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비항의 새벽은 조용하지 않았다.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바닷새 울음,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발걸음이 겹쳐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윤재하는 항구 관리소의 낡은 의자에서 눈을 떴다. 책상에는 밤새 쓴 시범 운용 기록이 쌓여 있었다. 세리아는 이미 일어나 첫 번째 출동 경로를 검토하고 있었고, 에반은 커피 대신 쓰디쓴 항구 약초차를 마시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신이 되면 잠을 안 자도 되는 줄 알았는데.” 재하가 기지개를 켰다.
“안 자도 된다고 안 피곤한 건 아니랍니다.” 릴리가 대답했다. “특히 어젯밤처럼 열 번이나 같은 문서를 읽으면요.”
“그건 고의로 어려운 말을 쓴 문서가 잘못한 겁니다.”
니라가 최종 시범 결과를 전달했다. 새 방식에서는 교육받은 구조대원들이 직접 출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자동 대리인 배치 기능을 끊어도 경보는 정상적으로 울렸고, 화재 대피로는 유지되었다. 경유실은 열흘간 효력을 지켜보겠다는 조건으로 자동 갱신을 유예했다. 치료비 연동에 대해서는 별도 심사를 열기로 했다. 만족스러운 완결은 아니었지만, 우선 어느 누구도 오늘 출동 명단에 강제로 올라가지 않았다.
시우는 아버지 병실에서 받은 작은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에는 감사하다는 말 대신 ‘다음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운반차 운전 기술을 살려 구조대의 물자 운송을 돕겠다고 했다. 불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안전한 길을 확보하는 일이라면 자기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자원한 거 맞죠?” 재하가 물었다.
“네. 싫어지면 그만둘 겁니다.”
“아주 좋아요. 훌륭한 계약입니다.”
그들이 마지막 서류를 정리할 때 황동 시계의 세 번째 바늘이 급격히 돌기 시작했다. 유리해의 다음 호출이 예정 시각보다 빨라지고 있었다. 경유실에서 통지가 왔다. 철비항의 연동을 끊으면서 다른 계약들의 ‘미충족 구조 수요’가 유리해 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누군가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수치는 그대로인데, 그것을 맡길 이름만 다른 곳으로 옮겨진 셈이었다.
“서로 다른 세계인데 어떻게 수요가 넘어가요?” 릴리가 물었다.
에반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만들었던 연결망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 한 지역의 결원을 다른 지역의 여유 인력으로 채우는 방식은 재난이 겹칠 때 유용했다. 그러나 ‘여유’가 실제 동의가 아니라 빈 이름 칸을 뜻하게 된 순간부터 사람을 거래하는 장치가 됐다.
경유실의 우아가 급히 연락했다. “유리해는 바다 밑에 있습니다. 거기서 호출이 한 번 승인되면 대상자는 즉시 수면 아래 구조 기지로 이동한다고 되어 있어요.”
“수영 못 하는 사람도?” 재하가 물었다.
“등록 기록에는 수영 여부를 묻는 칸이 없습니다.”
카르도가 얼굴을 굳혔다. “그럼 출발을 서두르지.”
유리해로 가는 문 앞에는 다른 세계보다 긴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수압 적응 시간, 내부 산소 공급 장치, 통신 두절 시 대피법, 출입자의 장비 책임. 일행은 한 줄씩 읽고 장비를 착용했다. 재하는 마법으로 물속을 걸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실제로 받은 것은 얼굴에 딱 붙는 호흡면과 무거운 안전화였다.
“신인데 물속에서도 숨을 쉬어야 해요?” 그가 에반에게 물었다.
“권능이 물고기 쪽으로 특화됐으면 모를까, 지금은 신앙 포인트도 아껴야 하니까요.”
“신의 삶이 점점 안전교육과 함께하는구나.”
릴리는 재하의 호흡면 고리를 다시 채워 줬다. “그래도 설명서는 읽으세요. 이번엔 아무것도 부수지 말고요.”
문을 넘자 작은 잠수정 내부였다. 유리창 바깥은 짙은 푸른빛이었다. 해초처럼 흔들리는 빛줄기 사이로 거대한 도시의 윤곽이 나타났다. 투명한 돔 세 개가 바닷속 계곡에 기대어 있었고, 돔을 잇는 통로에는 하얀 표식이 흐르고 있었다. 바다 위의 별을 거꾸로 내려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잠수정이 첫 번째 수문을 통과할 때 재하는 귓속이 먹먹해져 입을 다물었다. 카르도도 한 손으로 귀를 누르고 있었다. 두 신이 동시에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에 릴리가 웃음을 참았다. 마레는 웃지 않았다. 그는 위험을 이해했다는 표시가 되어야 다음 문이 열린다며 모두에게 짧은 확인 질문을 했다. '통신이 끊어지면 누구를 부릅니까?' 재하는 '관제실'이라고 답했다. '숨이 차면?' '즉시 돌아갑니다.' '누가 혼자 가겠다고 하면?' '말리고 확인합니다.' 마레는 그제야 다음 문을 열었다. 신격이 높고 낮은 것이 아니라 안전 절차를 이해했는지가 통행 조건이었다.
재하는 잠수정의 좁은 좌석에서 안전벨트를 한 번 더 만졌다. 수면 위에서는 큰 힘을 가진 카르도도, 세계에서 가장 교활한 계약을 아는 에반도 이곳에서는 초보 방문자였다. 누구든 기술자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통쾌했다. 바다 밖을 보던 릴리가 작은 물고기 떼를 가리키자 일행 모두 잠깐 말을 멈췄다. 오래된 계약 때문에 잊고 있던 풍경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잠수정의 운항 책임자는 외부 방문객이 바깥 사진을 공개하려면 마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관광객이 많아져서가 아니었다. 구조선의 접근로가 보안 없이 퍼지면 사고가 났을 때 오히려 혼잡해지기 때문이었다. 에반이 습관적으로 홍보용 문구를 꺼내려 하자 재하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릴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마레는 묻지도 않았는데 덧붙였다. “여기 사람들은 신을 싫어해서 이런 규칙을 만든 게 아닙니다. 바다 아래에서는 잘못된 친절도 위험하니까요.” 재하는 그 말을 기록했다. 좋은 뜻이었다는 변명으로 위험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안내를 맡은 이는 유리해 구조 기록관 마레였다. 짧은 은빛 머리카락과 물방울 무늬 장갑을 낀 그는 사람들이 바다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는 낭만보다 산소통이 먼저예요.”
마레는 구조 호출 협약의 원형을 설명했다. 바다 밑 도시가 처음 세워졌을 때는 작은 잠수정이 길을 잃는 일이 잦았다. 누군가 구조 신호를 보내면 가장 가까운 구조대가 출동할 수 있도록, 여러 마을이 공동 호출망을 만들었다. 그 시스템은 사람을 구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문제는 관리 기관이 바뀌면서 신호를 보낸 사람의 ‘기도 의향’을 소유권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조 요청을 보냈다는 사실이 신에게 몸을 맡기겠다는 뜻으로 바뀌었어요.” 마레가 말했다. “그 뒤로 호출 신호를 받은 사람까지 새 대리 구조자로 등록합니다.”
“해저에서는 거절하면 어떻게 되죠?” 재하가 물었다.
“원칙상 거절할 수 있습니다. 다만 거절 기록은 나중에 처리하고, 구조는 바로 시작한다고 해요.”
“그건 이미 데려간 뒤에 물어보겠다는 말이잖아요.”
마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수정이 첫 번째 돔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유리창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손님이 신인지 악마인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바닷속 도시에서는 호흡 장치가 정상인지가 신분보다 중요했다.
구조관제실 중앙에는 커다란 원형 시계가 있었다. 바늘이 열둘이 아니라 스물넷을 가리킬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마레는 그 시계를 ‘바다 밑의 초침’이라고 불렀다. 한 바퀴 돌 때마다 각 마을의 구조 신호를 확인하고, 미응답 신호가 있으면 다시 호출하도록 만든 장치였다.
“그런데 왜 지금은 멈추지 않는 거죠?”
“신호가 없어도 미응답이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재하는 기록판을 보았다. 이미 구조가 끝난 사고들이 여전히 미응답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어떤 항목은 삼십 년 전의 것이었다. ‘구조 후 안전 확인’ 칸이 비어 있으면 기계는 그 사람에게 계속 도움을 보내려고 했다. 처음에는 선의로 만든 기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을 수집하는 기관이 그 빈칸을 이용하면서, 누구든 지나가다가 구조 의무자로 등록될 수 있었다.
유리해의 첫날에는 도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마레는 방문객들이 잠수정에서 내리자마자 깊은 바다를 보겠다고 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는 압력 적응실에서 모두의 호흡과 귀 상태를 확인했고, 작은 이상도 숨기지 말라고 말했다. 재하는 신이니 압력이 자신에게는 별일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릴리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적응실 벽에는 어린아이들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 산호, 해파리, 잠수정, 해저 시장의 가게들이 색색의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파란 원 하나만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재하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마레가 답했다. “바깥의 바다예요. 아이들은 아직 혼자 나가 본 적이 없거든요.”
유리해의 사람들은 땅 위 마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갔다. 전기가 끊기면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라 산소 순환이 느려졌다. 수문이 고장 나면 통로가 물에 잠길 수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는 일은 인사와 비슷했다. 아침마다 문 앞의 표시등을 살피고, 이웃이 며칠 보이지 않으면 관리실에 알려 주었다. 그 습관은 강요된 신앙이 아니라, 위험한 곳에서 함께 살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긴 규칙이었다.
문제는 중앙 호출 계약이 그런 이웃의 관심까지 ‘상시 구조 약속’으로 바꾸었다는 점이었다. 옆집 문을 두드려 안부를 묻는 행동이 데이터로 수집되고,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을 도운 기록은 영구적인 구조 의무로 기록됐다. 마레는 그런 기록을 폐기하려다 여러 차례 징계를 받았다. 기록 보존이 중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기록을 지우는 것과 의무를 풀어 주는 건 다른데요.” 재하가 말했다.
“맞아요.” 마레가 답했다. “사고 기록은 남겨야죠. 누가 언제 왜 위험에 빠졌는지 알아야 다음 사고를 막으니까요. 하지만 그 기록 때문에 누군가 영원히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되면 안 됩니다.”
그들은 안내받은 작은 해저 시장에 들렀다. 창가에는 바다의 빛을 모아 말린 해조류로 만든 등이 걸려 있었다. 상인은 세리아의 기록관 표식을 보고 오래된 장부를 꺼냈다. 십 년 전 한 잠수사가 조난자를 구조하고 돌아온 뒤 자신의 이름이 매일 구조 대기자로 등록됐다는 사연이었다. 잠수사는 몇 년 전 일을 그만뒀지만 자동 호출은 아직 그의 집을 찾아갔다. 상인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 이야기는 허락받고 나서 들으세요.”
재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유로 누구의 상처든 열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시설 로그만 확인하고, 과거의 개인 기록은 당사자가 먼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바다 밑의 도시는 아름다웠지만, 이곳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유리창 밖 경치보다 사람들의 경계를 존중하는 일이었다.
하루 동안 수집된 오류 목록은 생각보다 길었다. 누군가는 다친 이웃을 병원에 데려다줬다는 이유로 평생 구조 담당자가 됐다. 다른 사람은 무전기에서 구조 신호를 들었다는 이유로 바다 밑에 불려 왔다. 기록관들은 서류를 작성했지만 중앙으로 보내는 순간 ‘신앙 수익’ 항목이 자동으로 붙었다. 그때부터 자기 일이 아닌 듯 답답해졌다고 했다.
재하는 그들에게 먼저 물었다. “여러분은 이 장치를 아예 없애고 싶습니까?”
마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장치는 필요해요. 지금도 누군가 물에 빠지면 가장 먼저 울리는 게 이 시계예요. 다만 울리는 소리를 듣고 누구를 보낼지는 사람이 정해야죠.”
그때 짧고 날카로운 경보가 울렸다. 관제실의 모든 불빛이 붉게 바뀌었다. 북서쪽 바닷길에서 작은 조사정이 사라진 것이다. 안전 통신이 끊기고 마지막 신호가 관제실에 도착했다.
[조사정 칠호: 귀환 지연]
[최종 위치: 푸른 갈라짐 협곡]
[구조 대리인 부족: 자동 모집 시작]
마레가 곧바로 구조대를 소집했다. 그러나 자동 시스템은 자기 명단에 있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먼저 부르려 했다. 황동 시계가 미친 듯 돌아갔다. 철비항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한 빈 대리인 이름들이 유리해의 호출망에 올라왔다.
“이대로면 육지 사람을 바다 밑으로 데려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기계를 끄면 칠호의 신호도 사라지겠죠?” 재하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마레가 답했다. “그럼 배의 위치를 잃어요.”
재하는 관제실의 고요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누구도 기적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지도를 펼치고 잠수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단지 중앙 장치가 사람을 골라 보내려는 손을 멈춰야 했다.
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신호를 듣는 것과 누군가를 데려가는 것을 분리할 수 없을까요?”
마레는 그 말을 듣자 벽 아래 보조 스위치를 가리켰다. “옛날에는 됐어요. 우리가 구조대를 직접 보냈으니까요. 그런데 중앙 계약 뒤로 스위치가 봉인됐습니다.”
“어떻게 봉인됐는데요?”
“담당 신의 이름으로요.”
재하는 에반을 돌아봤다. 에반은 이번에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가 손에 든 설계표 끝에 아주 작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신 확인 없는 호출은 자동 동의로 간주.’
칠호의 마지막 신호가 다시 들렸다. 바다 밑 협곡에서 누군가 작게 말했다.
‘들리나요? 우리는 구조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대신 오지 못하게 해 주세요.’
재하는 그 말이 정확히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살고 싶었다. 다만 그 대가로 다른 사람을 끌어오고 싶지 않았다.
제13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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