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비항의 냉각관 누수는 세 시간 만에 막혔다. 사람들은 공장 한쪽에 모여 뜨거운 물을 마셨고, 니라는 구조대원들을 한 사람씩 확인했다. 다친 사람은 둘이었다. 한 명은 미끄러져 손목을 삐었고, 다른 한 명은 얼굴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치료소로 옮겨진 두 사람은 안전하다고 판정받았다. 그러나 중앙 경보망은 그 사고를 기록하는 대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비상 대리인 계약 위반: 38건]
[관련 가족 지급금: 심사 대기]
윤재하는 숫자를 다시 셌다. 구조 현장에서 움직인 사람은 스무 명 남짓이었는데 위반자라는 사람은 서른여덟 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사고 현장에 올 의무가 없던 운반차 기사, 병원에 있는 환자, 심지어 교육 중인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재하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먼저 어떤 항목이 실제로 적용됐는지 확인했다. 누가 금액을 잃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면 소리만 높여도 해결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이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고 손해를 본다면, 그건 보험이라고 부를 수 없어요.” 릴리가 말했다.
“계약에는 도움이 되는 사람을 우선 보호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세리아가 설명했다. “문제는 ‘도움이 되는’ 조건을 기관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거죠.”
재하는 휴게실의 작은 칠판에 세 개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추천, 보험, 출동. 각각 연결돼 있지만 독립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였다. 릴리는 그 아래 사람의 이름이 아닌 질문을 적었다. ‘누가 원했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누가 현장 위험을 판단하는가?’ 에반은 한동안 그 글씨를 바라봤다. 그가 수년 동안 만들었던 프로그램 문서에는 이런 질문이 없었다.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실제로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하는 칸이 없었던 것이다.
에반은 작업장 계단에 앉아 낡은 수첩을 넘겼다. 그는 몇 장을 찢어 버리고 싶어 했다. 종이에는 자신이 손으로 그렸던 안내 화면이 있었다. 당시 광고 문구는 짧았다. ‘필요할 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실제 계약 설계에서는 ‘요청’을 ‘배정’으로 바꿨고, 나중에 보험과 엮이면서 ‘배정’을 ‘의무’로 바꿨다.
“저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에반이 말했다.
카르도가 그의 앞에 섰다. “그 말이 사실인가?”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핑계입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런데 판매 계약을 갱신하면서 더 편한 단어를 썼어요. 요청이라고.”
그는 수첩을 펼쳐 재하에게 보였다. 사람을 강제 지정하는 방식에는 세 개의 연결고리가 있었다. 첫째는 누군가의 이름을 가져오는 추천망, 둘째는 그 사람을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보험 연계망, 셋째는 실제 출동 여부를 판단하는 현장 승인망이었다. 겉보기에는 하나의 서비스였지만 계약은 각각 다른 기관에 팔려 있었다.
“그러면 왜 지금껏 고치지 않았어?” 재하가 물었다.
“각 회사는 자기 부분만 책임진다고 했습니다. 추천망 회사는 보험을 모른다고 했고, 보험 회사는 현장 장치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저는 세 부분을 다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어요.”
에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런데 제일 먼저 도망쳤습니다.”
재하는 위로하지 않았다. 에반이 책임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중요했지만, 그 말이 항구 주민들의 손해를 자동으로 복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수첩을 니라에게 넘겨도 되는지 먼저 에반에게 물었다. 에반은 원본을 내놓겠다고 했다. 대신 개인 가족 기록이 적힌 페이지는 확인해서 가린 뒤 제출하자고 했다. 니라는 전문 감정인이 내용을 대조하도록 했다.
그날 오후 철비항 조합 회의가 열렸다. 구조대는 출동을 했는데 전산망에서는 허가하지 않은 출동이라며 위반 처리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퍼졌다. 일부 주민은 시스템을 없애 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시스템 덕분에 구조대가 빨리 도착한 적도 있다며 반대했다. 말다툼은 거칠어졌다. 재하는 회의장 뒤편에서 듣기만 했다.
작업반장 한 명이 탁자를 쳤다. “대리인을 없애면 나중에 사고 났을 때 누가 달려옵니까?”
니라가 대답했다. “직접 훈련을 받은 구조대가 갑니다. 다만 그 사람들이 빠르게 출동하도록 인력과 비용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돈은 누가 내요?”
“그 질문을 숨기면 또 다른 계약이 생기겠죠.”
릴리가 손을 들었다. “치료비를 대가로 사람을 강제 배치한 항목부터 먼저 떼어 내면 안 될까요? 기존 치료를 유지하는 이유는 그분들이 과거에 다쳤기 때문이지, 자녀가 출동했기 때문은 아니잖아요.”
항구 보험 조합의 회계사가 반박했다. “계약서상에는 비용 절감 대책으로 가족 참여율을 반영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시우가 뒤쪽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제 아버지의 치료가 제 출동의 상품입니까?”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그는 목소리를 떨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오래전 위험한 현장에서 다쳤고, 그때 회사가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자신은 운반차를 운전하는 일에 숙련되어 있지만 냉각관 안으로 들어갈 훈련을 받지 않았다고. 누군가 아버지를 돕기 위해 자기를 소방대원으로 만드는 것은 도움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회의장의 끝에 앉아 있던 노년의 관리인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회사가 처음 치료비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직접 서류를 전달한 사람이었다. “그때는 자녀의 이름을 적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손에는 오래된 영수증이 있었다. 금액과 지급 날짜는 선명했지만 조건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회계사는 서둘러 영수증이 최신 계약에 우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하는 두 종이를 겹치지 않고 나란히 놓았다. “어느 것이 법적으로 먼저인지 따져야겠죠. 그 전에, 조건이 언제 추가됐는지 누구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기록합시다.” 시우는 영수증에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는 것만 확인한 뒤 자리에 앉았다.
세리아가 발언을 기록하려 하자 시우가 손을 들었다. “공개 회의에서 한 말까지만 남겨 주세요. 집에서 아버지와 한 대화는 적지 말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회계사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즉석에서 보험 지급을 약속할 권한이 없었다. 대신 심사 보류가 시작되는 조항을 열어 보였다. 니라는 그 화면을 동료 안전 감독관에게 확인시켰다. 화면의 맨 아래에는 아직 사용된 적 없는 오래된 예외 기능이 있었다.
[현장 출동 장치 오류로 인한 비상 지급 유지]
[발동 조건: 독립 안전 감독관 두 명의 확인]
“이건 뭐죠?” 재하가 물었다.
에반이 눈을 감았다. “원래 넣어 둔 안전장치입니다. 회계사가 사용하면 비용 평가가 나빠질 수 있어서 아무도 알려 주지 않은 거죠.”
“넣어 놓고 숨겨 둔 건 안전장치가 아니라 장식이잖아.”
에반은 변명하지 않았다. 니라는 다른 감독관을 불러 확인을 받았다. 두 사람은 실제 사고와 전산 오류의 관계를 적고 자기 이름으로 서명했다. 보험 지급은 일단 계속됐다. 영구적인 해결은 아니었지만 시우의 아버지가 내일 약을 받지 못할 위험을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 계약 갱신이었다. 비상 대리인 배치 협약은 열한 시간 뒤 자동으로 갱신될 예정이었다. 갱신되면 예외 기능으로 지급을 유지한 사람들도 다시 명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니라는 구조대가 직접 출동을 허가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싶어 했지만, 항구 전체의 안전 책임을 자신 혼자 짊어질 수는 없었다.
“함께 책임질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카르도가 고개를 들었다. “군대를 빌려주지. 나에게 충성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으로.”
니라는 웃지 않았다. “부대는 고맙지만 구조 기술이 필요합니다. 다음 주까지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까?”
카르도는 잠시 생각했다. “우선 인력 수송과 물자 보호라면 할 수 있겠군.”
“그렇게 해 주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맡습니다.”
재하는 회의가 끝난 뒤 니라에게 왜 자신에게 총책임을 맡아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니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신이지 냉각관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정확합니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네요.”
회의가 끝난 뒤 니라는 재하를 기록 보관실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사고로 부서진 안전모와 검은 흔적이 남은 작업 장갑, 화재 당시 사용했던 낡은 지도들이 있었다. 각 물건 옆에는 사고 원인을 단정하지 않고 ‘확인된 사실’과 ‘추정’을 나누어 적은 카드가 붙어 있었다. 어떤 장갑 옆에는 아직도 ‘원인 조사 중’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처음엔 이런 물건들을 치우자는 사람이 많았어요.” 니라가 말했다. “사람들이 무서워한다고요. 하지만 사고를 숨기면 같은 물건이 다시 나옵니다.”
그녀는 가장 안쪽 서랍에서 근무표 한 장을 꺼냈다. 자동 대리인 제도가 처음 들어왔던 해의 표였다. 한 사람이 연속해서 스물여섯 시간을 근무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실제 출입 기록을 보면 그 사람은 열 시간만 현장에 있었고, 나머지 시간은 시스템이 ‘대리 근무’라고 채워 넣었다. 남은 시간을 누구에게 보냈는지 추적하려 해도 이름이 없었다.
“계산서에는 근무한 시간이 있고, 현장에는 사람이 없어요.” 니라가 말했다. “이런 빈 시간을 우리가 얼마나 오래 진짜 노동이라고 믿었는지 몰라요.”
재하는 고개를 숙였다. 숫자 때문에 안전한 것처럼 보였던 시설은 실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훨씬 넘겨 운용되고 있었다. 제도는 부족한 노동을 없애지 않았다. 부족한 노동을 장부에서만 채웠다. 피로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남았다.
세리아는 근무표를 촬영하는 대신 원본 감정 번호를 기록했다. 자료를 공개해도 되는지 유족에게 확인해야 한다는 니라의 말을 존중했다. 에반은 자신의 구형 프로그램이 근무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 설명으로 피해자의 이야기를 대신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누가 그 시간을 채우게 될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에반이 말했다.
니라가 냉정하게 답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당신 대신 그 시간을 일했습니다.”
한참 말이 없었다. 재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누군가 진심으로 후회한다고 해서 피해를 설명할 사람의 말을 막아서는 안 됐다. 그날 처음으로 에반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고장 난 프로그램을 고치는 것뿐 아니라, 누가 얼마의 시간과 건강을 잃었는지 확인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보관실 문을 나올 때 니라는 세 가지 시정 계획을 게시판에 붙였다. 강제 소집 중단, 실제 교육 수료 확인, 손해와 근무 시간의 독립 조사. 모두 당장 끝낼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 다음 날 문을 열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읽을 수 있도록 썼다. 재하는 가시골 주민회에서도 같은 방식을 써 보겠다고 했다.
밤에 에반은 경유실로 옛 설계표를 전송했다. 그는 추천망과 보험망 사이의 자동 연동을 일시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유실은 반려했다. ‘동일 서명 기법의 원승인자 확인 필요’라는 이유였다. 사람들을 강제로 소집한 서명은 승인자 확인 없이 통과시키면서, 그 일을 멈추려는 요청에는 승인자를 요구하고 있었다.
에반은 화를 내는 대신 설계표의 여백을 살폈다. 오래전 자신이 넣은 기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수신인이 응답하지 않을 때의 시험 호출’. 그는 그 기능이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로그에는 계속 기록이 남아 있었다.
[시험 호출 발신: 원승인 주소]
[응답 방식: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수신 완료로 간주]
“서명이 없는 게 아니었어요.” 에반이 말했다.
“그럼?” 재하가 물었다.
“주소가 서명처럼 쓰였던 겁니다. 비어 있는 창구 자체가 동의한 사람인 척했어요.”
그 말은 재하를 오래전 폐허 신전으로 돌려보냈다. 처음 신이 됐던 날,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그 절차가 자신만의 특별한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철비항에서는 수백 명의 평범한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삶을 바꿀 뻔했다.
“그럼 원주소가 틀렸다는 사실부터 증명해야겠네요.”
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주소에 지금도 의존하는 시설들을 따로 보호해야죠.”
경유실의 회신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명백한 반려가 아니라 비상 심의 안내였다. 신청인은 운영 효력을 정지하는 대신 운영 책임을 넘겨받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었다. 재하는 서류 끝에 적힌 작은 글씨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운영 책임 수탁 시 신규 신격 계약 자동 체결]
“이놈들은 대체 왜 누구든 이름을 넣으려고 하지?”
릴리는 웃지 않았다. “이름 없는 책임을 누군가에게 팔 수 있어야 돈이 되니까요.”
그들은 그 선택지를 접어 치웠다. 대신 니라와 작업자들이 만든 독립 출동 체계의 시범 기록을 심의 자료로 제출하기로 했다. 같은 계약서에 새 신을 넣는 것으로는 철비항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갱신까지 남은 시간은 두 시간. 항구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 재하는 니라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훈련받은 구조대 24명 동의 확인. 출동 허가 담당 3인. 대피로 재점검 중.’ 숫자는 조금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숫자들은 전산망이 만들어 낸 유령 인원보다 훨씬 믿을 만했다.
제13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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