 기계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설명을 들을 사람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제가 신격을 내놓으면 업무가 좀 줄어들까요?” 재하가 농담했다. “그렇게 간단하면 제가 벌써 부탁드렸을 거예요.” 우아가 대답했다. 그들에게 배정된 장소는 열람실이 아니라 기록 이동 경로를 확인하는 작업실이었다. 벽에는 네 개의 큰 지도가 붙어 있었다. 지구, 공동 경유실, 가시골, 그리고 경로를 알 수 없는 회색 구역. 가느다란 선이 각 지점을 연결했다. 어떤 선은 완전히 끊어졌고, 어떤 선은 중간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리안이 도착하자마자 지도 앞에 섰다. 그는 원래 가시골 신전의 열 배출관과 우물 설비를 고쳤던 기술자였지만, 경유실의 배관과 전송 회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정해진 곳에서 들어온 것이 정해진 곳으로 나가야 하고, 그 사이에 새 경로가 생겼다면 누가 왜 연결했는지 찾아야 했다. “마법사도 아니면서 이런 걸 다 아세요?” 에반이 물었다. “막힌 관은 어느 세계에나 있습니다.” “심오하네요.” “그냥 관이 막힌다고요.” 작업실의 원본 조회 장치는 지구에서 전송된 구조 요청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재하의 마지막 날 18시 42분에 접수된 요청의 표제는 비어 있었다. 대신 접수 경로가 두 번 바뀌었다는 표식이 있었다. 첫 변경은 안전 기관으로 보낼 때, 두 번째 변경은 신격 후보 관찰 프로그램으로 복사될 때 발생했다. 세리아는 양쪽을 나눠 보았다. 안전 경로에는 응급 상황 접수 번호가 남아 있었다. 관찰 경로에는 재하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문제는 원본이 도착한 시각이었다. 관찰 경로의 사본이 안전 기관으로 가는 원본보다 먼저 기록되어 있었다. “이상하죠?” 리안이 말했다. “복사본이 원본보다 먼저 도착할 순 없어요. 둘 중 하나의 시계가 틀렸거나, 중간 장치가 원본을 잡아 두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누군가 일부러 구조를 늦췄을 수 있다는 건가요?” 릴리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선 어느 장치가 늦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아요.” 재하는 그들의 신중함에 불안과 안도를 동시에 느꼈다. 자기 기억 속에선 한 사람이 위험에 처했고 자신은 뛰어갔다. 실제로 구조 신호가 지연되었다면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가설을 사실로 바꾸려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싶진 않았다. 그들이 경로를 추적하자 반쯤 지워진 우편 주소가 나왔다. [수령처: 4층 무인 송달함] [관리 부서: 외부 관찰 보조국] [보존 상태: 열람 실패] 우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4층은 오래전에 폐쇄됐는데요. 거긴 우편물이 아니라 보관 장치만 남아 있을 거예요.” “오래전이면 언제요?” “적어도 신격 승계 담당 조직이 만들어지기 전입니다.” 4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오래된 도서관 냄새가 났다. 바닥에는 ‘송달 대상 불명’이라는 작은 도장이 찍힌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누군가 물건을 버리지 못해 한데 모아 둔 것 같았다. 재하는 상자마다 내용물이 궁금했지만 세리아의 지시에 따라 자기 사건의 경로 번호가 적힌 상자만 찾았다. 4층 계단 옆에는 오래된 우편 분류원의 출근 기록이 남아 있었다. 직원들의 이름은 폐기되었고 교대 시간과 작업 항목만 보존되어 있었다. 가장 많이 반복된 항목은 ‘원본 보류 장치 수동 해제 점검’이었다. 다른 업무보다 유난히 점검 횟수가 많았다. 리안은 수년 동안 이 장치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됐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세리아는 추측과 사실을 구분하자고 했지만, 점검 기록을 열람하는 데는 동의했다. 서류를 펼치자 놀라운 내용이 나왔다. 보류 시간 제한을 초과한 요청이 발생할 때마다 직원들은 수동으로 모래시계를 돌려 원본을 발송했다. 그런데 자동 보고서는 이를 ‘정상 지연 처리’라고 기록했다. 실제로는 사고를 막은 손작업을 시스템 성공으로 표시한 것이다. “누가 이걸 밤새 고쳤는지 기록도 없어요.” 우아가 말했다. 에반이 쓴웃음을 지었다. “관리자는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고 생각했겠네요. 직원들이 손으로 막고 있다는 건 몰랐을 테고요.” 리안은 낡은 작업 공구함에서 작은 금속 고리를 발견했다. 모래시계 아래에 걸어 두면 시간이 다 되기 전에 원본이 흘러나가도록 하는 부품이었다. 공식 부품 목록에는 없었다. 누군가 자신의 책임을 감수하고 장치의 지연 기능을 우회하려고 만든 것이었다.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 찾으려는 거죠?” 릴리가 물었다. “아니요. 원인을 조사하는 데 이름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리안이 말했다. “다만 이런 우회가 필요했던 설계를 중단시켜야죠.” 재하는 금속 고리를 직접 만지지 않았다. 오래된 장치 안에 증거로 남겨야 했다. 장치가 실제 안전 경로를 막았다는 사실, 직원들이 수동으로 이를 해제하려 했다는 사실만 기록하면 충분했다. 누가 영웅이었는지를 찾아내면 그 사람이 규정을 어겼다며 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공구함 아래엔 손때 묻은 쪽지가 더 있었다. ‘벨이 세 번 울리면 안전 기관 확인부터. 숫자 보고는 나중.’ 무명의 직원들이 남긴 간단한 지침이었다. 실제 생명이 걸린 일을 우선하라는 문장이 이제는 규칙 위반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점이 서글펐다. 그들 앞에 직원용 방명록을 든 젊은 기록관이 나타났다.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다. 그는 장치 정기 점검을 맡은 아버지가 이곳에서 일했다는 사실만 말했다. 아버지는 모든 요청을 제때 보내지 못한 날 집에 돌아와 잠들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아버지가 무슨 사건에 관여했는지 묻지는 말아 달라고 했다. “저희는 아버지의 개인 기록을 보러 온 게 아닙니다.” 재하가 말했다. “장치가 원본을 늦게 보낼 수 있었는지 확인하는 중입니다.” 기록관은 안도한 표정이었다. 그는 장치 사용 안내서가 보관된 선반을 가리켜 주었다. 리안은 안내서를 열었고, 우아는 그 사람이 동의한 기술 자료만 복사했다. 한 사람의 가족사가 사건을 해결하는 도구로 변하지 않게 하려는 작은 조치였다. 재하는 그동안 자신이 만난 모든 기록관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 세계의 문제는 대개 이름 모를 사람들의 늦은 밤 수작업으로 버텨 왔다. 정작 그들이 밤새 일을 했다는 사실은 아무 기록에도 남지 않았다. 시스템을 고치는 일은 그 노동을 사라지게 하는 게 아니라 더는 위험한 임시 조치를 강요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은 실물 조사 결과를 세 칸으로 나눠 적었다. 이미 확인한 것은 자동 지연 구조와 수동 해제 흔적, 아직 확인해야 하는 것은 실제 피해 범위와 작동 시점, 즉시 할 일은 새 구조 요청이 장치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리안은 종이를 장치 앞에 붙이려다가 세리아에게 제지당했다. 원본 증거에 무언가 붙이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대신 옆 벽에 별도 안내판을 세웠다. 위험을 경고하는 일과 증거를 보존하는 일을 둘 다 지키는 방법이었다. 카르도는 안내판 아래 작은 의자를 놓았다. 무거운 기계를 직접 들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조사도, 후속 수리도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기다리면서 벽에 걸린 비상 절차를 외웠다. 적의 성문을 부수는 법보다 복잡한 절차였으나, 적어도 이번에는 그 절차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했다. 그들은 가장 안쪽에서 낡은 기계를 발견했다. 네모난 철제 몸체에 종이가 양옆으로 지나가는 구조였다. 기계 옆에는 누군가 손으로 붙인 주의 문구가 있었다. ‘원본보다 사본의 처리가 빠르면 송달을 잠시 중단할 것.’ 바로 아래 다른 글씨로 ‘임시 우회 승인’이 추가돼 있었다. 리안이 그 문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건물에서 화재 경보를 받고도 손님 출입 관리 장치를 먼저 작동시키는 것과 같아요. 순서가 뒤집혔습니다.” 기계의 문을 열기 전에 우아는 송달함 관리자의 승인을 확인했다. 경유실 공용 자산이라도 모든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기록의 외형과 경로만 살피는 허가를 받은 뒤, 리안이 뚜껑을 열었다. 안쪽에는 전동 벨트 대신 작은 모래시계가 매달려 있었다. 종이가 도착하면 모래가 떨어지는 동안은 원본을 움직이지 않고 사본만 별도 관으로 보낼 수 있었다. 모래가 모두 내려오면 그제야 원본이 안전 기관으로 전송되게 되어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걸 만들었죠?” 릴리가 물었다. 에반이 입술을 눌렀다. “관측 대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내려면 상황이 조금 더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위기가 너무 빨리 끝나면 관찰할 행동이 줄어들 테니까요.” 그 목소리가 평소처럼 능청스럽지 않았다. 그는 직접 이 장치를 설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슷한 판매 관행을 알고 있었다. 고객이 불편을 겪는 시간을 늘리면 유료 긴급 서비스를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논리. 그 논리가 구조 요청으로 옮겨졌다면 누군가의 위험을 실험 재료로 삼은 셈이었다. 재하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기계가 직접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아직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구조 요청의 도착을 늦추도록 설계된 부품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조사할 이유가 있었다. 갑자기 작업실의 조명이 깜박였다. 모래시계 위에 붉은 불빛이 들어왔다. [보류 장치 재가동] [새 송달 요청 1건 감지] “새 요청?” 카르도가 앞에 섰다. “지금도 이걸 쓰고 있었단 말인가?” 우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경유실의 자동 복구가 오래된 경로를 살아 있는 시설로 오인하고 전원을 공급한 것이었다. 그 순간 새로 들어온 구조 요청 한 건이 보류 관으로 빠져나갔다. 재하가 손을 뻗었지만 금빛 기적은 떠오르지 않았다. 본인과 신도 사이의 약속을 바로잡는 권능으로 공용 장치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는 없었다. “원본부터 돌려요!” 리안이 외쳤다. 카르도는 기계를 부수지 않았다. 리안이 지정한 받침대를 받쳐 기울지 않게 잡았다. 우아가 독립 경로를 열고 세리아가 자동 재시도 기능을 차단했다. 리안은 모래시계 아래 물리적인 걸쇠를 풀었다. 종이 한 장이 송달 관으로 빠져나갔다. 아주 짧은 침묵 뒤 녹색 등이 켜졌다. [긴급 요청 원본: 안전 기관 전달 확인] [관측 사본: 생성 중단] “지금 요청한 사람은?” 재하가 물었다. “안전 기관에서 접수했습니다. 처리 상황은 해당 기관이 확인할 겁니다.” 우아가 답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영웅처럼 다른 세계의 사람을 구했다고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들이 한 일은 위험한 지연 장치를 막고 요청을 제때 보낸 것이었다. 원본을 받는 사람들이 실제 구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다시 조용해진 4층에서 세리아는 기계의 번호판을 찾아냈다.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있었다. [설계 목적: 자발적 응답 관찰] [표준 답신 판정: ‘확인하겠습니다’ = 영구 협조 의사] 재하가 씁쓸하게 웃었다. “확인하겠다는 말이 어느 날부터 평생 하겠다는 말이 됐네요.” 릴리가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확인만 했어요. 그 다음 일을 누가 할지 마음대로 정하지 않았고요.” 우아는 장치 폐쇄 결정을 임시 안전 위원회에 즉시 보고했다. 증거는 보존해야 하므로 기계를 뜯어 버릴 수는 없었다. 대신 전원 경로를 분리하고,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서로 다른 두 기술자가 확인했다. 그들이 돌아가려 할 때 에반이 모래시계 옆에서 오래된 안내서를 찾았다. 접힌 안쪽에는 낯선 문장이 연필로 적혀 있었다. ‘18시 42분에 발송된 지구의 원본은 보관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누군가 원본을 다시 적어 보내려 했다.’ 그 아래에는 ‘재전송 실패. 발신자는 현재 확인 불가’라고 쓰여 있었다. 재하는 제2응답자의 얼굴을 상상하려다가 멈췄다. 누구인지 몰라도, 그 사람도 그날 누군가를 돕기 위해 행동했을 것이다. 그 행동이 관찰 기록을 만드는 데 쓰인 것이라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더 분명했다. 이름을 찾는 것보다, 원본을 다시 보내려다 실패한 이유부터 밝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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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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