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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41화
PAYLUA ORIGINAL · 제141화

141화. 두 번째 응답자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291자

오프라인 책장
가시골 쉼터의 아침은 이상할 만큼 시끄러웠다. “신님, 오늘은 망치 있으세요?” “저를 볼 때마다 망치부터 찾지 마세요.” “어제 못을 사 오신다면서요.” 모과가 팔짱을 꼈다. 신전 현관의 오른쪽 문짝은 지난 장마에 비틀어져 있었고, 문이 열릴 때마다 바닥을 긁었다. 윤재하는 신성 포인트를 써서 문짝을 고치겠다고 했다가 릴리에게 말렸었다. 어디가 뒤틀렸는지도 모르는데 멀쩡한 부분까지 원래대로 만들면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목수에게 수리를 맡기기로 했고, 재하가 할 일은 못 한 움큼 사 오는 것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집었다. 구겨진 영수증과 사탕 하나가 나왔다. “못은요?” “제 생각엔 못이 저를 피하는 것 같습니다.” “신님이 못을 피하시는 거죠.” 어린 노아가 기둥 뒤에서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재하는 속으로 안도했다. 며칠 전까지 철비항의 응급 치료 기록과 유리해의 구조 신호를 따라다니며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던 사람들이다. 이곳에선 나사가 빠진 문이 하루의 큰 문제일 수 있었다. 그런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세 세계의 계약을 어렵게 정지시켰다. 그런데 재하의 품에는 아직 열지 않은 편지의 사본이 있었다. 공동 경유실에서 받아 온 개인 우편. 본문은 단 한 줄이었다. ‘당신의 첫 번째 대답을 확인하고 싶다면, 신이 되기 전 마지막 하루를 다시 살펴보십시오.’ 그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퇴근하던 밤, 빗물에 반사된 신호등과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 그리고 갑자기 세상이 뒤집히는 감각. 그는 누군가를 도우러 뛰어갔다고만 기억했다. 정확히 누구였는지, 왜 뛰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뒤 천계가 그에게 떠넘긴 신격은 ‘전임자 소멸’이라는 거짓 표기로 정당화되었다. 이제 전임 신 도르가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었다. “그 편지, 오늘 열람 신청할 건가요?” 릴리가 물었다. “이미 읽었는데요.” “편지 내용 말고, 그날의 자료요.” 재하는 노아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봐야죠. 그런데 제 기억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지구의 다른 사람들까지 뒤지는 건 싫어요.” 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누구 것까지 확인해야 하는지 먼저 정하죠. 신님의 기억과 다른 사람의 삶을 따로 놓고요.” 그때 쉼터 종이 울렸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세리아였다. 그녀의 손에는 조잡한 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봉인을 대신하는 굵은 실이 상자에 열십자로 감겨 있었다. “개인 우편 열람 창구에서 보낸 답신입니다. 승인도 거절도 아닙니다.” “그럼 뭐죠?” “열람 범위를 수신자가 직접 적으라는 요청입니다.” 재하가 상자를 열자 작은 종이 셋과 오래된 금속 단추가 들어 있었다. 첫 장은 ‘본인의 신격 배정과 직접 관련된 기록’, 둘째는 ‘외부 관찰 기계의 작동 기록’, 셋째는 ‘제삼자의 얼굴과 이름이 포함된 생활 기록’이었다. 마지막 장에는 별도 동의가 필요하다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셋째는 빼죠.” 재하가 말했다. “빼면 사고의 원인을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에반이 어느새 계단에 걸터앉아 대꾸했다. 과일을 씹고 있는 그의 손에는 판매 계획을 적던 낡은 공책이 있었다. “그래도 빼요. 동의 없이 들여다보는 걸 막으려고 지난 열 화를 썼잖아요.” 에반은 과일 씨를 종이에 싸며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본인과 직접 관련’이란 문구는 경계가 흐리죠. 담당자가 마음대로 확장하지 못하도록 구체적으로 써 두세요. 전직 악마 마케터가 드리는 무료 상담입니다.” “무료라는 단어가 제일 수상해.” “이 세계에서 무료를 가르쳐 주신 분이 누군데요?” 모과가 둘 사이에 종이를 놓았다. 재하는 다음과 같이 썼다. ‘본인의 사망 이전 마지막 하루와 신격 승계 과정에 한하여, 제삼자의 식별 정보는 가리고, 응급 구조 기록의 사실 관계만 확인한다. 기록을 보는 행위는 어떤 신규 계약의 승낙도 아니다.’ 서명란 앞에서 손이 멈췄다. 인간 시절 그는 늘 서류에 서명했다. 회사 장비 인수, 근태 정정, 야근 승인. 그런데 신이 된 뒤에는 이름 한 번 잘못 적는 것으로 타인의 인생이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도르가 따뜻한 찻잔을 내려놓았다. “서명하지 않아도 된다네. 그 사실을 잊지 말게.” “알아요. 그래서 이번엔 하려는 거예요.” 그가 서명하자 종이는 하늘로 사라지지 않았다. 세리아가 종이를 받아 목록에 기록했고, 보관함 속 같은 문서에 수기 번호를 붙였다. 평범한 접수였다. 재하는 오히려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서류 접수가 끝나기 전, 도르는 재하에게 신전 뒤편의 작은 화단으로 가자고 했다. 화단이라고 해 봐야 돌담을 따라 놓인 낡은 화분 몇 개뿐이었다. 도르는 전임 신으로 불리던 시절 그곳에 약초를 심으려다 번번이 실패했다고 했다. 신앙이 줄자 기적도 약해졌고, 마을 사람들은 기도 대신 먼 곳의 큰 신전을 찾았다. 그는 자신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돌아올 줄 알았지만 실상은 빈 신좌만 남았다. “나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는 줄만 알았네. 사람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지.” 재하는 작은 풀을 들여다봤다. 가늘게 올라온 새싹이 돌 틈을 헤집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걸 보면서도 신앙 포인트를 계산하셨어요?” “했지. 물을 한 번 주면 얼마나 늘어날까. 약초를 살리면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까. 어느 순간엔 화분이 아니라 장부를 보고 있더군.” 도르는 새싹을 건드리지 않았다. “자네가 편지를 읽으려는 게 자기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아닐 테지.” “처음엔 이유가 궁금했어요. 왜 하필 저였는지요. 지금은 그날 같이 있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가 더 신경 쓰입니다.” “그렇다면 모르는 부분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네. 신이란 이름이 붙으면 사람들은 우리가 다 안다고 믿으려 하니까.” 재하는 도르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살아 있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던 신이었다. 그가 하는 말은 법전의 경고보다 무거웠다. 서류를 기다리는 동안 노아와 릴리가 접수 창구 놀이를 했다. 노아가 작은 종이에 ‘빵 세 개가 필요함’이라고 적자 릴리는 왜 필요한지 물었다. 노아는 점심을 먹으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릴리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점심 배식표’ 상자에 넣었다. 다음 종이엔 ‘친구가 넘어졌다’고 쓰여 있었다. 릴리는 이번엔 상자에 넣지 않고 먼저 친구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노아가 ‘바로 바깥’이라고 하자 둘은 종이를 내려놓고 마당을 살폈다. “신님, 이 종이는 왜 접수 안 해요?” 노아가 물었다. “서류를 완성하는 것보다 먼저 봐야 할 일이 있잖아.” “친구가 넘어졌으면 가서 일으켜 줘야 하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친구가 혼자 일어나겠다고 하면 옆에서 기다릴 수도 있고.” 노아는 잠시 생각하다 새 종이를 꺼냈다. ‘넘어진 친구에게 먼저 물어보기.’ 재하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 자신이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대답도 어쩌면 이렇게 사소한 것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영원히 책임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지금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말. 세리아가 서류 접수의 마지막 절차를 확인하러 오자 모과가 의자를 하나 더 놓았다. 각자가 서명 사본을 갖고, 원본을 수정할 때는 변경 이력과 변경 사유를 따로 남기기로 했다. 모과는 이것이 지난 세 계약에서 발견된 공백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재하가 한꺼번에 규칙을 여섯 개나 만들자 그녀는 세 개로 줄였다. 너무 복잡하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도장 찍는 법까지 적어야 하지 않겠어요?” 재하가 묻자 모과가 말했다. “도장은 누가 찍었는지보다 왜 찍었는지 알 수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실수했으면 바꿀 수 있어야 해요.” 그 말은 지구에서 오래 일하며 배웠던 개발 원칙과도 닮아 있었다. 기록은 나중에 다시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실제 운영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오류가 났을 때 되돌릴 길이 있어야 한다. 신의 계약이라고 다를 이유는 없었다. 그날 오전 사소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세리아가 가져온 열람 범위 문서의 복사본에 ‘제삼자 식별 정보 제외’라는 문구가 빠져 있었다. 원본에는 분명 있었지만 복사를 맡은 기계가 줄 마지막 단어를 잘랐던 것이다. 재하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모두 별 생각 없이 서명했다면 가장 중요한 제한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다시 복사하죠.” “시간이 좀 걸릴 텐데요.” 세리아가 말했다. “오늘 조금 늦게 알아도 괜찮아요. 남의 하루를 잘못 열어 버리는 것보단 낫죠.” 세리아는 원본과 복사본을 소리 내어 대조했다. 한 번 더 확인하는 시간 때문에 오전 배편을 놓칠 뻔했지만, 도르는 부엌에서 따뜻한 빵을 싸 주었다. 재하는 빵 주머니를 들고 웃었다. 인간 시절에도 중요한 배포 전에 코드를 한 번 더 읽느라 점심을 놓치곤 했다. 이번에는 늦어도 배고프진 않았다. 한낮에 공동 경유실로 돌아가자 우아가 열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에는 ‘기억 영상 체험실’이라고 쓴 광고 간판이 반쯤 덮여 있었다. 에반이 한숨을 쉬었다. “이걸 누가 마케팅했죠? 자기 인생을 상품처럼 보여 주는 게 신성한 서비스인 줄 알고요.” “예전의 당신 동료가 했겠죠.” 카르도가 답했다. “그럴 만해서 더 싫은 겁니다.” 우아가 문을 열었다. 열람실은 상상보다 작았다. 여러 세계의 시계가 벽에 걸려 있었고 가운데에는 물그릇 같은 평평한 수정판이 있었다. 판은 사진을 직접 보여 주지 않고 당시의 시간표와 기계가 남긴 신호만 표시하도록 설정됐다. “영상 대신 기록을 먼저 보는 게 안전합니다.” 우아가 말했다. “사람의 얼굴을 가리지 못하는 자료는 자동 제외했습니다.” “그럼 사고가 있었던 날부터요.” 금빛 점이 판에 찍혔다. 지구 표준 시각이 표시되고, 이어서 한 줄의 로그가 나타났다. [관측 대상: 윤재하] [관측 개시: 사망 추정 시각보다 31일 전] [관측 범위: 구조 요청에 대한 자발적 응답] 재하는 얼어붙었다. 자신의 사고 이전부터 관찰이 시작됐다는 단서는 앞선 조사를 통해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이름 옆에 붙은 문장을 보는 것은 달랐다. “제가 무슨 실험 대상이었어요?” 세리아는 말을 아꼈다. 감찰관에게도 아직 결론은 없었다. 우아는 지구와 연결된 기록 중 공개 허가를 받은 부분만 확대했다. [마지막 하루. 18:42. 남부 순환도로 인근 보행 교량. 현장 구조 요청 접수.] [응답: 확인 중.] [관측 장치 판정: 후보가 타인의 구조 요청을 수락함.] 재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확인 중’과 ‘수락함’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확인하겠다고 답했다고 해서 앞으로 무슨 의무든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바로 이 오류가 세 계약에서 반복된 거군요.” 릴리가 중얼거렸다. “비슷해 보이지만 아직 같다고 단정하면 안 됩니다.” 세리아가 제동을 걸었다. “이건 지구의 외부 관측 기록이고, 세 계약은 현지의 안전 및 인력 배치 계약입니다. 연결을 입증할 원본이 필요해요.” 재하는 어색하게 웃었다. “감찰관님이 가끔은 제가 한 말도 지켜 주시네요.” “가끔만요?” “그 말은 기록하지 마세요.” 그때 수정판 밑에서 짧고 높은 소리가 났다. 화면에 없던 항목이 하나 나타났다. [현장 요청 원본: 미도착] [사고 당시 제2응답자: 존재 확인] [제2응답자의 식별 정보: 비공개] “두 번째 사람이 있었다고요?” 재하가 물었다. 우아는 확인용 인장을 들었다. “이 기록은 그 사람의 허락 없이 열 수 없어요. 대신 요청 원본이 어디에서 막혔는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재하는 잠시 생각했다. 그날 자신이 누군가를 도왔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구조 요청 원본이 사라졌다면 누군가의 실제 위험이 지금까지 잘못 분류됐을지도 몰랐다. 기억을 되찾는 일이 다른 사람의 진실을 빼앗지 않도록, 먼저 기록이 막힌 길부터 확인해야 했다. 밖에서 종이 울렸다. 공동 경유실의 점심시간 신호였다. 사람들은 하나둘 문을 나섰지만 재하는 수정판의 마지막 줄을 계속 보고 있었다. 18시 42분. 출근하던 때보다 정확한 숫자 하나가 남아 있었다. 몇십 년을 살아도 잊지 못할 대답이 사람의 얼굴보다 먼저 기록되어 있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그가 말했다. 에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장 재밌는 순간에?” “그래서 더요. 재밌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는 우아에게 ‘현장 요청 원본의 도착 실패’에 관한 기술 조사만 부탁했다. 제2응답자의 이름이나 얼굴은 요구하지 않았다. 릴리가 작은 종이에 세 줄을 적었다. 본인 자료 열람, 원본 경로 추적, 제삼자 정보 비공개. 그리고 그 아래 네 번째 줄을 추가했다.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아직 기다리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 줄 앞에서 재하는 오래 머물렀다. 자기 과거의 비밀보다 훨씬 무거운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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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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