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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35화
PAYLUA ORIGINAL · 제135화

135화. 빌린 이름으로 출동하라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383자

오프라인 책장
철비항의 하늘은 회색이었다. 구름 때문이 아니었다. 항구 북쪽에서 하루 종일 타오르는 제련소의 연기가 낮게 깔려 있었다. 윤재하는 도요 고원에서 빌린 장갑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바닷바람은 차갑지 않았지만 쇳가루가 섞여 입안에 텁텁한 맛을 남겼다. 멀리 보이는 굴뚝 사이로 긴 기적 소리가 울렸고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인가?” 카르도가 물었다. “대피 예행연습입니다.” 세리아가 운용 기록을 읽었다. “여기서는 경보가 울리면 비상 대리인이 먼저 현장에 도착해야 합니다.” “먼저 도착하지 못하면?” 릴리가 물었다. “그 사람이 징계 대상이 됩니다.” 에반은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늦췄다. 그는 과거 이 항구에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회사 이름도 달랐고, 항구는 지금보다 작았다. 사람들은 산업사고로 죽은 이들의 사진을 공장 벽에 붙여 두었다. 회사가 새 구조 보험을 계약하면서 사진은 ‘안전 개선을 위한 홍보물’로 바뀌었다. 에반은 그 행사를 성공 사례로 발표한 기억이 있었다. 항구 관리소에서는 긴 줄이 접수대를 돌고 있었다. 작업자들이 안전모를 손에 든 채 자기 이름이 적힌 종이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서류를 보고 웃었다. 다른 사람은 뒷걸음질 쳤다. 재하는 가장 끝에 선 청년이 들고 있는 종이를 얼핏 보았다. [비상 대리인 신규 선정] [선정 근거: 인근 작업자와 친족 관계] [필수 교육 이수: 자동 간주] “교육을 안 받았는데 이수했다고요?” 재하가 중얼거렸다. 청년이 그를 노려봤다. “당신도 회사에서 보냈어요? 교육 안 들었다는 말은 한 적 없는데.” “회사 사람이 아닙니다. 신이긴 하지만.” “그럼 더 곤란하군요.” 청년은 자기 번호표를 찢어 버렸다. 곧바로 천장 스피커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대리인 거부 발생] [관련 보호 대상자에 불이익 가능] “이거 협박 아니야?” 릴리가 재하에게 속삭였다. “일단 그분에게 설명부터 듣자.” 청년의 이름은 시우였다. 그는 항구에서 자재를 옮기는 운반차 기사였다. 아버지가 오래전 제련소 소방반으로 일한 경력 때문에 자신이 구조대원으로 지정됐다고 했다. 정식 구조 교육을 신청한 적도 없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일을 무서워했다. 그런데 등록을 거절하면 아버지에게 지급되던 산재 치료비의 재심사가 시작된다는 편지가 도착했다. “아버지가 누워 계신데, 그 돈이 끊기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교육 이수라고 찍힌 걸 그냥 두고 있었어요.” 재하는 할 말을 잃었다. 누군가 보호받을 권리를 다른 사람의 의무와 묶어 놓은 것이다. 문제는 당장 표를 찢었다고 그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들이 관리소에서 나오기 전, 비상 계단에는 오래된 경고 표지가 붙어 있었다. 경고 글씨는 새것인데 그림은 빛이 바래 있었다. 재하가 왜 그림을 바꾸지 않느냐고 묻자 한 작업자가 대답했다. 처음으로 그 계단에서 사람이 다쳤을 때 붙인 것이어서, 글씨만 고치고 그림은 남겨 두었다고 했다. 사고를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위험을 발견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철비항 사람들은 안전을 숫자로만 계산하지 않았다. 그 기억을 숫자에 넣으려는 계약이 문제였을 뿐이다. 낡은 경고 표지 옆에는 작업자들이 손으로 적어 붙인 지도가 있었다. 붉은 선은 대피로, 검은 선은 출입 금지 구역이었다. 그런데 중앙 장치가 배포한 공식 지도에는 검은 선이 없었다. 에반은 두 지도를 나란히 들여다보았다. “공식 도면은 공장 설비가 처음 놓였을 때 만들어졌어요. 바뀐 위치는 반영하지 않았군요.” 재하는 지역 작업자가 직접 그린 지도에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는 사실을 보았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씌우려는 서명이 아니라, 실제로 이 길을 통과해 봤다는 확인이었다. 그 작은 차이를 설명하기 전까지는 ‘서명이 있는 문서’라는 말조차 믿을 수 없었다. 항구 안전 감독관 니라가 나타났다. 짧게 자른 머리와 두꺼운 수첩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먼저 작업장 출입구를 살피더니 일행에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재하가 신격을 꺼내자 니라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신이시든 아니든 안전교육 없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합리적이네요.” 재하가 말했다. “그런데 여기 안전교육 기록은 엉망입니다.” 니라는 그를 가만히 보았다. 에반이 설계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들은 뒤 그녀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그럼 잘 오셨습니다. 당신네들이 만든 자동 교육 완료 도장 때문에 저는 매일 서른 명의 이름을 다시 확인합니다.” “당신네들이라니 저는 구경 온 신인데요.” 재하가 항변했다. 니라는 에반을 가리켰다. “저분.” “아, 맞습니다.” 재하가 곧바로 물러났다. “저분이 당사자입니다.” 에반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 역시 도장을 없애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다만 자동 분류 장치에 연결된 경보망을 한꺼번에 정지하면 긴급 출동이 지연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니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원하던 것도 시스템 전체 파괴가 아니라, 실제 훈련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오후 내내 두 장부를 대조했다. 하나는 회사의 공식 교육 이수 명단이고, 하나는 실제 교육장 출석부였다. 공식 명단에는 존재하지 않는 교육 회차가 다섯 번 기록되어 있었다. 실제 출석부의 일부는 물에 젖어 글씨가 번졌지만, 교육 담당자의 원본 서명이 남아 있었다. 명단을 다시 정리하자 비상 대리인으로 등록된 사람 가운데 일곱 명은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니라는 그 일곱 명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이름을 알려 주면서도 어떤 혐의가 있는 것처럼 대하지 않았다. 교육에 참여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으며, 본인 의사에 따라 자격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만 전했다. 일부는 화를 냈고, 일부는 당장 현장에 나갈 수 있는 교육을 원했다. 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하는 그가 접수대에서 돌아서려는 순간 불렀다. “이건 자격을 뺏는 조사가 아닙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 임무를 억지로 맡지 않아도 되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시우는 오래 서 있다가 말했다. “아버지 치료비는요?” “그건 따로 알아봐야죠. 이 계약과 묶여 있어도 되는지부터요.” 그날 저녁 항구 서쪽의 작은 병실에 들렀다. 시우의 아버지는 왼쪽 팔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옛날에 화재 현장에서 동료들을 대피시키다 다쳤다고 했다. 재하가 구조대 경력을 존경한다고 말하자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사람 살린 건 내 선택이었지, 아들까지 평생 불 속에 들어가라는 뜻이 아니야.” 시우는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가 치료비를 잃을까 봐 불안해서 지금까지 거절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한참 침묵하다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돈 걱정은 같이 하자. 네가 싫은 일을 해서 내 빚을 갚지는 마라.” 재하는 그 대화를 장부에 적지 않았다. 기억은 했지만, 누군가의 가족이 나눈 말을 동의 없이 증거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니라는 재하 일행에게 항구의 안전 교육장을 보여 줬다. 작은 건물 안에는 불을 끄는 연습용 기구와 철로를 가로지르는 비상 대피 통로가 재현되어 있었다. 오래전 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강사가 직접 교육을 진행했다. 그는 사람들을 앉히자마자 질문했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카르도가 손을 들었다.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정답 아닙니다. 자기 주변이 안전한지 보는 것입니다.” 카르도는 얌전히 손을 내렸다. 재하는 웃으려다가 강사의 다음 질문에 자신도 답하지 못했다. “동료가 쓰러졌는데 보호 장비가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신의 권능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려던 그는 멈췄다. 지난번 릴리의 동생을 치료할 수 있었던 건 그때 신앙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능력만 믿으라고 할 수 없었다. 강사는 먼저 긴급 구조대에 연락하고, 위험구역에 무리하게 진입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실제 화재에서 한 사람을 구하려다 구조자까지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앙 계약이 누군가를 무작정 현장으로 보내던 방식과 정반대였다. 좋은 구조는 모든 사람에게 영웅이 되라고 요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을 분명히 나누는 것이었다. 교육장 끝에는 훈련받은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시우는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가 구조대원이 되지 않아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잘하는 운반차 운전으로 물자를 움직이고, 구조대가 이동할 안전한 통로를 확보하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했다. 니라는 실제로 그런 일을 맡을 수 있다며 관련 교육을 안내했다. “강제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더 해 보고 싶네요.” 시우가 말했다. 재하는 그 말을 곧바로 신도의 증가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우의 적성이나 선택을 자기 공적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항구의 새 구조 계획에서 운송 담당자의 자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제안을 니라에게 전했다. 돌아오는 길, 에반은 안전교육 포스터 하나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포스터에는 ‘사고를 막는 첫 번째 행동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옛 광고는 ‘도움이 필요하면 누군가를 보낸다’였으니, 짧은 문장 하나가 얼마나 다른 일을 만들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다음 날 항구 중앙 경보망에서 큰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화재 경보기, 수문, 비상 운반차 호출을 동시에 작동하는 연례 훈련이었다. 니라는 이 기회에 자동 배치가 어떻게 사람을 부르는지 공개 시험할 것을 제안했다. 실제 화재는 발생시키지 않고, 훈련 인력만 현장에 배치한다는 조건이었다. 모두 서면 동의했다. 훈련이 시작되자 건물마다 빨간 등이 켜졌다. 정식 교육을 받은 구조대원들이 약속한 대피로로 이동했다. 그런데 하역창고 옆 전광판에 시우의 이름이 떴다. ‘제2차 비상 대리인 소집.’ 그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고, 이 사실을 이미 접수했다. 니라가 곧바로 중단을 명령했지만 전광판은 계속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재하가 확인한 것은 버튼 하나였다. ‘긴급 배치 필요도’라는 항목이었다. 니라는 현장의 인력이 충분하다고 입력했는데도 기계는 계속 ‘결원’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에반은 구버전 명령을 추적하다 낯선 숫자를 발견했다. 부상자에게 지급될 치료비가 배치 요구와 엮여 계산되고 있었다. [계약 연계 지수: 가족 지급금 유지율] [비상 배치 거부 시 재심사 자동 신청] “이건 교육이 아니라 채권 회수네.” 카르도가 말했다. “원래 그러려고 만든 건 아닙니다.” 에반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쓸 수 있게 연결한 건 제가 맞아요.” 재하는 시우에게 직접 물었다. “공개 시험에서 이름이 다시 뜬 상황을 증언해 주실래요? 원하지 않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시우는 한참 망설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아버지 이름은 빼 주세요. 저와 회사 사이에서 일어난 일만 말하겠습니다.” 니라는 그 범위를 수락했다. 실제로 시험을 보고 있었던 작업자 열두 명도 목격 내용을 남겼다. 검증실이 원하는 신격의 맹세보다 훨씬 복잡한 자료였지만, 적어도 누구의 의사인지 분명했다. 시험이 끝나갈 때 또 다른 경보가 울렸다. 훈련용이 아니었다. 서쪽 제련소의 냉각관에서 실제 누수가 발생한 것이다. 니라는 즉시 출동대를 보냈다. 그러나 명단에는 실제 훈련을 받은 구조대원보다 자동 배치된 사람들의 이름이 먼저 올라왔다. 경보망은 그들을 기다리느라 출동 허가를 내리지 않았다. “이러다 진짜 사고가 납니다.” 니라가 말했다. 카르도가 문 쪽으로 향했다. “내가 대신 가겠네.” “안 됩니다.” 니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배관을 아는 사람이어야 해요. 대신 문을 열어 주세요. 허가가 나지 않아도 구조대는 들어가야 합니다.” 재하는 중앙 장치의 출동 대기 칸을 바라봤다. 그 칸에는 사람을 데려오라고만 쓰여 있었다. 실제로 능력이 있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기능은 메뉴 뒤편에 숨겨져 있었다. “오늘 배워야 할 건 새로운 기적이 아니군.” 재하가 말했다. 그는 니라가 정식 출동 책임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녀의 요청서를 운용 로그에 첨부했다. 카르도는 창고를 막은 쇠문을 들고 있고, 교육받은 구조대원들이 그 틈으로 들어갔다. 경보망은 아직도 시우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시우는 병실에서 아버지 곁에 앉아 있었다. 그가 현장에 없다는 사실이 이제는 잘못이 아니어야 했다. 그러나 누수 발생 열 분 뒤, 검증실에서 항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지시가 내려왔다. [비상 대리인 계약 위반 의심] [치료비 지급 자동 보류 개시] 재하는 이를 악물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과 사람을 협박하는 장치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는 니라에게 말했다. “구조를 먼저 끝내세요. 치료비 보류는 우리 쪽에서 멈출 근거를 찾겠습니다.” 니라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뛰어갔다. 항구에는 쇳가루 섞인 바람이 다시 불었다. 이번에는 경보보다 사람의 발소리가 먼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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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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