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33화
PAYLUA ORIGINAL · 제133화

133화. 눈 속에서 타는 겨울등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513자

오프라인 책장
도요 고원의 바람은 사람을 밀지 않았다. 바람은 사람의 옷 속으로 들어가, 무릎을 접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라고 속삭였다. 윤재하는 언덕을 오르다가 세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 발목까지 차는 눈 아래에는 오래전에 얼어붙은 돌길이 숨어 있었다. 안내를 맡은 노파는 이름을 장수라고 했다. 그는 자기 이름이 젊었을 때는 조금 민망했으나, 겨울을 일흔 번 넘기고 나니 좋은 이름이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님은 겨울을 몇 번 넘겼수?” 장수가 물었다. “신으로서는 처음입니다.” “그럼 눈삽부터 배우셔야겠네.” 재하는 자신이 신이 된 이후 신성을 드러낸 순간보다 삽을 쥔 시간이 더 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에반은 그 이야기를 홍보문구로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가 릴리에게 거절당했다. 도요 고원은 세 개의 작은 마을이 가파른 계곡을 따라 이어진 지역이었다. 한겨울이면 산길이 막혀 외부에서 장작을 실어 올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래전 주민들은 산 아래의 뜨거운 지맥을 끌어다 공용 난방탑에 모으는 설비를 세웠다. 둥근 탑의 꼭대기에 달린 푸른 불꽃을 ‘겨울등’이라고 불렀다. 등불이 타는 동안 마을의 보일러와 우물은 얼지 않았다. 문제는 겨울등이 주민들의 노동에 기대면서도, 그 노동을 제공할 사람을 주민들이 직접 고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 명단에서 순번을 정했다. 어느 해에는 눈사태로 명단이 사라졌다. 그때 신앙 담보청의 전신이 무인 대리 배치 기능을 공짜로 설치해 줬다. 그 뒤로 겨울등은 결원이 생길 때마다 사람을 불러 왔다. 먼 친척, 한 번 지나간 여행자, 경유실 청소 노동자까지. “공짜였다고요?” 재하가 물었다. “처음에는 그랬지.” 장수가 답했다. “우리가 진 빚이 얼마나 되는지 묻기 시작한 건 다들 늙고 난 뒤야.” 난방탑 내부는 따뜻한 대신 어두웠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공기가 굵은 구리관을 지나면서 쉰 목소리로 울었다. 벽에는 작업표가 붙어 있었다. 교대 시간이 정확하게 적혀 있었지만 작업자의 서명란은 이상하게도 비어 있었다. 누군가 매번 같은 필체로 이름을 대신 적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젊은 수리공 단비가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한 손에는 기름 묻은 장갑을, 다른 손에는 온도계를 들고 있었다. “오늘은 왜 신들을 데려오셨어요?” 그가 장수에게 물었다. “불 끄러 왔다더니 끄면 안 된다고 해서.” “누가 꺼요? 이 탑은 지금 끄면 안 돼요.” 단비가 난방관을 두드렸다. “이틀 전부터 북쪽 관에 얼음이 끼었어요. 압력이 떨어지는데 중앙 제어 장치는 ‘정상’만 띄우고요. 사람이 올라가서 손으로 밸브를 돌려야 겨우 버텨요.” 재하는 스스로를 소개하고 왜 찾아왔는지 설명했다. 단비는 재하가 자신과 주민들의 동의 없이 관리 의무자를 자동 배치하는 계약을 확인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중앙 장치가 불법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아무도 그 장치를 대신할 난방 방법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일단 살아야 계약서도 읽죠.” “맞아요.” 재하가 답했다. “그래서 오늘 저녁 불을 끌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누가 실제로 설비를 돌리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단비가 그제야 자세히 설명했다. 장치가 자동으로 지정한 ‘의무자’는 명단상으로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수리하는 건 마을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의무자로 지정된 사람이 다른 세계에 있어도, 그 사람에게서 신앙과 노동 가능 시간을 미리 빼 오는 서류가 쌓인다는 점이었다. 설비 운영 실적이 실제 노력과 무관하게 부풀려졌다. 중앙은 그 실적을 근거로 겨울등 사용료를 올렸다. 세리아가 운용 기록을 내밀자 단비의 눈썹이 올라갔다. 사용료 목록에는 ‘영혼 긴급 대기료’라는 항목이 있었다. 장수는 자기 이름 옆에 같은 비용이 세 번 적힌 것을 보고 소리 내어 욕을 했다. 무례한 언어였지만 재하는 그만한 반응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자네들이 우리를 살려 줬다는 계산서인데, 왜 내가 밤새 얼음 깬 시간은 여기에 없나?” 장수가 물었다.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카르도는 작업자용 삽을 들어 탑 뒤의 눈을 치웠다. 그가 한 번 밀 때마다 삽날이 바닥까지 닿았다. 작업자들은 감탄했다. 다만 세 번째 삽질에서 돌계단의 모서리까지 잘라 버린 뒤에는 모두가 삽을 뺏었다. 카르도는 부서진 돌을 직접 들고 수리 자재 창고로 옮겼다. “전쟁을 할 때도 장비 사용법을 배우는 게 먼저였겠군.” 재하가 웃었다. “그래서 졌을 수도 있지.” 카르도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장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망가진 계단을 보며 말했다. “신님이신지 모르겠지만 저 돌은 내가 손주 녀석과 함께 깎아 놓은 거요.” 카르도는 손에 든 삽을 내려놓았다. 돌 하나를 다시 깎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묻자 장수는 날씨가 풀리고 장비가 도착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당장 재하가 신성 포인트로 새 돌을 만들어도 기존 돌길의 기울기를 맞추지 못하면 더 위험해진다는 설명도 따라왔다. 카르도는 자신의 힘이 늘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날은 장수가 건넨 자와 분필을 받았다. 그는 부서진 모서리의 크기를 기록한 뒤 임시 경고줄을 세웠다. 한 번에 돌을 자르는 힘보다, 잘못 잘랐음을 인정하는 일이 훨씬 오래 걸렸다. 오후에 온도계의 바늘이 급격히 내려갔다. 북쪽 배관의 압력이 한순간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단비가 비상벨을 울렸고 주민들이 작업장으로 몰려왔다. 몇 사람은 굵은 보온천을 끌고 왔고, 몇 사람은 얼어붙은 연결부를 녹일 물을 데웠다. 재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분주하게 서 있었다. 그때 릴리가 그를 불러 세웠다. “아무 일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대신 아무거나 하지 마세요.” “그럼요?” “아이들 있는 집을 돌아보고, 난방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작은 집들 사이에는 눈길을 따라 파란 돌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장수는 그 돌이 옛날에 만든 비상 이동 표식이라고 말했다. 폭설이 내려 길이 보이지 않아도 파란 돌을 밟으면 공동 회관까지 갈 수 있었다. 재하는 이것도 누군가의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사람들은 그것을 신의 업적이라 부르지 않았다. 함께 오래 살아남기 위해 만든 약속이었다. 재하는 마을길로 나갔다. 가장 위쪽 집에서는 방바닥의 열기가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어린 남매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석탄을 아끼려고 아궁이에 불을 피우지 않았다. 동쪽 마을의 공동 창고에는 장작이 아직 충분했지만 옮겨 줄 수레가 없었다. 세리아는 정보를 모아 피해 예상 지도를 만들었고, 릴리는 보건 담당자와 함께 고령자들을 공동 회관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한 집에서 재하는 누군가 자신에게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창틀 앞에 작은 수호신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아이의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게만 해 주세요. 대신 우리 손자 이름을 가져가셔도 됩니다.” 재하는 등줄기가 식는 것을 느꼈다. 그런 말은 간절해서 나오는 것이지 실제로 손자를 내어 주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세계의 옛 계약은 간절함과 동의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는 문을 두드리고 자신이 그 말을 듣게 됐다고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할머니는 당황해 조각상을 품에 숨겼다. “벌주려고 온 건 아닙니다.” 재하가 말했다. “아무도 이름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지금은 함께 따뜻한 곳으로 가시죠.” 할머니는 한참 그를 보다가 아이의 외투 단추를 잠갔다. 재하는 그 집에서 신도를 얻지 않았다. 대신 공동 회관에 도착한 사람 수를 셌다. 마을 장부의 숫자와 달라서 두 번 확인했고, 모자 하나만 덩그러니 남은 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장수는 실종된 사람이 겨울등의 마지막 ‘자동 의무자’로 등록된 집의 청년이라고 했다. 청년 이름은 후연이었다. 그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도로 수리소에서 일했고,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다. 점심 무렵 통보를 받았다. ‘난방탑에 즉시 배치됩니다.’ 가족은 그가 스스로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도로 수리소에는 그의 신발 한 짝이 남아 있었다. “끌려갔을 수도 있겠네요.” 릴리가 말했다. “아직 확정하지 마세요.” 세리아가 답했다. “당사자의 이동 기록과 목격을 대조해야 합니다.” 단비는 북쪽 압력계 옆에서 후연이 쓰던 장갑을 발견했다. 그 안쪽에는 작은 쪽지가 있었다. ‘관이 터진다고 중앙에 세 번 알렸다. 네 번째 신고는 내 이름으로 보내지 말 것.’ 그는 끌려간 것이 아니라 설비 결함을 알리기 위해 위험한 장치 안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생겼다. 재하는 손목에 찬 황동 시계를 보았다. 여전히 도요 고원의 바늘은 다음 자동 갱신을 향하고 있었다. 갱신까지 사흘이라지만, 설비의 고장은 지금이었다. 계약의 오류를 밝혀내는 것과 배관을 고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리고 두 일 모두 사람의 시간이 필요했다. 단비가 비상 도면을 꺼냈다. 북쪽 배관을 끊고 남쪽의 비축 열관으로 임시 우회시키면 열기를 17시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남쪽 관은 너무 오래 쉬어 상태를 보증할 수 없었다. 우회하려면 내부를 점검해야 했다. 후연이 그곳에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누가 내려가겠습니까?” 장수가 물었다. 카르도가 먼저 나섰다. 하지만 단비가 고개를 저었다. “무거운 사람은 안 됩니다. 좁고 뜨거워요. 작업을 아는 사람이 들어가야 해요.” 전쟁신은 그 말을 듣고 물러났다. 도르도 재하도 장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단비와 다른 수리공이 안전줄을 묶었다. 재하는 도면을 들고 입구에서 연락을 담당했다. 한때 세상 어느 명령이든 내려 보려고 했던 신이 이제는 명령보다 무전기 소리가 중요한 자리에 서 있었다. 도요 고원에서는 다른 마을의 겨울나기 목록을 확인하는 일도 급했다. 릴리와 보건 담당자는 집집마다 난방 상태를 물었지만 숫자만 적지 않았다. 혼자 사는 사람, 장작을 직접 들기 어려운 사람, 집이 따뜻해도 감기로 누워 있는 사람을 구분했다. 같은 추위에도 필요한 도움이 다르기 때문이다. 릴리는 치료받는 데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몇몇 사람은 그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런 조건 없는 약속을 들은 적이 없어서였다. 마을 서쪽의 제빵사는 하루에 빵을 스무 개 더 구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장작이 부족해 굽는 시간까지는 약속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다른 집의 청년은 썰매로 빵을 나르겠다고 했지만, 눈이 심해지면 자기 가족을 먼저 챙기겠다는 조건을 붙였다. 재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모두가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말하면 오늘은 든든해 보여도 내일 약속이 무너질 수 있었다. 장수는 재하에게 오래된 겨울 기록을 보여 줬다. 사십 년 전에는 겨울등이 멎어서 온 마을이 엿새 동안 공동 회관에서 지냈다고 했다. 그때 사람들은 장작을 모아 서로의 집을 번갈아 데웠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누구도 이웃을 평생 일꾼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이후 중앙 계약이 들어오면서 겨울등은 훨씬 편리해졌다. 그러나 이제는 편리한 만큼 의존하게 되었고, 시스템이 멈추면 옛날 방식으로 돌아갈 방법도 잊어버렸다.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장수가 말했다. “그때는 추웠고 아픈 사람도 많았어. 다만 우리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알고 있었지.” 재하는 오래된 장부를 넘겼다. 사람 이름 옆에는 ‘나흘간 나무 운반’, ‘내일은 쉬기’, ‘간병 때문에 조퇴’ 같은 기록이 있었다. 완벽한 제도는 아니었지만 일을 그만둘 자리가 있었다. 누군가 그만뒀다고 마을 전체가 그 사람을 죄인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그 기록을 보며 재하는 새 계약의 목표가 과거의 고단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에 남아 있던 선택권을 현대의 설비와 함께 지키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검대가 내려가는 동안 중앙 장치가 갑자기 울었다. [비상 인력 부족 확인] [근접 지원 대상 자동 선정: 윤재하] [거절 시 보호 협약 위반 처리] 재하는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내가 대상이네.” 릴리가 얼굴을 굳혔다. “서명하지 마세요.” “안 합니다. 그런데 이건 좀 확인해 봐야겠어요.” 그는 손으로 장치 화면을 가리켰다. ‘근접 지원 대상’이라는 말 아래에는 사람 이름만 있었고, 수행할 작업과 위험 설명은 비어 있었다. 재하는 그 오류를 기록한 뒤 직접 거절 버튼을 눌렀다. 화면은 붉게 변했다. [비자발적 배치 거절: 시스템 오류] 장치의 경고등이 탑 꼭대기까지 번졌다. 난방탑의 불꽃이 흔들렸다. 기계는 누군가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를 고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때 배관 아래에서 단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연을 찾았어요! 살아 있어요! 그런데 출입문이 잠겼습니다!” 재하는 숨을 들이마셨다. 후연은 갇혔고, 자동 장치는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겨울등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려 만든 설비였지만, 지금은 사람 한 명의 거절 때문에 불꽃이 꺼지려고 했다. “우선 구조부터.” 릴리가 말했다. “알아요.” 재하가 답했다. “기계보다 사람이 먼저죠.” 그는 비상 도면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처음 설치한 주민들의 손글씨가 있었다. ‘전원이 불가능하면 수동 방열로 전환.’ 바로 아래를 누군가 검은 잉크로 덮어 놓았다. 재하는 잉크를 손톱으로 긁었다. 글자가 조금씩 드러났다. 그다음 줄에는 ‘관리 의무자의 명령을 기다리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33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3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