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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29화
PAYLUA ORIGINAL · 제129화

129화. 첫 번째 거절의 주인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17자

오프라인 책장
“최종 결정권자가 후보 본인이라고?” 윤재하는 세리아가 내민 문서를 두 번 읽었다. 이제까지 모두가 누군가의 승인을 기다렸다. 가시골 신전의 공용 주소, 검증실의 관리자, 중앙 회수소의 분류 담당자. 하지만 원본 규정은 아주 오래전부터 후보가 자기 대답의 주인이었다고 적고 있었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 거절이 처리되지 않았죠?” 릴리가 물었다. “이 규정 위에 행정 보류 장치가 덧붙여졌기 때문입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후보의 거절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닙니다. 다만 집행을 가로막는 층이 너무 많아진 거죠.” 에반은 종이에 얇은 원 세 개를 그렸다. 안쪽 원에는 ‘후보의 의사’, 중간 원에는 ‘전달 기관’, 바깥 원에는 ‘관리 승인’이라고 적었다. 모든 처리 요청은 가장 바깥 원에서 멈췄다. 안쪽에 있는 사람의 말은 정작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사실 복잡한 수학이 아니에요.” 에반이 말했다. “제일 중요한 버튼을 가장 깊은 메뉴에 숨긴 것과 같죠.” 모과가 종이를 들여다봤다. “그런데 지금이라도 그 바깥 원을 지우면 안 되나요?” “누가 어떤 권한으로 바깥 원을 지웠는지 기록이 필요합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그리고 후보의 개인 정보를 열지 않고 거절을 집행하는 방법을 검증해야 합니다.” 노엘은 중앙 회수소의 독립 검증 창구를 찾아냈다. 원래는 분실 우편이나 잘못된 수취 주소를 바로잡는 곳이었다. 특이하게도 그 창구는 후보의 이름을 요구하지 않았다. 봉인된 거절의 고유번호와 조작 이력만 있으면 심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런 창구가 있었어요?” 재하가 물었다. “있었습니다. 하지만 찾아오기가 어렵고, 담당 인원이 많지 않죠.” 릴리가 한숨을 쉬었다. “숨겨 둔 건 아니라고 하겠네요.” 노엘은 고개를 숙였다. “저도 회수인이 되고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세리아는 도르가 보관한 옛 문서를 제출했다. 문서에는 대리 접수 중단 요청과 정지 완료 통보, 실제 기능 유지 기록이 함께 있었다. 모과는 신전의 원래 주소가 쉼터로 등록됐다는 자료를 냈다. 리안은 외부망 장치가 주민 시설에 무단 연결돼 있었다는 안전 보고서를 보탰다. 에반은 자신이 설계한 추천 규칙의 기술 설명을 제공했지만, 심사 판단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후보 000001의 봉인된 거절이 제출됐다. 내용은 여전히 아무도 읽지 않았다. 원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유효한 거절 서명이 있다는 검증 결과뿐이었다. [후보 000001] [명시적 거절 원본: 존재] [서명 검증: 일치] [행정 보류 사유: 근거 없음] 재하가 숨을 들이켰다.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사람이 어떤 나라에 사는지, 어떤 이름을 쓰는지, 지금 몇 살인지 알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원하던 보호 요청은 바로 이런 형태여야 했다. 그런데 판정 창 아래에 작은 알림이 더 나타났다. [당사자 직접 통보 수단: 미확보] [거절 효력 자동 복원 조건: 원본 신청인의 전달 수신] “또 전달 문제군요.” 카르도가 말했다. 세리아가 옛 규정 원본을 다시 확인했다. 거절이 이미 유효하더라도, 그 효력을 각 외부망 장치에 알리는 통보가 필요했다. 그 통보를 받는 주소가 다시 가시골의 무인 자동 접수처로 지정돼 있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신청인의 거절을 어디에 보내야 하죠?” 릴리가 물었다. 노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독립 창구에 직접 송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신청인의 이름이 아니라 원본 고유번호로요.”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 왜 진작 하지 않았죠?”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재하는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화를 내기에는 너무 피곤했고, 지금 필요한 건 누가 무지했는지 따지는 일이 아니라 남은 몇 시간 안에 통보를 보내는 일이었다. 노엘에게 독립 창구의 경로를 부탁했다. 문제는 그 경로가 오래된 전송망을 통과한다는 데 있었다. 신전 아래 제2접수실의 소리관은 이미 절반이 고장 난 상태였다. 리안은 선을 연결해 통보 하나를 보낼 수는 있지만, 회신이 오기 전까지 같은 장치를 다시 켜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럼 보낼 서류는 딱 하나네요.” 재하가 말했다. “네. 대신 서류가 정확해야 합니다.” 서류에는 후보의 본명이 없었다. 거절 원본의 고유번호, 서명 검증 결과, 잘못 설정된 보류 기록의 위치, 새 통보를 받을 독립 창구의 주소만 있었다. 릴리는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읽었다. 에반의 기술 설명은 따로 첨부됐고, 카르도의 현장 안전 보고도 별도로 남았다. “누가 무슨 책임을 지는지 구분돼 있네요.” 릴리가 말했다. “그게 오래 걸렸습니다.” 재하가 답했다. 독립 검증 창구의 담당자는 얼굴이 아니라 문자로만 응답했다. 본래는 분실 우편의 주소를 확인하는 작은 기관이었다. 그들은 후보 000001의 거절이 들어왔다는 사실만 전달받았고, 실명이나 지구의 거주지 정보는 받지 않았다. 재하는 처음엔 불안했다. 구체적인 정보를 보지 않고도 정말 같은 사람의 결정인지 확인할 수 있을까. 세리아는 오래된 봉인 규칙을 보여 줬다. 당사자가 원본에 남긴 고유한 서명 검증값이 있고, 그 값은 내용을 열람하지 않고도 서로 비교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중에 서류를 바꾸면 값이 달라졌다. 물론 이 장치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원본을 만든 과정이 잘못됐다면 검증값도 잘못된 기록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별도로 서명의 생성 시각과 보류 설정 시각을 대조해야 했다. “그럼 여기서 확인하는 건 그분의 정체가 아니라, 그분이 이미 했던 대답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군요.” 릴리가 말했다. “정확해요.” 세리아가 답했다. “우리는 그 대답이 누구의 소유인지 새로 정하지 않습니다.” 에반은 이 설명을 듣고 작은 계산을 했다. 기존 외부망의 구조에서는 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후보가 새로운 제안을 받을 확률이 높아졌다. 사업자에게는 거절을 바로 처리하는 것보다 보류하는 편이 이익이었다. 그 구조가 남아 있다면 어떤 관리자도 쉽게 보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개별 담당자가 악해서만 생긴 문제가 아니겠군.” 카르도가 말했다. “그렇다고 책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에반이 답했다.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보상을 설계한 회사도 문제고, 알고도 그걸 이용한 사람도 책임이 있죠.” 재하는 한동안 생각했다. 자신은 신도가 0명일 때 한 사람의 믿음이 절실했다. 그 마음을 누군가 이용하려 들었다면 어쩌면 자신도 편한 길을 선택했을지 몰랐다. 노아를 치료한 첫 번째 기적은 신앙 포인트 1점을 모두 쓰는 선택이었다. 그때 손을 뻗지 않았다면 점수는 남았을지 모르지만 릴리의 동생은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누군가의 믿음이 자기 자산이라는 생각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독립 창구는 첫 번째 심사에서 자료 보완을 요구했다. 후보 원본의 현재 보존 상태가 안정적인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리안은 지하 저장함의 습도와 온도를 다시 측정했고, 노엘은 보관소가 다른 곳으로 이송되지 않았다는 확인서를 작성했다. 모과는 전날 주민회 기록을 제출했다. 여러 사람의 작은 증거가 쌓여야 비로소 한 장의 거절이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릴리는 접수창 앞에서 오래 기다렸다. 창에서는 속도가 느리다는 안내가 떠올랐다. 그는 초조해하지 않으려 했지만 손끝이 차가워졌다. 멀리 있는 사람의 선택이 지금도 보류된 상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도르가 옆에서 따뜻한 물을 건넸다.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겠네.” “물 마시는 일이요?” “응. 너까지 쓰러지면 그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되니까.” 릴리는 웃으며 컵을 받았다. 도르는 자신도 오래된 서류 한 장을 더 찾아야 한다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들은 서로의 조급함을 억누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계속했다. 통보를 보낼 때 세리아는 실수로도 다른 세계의 주소가 새로 등록되지 않도록 전송 범위를 잠갔다. 리안은 우물과 연결된 동력선을 분리하고 독립 전원으로 서류 하나만 이동하게 했다. 노엘은 송달 기록의 도착지와 전송 실패 시 반환될 경로를 두 번 확인했다. “이렇게까지 확인해야 하나요?” 모과가 물었다. “앞으로 다시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요.” 재하가 답했다. “예전에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빈칸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이 바뀌었잖아요.” 에반은 마지막 점검에서 자동 재시도 기능을 발견했다. 전송이 실패하면 새로운 후보 모집 요청으로 내용을 바꿔 발송하는 오류였다. 그는 직접 수정하지 않고 리안과 세리아에게 기능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시험망에서 재시도 기능이 차단됐는지 확인했다. 이제 전송이 실패하면 그 이유를 남기고 멈추도록 했다. 그들은 통보를 보내기 전에 잠시 쉬었다. 누구도 기도를 올리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신성 포인트를 쓰지도 않았다. 재하는 자신이 할 일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기적을 일으키는 대신 한 장의 편지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사람들과 함께 확인하는 것. 그 일이 오늘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이었다. 송달 확인이 돌아오기 직전까지 재하는 혹시 또 자신에게 무언가 서명하라고 요구할까 걱정했다. 하지만 마지막 창은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후보의 거절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독립적으로 확인하고 결과를 통보할 뿐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낯설었다. “이렇게 간단한 판정을 받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요?” 릴리가 물었다. “판정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그 판정을 무시할 이익이 많았던 거겠죠.” 재하가 답했다. 에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누군가 한 사람의 악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판매 구조도, 빈 의자 주소를 운영한 사람도, 승인 없이 보류를 연장한 기관도 각자의 작은 이익을 위해 침묵했다. 한 사람의 거절이 사라진 것은 그런 결정들이 쌓인 결과였다. 세리아는 판정 결과에 개인을 특정할 만한 문구가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후보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후보가 더는 이 사건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남은 것은 통보를 실제로 보내는 일이었다. 누구도 그 결정을 대신하지 않았다. 오후 늦게 리안이 임시 전송선을 연결했다. 소리관은 낮게 울렸고, 작은 빛이 서류를 감쌌다. 통보는 처음에 신전 공용 주소로 향하려다가 멈췄다. 주민회의가 그 주소의 자동 사용 동의를 철회했다는 기록 때문이었다. [기존 수신처 사용 불가] [대체 독립 창구 탐색]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몇 초 뒤 통보는 다른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노엘이 손에 든 작은 관이 함께 울렸다. 독립 창구에서 송달 확인이 돌아온 것이다. [후보 000001: 거절 효력 복원] [외부 후보 재호출 금지] [사후 관찰 데이터 신규 수집 금지] 릴리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에반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르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이 신격을 내려놓기 전에 보냈던 중단 요청이 이제야 어떤 결과를 내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재하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이걸로 그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건 아니죠?” “그렇습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이 결과는 외부망의 재호출과 관찰에 한정됩니다. 그동안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는 당사자의 요청이 있을 때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그 말이 재하를 안심시켰다. 보호가 성공했다고 해서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위로의 편지를 보내거나, 그 사람의 이름을 축하 행사에 올릴 생각은 없었다. 모과는 주민회 게시판에 짧은 안내를 붙였다. ‘무인 공용 주소 사용 정지. 원래 쉼터 기능 유지. 외부 후보의 거절 효력 복원 확인.’ 구체적 개인 정보는 적지 않았다. 밤이 되어 사람들이 돌아간 뒤 재하는 오래된 신전의 계단에 앉았다. 한때 누군가의 기적을 기다리던 곳이었다. 이제는 사람이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런데 제2접수실의 남은 장치가 마지막 경고음을 냈다. [후보 000001: 안전 확보] [후속 조사 대상: 사전 관찰 요청의 원 승인자] [원 승인 기록 보관처: 복수 세계 공동 경유실] 재하는 창을 읽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거절을 지켰으니, 이제 누가 이런 일을 만들었는지 알아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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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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