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호 조사정에서 보낸 신호는 짧았다. 사람을 살려 달라는 요청과, 그 요청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강제로 데려오지 말아 달라는 부탁. 유리해 구조관제실의 모든 사람이 그 두 문장을 들었다. 그러나 중앙 호출망은 첫 번째 문장만 읽었다.
[긴급 구조 요청 수신]
[필요 구조 인력 자동 편입]
“두 번째 문장은 어디 갔습니까?” 윤재하가 물었다.
마레는 이를 악물었다. “설계상 요청 내용과 계약 동의 항목이 분리돼 있습니다. 동의 여부를 확인하는 장치가 없어요.”
“그럼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어야죠.”
“그 칸은 빈칸이면 자동 동의로 처리됩니다.”
재하는 이곳의 설명이 철비항과 거의 똑같다는 점에 소름이 끼쳤다. 다른 세계에 다른 목적의 기계가 설치돼 있었지만, 빈칸을 동의라고 읽는 사고방식은 같았다.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식의 설명으로 실제 반대를 지워 버리는 장치였다.
라겐은 출항에 앞서 자원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게 했다. 잠수복을 쓰면 평소 아는 사람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손짓으로 긴급 상황을 알리는 순서도 다시 연습했다. 한 젊은 잠수사는 최근 손목을 다쳐 오늘은 출항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라겐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관제 보조석으로 보냈다. 재하는 그 장면을 보며 누군가의 사정을 듣고 자리를 바꾸는 데 대단한 기적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 짧은 확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세계에서 온 이름이 오늘의 구조 명단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마레는 구조대장 라겐을 불렀다. 라겐은 평생 잠수정의 기관을 고친 사람으로, 지금은 구호함 두 대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칠호의 마지막 위치를 확인한 뒤 필요한 인원을 계산했다. 숙련 잠수사 네 명, 수로 지도사 한 명, 통신 담당 한 명. 여분 산소통과 견인줄을 실으면 칠호를 통째로 끌고 올 가능성이 있었다.
“자원자를 받을 시간은?” 릴리가 물었다.
“십 분이면 됩니다.” 라겐이 말했다. “다만 관제실 문이 열려야 하죠.”
중앙 장치는 자동 대리인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호함 출항 허가를 내지 않았다. 니라가 철비항에서 겪었던 문제와 비슷했다. 재하는 기록관들과 함께 오래된 관제실 도면을 펼쳤다. 과거 수동 출항 허가함은 기계 바로 옆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광고판이 서 있었다. ‘당신의 기도가 가장 가까운 구조자가 됩니다.’
에반이 광고판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저 문구는 제가 만든 겁니다.”
카르도가 한숨을 쉬었다. “넌 대체 어디를 가든 죄가 있군.”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제도를 쉽게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어려운 제도를 쉬운 말로 속이는 건 더 나쁜 일이란 걸 압니다.”
라겐과 기술자들이 광고판을 떼어 내자 오래된 수동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잡이는 녹슬었지만 기계적 연결은 남아 있었다. 라겐이 직접 시험하려 했으나 중앙 망에서 경고가 떴다.
[수동 출항 허가: 중앙 관리자 인증 필요]
재하는 잠깐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저를 넣으라고 하겠죠.”
“그걸 기대하신 겁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아뇨. 너무 익숙해서 무서운 겁니다.”
사람들은 기록을 더 뒤졌다. 기계의 원형 도면에서는 중앙 관리자의 서명이 없었다. 마을 항로 협의회의 서명 세 장으로 출항할 수 있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항로 협의회는 남아 있었지만, 출항 허가 권한은 빼앗긴 상태였다. 마레가 협의회 명부를 가져왔다. 현재 위원 중 두 명은 이미 사망했고, 한 명은 다른 마을로 이주한 뒤 활동을 그만뒀다.
마레는 남아 있는 위원들에게 바로 출항하라고 명령하고 싶었다. 하지만 라겐은 도면에서 ‘대리인 위촉 가능’이라는 오래된 한 줄을 발견했다. 위원이 없는 자리를 한 명의 신에게 몰아주는 규정이 아니라, 각 마을 구조조합이 일정 기간 대표를 보내도록 하는 조항이었다. 관제실에는 이미 세 마을의 교대 책임자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가 오늘 결정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걸 내일도 저절로 유효하다고 해선 안 되겠죠.” 마레가 말했다. 세리아는 임시 회의록에 종료 시점을 분명히 적었다. 중앙 계약이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급한 날의 임시 조치가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 영구 의무로 바뀐 것이었다.
“그럼 지금은 누가 결정합니까?” 재하가 물었다.
“오늘 구조대가 결정하겠습니다.” 라겐이 말했다. “그리고 이 일이 끝나면 정식으로 다시 구성하죠.”
라겐은 긴급 규정에 따라 현장 책임자와 기록관, 항로 기술자의 확인을 받았다. 세 사람은 무슨 위험을 감수하는지 명확히 적었다. 재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래전 세상이 신에게 맡기지 않았던 권한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주는 일이 얼마나 많은 서류를 필요로 하는지 실감했다. 그렇다고 지루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그 결과에 대해 서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출항 허가가 내려졌다. 구호함 두 대가 수문을 빠져나가자 관제실에 작은 환호가 터졌다. 하지만 그때 자동 대리 배치망은 마지막 호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충족 인원이 여섯 명이라고 표시되었고,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이 차례로 추천 명단에 올라왔다. 도요 고원의 장수도, 철비항의 시우도 그 목록에 있었다.
“이미 거절한 사람들인데 왜 다시?” 릴리가 물었다.
“개별 계약은 멈췄지만, 공동 경유실에 남아 있는 사본이 살아 있습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재하는 초점을 바꿨다. 강제 호출을 막으려면 세 번째 계약 하나만 정지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사람의 이름을 옮겨 다니는 공용 사본부터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칠호 구조가 먼저였다. 그는 통신 담당자의 옆에 서서 유리해의 오래된 봉인 장치가 명단을 어디로 보내는지 확인했다.
[대리인 소집 후보: 외부망 송신 대기]
“송신 대기면 아직 보내진 않았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마레가 대답했다.
“그럼 송신 경로만 임시 차단할 수 있습니까? 구조 신호 수신은 유지하고요.”
마레와 라겐은 함께 배선함을 열었다. 구조 신호는 청록색 관을 따라 들어왔고, 인력 자동 모집은 붉은색 관을 따라 나갔다. 두 관은 같은 기계에 연결되어 있었지만 입출력은 분리할 수 있었다. 설계 당시 누군가 편의를 위해 붙인 연결선이 문제였다. 마레는 전문 기술자를 불러 그 선을 분리했다. 긴급 경보가 잠깐 울렸다가 멈췄다.
[외부 대리 배치 전송: 수동 보류]
[구조 신호 수신: 정상]
재하는 비로소 웃었다. 힘을 내서 무언가를 부수지 않아도,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리는 회선을 끊을 수 있었다. 릴리는 곁에서 출항 명단과 실제 탑승자를 대조했다. 자동 명단에는 여전히 다른 세계의 이름이 남아 있었지만, 배에 탄 사람은 자원한 여섯 명뿐이었다.
협곡에 도착한 구호함에서 교신이 왔다. 바닷속 절벽 사이에 조사정 칠호가 기울어져 있었고, 뒤쪽 추진기가 돌에 걸려 움직이지 못했다. 안에는 네 사람이 있었다. 산소는 아직 충분했지만 구조창을 열면 차가운 물이 밀려들 수 있었다. 라겐은 먼저 견인줄을 연결해 조사정의 자세를 바로잡았다. 마레는 칠호의 설계도를 펼쳐 취약한 연결부를 알려 줬다.
카르도는 잠수복을 입고 나서야 자신의 몸이 지나치게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출입구에 어깨가 걸렸다. 기술자가 더 큰 장비를 가져오려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탈 수 없는 곳이면 탈 수 있는 사람이 가야겠지.” 그는 대신 도크에서 예비 견인줄을 관리했다. 두 손으로 쇠사슬을 감아 올리면서도 결코 명령을 서두르지 않았다.
재하는 통신관에 귀를 가까이 댔다. 칠호의 승무원 한 명이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를 도와주는 분들이 다칠까 봐 무서워요.”
“그분들은 위험을 듣고 자기 선택으로 왔습니다.” 재하가 답했다. “당신 때문에 잡혀 온 사람은 없어요.”
그 말을 한 재하 자신도 이상하게 안심했다. 이 세계에서 구조 요청은 너무 오랫동안 죄책감과 묶여 있었다. 도와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는 주범이 되는 구조였다. 그는 구조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칠호는 서서히 움직였다. 앞쪽 구조함이 견인하고 뒤쪽 구조함이 회전을 막았다. 잠수정의 금속판이 협곡 벽에 긁히는 소리가 통신관 너머로 전해졌다. 라겐은 여러 번 멈추라고 지시했고, 각 순간마다 다시 위험을 계산했다. 바다를 아는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 조사정이 도크로 돌아왔다. 네 승무원은 지쳐 있었지만 걸어서 내렸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구조대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자동 호출 장치가 다른 사람을 데려오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마레는 그 자리에서 오늘의 출항 명단과 자동 모집 차단 기록을 보여 줬다. 승무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살아 돌아왔는데 누군가 우리 때문에 강제로 끌려간 줄 알았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라겐이 답했다.
사람들은 작은 잔치를 열었다. 릴리는 칠호 승무원들에게 충분히 쉬라고 했고, 라겐은 구조 장비를 점검했다. 에반은 또 광고판을 떼어 내겠다고 나섰다. 마레가 그의 손에서 드라이버를 빼앗았다. “오늘은 구조대가 쉬는 동안 기록부터 정리하세요. 그리고 그 광고를 만든 사람이 직접 보관해요. 증거가 되니까.”
“네.” 에반이 순순히 대답했다.
구조가 끝났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마레는 칠호 승무원들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협곡에 남겨 둔 임시 부표가 다른 잠수정의 길을 막지 않는지 점검했다. 구조대원들은 견인줄을 풀면서 서로의 손끝에 상처가 없는지 살폈다. 바다 밑에서는 아주 작은 장비 결함이 다음 사고의 시작이 될 수 있었다.
재하는 작업대에 놓인 구호함의 장부를 보고 놀랐다. 줄을 언제 바꿨는지, 누가 연결부를 점검했는지, 예비 산소통의 압력이 얼마였는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가 알고 있던 신들의 업적 기록보다 훨씬 촘촘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누구를 구했다고 영원히 빚을 졌다는 말은 없었다. 필요한 수리와 휴식 일정만 있었다.
“구조대는 왜 이렇게 기록을 많이 합니까?” 재하가 물었다.
라겐이 대답했다. “누가 잘했는지 자랑하려는 게 아니에요. 다음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내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려고요.”
그는 잠수정 칠호의 선장이 남긴 구조 요청 원문을 열람해도 되는지 물었다. 당사자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재하의 말을 듣자 라겐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조 요청에는 위험 위치 같은 공공 안전 정보와 개인의 음성이 함께 들어 있었다. 위험 위치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지만, 음성까지 공연히 틀어 놓을 필요는 없었다.
릴리는 치료 구역에서 돌아온 뒤 한 가지를 말했다. “칠호의 어린 승무원이 구조 요청을 보내면 다른 사람이 다칠 거라며 계속 사과했어요.”
“그건 그 아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그걸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 이 도시에서는 누군가 도움을 받으면 다른 누군가가 의무자가 된다고 배웠으니까요.”
재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신의 이름으로 모두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선언하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그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됐다. 그는 마레에게 새로운 안내문을 제안했다. 구조 요청을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사람의 자격이나 자유가 변경되지 않으며, 출동은 훈련받고 동의한 구조대원이 맡는다는 문장이었다.
마레는 제안서를 받아 적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걸 신전 이름으로 게시할까요?”
“아뇨. 구조관제실 규정으로요. 여기 사람들이 지키는 약속이어야 합니다.”
그날 오후 해저 시장 게시판에는 새 안내문이 걸렸다. 일부 주민은 글씨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고, 어떤 주민은 이제야 당연한 말이 붙었다며 웃었다. 은빛 머리카락의 노인이 종이를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그럼 나도 이웃에게 도와 달라고 할 수 있겠네.” 누구도 그를 새로운 신도라고 등록하지 않았다.
마레는 오래된 동의 기록과 새로운 출동 기록을 분리해서 보관했다. 과거의 잘못을 모두 지우자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이 앞으로 누군가에게 의무를 씌우는 일을 막자는 결정이었다. 세리아는 보관 장소와 접근 절차를 함께 점검했다. 재하는 도면의 복잡한 화살표를 보다가 한참 뒤에야 이해했다. 기록이 남는다는 것과 기록이 누군가를 움직일 권한이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날 늦은 밤 공동 경유실에서 통보가 왔다. 유리해의 자동 대리 배치도 열흘간 중지되었다. 세 계약은 모두 자동 소집이 멈췄지만, 원본 서명에 관한 조사는 끝나지 않았다. 중앙은 오히려 세 곳에서 같은 문제가 확인됐다는 이유로 긴급 공개 심의를 소집했다.
[복수 세계 공동 경유실: 동일 서명 기법 감정 요청]
[서명 수: 14]
[유효 계약: 3 → 임시 제한 상태]
[원본 기점: 열람 승인 대기]
재하는 통보를 내려놓았다. 이제 한 세계의 계약을 끊는 일만으로는 문제를 끝낼 수 없었다. 누가 사람들의 말이 없는 곳에 대신 서명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 찾아야 했다. 다만 그 일을 하는 동안 유리해의 구조함이 멈춰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제13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